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 결산] ‘18년 광야’ 끝 당권 잡은 김민석…승리보다 무거운 숙제는 ‘통합’
(WWW.SURPRISE.OR.KR / 임두만/ 2026-08-18)
더불어민주당 8·17 전당대회가 김민석 신임 대표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80년대 서울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의해 픽업되어 민주화운동의 상징적 청년 정치인으로 주목받았던 김 대표는 2002년 대선에서 정몽준을 선택한 여파로 오랜 정치적 고난의 시기인 이른바 ‘18년 광야생활’을 거쳐 국무총리에 이어 집권여당 대표 자리까지 올랐다.
따라서 김 대표에게 이번 승리는 정치적 재기의 완성인 동시에 새로운 시험의 시작이다. 즉 경선 과정 내내 24년 전인 2002년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을 떠나 정몽준 후보 측에 합류했던 과거가 다시 소환되면서 정청래 후보와 그 지지층으로부터 거센 ‘배신자’ 공세를 받아야 했으며, ‘개혁’ 강성론자들에 의한 ‘실용파’ 공세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당대표 선거에서는 김 대표가 승리했지만 선출직 최고위원 5명 가운데 정청래 후보와 가까운 인사 3명이 당선됐다. 당권은 김민석 대표가 잡았지만 직선 최고위원은 ‘반대파’가 수적 우위를 차지한 것이다.
하지만 김 대표에게는 이재명 대통령과 친명계의 강력한 지지 기반이라는 정치적 자산이 있다. 더구나 민주당 당헌상 임명직 최고위원 2명을 대표가 지명할 수 있으며, 당연직 최고위 멤버인 한병도 원내대표도 김 대표의 반대편에 있는 것은 아니므로 최고위의 구성이 김 대표 반대파인 ‘친청계’가 차지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전당대회에서 나타난 당원들의 요구는 일방통행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새 지도부의 성패는 경선 과정에서 깊어진 감정의 골을 얼마나 빠르게 메우고, 친명과 친청을 하나의 집권여당 지도체제로 묶어내느냐에 달렸다.
54.08% 김민석의 승리…그러나 정청래도 45.92%
김 대표는 17일 대전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민주당 제3차 정기전국당원대회에서 최종 득표율 54.08%를 기록해 45.92%를 얻은 정청래 후보를 8.16%포인트 차로 누르고 당대표에 선출됐다.
권리당원 투표와 대의원 투표에서 과반 이상의 득표로 당원 지지표를 확인했으나 국민여론조사에서는 정청래 후보가 50.70%를 얻어 김 대표의 49.30%를 오히려 앞섰다.
이는 김 대표가 원내와 대의원, 친명계 당원들의 강력한 지지에 중도·확장 전략이 결합한 결과로 풀이된다. 반면 검찰·사법·언론개혁 등을 앞세운 강한 개혁 노선과 당원주권을 강조하며 끝까지 김 대표를 추격한 정 후보 지지층도 45.92%나 된다.
그만큼 이번 전당대회를 통해 나타난 당내 역학구도가 친명계와 김 대표의 일방통행식 당 운영은 힘들 것이라는 예측도 가능하다.
24년 만에 다시 등장한 ‘정몽준 선택’…김민석 괴롭힌 ‘배신자론’ 어떻게 넘을 것인가?
김 대표를 경선 기간 내내 따라다닌 가장 아픈 공격은 2002년의 정치적 선택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강력한 후광으로 민주당의 차세대 주자로 주목받던 김 대표는 2002년 대선을 앞두고 노무현 후보가 지지율 하락으로 고전할 당시 지지율 1위이던 정몽준과의 단일화를 주장하며 정몽준 후보 진영에 합류했다.
이후 정 후보와 단일화에 성공, 지지율을 회복한 노무현 후보는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나 김 대표는 혹독한 결과를 맞이했다.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두차례나 기소되어 피선거권이 박탈되는 유죄를 받아 정치권에 진입할 수 없는 긴 시간을 겪은 것이다.
이 시기 그는 미국유학과 중국유학으로 자신을 닦았다. 이를 바탕으로 이른바 ‘18년의 광야생활’을 겪고서야 정치권 롤백에 성공했다.
하지만 이번 경선에서 이 문제는 24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다시 등장했다. 정 후보 지지층에서 ‘배신자론’을 거세게 제기한 것이다. 김 대표 입장에서는 이미 오랜 정치적 부침과 복당 이후의 활동을 통해 평가받았다고 볼 수 있는 과거였지만, 당내 경쟁에서는 여전히 강력한 정치적 공격 소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셈이다.
결국 김 대표가 앞으로 풀어야 할 통합 문제가 단순한 계파 간 자리 배분을 넘어선다는 의미다. 경선 과정에서 쌓인 지지자들의 감정적 대립까지 해소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김 대표의 정치적 생명력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18년이라는 긴 정치적 공백을 견딘 그가 2020년 21대 총선 당시 치열한 당내 경선을 통해 18년 전의 지역구였던 서울 영등포을에서 ‘친문계’ 신경민 전 의원을 물리치고 공천을 받은 뒤 국회에 롤백했으며, 2024년 4선 의원이 되었다.
그리고 이후 이재명 대통령과 정치적 행보를 함께하면서 다시 중심으로 돌아왔다. 특히 민주당 최고위원 시절 비상계엄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경고하며 주목받았고,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에는 국무총리를 맡아 국정 전반을 경험했다.
이에 대해 김 대표는 대표 수락연설에서 “5·18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스무 살의 서울대 학생회장으로 공인의 길에 선 지 40년 만에 민주당의 대표가 됐다”면서 “평생 스승 김대중의 뒤를 이어 감격이며, 평생 동지 이재명의 길을 이어 뿌듯하다”고 소회를 밝혔다.
필요한 것은 당 통합과 대야관계 리더십
이번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은 정청래 후보와 가까운 인사들이 3자리를 차지했다. 이중 노골적 반김민석을 표방한 최민희 후보가 최종 18.35%로 1위에 올라 수석최고위원이 됐고, 이성윤·한민수 후보도 지도부에 입성했다.
친명계에서 김용 후보를 당선시켜 선출직 최고위원 과반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으로 막판 하위권 후보 2명이 전격 사퇴했지만 결과적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김용 후보는 최종 15.26%로 한민수 후보의 15.86%에 불과 0.60%포인트 뒤진 6위를 기록 낙선했다.
따라서 김 대표가 최고위원회의를 안정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정 후보와 정치적으로 가까운 최고위원들과의 협력과 조율이 필수적이다. 이에 정 후보가 패배 직후 즉각 승복한 것은 김민석 지도부로서는 다행스러운 대목이다.
정 후보는 결과 발표 뒤 “저는 졌다. 패배를 인정하고 승복한다”며 “김민석 후보의 당대표 당선을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는 전당대회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경쟁했지만 다 같은 민주당 당원”이라며 당내 단합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동시에 자신의 정치적 노선을 접지 않겠다는 뜻도 명확히 했다.
그는 “정청래는 숫자로 졌지만 정청래 지지자와 권리당원들의 가치와 열정은 지지 않았다”며 “국민주권, 당원주권, 개혁의 깃발을 더 높이 들겠다”고 밝혔다. 또 “중단 없는 개혁의 선봉장이 되겠다”, “꺾일지언정 결코 휘어지지 않겠다”는 표현도 내놨다.
이는 정 후보가 김 대표 체제에 협력하면서도 자신의 개혁 노선과 당내 정치적 기반은 계속 유지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이에 김 대표는 수락연설에서 “정청래, 송영길 함께 뛸 것”이라며 “제가 그 장을 넓게 열고 함께 모실 것”이라고 경쟁자들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결국 김 대표가 이 약속을 실제 당직 인선과 의사결정 구조, 정책 노선에서 어떻게 구현하느냐가 통합 리더십을 판단하는 첫 번째 잣대가 될 전망이다.
이재명 대통령 “오늘부터 하나로 똘똘 뭉쳐야”
▲ 영상축사를 하는 이재명 대통령
김 대표에게 가장 강력한 정치적 기반은 역시 이재명 대통령과 친명계의 지지다.
이 대통령은 전당대회 영상 축사를 통해 “그동안 민주당답게 치열하게 토론하고 경쟁했지만 오늘부터 새 지도부를 중심으로 다시 하나로 똘똘 뭉쳐야 한다”면서 “우리 민주당은 하나일 때 가장 강했다”며 새 지도부를 중심으로 한 단결을 주문했다.
김 대표 역시 이재명 정부와의 관계를 자신의 당 운영 중심축으로 제시했다.
그는 당선 수락연설에서 “당청 관계, 당정 관계는 국정의 중심인 대통령과 정부를 지원하는 전면 협력의 창조적 수평 관계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당은 이재명 대통령과 국민주권 정부의 성공을 위해 뛸 것”이라며 정부 성공을 위해 “토론하고 직언하고 방패가 되고 민심 창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친명계의 확실한 지지 기반과 대통령과의 정치적 신뢰는 김 대표에게 상당한 힘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대통령과의 가까운 관계가 당대표의 독자적 리더십을 약화시키지 않도록 하는 것 역시 숙제다.
‘실용 김민석’의 ABC플랜…중도 확장 시험대
김 대표는 경선 과정에서 개혁의 선명성만큼이나 실용과 민생, 중도 확장을 강조했다. 당선 수락연설에서는 이를 ‘민주당 ABC플랜’으로 구체화했다. 김 대표는 “민주당을 바꾸겠다”며 “언어도, 정책도, 태도도, 문화도 진화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A는 ‘Affordability’, 즉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민생·생활 정치다. B는 ‘Broad’로 크고 넓은 덧셈 정치와 확장 정치를 의미하며, C는 ‘Competence’, 유능한 정치를 뜻한다.
이 같은 구상은 강한 개혁 노선을 앞세웠던 정청래 후보와 대비되는 김 대표의 정치적 색깔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또 다른 난제가 숨어 있다. 중도층으로 외연을 넓히면서 동시에 정 후보를 지지한 강한 개혁 성향 당원들의 요구를 충족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과 강하게 대치해야 할 현안에서는 선명성을 요구받는 반면 민생·경제 문제에서는 협치와 실용적인 성과를 보여줘야 하는 이중 과제를 안게 된 셈이다. 3대 메가 프로젝트와 청년을 위한 ‘광화 제2당사’ 등의 공약 역시 실제 성과로 연결해야 한다.
‘2030 대망론’보다 먼저 넘어야 할 산은 ‘통합’
40년 정치 인생에서 국무총리에 이어 집권여당 대표까지 오른 김민석 대표의 향후 행보를 두고 정치권 일각에서는 벌써 차기 또는 차차기 정치 일정까지 바라보는 ‘2030 대망론’이 거론된다. 그러나 김 대표 앞에 놓인 현실은 녹록지 않다.
정청래 후보가 최종 45.92%를 얻었다는 것은 사실상 절반에 가까운 당심이 김 대표가 아닌 경쟁자를 선택했다는 의미다. 국민여론조사에서는 오히려 정 후보가 앞섰고, 최고위원 선거에서는 친청계가 선출직 과반을 차지했다. 무엇보다 경선 과정에서 ‘배신자’라는 거친 표현까지 등장하며 양측 지지층 사이에 감정의 골이 깊어졌다.
김 대표가 이를 단순히 승자와 패자의 문제로 접근한다면 당내 갈등은 언제든 다시 표면화될 수 있다. 반대로 정 후보가 약속한 승복과 협력을 끌어내고 친청계 최고위원들과 안정적인 집단지도체제를 구축한다면 이번 전당대회의 치열한 경쟁은 오히려 민주당의 외연을 넓히는 자산이 될 수도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이번 전당대회를 향해 “경쟁이 당을 분열시켜선 안 된다”며 “당원대회가 끝나는 즉시 모든 갈등을 털어내고 새롭게 출발하는 지도부를 중심으로 힘을 모아달라”고 주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 대표 스스로도 당선 직후 “우리는 어려운 당 내외의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며 “앞으로 더 큰 내우외환의 풍파가 몰아닥칠 것”이라고 말했다.
18년의 정치적 광야를 지나 국무총리와 집권여당 대표에 오른 김민석.
이제 그에게 필요한 것은 정치적 생존력이 아니라 서로 다른 목소리를 하나의 방향으로 묶어내는 리더십이다. 24년 전의 ‘정몽준 선택’을 둘러싼 오래된 상처를 넘어설 수 있을지, 45.92%의 정청래 지지층을 자신의 당원으로 품을 수 있을지, ‘친청 3·친명 2’의 최고위원회를 갈등이 아닌 견제와 협력의 지도부로 만들 수 있을지가 김민석 체제의 성패를 가를 첫 번째 시험대다.
김 대표가 강조한 “창조적 수평관계”가 대통령과 정부뿐 아니라 당내에서도 구현될 수 있느냐는 질문이다. 8·17 전당대회에서 당권을 얻은 김민석 대표에게 진짜 경선은 어쩌면 지금부터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