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외롭게 싸운 가네코 후미코(金子文子) ①
100년 전, 일본에서 국가 권력에 저항한 무정부주의자의 투쟁
(WWW.SURPRISE.OR.KR / 김종익 / 2026-06-16)
모리 마유미森まゆみ
1954년생. 작가이자 시민운동가.
저서에 『오가이의 언덕』『이치요의 사계』『센다기의 소세키』『고집불통의 사람―하니 모토코와 그 시대―』『‘세이토’의 모험―여성들이 모여 잡지를 만든다는 것―』『어두운 시대의 사람들』『시키의 소리』등이 있다.
* 이 번역글은 분량이 길어 4편에 나누어 게재합니다 - 역자 주
영화 「가네코 후미코―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을까」가 장기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그녀는 일본 역사상 세 번째 대역죄(大逆罪) 사건으로 사형을 선고받고, 스물세 살의 나이에 옥중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한 젊은 여성이었다. 몇 년 전에도 한국 영화 「가네코 후미코와 박열」(원제 「박열」)이 상영되어 호평을 받았지만, 이번 하마노 사치(浜野佐知) 감독의 영화는 전혀 다른 작품이다. 이 영화는 박열과 후미코가 재판을 거쳐 서로 떨어져 수감된 뒤의 121일을 추적한다.
다시 말해, 가네코 후미코는 홀로 싸운다. 지금까지 세토우치 자쿠초의 『여백의 봄』에서도, 한국 영화에서도, 가네코 후미코는 박열의 연인이자 동지로 그려졌고, 두 사람은 언제나 한 쌍으로 다루어졌다. 그리고 다테마쓰 가이세이(立松懷淸) 판사의 허가를 받아 후미코가 박열의 무릎 위에 앉아 있는 모습을 찍은, 이른바 ‘괴사진’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었다.
박열은 판결 10일 뒤, 은사로 사형이 무기징역으로 감형된다는 통지서를 그대로 받아들였지만, 가네코 후미코는 그것을 찢어서 버렸다. 그것은 훗날 두 사람의 삶을 암시하는 사건이었다.
후미코는 우쓰노미야 형무소 도치기 지소에 수감된 뒤 옥중에서 수기를 쓰고, 그것을 남긴 채 1926년 7월 23일 스스로 목을 매 생을 마감했다. 옥중 수기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이하 『자서전』)를 내가 처음 읽은 때가 언제였던가. 자서전의 문장은 읽기 쉬우면서도 박력이 있었다. 나는 독학으로 공부한 이 젊은 여성에게 존경심을 품었다. 학교에 거의 다니지 못했던 후미코는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고, 자신의 사상을 만들어 냈다.
■ 비참한 소녀 시절
여기서는 가네코 후미코가 박열을 만나기 전을 쓰고 싶다.
가네코 후미코는 1903년 1월 25일, 요코하마에서 태어난 것으로 되어 있다. 아버지는 히로시마 농촌의 촌장 집안에서 태어난 사에키 후미카즈(佐伯文一). 어머니는 야마나시의 농가에서 태어난 가네코 기쿠노(金子きくの). 부모는 내연 관계였다. 본적은 어머니 쪽인 야마나시현 히가시야마나시군 스와촌.
후미코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비참한 소녀 시절을 보냈다. 요코하마의 빈민가인 고토부키초에 살았는데, 아버지는 ‘형사인지 뭔지’ 하는 사람이었지만 젊은 여자들을 집으로 데려오곤 했다. 후미코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가 각기 다른 이성과 성관계를 맺는 장면을 수없이 목격하며 자랐다. 그리고 학교에 갈 나이가 되었어도 호적이 없어 취학 통지를 받지 못하여, 학교에 다닐 수 없었다. 이에 ‘무적자’(법률상 존재하지 않는 인간)인 자신의 처지를 비통해했다.
겨우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되었을 때도 다른 아이들의 수업증서는 단단하고 빳빳한 종이에 활자로 인쇄되어 있었다. 그러나 후미코의 것은 반지를 반으로 접은 종이에 붓글씨로 쓴 것이어서, 교장에게서 받아 드는 순간 종이가 맥없이 휘어져 축 늘어졌다. 후미코는 이 굴욕을 평생 잊지 않았다.
아버지가 외숙모 다카노와 육체관계를 맺고 달아난 뒤, 어머니는 홀로 자립하지 못하고, 여러 남자와 내연 관계를 맺으며 살았다. 그 남자들은 후미코를 학대했다. “어린 나조차 답답하게 여길 만큼 어머니의 의존심은 강했다. 어머니는 혼자서는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하는 사람이었다.”(『자서전』) 어머니는 남자와 성관계를 맺기 위해, 거추장스러운 존재였던 후미코에게 푼돈을 쥐여 주어 집 밖으로 내몰았다.
그리고 후미코가 단 한 사람 ‘사랑하는 존재’, 여섯 살 아래 남동생 겐슌마저 아버지 쪽에 맡겨 후미코에게서 빼앗아 간다. 어머니는 후미코를 유곽에 팔아넘기려고까지 했다. 어머니의 몇 번째 남자, 고바야시의 고향은 야마나시였다. 그곳은 숯을 굽고 누에를 치는 촌이었다. “누에고치와 숯을 도시에 내다 팔기 때문에, 그보다 훨씬 질이 나쁜 무명천과 비녀를 사게 되고, 그런 교환의 교묘한 구조로 시골의 돈이 도시로 빠져나가는 것이다.”(『자서전』) 소녀 후미코는 이렇게 자본주의의 수탈 구조를 꿰뚫어 보았다. 어머니는 자신의 친정으로 돌아가 이번에는 후처로 들어갔다. 그리고 후미코는 홀로 버려졌다.
내가 이 이야기에 남의 일 같지 않게 느낀 것은, 내 어머니와 큰이모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외할아버지의 니혼바시 가게는 간토대지진으로 불타 버렸고, 쇼와 대공황까지 겹치면서 끝내 버텨 내지 못했다. 외할아버지는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우다가 끝내 외할머니와 이혼했고,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다. 장녀인 큰이모는 아버지 쪽으로, 차녀는 어머니 쪽으로, 삼녀인 어머니는 아이가 없던 아사쿠사의 한 부부에게 입양되었다.
“동생들과 헤어져야 하는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행복은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자라는 거야”라고 큰이모는 몇 번이고 되풀이 말했다.
어머니는 “친어머니가 밥을 지어 준 적도 없고, 함께 밥을 먹은 적도 없는걸. 친어머니에게는 아무런 정이 없어”라고 말했다. 두 사람의 슬픔이 가네코 후미코와 겹친다. <2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