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8 한일 위안부 합의에 반발하는 부산지역 시민이 28일 부산시 동구 주부산일본국총영사관(이하 일본영사관) 앞에 평화의 소녀상을 기습적으로 설치했지만, 4시간 30여 분 만에 강제 철거당했다. 도로법을 내세워 설치 불가 입장을 밝혀온 동구청(구청장 박삼석, 새누리당)과 13개 중대를 동원한 경찰은 이날 소녀상 설치 장소 일대를 원천봉쇄하고 대학생과 시민 등 30여 명을 강제로 뜯어내 해산시켰다. 이들 일부는 현재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인근 경찰서로 연행돼 조사를 받고 있다.

그동안 부산시민 수천 명의 모금과 지지로 소녀상 건립을 추진해왔던 시민사회는 “여기가 일본 땅이냐. 천인공노할 일이 벌어졌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파장이 예상된다.

4시간에 걸친 사투에도
소녀상 결국 강제 철거
“여기가 우리나라 맞느냐” 눈물 바다

1263회차 수요시위가 열린 이날 낮 12시 40분. 정발장군 동상 앞에서 시위를 마친 100여 명의 시민이 일본영사관 정문으로 행진하고 있던 순간, 후문에 갑자기 평화의 소녀상 동상이 등장했다. 31일 제막식을 앞두고 부산 동구청이 대비반까지 꾸려 24시간 감시를 펼치자 미래세대가 세우는 평화의 소녀상 추진위원회(이하 미소추)는 이날 구청과 경찰의 허를 찌르는 기습 설치를 시도했다,

모두의 시선이 수요시위로 쏠린 틈을 타 지게차를 이용해 무게 1.7톤, 너비 2미터 크기의 소녀상을 일본영사관 후문으로 옮겼다. 사상 처음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되새기는 평화의 소녀상이 일본영사관 앞에 세워진 것이다.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과 같은 모습의 부산 소녀상은 9개월 동안 168개 단체, 19개 학교, 시민 5143명이 십시일반으로 모은 8천500만 원 모금으로 제작했다.

일본영사관 후문을 바로 마주 보는 위치에 소녀상이 세워지자 이를 지켜내기 위한 사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미소추 소속 대학생과 시민 수명이 소녀상을 덮고 있던 비닐을 걷어내면서 이를 본 경찰이 달려들어 설치를 제지하고 나섰다. 경찰의 대응에 분노한 시민들도 이 장소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경찰 투입에도 소녀상 지킴이를 자처한 이는 30여 명 가까이 늘어났다.

경찰은 설치 직후 “불법 행위”라며 강제 해산을 시도하다 절차적인 문제로 뒤로 물러났다. 결국 동구청이 도로법 상 불법 점유를 처리하기 위한 행정조치에 돌입했다. 구청은 철거 장비와 안전도시과 등 공무원을 수십 명을 투입했다. 하지만, 대학생과 시민들의 강한 반발에 철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됐다. 경찰 역시 13개 중대를 주위를 원천봉쇄하는 등 구청의 강제 철거를 지원했다.

이 과정에서 구청과 경찰의 무리한 철거 시도가 논란을 낳았다. 소녀상을 지키는 여성을 남성 경찰·공무원들이 다리 등을 잡고 끌어내는가 하면, 철거 순서를 놓고도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 행정절차에 따라 경찰은 충돌이나 공무집행 방해의 경우 투입되도록 되어 있으나, 이마저 지켜지지 않았다.

이를 놓고 경찰은 “우리가 철거를 주도하지 않았고, 충돌을 막기위한 조치였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현장에서 만난 시민의 말은 달랐다. A(30) 씨는 “경찰과 구청이 마치 작전을 펼치는 분위기였다”며 “구청 직원은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도 않고 우리를 끌어냈고, 경찰은 우리를 자극하며 철거를 도왔다”면서 “진정 우리나라 구청과 경찰이 맞느냐”고 비판했다.

오후 3시 30분이 넘어서면서 강제 해산 및 철거는 더 강경해졌다. 구청 측 공무원들이 “도로를 점령한 설치는 적법하지 않은 행위다. 강제철거에 들어가겠다”라며 시민과 대학생을 한둘씩 끌어냈고, 곳곳에서는 이에 항의하는 고성과 아우성이 오갔다. 끌려나가던 이들은 경찰과 구청을 향해 “친일 경찰 물러가라, 강제철거 중단하라”를 목 놓아 외쳤다. 종교인의 항의도 역부족이었다. 전국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 공동의장인 박철 목사는 “소녀상을 철거하지말라, 학생들을 연행을 하지말라”며 힘을 보태다 끝내 경찰에 의해 연행됐다.

구청 측은 4시 30분 “일본의 눈치를 봐선 안 된다. 도대체 무엇이 두려워 그러느냐”며 눈물을 흘리던 시민을 마지막으로 소녀상에서 떼어냈다. 경찰은 이날 소녀상을 지키려던 27명을 강제 해산시켰고, 이 가운데 13명을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연행했다.

한일 ‘위안부’ 합의 1년을 맞은 28일 부산 일본영사관 앞에 처음으로 평화의 소녀상이 기습 설치됐다. 그러나 경찰과 동구청은 4시간 30분 만에 이를 강제 철거했다.ⓒ민중의소리 김보성기자

한일 ‘위안부’ 합의 1년을 맞은 28일 부산 일본영사관 앞에 처음으로 평화의 소녀상이 기습 설치됐다. 그러나 경찰과 동구청은 4시간 30분 만에 이를 강제 철거했다. 쇠막대기를 이용해 옮기는 과정에서 소녀상 하단 부분이 일부 파손된 모습.ⓒ민중의소리 김보성기자

“일본 눈치에 역사와 국민 자존심 짓밟아”
분노하는 시민사회.. 촛불로 번진다

구청과 경찰의 이 같은 조치에 야권과 시민사회는 분노를 나타냈다. 수십여 개 단체로 이루어진 미소추는 철거가 이루어진 이후 낸 긴급 성명에서 “동구청, 경찰은 소녀상을 지켜달라는 부산 시민의 절규와 한일 ‘위안부’ 합의 무효화, 주권국가로서의 자존심까지 철저히 짓밟았다”고 비난했다. 미소추는 이어 “치욕의 역사를 만든 장본인들을 잊지 않을 것이다. 즉각 빼앗아 간 소녀상을 돌려주고, 건립과 관련한 협의에 나서라”고 요구했다.

더불어민주당 부산시당은 오후 늦게 낸 성명에서 이날 강제 철거를 “강제 진압 및 탈취”로 표현하며 강도 높은 비난을 쏟아냈다. 부산시당은 “전국의 지자체가 조례까지 제정하며 건립지원에 나서고 있는 것과 달리 동구청만 일본의 입장을 대변하며 국민 요구에 역행하고 있다.”라고 규탄했다.

일본영사관 앞 소녀상 철거 사태에 대한 반발은 촛불집회로도 번질 기세다. 이날 부산 서면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부산시국집회가 장소를 옮겨 일본영사관 인근 정발장군 앞에서 열렸다. 수백 명의 시민은 “정부와 부산시는 물론, 일본의 앞잡이 노릇을 자처한 경찰, 동구청장을 우리는 잊지 않고 심판할 것”이라며 “모든 방법을 강구해 소녀상을 되찾아 촛불의 힘으로 일본영사관 앞 설치를 이루어내겠다”고 경고했다.

24시간 농성과 전국적 대응도 이어진다. 미소추는 이날부터 정발장군 앞에 농성장을 설치한 뒤 소녀상 강제철거를 규탄하는 철야농성에 들어갔다. 미소추 관계자는 “동구청은 강제 철거한 소녀상을 돌려달라는 요구에도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려주지 않고 있다”면서 “이날부터 소녀상을 복구하고, 건립하는 날까지 농성을 계속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내일에는 서울 정부청사 앞에서 소녀상 관련 단체들의 규탄 기자회견도 진행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날 전격적인 소녀상 철거가 기초자치단체의 판단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조치라는 지적도 나온다. 소녀상 건립 자체가 합법이나 불법이냐 논란보다는 외교적, 정치적 의미가 더 크기 때문이다. 김미진 부산겨레하나 운영위원장은 “설치 이후까지 쉽게 소녀상을 손대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며 “일개 구청이 경찰과 협력해 이런 조치를 신속히 취한 것은 정부 차원의 압력이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꼬집었다.

실제 일본영사관은 지난달 28일 모리모토 야스히로 총영사 명의로 박삼석 동구청장에게 외교서한을 보내 “부산시와 일본과의 관계뿐 아니라, 일한 관계의 전반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불가피하여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며 노골적으로 소녀상 설치를 반대했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 역시 지난 20일 부산 일본영사관 앞에 위안부 소녀상 건립을 추진하는 데 대해 "그런 움직임은 우리나라 정부의 입장과 맞지 않는다. 매우 유감"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외교부는 27일 정례브리핑을 통해 "관련 국내법령 등에 따라서 해당 지자체에서 판단할 사안이라는 것이 정부 입장"이라고 답했다. 이를 놓고 시민사회는 “법을 강조한 것은 사실상 소녀상 건립 불허를 방조한 것과 마찬가지”라며 비판적 태도를 보였었다.

한일 ‘위안부’ 합의 1년을 맞은 28일 부산 일본영사관 앞에 처음으로 평화의 소녀상이 기습 설치됐다. 그러나 경찰과 동구청은 4시간 30분 만에 이를 강제 철거했다. 이날 오후 1시께 세워진 소녀상.ⓒ민중의소리 김보성기자

한일 ‘위안부’ 합의 1년을 맞은 28일 부산 일본영사관 앞에 처음으로 평화의 소녀상이 기습 설치됐다. 그러나 경찰과 동구청은 4시간 30분 만에 이를 강제 철거했다. 소녀상을 지키고 있는 시민과 대학생.ⓒ민중의소리 김보성기자

한일 ‘위안부’ 합의 1년을 맞은 28일 부산 일본영사관 앞에 처음으로 평화의 소녀상이 기습 설치됐다. 그러나 경찰과 동구청은 4시간 30분 만에 이를 강제 철거했다. 소녀상을 지키는 시민과 대학생을 경찰, 동구청 공무원들이 끌어내고 있다.ⓒ민중의소리 김보성기자

한일 ‘위안부’ 합의 1년을 맞은 28일 부산 일본영사관 앞에 처음으로 평화의 소녀상이 기습 설치됐다. 그러나 경찰과 동구청은 4시간 30분 만에 이를 강제 철거했다. 소녀상을 지키는 시민과 대학생을 경찰, 동구청 공무원들이 끌어내고 있다.ⓒ민중의소리 김보성기자

한일 ‘위안부’ 합의 1년을 맞은 28일 부산 일본영사관 앞에 처음으로 평화의 소녀상이 기습 설치됐다. 그러나 경찰과 동구청은 4시간 30분 만에 이를 강제 철거했다.ⓒ민중의소리 김보성기자

한일 ‘위안부’ 합의 1년을 맞은 28일 부산 일본영사관 앞에 처음으로 평화의 소녀상이 기습 설치됐다. 그러나 경찰과 동구청은 4시간 30분 만에 이를 강제 철거했다. 구청 철거차량으로 옮기고 있는 모습.ⓒ민중의소리 김보성기자

한일 ‘위안부’ 합의 1년을 맞은 28일 부산 일본영사관 앞에 처음으로 평화의 소녀상이 기습 설치됐다. 그러나 경찰과 동구청은 4시간 30분 만에 이를 강제 철거했다. 구청 공무원이 철거한 소녀상을 보이지 않게 덮고 있다.ⓒ민중의소리 김보성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