고자질의 발전; 심리전
(WWW.SURPRISE.OR.KR / 탁류 / 2022-03-18)

고자질의 발전을 이전보다 나아진 말하기 방식이라고 해석할 수는 없다. 분화된 고자질은 말하기 방식의 퇴보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이 이전보다 훨씬 더 정교하게 가다듬어졌다는 점에서는 발전이다. 고자질은 윤리적 측면에서 보자면 퇴행이면서 사회에 대한 감시와 통제라는 측면에서는 모든 발전의 근간이다. 겨우 고자질이? 그렇다. 우리는 고자질에서 파생된 틀 안에서 살아가고 죽는다.

1. 고자질의 발생과 조건

고자질이 성립하기 위해선 최소 3명의 사람이 필요하다.

제1인: 악행이나 우행을 행하는 자
제2인: 제1인의 행동을 목격한 자
제3인: 제2인으로부터 제1인의 악행이나 우행에 관한 정보를 전달받는 자

여기서 제2인은 당사자인 제1인에게 자신의 판단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제3인에게 이야기함으로써 제1인에 대한 윤리적 판단의 책임을 떠넘긴다. 이때 제 2인이 제1인에게 직접 잘못을 지적하고 시정을 요구한다면 고자질은 성립하지 않는다. 고자질이 발생하는 요인은 제2인은 제1인의 행위를 목격하기만 했을 뿐, 육체적 정신적 능력의 상대적 부족으로 인해 제1인의 잘못을 직접 바로잡을 수 없다고 판단하고 제3인에게 윤리적 판단과 처벌을 위탁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능력을 벗어난 문제(처벌)로 인해 자신보다 더 큰 힘과 권위를 가진 자에게 자신이 져야 했을 책임을 떠넘기면서 고자질이 발생한다.

2. 고자질의 목적과 문제점

고자질의 목적은 언제나 <쟤 혼내주세요>다. 시간이 흘러도 이 목적은 변화하지 않는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 고자질이 끊임없이 발생하는 건 그것이 분명 이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공동체의 문제점을 바로잡는 순기능이라고 믿어지는 가공의 이점이다. 정말로 고자질이 문제점의 시정이라는 목적을 완수하는가? 그렇다면 왜 끊임없이 악행과 우행이 발생하는 건가? 그 목적은 신기루와 같다. 있다고 분명 믿어지지만, 실체가 없다. 그 이유는 뭔가? 제1인과 제2인은 악행과 우행에 대한 상충하는 태도를 가진 자들이다. 이때 제2인이 제1인과 개인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때, 이 문제는 사적인 문제로 인식되고 다루어진다. 그러나 제3인을 끌어들이는 순간 제1인은 단 한 명에 불과하던 목격자인 제2인이 공동체 전체에 복사되어 사적인 문제는 순식간에 공공의 문제로 발전한다. 고자질이 태생적으로 안을 수 밖에 없는 문제점은 한 인간의 사적 영역이 공적 영역으로 노출되고 확대 재생산된다는 점에 있다. 여기엔 나만이 아닌 다수가 나를 들여다본다는 심리적 압박감이 발생한다.

거의 모든 제1인의 행동은 은밀한 <사적> 영역이지 <공적> 영역이 아니다. 검사가 내게 특정 시간에 걸쳐 웹브라우저상에서 내가 클릭했던 모든 게시물의 목록을 빠짐없이 시간 순서대로 인쇄한 목록을 들이밀었을 때, 통신사 서버(제2인)의 기록물은 나의 사적 영역을 공적 영역으로 순식간에 옮긴 다음 어둠 속에 묻힌 나의 정신세계를 환한 전등 불빛 아래로 노출했던 증인이었다. 년. 월. 시. 분. 초... 기억조차할 수 없는 디지털 족적이 끝없이 이어진다. 그 흔적을 부인하거나 거부할 수 없다. 공공은 언제나 밝기 때문이다. 거기선 보이지 않는 것이 없다. 영혼까지 발가벗겨지도록 강요받는다. 인간의 영혼은 검다. 그 내용물이 두개골의 그늘 안에서 바깥으로 드러나는 것, 그것은 인간에게 고통을 안긴다. 그 고통은 <감시와 처벌>을 지속해서 의식하게 만든다. <누군가 항상 너를 어디선가 지켜보고 있다>는 암시는 인간의 영혼을 조각낸다.

3. 고자질과 사법체계

제2인이 정보를 전달하는 대상인 제3인의 자격이 부모에서 마을 어른이나 선생 정도에 그칠 때 흔히 이 행위는 <고자질>이라고 불린다. 그러나 정보전달의 대상이 공권력을 집행할 수 있는 자 또는 기관으로 바뀌면 이 행위는 <고발>, <고소> 또는 <기소>라고 불린다. 우리가 아는 <증인> 또는 <목격자>는 제2인을 지칭하고, <피고인>은 제1인, <검사>는 제2인의 대리인, <변호사>는 제1인의 대리인, <판사>는 제3인의 대리인이다. 목격자를 대리하는 검사의 역할은 <쟤 혼내주세요>다. 우리가 가진 사법체계는 3인으로 구성된 고자질의 원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현대사회의 사법체계가 작동하는 근간은 고자질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현대사회의 사법체계는 고자질의 원형이 가진 모순점을 그대로 내포한다. 그 모순점이란 공동체의 정화를 목적하면서도 영원히 그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함을 의미한다. 그리고 고자질은 20세기 제국주의의 지배 방식에서 그 꽃을 피운다.

4. 심리전: 제국주의의 꽃

영미가 발전시킨 심리전은 고자질의 변용과 확장이다. 심리전에선 고자질하는 자, 즉 <쟤 혼내주세요>가 목격자인 제2인이 아니라 바로 공공의 권위체인 제3인이다. 공공의 영역이 감시하고 처벌하는 제3인의 지위에서 고자질하는 제2인의 영역으로 내려온다. 그리고 제1인의 목록에 이란, 시리아, 러시아, 중국, 조선을 올린 다음 악행의 목록을 끝없이 나열하고 24시간 내내 밝은 영역(미디어)에 노출한다. 즉, 우연한 목격자인 민중이 아니라 <감시와 처벌>의 주체인 정부가 민중들에게 <얘네들 혼내주세요>라고 거꾸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왜 민중이 아닌 정부가 고자질이라는 해괴한 역할을 수행하는가? 그것은 고자질의 대상이 개인이 아니라 사법적 처벌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상대국 또는 적대적 국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정보를 습득하는 모든 사람은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처벌자인 제3인이 되어버린다. 제3인은 바로 민중들 전체다. 민중들은 감시하고 처벌할 수단을 갖고 있지 않은 데에도 불구하고 제2인(정부)이 끊임없이 고자질하는 정보를 보고 들어야 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점은 전통적인 고자질의 영역에선 고자질하는 제2인은 제3인에게 최소한 사실을 이야기한다는 전제가 있지만, 심리전에선 고자질의 내용물이 거의 언제나 거짓이거나 왜곡된 정보다. 따라서 제국주의의 영향 하에 있는 민중들은 오염된 정보를 24시간 섭취한다. 이 오염된 정보는 민중들을 진실에서 멀어지게 하고 민중들을 세뇌한다. 그리고 세뇌된 민중들은 다시 동료와 가족을 연이어 세뇌시킨다. 오염된 정보가 자가 복제를 시작하는 것이다. 이 세뇌의 끝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바로 <너희들이 잘못했네>라는 가공된 윤리적 판단이다. 민중들이 이 가공된 윤리적 판단에 도달하면 민중들 전체가, 한 명 한 명이 최전선의 병사(비자발적 제국주의자)와 같은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5. 맺음말

영미가 발전시킨 심리전은 대체로 적국을 직접적인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자국민을 향한 선전전, 이것이 영미가 고도로 발전시킨 영역이다. 이것은 문제를 일으킨다. 그것은 바로 제국주의의 지배하에 있는 민중 전체가 세뇌된 민간 억지력(Civilian Deterrence)으로 기능하게 되는 것이다. 민중들 스스로가 동족과 형제를 거부하는 것, 이것은 역사의 흐름을 역행하는 장애물임과 동시에 우리 현대사의 비극이다. 영미의 심리전은 가공된 정보로 적대적 의지가 없는 민중들에게 적대성을 심으려는 방편이다. 3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 유일하게 연결된 육지는 철망으로 가로막혀 있다. 왕래를 불허한다. 따라서 이곳은 거대한 감옥이다. 여기서 말하는 자유는 <감옥안에서의 자유>를 가리킨다. 김영환이 공안에 붙잡혀 있다 성치 않은 얼굴로 입국한 그때 즈음, 영미의 대조선 심리전 공작은 그 끝을 맞이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여기선 그것이 멈춘 적이 없다. 비가 와도 언젠간 그치는 때가 있고 바람이 불어도 언젠간 잦아드는 때가 찾아오건만, 그것은 멈춘 적이 없다. 꽃은 피었다가 지고 파란 잎새가 물들어 낙엽이 져도 그것은 멈추지 않는다. 자연을 닮지 않았다. 그게 제국주의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