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등하는 주택 가격 ― 금융화하는 내 집 마련 주택 정책 ①
(WWW.SURPRISE.OR.KR / 김종익 / 2026-09-22)
히라야마 요스케平山洋介
셋난 대학 현대 사회학부 특임 교수이자 고베 대학 명예 교수. 주택․도시 계획을 전공. 저서로 『내 집 너머로 ― 주택 정책의 전후사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임시 거처’와 전후 일본 ― 본가 살이․ 임차 살이․가설 주택 살이』 등이 있다.
* 이 번역글은 분량이 길어 3편에 나누어 게재합니다 - 역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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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소감 이 글을 옮기면서 일본의 주거 금융화가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이 글의 관점에서 되돌아보면, 1997년 외환 위기와 IMF 구제 금융 이후 한국에서 추진된 일련의 경제․사회 정책은 삶의 여러 영역을 시장에 편입하고, 그 위험을 개인의 부채로 떠넘긴 한국형 ‘서브프라임 프런티어’의 형성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주거용 주택이 금융화에 포섭되면서 내 집 마련은 삶의 안정을 위한 수단인 동시에 자산 증식의 거의 유일한 통로로 여겨졌다. 마침내 전 국민이 부동산 투자에 뛰어든 듯한 사회 현상까지 나타났다.
그러나 정치권은 이 문제를 장기적인 사회 과제로 인식하고 해결하기보다,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와 불안을 권력 획득의 수단으로 이용해 왔다. 개발 공약이 주택 가격을 자극하고, 가격 상승이 다시 더 강한 개발 요구와 금융 지원을 불러오는 순환 구조가 정착되었다. 그 과정에서 집은 살아가는 공간이라기보다 빚을 내서라도 선점해야 할 금융 자산에 가까워졌다.
한국의 가계 부채 추이는 이러한 변화를 선명하게 보여 준다. 1995년부터 2025년까지 명목 GDP는 약 5.9배, 1인당 국민총소득은 약 5.3배 늘었지만, 가계 부채는 약 13.8배로 늘어났다. GDP 대비 가계 부채의 비율도 약 31.6퍼센트에서 73.9퍼센트로 높아졌다.
GDP는 한 해 동안 생산된 부가가치이고 가계 부채는 특정 시점에 쌓인 잔액이므로, GDP나 국민소득이 그대로 가계 부채로 전환되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경제 성장과 국민 소득 증가보다 가계 부채가 훨씬 빠르게 늘어났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경제가 성장하고 국민 소득이 늘어났는데도 가계는 그 성과만으로 주거와 생활의 안정을 확보하지 못하고, 미래 소득을 담보로 더 많은 빚을 내야 했다.
특히 주택 가격 상승과 부채 팽창이 맞물리면서 성장의 성과는 가계의 삶을 안정시키는 데 쓰이기보다 부동산 시장과 금융 부문으로 흘러갔다. 집을 가진 사람도 막대한 부채를 짊어져야 했고, 집을 갖지 못한 사람은 상승하는 주택 가격과 임대료를 감당해야 했다. 결국 한국의 경제 성장은 가계를 더 깊이 금융 시장에 편입하고, 성장에 따르는 부담과 위험을 개인에게 떠넘기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일본의 같은 기간 자료와 비교하면 한국의 특징은 더욱 뚜렷해진다. 일본의 가계 부채는 1995년 365조 8천억 엔에서 2015년 320조 2천억 엔으로 감소했다가 2025년 405조 7천억 엔으로 늘어났다. 반면 한국의 가계 부채는 같은 기간 한 번도 꺾이지 않고 가파르게 증가했다. 일본의 주거 금융화를 다룬 이 글이 오늘의 한국 사회에서 더욱 절박하게 읽히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자본 축적은 자본주의화되지 않은 경제를 자본주의화하고, 시장화되지 않은 영역을 시장화해 가는 운동”이라는 로자 룩셈부르크의 말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서울 곳곳이 재개발 사업으로 일확천금을 얻을 수 있다는 욕망에 휩싸여 거대한 공사장으로 변해 가는 현실은 충분히 기괴하다. 이것은 ‘자본에 잠식된 인간성’이 만들어낸 풍경이 아닐까. 그 풍경 끝에 기다리는 미래는 과연 행복일까, 불행일까.
이 글은 바로 지금 금융화의 악순환을 끊을 방안을 찾지 않는다면 집도, 삶도, 인간도 금융 자본의 마지막 ‘미개척지’로 소진되는 기괴한 미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고 호소한다. 일본의 현실을 분석한 이 글을 한국어로 옮겨 소개하는 까닭은 그 경고가 이미 한국 사회의 현실이 되었기 때문이다. |
전후 일본 정부는 사람들이 내 집을 마련하도록 촉진하는 주택 정책을 펼쳤다. 주택 소유는 개인과 가구라는 미시적 차원에서는 주거의 물리적 안정, 부동산 자산의 축적, 주류 사회의 구성원 자격을 가져다주며, 이를 지원하는 시책은 거시적 차원에서 경기 부양과 사회 안정, 보수 정치의 기반 형성으로 이어진다고 여겨졌다. 내 집 마련 촉진 정책은 개인 소유 주택에 사는 것을 표준으로 삼는 ‘내 집 소유 사회’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최근 도쿄를 비롯한 대도시에서는 주택 가격이 이례적으로 상승하면서 내 집 마련이 한층 어려워졌다. 수도권(도쿄도․사이타마․지바․가나가와현)의 신축 아파트 평균 가격은 버블 경제가 정점에 이르렀던 1990년에 6,123만 엔(약 5억 4천만 원)을 기록했다. 이후 버블 경제의 붕괴와 함께 하락해 2000년대에는 4,000만 엔(약 3억 5천만 원)대에서 움직였다. 그러나 2010년대부터 급등하기 시작해 2021년에는 버블 경제 정점 당시의 가격을 넘어섰고, 이후에도 계속 상승해 2025년에는 9,182만 엔(약 8억 2천만 원)에 이르렀다.
도쿄 23구에서는, 2025년 신축 아파트의 평균 가격이 1억 3,613만 엔(약 12억 원)에 달했다. 주택 가격이 높은지 낮은지는 소득과의 관계 속에서 평가할 필요가 있다. 수도권 신축 아파트 평균 가격의 평균 연 소득 대비 배율은 버블 경제가 정점에 이르렀던 1990년에도 8.9배로 매우 높았지만, 2023년에는 이를 훨씬 넘어선 13.3배까지 상승했다.
수도권의 주택 가격 급등은 더 광범위한 주택 시장에 영향을 미쳤다. 도쿄에 이어 다른 대도시, 나아가 지방의 중심 도시에서도 주택 가격이 상승했다. 신축 주택 구입을 포기하고 중고 주택을 찾는 가구가 늘면서 중고 주택 가격도 상승했다. 주택 구입을 단념한 사람들은 임차 주택을 필요로 하게 되었고, 이는 임대료 상승으로 이어졌다.
이 글에서는 주택 가격 급등에 주목해 내 집 마련 정책을 검토한다. 여기서 중요하게 다루는 것은 ‘금융화’(financialisation)다. 금융화란, 국가와 기업 및 가구의 경제적 변용에서 금융 관련 제도와 기관, 시장, 실천, 담론 등의 ‘지배력’이 확대되는 현상을 가리킨다.
주택 가격 급등은 시사 문제로 다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당면한 시사 문제로만 볼 수는 없다. 이는 오랫동안 추진된 내 집 마련 촉진 정책과 이를 뒷받침한 금융화에 뿌리를 둔 역사적․구조적 현상이다. 주택 대출 제도의 작동 방식이 사람들의 주거와 가계, 주택․부동산업, 금융기관, 주택․금융시장 등의 상황을 좌우하는 힘은 계속 커졌다. 이하에서는 금융화의 관점에서 주택 가격 급등을 설명하고, 내 집 마련 정책을 다시 검토해야 할 필요성을 말하고자 한다.
■ 위기와 부채
내 집 마련의 금융화는 1970년대에 시작되었다. 자본주의 사회는 달러 쇼크(1971년)와 오일 쇼크(1973년)를 겪으면서 불안정해졌다. 일본에서는 고도성장이 끝나고 저성장 시대가 시작되었다. 정부는 오일 쇼크 이후 주택금융공사의 대출 공급을 통해 내 집을 짓도록 하는 정책을 경기 대책의 중심에 두었다. 내 집 마련 촉진 정책은 내 집 구입 수요를 자극해 주택 가격을 상승시켰다.
이에 주택금융공사는 대출 한도의 인상, 소득 요건의 완화, 초기 상환 부담의 경감 등을 시행했다. 대출 조건의 완화는 주택 가격을 더욱 끌어올렸고, 이는 다시 대출 조건의 추가 완화로 이어졌다. 이로써 주택 가격 상승과 대출 조건 완화가 맞물려 반복되는 순환 구조가 만들어졌다.
부동산 거품은 1980년대 후반에 팽창해 1990년대 초에 붕괴했다. 주택금융공사는 거품이 확대되자 대출 한도를 올리는 등의 방법으로 주택 구입을 촉진했고, 거품이 붕괴하자 불황 대책의 하나로 대출 조건을 더욱 완화했다. 거품이 생겼을 때도, 거품이 붕괴한 뒤에도 주택 대출을 늘리는 정책은 계속되었다.
주택의 거의 전부를 시장에 맡기는 정책 개혁이 1990년대 중반에 시작되면서 주택 대출 제도는 ‘국가 주도’에서 ‘시장 주도’로 전환되었다. 민간 주택 대출의 금리는 1994년에 자유화되었다. 내 집 마련 사례의 거의 절반에 자금을 대던 주택금융공사는 2007년에 폐지되었다. ‘금융화’의 ‘시장화’를 통해 은행 부문은 거대한 주택 대출 시장을 확보했다. 주택금융공사의 후신인 주택금융지원기구는 주택저당채권의 증권화 지원 등 시장 기반을 정비하는 역할을 맡았다. 정부는 주택 대출 세액 공제 제도를 활용해 내 집 마련을 계속 촉진했다.
규제가 완화된 주택 대출 시장에서는, 대출 조건을 둘러싼 은행 간 경쟁이 격화되어 다양한 주택 대출 상품이 개발․판매되었다. 은행의 처지에서 주택 대출은 사업 자금 대출, 그러니까 기업 금융보다 채무 불이행이 적은 저위험 사업이다. 주택 대출 자체가 이익을 낳을 뿐 아니라 예금과 결제 등 폭넓은 거래를 확보하는 수단도 된다.
경제 침체에 맞서기 위해 추진된 ‘아베노믹스’에 발맞추어 일본은행은 2013년에 ‘차원이 다른 금융 완화’를 시작했다. 그 결과 막대한 자금이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들어 주택 가격을 급격히 끌어올렸다.
독일의 사회학자 볼프강 슈트레크가 말했듯이, 자본주의 경제가 1970년대에 위기에 직면한 이래 성장률 저하에 맞서는 중심 수단은, ‘국가 부채’에서 ‘개인 부채’로 옮겨갔다. (Streeck, 2014)
그 주된 수단이 주택 대출 공급이었다. 사람들의 주택 관련 부채를 늘려 경제성장의 둔화를 막으려는 방침을, 영국의 정치 경제학자 콜린 크라우치는 ‘민영화된 케인스주의’라고 불렀다. (Crouch, 2011)
내 집 마련의 금융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개인 대상 주택 대출 잔액은 1970년대 초부터 20세기 말까지 계속 증가했다. 그 뒤 장기 불황과 2007∼2008년에 발생한 세계 금융 위기로 정체하거나 감소했으나, ‘차원이 다른 금융 완화’가 시작될 무렵부터 다시 증가해 2025년에는 233조 5,302억 엔(약 2,066조 원)에 이르렀다.
주택 대출 잔액의 명목 GDP 대비 비율은 1970년 3.6퍼센트에서 버블 경제가 정점에 이르렀던 1990년 26.7퍼센트로 상승했고, 2020년대에는 약 37퍼센트까지 올랐다. 내 집 마련 시장에 대한 주택 대출의 ‘지배력’은 현저히 커졌다.
주택 대출을 공급하는 중심 주체가 ‘국가’에서 ‘시장’으로 옮겨간 현실을 반영해, 20세기에는 전체 대출 잔액 가운데 주택금융공사의 대출 잔액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았던 데 비해, 21세기에는 민간 금융기관의 비중이 급증했다.<2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