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과학이지 믿음이 아니다
(재정포럼, 한국조세재정연구원 / 이준구 교수 / 2016-06-07)

이 세상에 세금 내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지구상 어딘가에 세금을 전혀 걷지 않는 나라가 있다면 너도나도 그곳으로 이민을 가려 할 것이 틀림없다. 세금을 한 푼이라도 더 걷으려는 정부와 조금이라도 덜 내려는 국민 사이의 갈등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렇다면 세금을 어느 정도로 거둬야 적절한 것일까? 저마다 다른 답을 갖고 있을 것이기에 이 의문을 둘러싼 논쟁은 끝없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신자유주의 이념을 조금 극단적으로 해석하면 정부는 악덕이며 시장은 미덕이다. 그렇기 때문에 너무 많은 세금을 거둬 정부가 비대해지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세금을 더 거둘 생각을 버리고 오히려 대폭 깎아줌으로써 경제의 활력을 더 크게 만들어야 한다. 바로 얼마 전만 해도 이런 신자유주의 이념이 온 세계를 휩쓸고 있었다.

한 풀 꺾인 신자유주의 이념과 그에 대한 미련

이제 신자유주의의 기세가 한 풀 꺾였는데 우리 사회에는 그 철 지난 낡은 이념의 신봉자들이 아직도 남아 있다. 사회복지 프로그램을 대폭 확장하겠다고 하면서도 증세는 결코 없다고 손사래를 치는 사람들이 그 좋은 예다. 법인세율 인상 얘기만 나와도 바로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사람들도 비슷한 부류다. 이들은 아직도 ‘감세는 미덕’이라는 신자유주의 이념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않는다.

“증세는 없다”라고 공언하면서도 현 정부는 세금을 더 걷기 위해 여러 가지 일을 해왔다. 국민의 건강 증진을 명분으로 내걸고 담뱃세를 대폭 인상한 것이 그 좋은 예다. 왜 하필이면 그 시점에서 담뱃세의 그런 대폭적인 인상을 추진했어야 했을까? 정말로 국민의 건강을 생각하는 마음 하나로 그런 일을 벌였을까? 국민이 정부의 의도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겉으로 잘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과세당국이 세금을 더 걷기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것도 사실이다. 지하경제를 지상으로 끌어올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조세수입을 확보할 수 있다는 대통령의 발언과 맥을 같이하는 행보다. 그런데 세금을 더 걷기 위해 너무 조급하게 그리고 너무 심하게 드라이브를 건 결과, 납세자들의 원성을 사게 되었다.

예를 들어 바로 어제까지 관행에 의해 비용으로 인정해주던 항목을 갑자기 불인정으로 바꾸면 납세자는 당연히 저항하게 된다. 과연 어디까지를 지하경제로 봐야 하는지도 쉽게 답을 얻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세율을 그대로 둔 채 조세수입을 늘려야 하는 난처한 처지의 과세당국은 이런저런 무리수로 불필요하게 납세자의 반발을 야기해 왔다. 그럴 바에야 아예 정직하게 세율을 올리는 방식으로 세금을 더 걷는 것이 훨씬 더 낫지 않을까?

세율 인상 얘기만 나오면 정부와 보수언론은 금방 얼굴을 찌푸린다. 특히 법인세율 인상은 아예 생각지도 말라는 식으로 강경한 자세다. 현재 거론되고 있는 법인세율 인상이 MB정부의 감세정책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자는 정도인데도 말이다. 그렇게 되면 기업들은 해외로 도망가고 투자는 땅에 떨어질 것이라는 게 그들이 상투적으로 내세우는 반대 이유다. 나는 이 점과 관련해 한 가지 큰 의문을 갖고 있다. 법인세율 인상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과연 구체적인 이론적 근거나 갖고 그런 말을 하고 있느냐는 의문이다.

구체적 증거가 없는 법인세율 인하의 투자 증가 효과

내가 지금까지 공부해온 바에 따르면, 법인세율 인하가 투자를 증가시킨다는 하등의 증거가 없다. 조세가 투자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할 때 경제학자가 가장 애용하는 분석도구는 자본의 사용자비용(user cost of capital)이다. 조세상의 변화가 자본의 사용자비용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관찰함으로써 그 효과를 분석하는 접근방식이다. 예를 들어 법인세율 인하 등 조세상의 투자유인책 도입으로 인해 자본의 사용자비용이 더 작아지면 그만큼 투자촉진 효과가 발생한다고 보는 방식이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는 자본의 사용자비용이 현저하게 줄어들어도 막상 투자에는 별 영향이 없음을 밝혀냈다. 종전의 연구는 자본스톡의 사용자비용탄력성이 1이라는 암묵적 가정하에서 분석을 진행했다. 따라서 조세상의 변화가 자본의 사용자비용을 낮춘다는 분석결과를 얻으면 이것이 바로 투자증가로 이어진다는 결론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그러나 실증분석 결과를 보면 현실의 사용자비용탄력성의 값은 매우 작은 것으로 드러난다. 이는 자본의 사용자비용이 크게 떨어진다 해도 여러 가지 현실적 이유 때문에 투자는 별로 늘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법인세율의 인하가 투자 증가를 가져오지 못한다는 것은 미국 레이건(R.Reagan) 대통령의 감세정책 실험에서 드러났다. 1986년의 Tax Reform Act는 법인세 최고세율을 46%에서 34%로 무려 12%p나 내려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다 할 투자 증가는 일어나지 않았다. 1964년 미국정부는 법인세율을 52%에서 48%로 인하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법인세율 인하는 오히려 투자의 감소를 가져온 것으로 분석되었다. 한 마디로 말해 법인세율 인상이 급격한 투자 감소를 가져올 것이라는 주장은 아무런 이론적 뒷받침을 받지 못하는 도그마에 불과하다.

법인세율의 인상이 기업들을 해외로 떠나게 만든다는 주장 역시 실증적 근거의 뒷받침을 받지 못하고 있다. 기업이 어디를 활동 근거지로 선택하느냐는 여러 가지 요인을 포괄적으로 고려해 결정한다. 단지 법인세율이 3%p 올라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기업의 대거 해외이동이 일어날 것이라는 주장에 과연 신빙성이 있을까? 과문한 탓도 있겠지만, 나는 지금까지 그런 주장의 신빙성을 뒷받침하는 연구를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법인세율 인상에 대해 절대 지지를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증세가 불가피하다면 하나의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을 뿐이다. 법인세율 인상을 포함한 증세조치가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는 진지한 토론 끝에 그 결론을 내야 한다. 내가 아쉽게 생각하는 것은 이런 논의가 생산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소득세율이나 법인세율을 조금이라도 올리면 큰일이라도 일어날 듯 얘기하는 사람들은 과연 어떤 근거에서 그런 주장을 하고 있을까? 그런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실증연구의 예를 보기나 했을까?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이 문제를 둘러싸고 진행되는 논쟁은 과학이 아닌 믿음의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자신의 믿음만이 옳다고 우기는 사람들이 득세하고 있는 상황에서 합리적 대안의 발견은 영원히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일 뿐이다.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