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패권의 몰락과 대한민국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백장현 / 2026-09-21)
전후 세계질서를 뒷받침했던 미국의 패권이 트럼프 집권과 미국-이란 전쟁을 계기로 빠른 속도로 몰락하고 있다. 미국 패권의 몰락은 규칙 기반 자유주의 국제 질서까지 와해시키며 무질서 시대를 열어젖혔다. 지금까지 미국에 의존해 왔던 대한민국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격변의 시대에 우리가 해야 할 시급한 일은 무엇일까?
미국 패권의 몰락
미국 패권의 쇠락은 경제력, 군사력, 소프트파워 등 패권의 3요소를 분석해 보면 명확히 드러난다. 먼저 경제력에서 미국의 쇠퇴가 두드러지고 있다. 한때 세계 GDP의 반 이상을 차지했던 미국의 GDP는 2024년 26퍼센트(%)로 축소되었다. 제조업의 쇠퇴는 더 가파른데 전 세계의 16%에 불과하다. 같은 해 중국의 GDP 점유율은 19%, 제조업 비중은 29%이다. 또한 미국의 연방정부 부채는 2026년 40조 달러를 돌파해 매년 이자 지급액만 1조 달러 이상이다. 국방 예산 9,250억 달러보다 더 큰 액수이다. 세계적 경제사학자 니얼 퍼거슨(Niall Ferguson)에 의하면 패권국의 국가부채 순이자 지급액이 국방비를 넘어서는 순간, 그 패권은 쇠퇴와 붕괴의 길로 들어선다고 한다. 17세기 합스부르크 스페인 제국, 18세기 프랑스 부르봉 왕조, 20세기 영국이 모두 그러했다. 부채 이자가 국방비를 잠식하면 군사력의 투사 능력과 동맹 유지력이 급격히 약화하기 때문이다.
군사력에서도 초강대국 미국의 패권이 도전받고 있다. 미국은 이스라엘과 함께 이란을 침공했지만 호언장담했던 정권 교체는커녕 호르무즈 해협 통제권까지 상실해 세계적 유가 급등, 인플레이션을 초래했다. 미국 군사비의 1/120에도 못 미치는 이란을 상대로 고전하고 있는 것이다. 걸프 국가, 나토 국가, 일본, 한국 등 동맹국들의 협조도 끌어내지 못했으며, 스페인·영국 등은 자국 기지와 영공 사용을 불허하기까지 했다. 가용한 군사적 수단이 바닥나자 경제제재 카드를 다시 꺼내 들었지만 구멍이 너무 많아 효과가 있을 것 같지 않다. 지난 13일 폐막한 브릭스(BRICS) 정상회의에서 발표된 ‘뉴델리 선언’은 특정국에 대한 일방적 경제제재 및 관세 조치를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국제법과 유엔 헌장에 위배되는 ‘일방적 강압 조치’와 ‘일방적 경제제재 및 2차 제재’를 강력히 규탄한 것이다. 누가 봐도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를 겨냥한 성명이다.
소프트파워에서도 미국의 우위가 사라졌다. 소프트파워란 국제정치학자 조지프 나이(Joseph Nye)가 제창한 개념인데, 강제력이 아닌 문화, 가치, 외교정책 등을 통해 타국의 자발적 동의와 매력을 끌어내는 능력을 말한다. 미국의 소프트파워가 약화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대다수 국제정치학자가 동의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고율 관세, 기술 통제, 군사력 사용 등 하드파워에 집착하는 것은 소프트파워 약화에 따른 매력과 설득을 통한 영향력 행사가 불가능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무질서 시대의 특징
미국 패권의 몰락은 유엔 시스템 붕괴, 세계무역기구(WTO) 질서 와해 등 기존의 규칙 기반 질서의 해체를 동반하고 있다. 기존 규범은 모두 무너지고 새로운 규범은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무질서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힘이 규범인 시대이다. 미국은 군사적, 경제적, 기술적으로 여전히 강대국이지만 공공재 제공자, 세계 경찰과 자유무역 수호자 역할을 할 생각이 없으며 능력도 없다. 아마 트럼프 이후에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무질서 시대의 몇 가지 특징이 나타나고 있다. 먼저 미국의 패권이 사라지며 중견국들의 자율성이 확대되었다. 치열하게 전개되는 미중 패권 싸움 와중에도 대다수 나라들은 미중 어느 한 나라에 줄서기를 거부하고 있다. 미국의 동맹국, 파트너들도 미국 의존도를 줄이고 있다. 중동의 대표적 친미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가 그 극적 사례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과 동맹을 유지하면서도 2023년 미국의 적국인 이란과 수교했으며, 2026년 8월에는 파키스탄, 튀르키예와 ‘3자 공동방위협정’을 체결했다. 3자 방위협정은 군사동맹으로서 미국 의존에서 벗어나 스스로 지역 안보를 책임지겠다는 선언이다. 또한 미국 무기를 구매하면서도 동시에 러시아 무기를 수입하고 중국과 교역 확대를 추진한다. 더 많은 동맹, 파트너들과 결속력을 강화하면 안보가 튼튼해진다는 다동맹 전략이다. 여러 국가가 서로 촘촘하게 연결되면 특정국이 일방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기 어려운 ‘구조에 기반한 억지’ 전략이다. 개별 국가들의 자율성이 커지며 민족국가(nation state)의 역할이 확대되고 있다. 국가가 전통적 분야인 안보뿐 아니라 경제적 플랫폼으로서 개인과 기업 활동을 뒷받침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전쟁이 상존하는 세상이 되고 있다. 전쟁이 쉽게 발발하며 한 번 시작된 전쟁은 확대일로를 걸으며 쉽사리 끝나지 않는다. 전쟁의 양상도 변화했는데, 러-우 전쟁, 미국-이란 전쟁에서 보듯 드론 등 가성비 높은 새로운 무기가 등장하며 미국, 러시아 등 군사 강국들이 고전하고 있다. 한편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서 보다시피 전 세계인의 민생에 영향을 미치는 무역로, 자원, 금융 등 모든 관문(choke point)이 다 전쟁 무기화되고 있다.
무질서 시대를 표현한 그림. (인공지능 생성 그림)
우리가 해야 할 시급한 일들
대한민국은 무엇을 해야 할까? 먼저 미국 의존도를 낮추는 일이 시급하다. 미국에 편승하는 전략은 이미 시효가 지났다. 일방적인 강대국 편승 전략은 일본 다카이치 정부의 실패에서 확인되듯 무질서 시대에 통용되지 않는다. 작년 11월 다카이치 총리는 “대만 위기는 일본의 존망 위기로서 자위대 파병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발언으로 중국과 충돌했다. 그때 일본의 동맹국인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다카이치의 기대와 달리 중국 편에 섰는데, 당시 중국과의 빅딜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시 작전권 환수가 최우선 사안이다. 앞으로 발생할 숱한 사안들에서 한미 간 이견은 상수일 텐데 대한민국 군대의 작전권을 미국이 행사한다는 게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3500억 달러 플러스알파의 불합리한 미국 투자 요구, 이란 전쟁 파병 요구 등 트럼프 행정부의 요구가 날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으며, 거절 시 보복 가능성까지 드러내고 있다. 안보에서 미국 의존도를 줄이지 않는 한 우리는 미국의 압박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공급망과 무역의 다각화, 다변화도 중요하다. 자원, 금융, 무역로 등이 무기화되는 시대에 해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의 처지에서 공급망, 무역의 다각화는 생존을 위해 필수적이다. 새로운 성장 동력인 글로벌사우스 국가들과 협력을 강화해야 하며, 자원 강국들의 모임인 브릭스에 가입해야 한다.
남북 협력체제를 하루빨리 구축해야 한다. 남북이 적대적으로 대치하는 환경에서 우리는 주변 강국들의 압박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남북정상회담의 정례화를 시급히 이뤄내야 한다. 남북 간 정상회담이 정례화된다는 건 남북 간 국가연합이 가동됨을 의미한다. 유럽연합(EU)은 1년에 두 번, 동남아시아 국가연합(ASEAN)은 1년에 한 번 정상회담이 열리며 여기서 합의된 사항을 각료회담 등을 통해 실행한다. 남북한도 각자도생의 험한 파고에서 민족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협력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무질서 시대가 부여한 전략적 자율성 공간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백장현
정치학 박사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운영연구위원장
출처 : https://www.catholic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53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