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쟁과 해리 트루먼 ④
(WWW.SURPRISE.OR.KR / 김종익 / 2026-07-27)
아베 고다이阿部幸大
1987년생. 도쿄 대학 문학부 학사, 석사. 뉴욕 주립대학 박사 학위 취득. 쓰쿠바 대학 인문 사회계 조교, 미일 문화사 연구자.
『완전히 새로운 아카데믹 글쓰기 교과서』 『내러티브 피해학』 등의 저서가 있다.
■ 촌극으로서의 전쟁
사진과 마찬가지로, 한국 전쟁을 상징하는 영화도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작품은 로버트 올트먼 감독의 『M*A*S*H』(1970)일 것이다. 이 제목은 Mobile Army Surgical Hospital의 머리글자를 딴 것으로, ‘이동식 육군 외과 병원’을 뜻한다. 전쟁터에서는 부상자가 발생하기 마련이어서 의사가 필요하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medic이라 불리는데, 이들은 의사 면허 없이 전선에서 응급 처치 등에 필요한 일정한 훈련을 받은 일반 병사들이다. 이에 비해 『M*A*S*H』의 주인공들은 일본어로 말하면 ‘군의’(軍医)에 해당하며, 전쟁으로 징집된 민간 의사들이다. 원래 미국 영화는 전투 그 자체보다 전후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다룬 작품이 많은 편이지만, 이 영화는 전쟁이 한창 진행되는 가운데 전선에서 약 5킬로미터 떨어진 후방의 이동식 외과 병원을 무대로 하고 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존재는 어쩌면 헬리콥터일 것이다. 한국 전쟁에서는 부상병 수송에 처음으로 헬리콥터가 사용되었고, 경량화를 위해 골조만 남긴 기체 양쪽에 들것을 부착한 벨(Bell)사의 H-13 Sioux는 한국 전쟁을 대표하는 존재가 되었다. 어쩌면 통상적인 역사 인식에서 한국 전쟁을 가장 상징하는 이미지는 바로 이 헬리콥터라고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영화는 피를 흘리는 부상병을 태운 헬리콥터가 산악 지대를 어지럽게 날아가는 모습을 약 3분 동안 보여 주는 시퀀스로 시작되며, 그 헬리콥터가 MASH에 착륙하면서부터 본격적인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 영화에는 전체를 관통하는 일관된 줄거리가 없다. 주인공 호크아이(도널드 서덜랜드)와 듀크(톰 스커릿)라는 두 인물이 군의 규율을 끊임없이 무시하고 모독하며 조롱하는 에피소드가 이어지는 형식이다. 전반부에서는 군의 규율을 중시하는 경건한 기독교인이면서도 권위주의적인 흉부외과 의사와, 같은 가치관을 지닌 수간호사의 불륜이 폭로된다. 이는 이 영화가 ‘진지함’이라는 가치관을 적대시하는 희극임을 예고한다.
그 결과 이 영화에서 강렬한 인상으로 남는 것은, 한국 전쟁을 긍정하거나 비판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헬리콥터와 수술실의 이미지, 그리고 정치적 정당성을 조롱하는 블랙 유머뿐이다.
사실 이 영화에는 ‘한국 전쟁을 온전히 그려 내겠다’는 의도 자체가 거의 없었다고 해도 좋다. 『M*A*S*H』가 공개된 1970년이라는 시대에는, 실은 이 영화가 다른 전쟁을 그리고 있다는 함의를 미국인이라면 누구나 이해하고 있었다. 당시는 베트남전 반전 운동이 절정에 이르렀던 시기였다. 미국이 북베트남 지원 루트를 차단하기 위해 캄보디아를 침공한 것도, 켄트주립대학교에서 반전 시위에 참여한 학생들을 주 방위군이 사살한 것도 모두 같은 해의 일이었다.
‘전쟁에서의 승리’를 뜻하던 V 사인이 오늘날 우리가 아는 ‘peace’, 곧 ‘평화’를 의미하게 된 것은 베트남전 반전 운동의 맥락에서였으며, 『M*A*S*H』 포스터에 V 사인이 등장하는 것 또한 베트남전이라는 맥락 없이는 이해할 수 없다. 이처럼 한국 전쟁을 다룬 가장 유명한 영화는, 한국 전쟁을 빌려 다른 전쟁을 이야기하는 영화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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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는 「Suicide Is Painless」, 곧 ‘자살은 무통’이라는 주제가가 있다. 이 노래는 영화 첫머리의 헬리콥터 시퀀스에서 흐르고, 나아가 극 중에서 ‘페인리스’(Painless)라는 별명을 가진 치과 군의가 자살을 시도하는 장면에서도 불린다. 감독 올트먼은 일부러 ‘바보 같은’ 가사를 원해 열네 살 아들에게 단 5분 만에 가사를 쓰게 했다고 회고하지만, 그 가사는 오히려 병적일 만큼 치밀하게 계산되어 있어 위태로운 염세주의를 자아내는 초현실적인 결정체가 되었다. 영화에서는 원래 가사 가운데 2연과 5연이 삭제되었지만, 여기서는 4연과 5연 부분을, 멜로디에 맞춰 부를 수 있도록 옮겨 보자.
The game of life is hard to play
I'm gonna lose it anyway
The losing card I'll someday Lay
So this is all I have to say
[refrain]
Suicide is painless
It bring on many changes
And I can take or leave it
If I please
The only way to win is cheat
And lay it down before I'm beat
And to another give my seat
For that's the only painless feat
삶이란 게임은 버거운 것
어차피 나는 지고 말 테지
언젠가 패배의 패를 내려놓을 테니
내가 할 말은 이것뿐이야.
[후렴]
자살은 아프지 않아
많은 것을 바꾸어 놓지
원하면 받아들여도,
그냥 내버려두어도 돼.
이기는 길은 속이는 것뿐
패하기 전에 먼저 내려놓는 것
내 자리를 다른 이에게 내주는 것
그것만이 고통 없는 유일한 위업이니까.
이 가사에는, 영화 내용과 한국 전쟁을 둘러싼 역사적 레토릭이 함께 녹아 있다. 트루먼 정권은 국가 대 국가의 ‘전쟁’을, 세계가 범죄자를 단속하는 ‘경찰 행동’으로 규칙 자체를 바꿔 버리는 ‘속임수’를 통해, ‘방위’라는 새로운 ‘게임’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뒤를 이은 아이젠하워 정권은 ‘휴전’이라는 형식을 통해 그 전쟁에서 ‘내려왔다’. 그러나 물론 그것은 문제 해결을 무한정 뒤로 미룬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로부터 70년이 지난 지금도 한반도는 여전히 전쟁 상태에 놓여 있으며, 미국은 그곳에 수많은 군사 기지를 남겨 둔 채 멋대로 ‘내려왔을 뿐이다.’
이 영화의 마지막 에피소드는 인근 부대와의 아메리칸 풋볼 내기 시합이지만, 거기에서 호크아이는 전 프로 선수를 보유하고 있는 사실을 시합 후반까지 은폐하고, 게다가 상대 팀 선수에게 마취약을 주사한다는 믿기 어려운 반칙으로 승리한다. 바로 속임수로 승리하지만, 거기서 그들은 적(赤)팀과 청팀으로 갈라져 있는데, 이것은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의 색깔일 뿐 아니라, 냉전하의 공산주의(赤)와 민주주의(청)의 분류이기도 하다. 여기서 주인공 팀은 적팀으로 승리하지만, 그것은 그들이 공산권 비유임을 암암리에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유엔이 승인한 ‘정규’ 규칙에 따라 싸우고 있다고 주장하는 미국과 사실은 속임수를 일삼는 미국과의 분열인 것이다. 거기에 피해자인 한국인의 모습은 없다.
이처럼 한국 전쟁을 통렬하게 야유하는 반전 영화처럼 보이는 『M*A*S*H』는, ‘도미노 이론’, ‘경찰 행동’, ‘냉전’과 같은 레토릭으로 일방적인 군사 행동을 정당화하는 미국의 논리와 결국 합류하게 된다. “And you can do the same thing / If you please”(너도 그렇게 하면 돼. 좋을 대로) ― 노래는 마지막 연에서 주어를 I에서 You로 바꾸며 그렇게 충동한다. 그러나 이 전쟁이라는 게임에서 내려올지 말지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진 것은 미국인뿐이다.
누가 자유와 평화를 누릴 수 있는지를 미국은 핵무기 사용을 내비치면서 그 경계선을 긋는다. 그리고 그 경계를 긋는 폭력은, 누구의 전쟁은 ‘방위’이고 누구의 전쟁은 ‘범죄’인지를 가르는 권력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전쟁 국가 미국이 ‘자유’를 외칠 때마다, 우리는 언제나 이렇게 물어야 한다. ‘그 자유는 과연 누구의 자유인가.’라고. <끝>
(『세카이』, 202607월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