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정상회담 목적은 사드”라는 백악관 대변인
(WWW.SURPRISE.OR.KR / 뉴요코리안 / 2017-03-17)
‘사드’ 중국과 논의한다는데도 항의 못 하는 한국 정부... ‘미국 바라기’의 말로
요즘 미국 백악관의 정례 브리핑 기자회견장은 거의 전쟁터나 다름이 없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뉴욕타임스(NYT)나 CNN 방송 등 미국 주류 언론을 '가짜 뉴스(fake news)'라고 칭한 데 격분한 출입기자들이 트럼프의 입을 대변하는 숀 스파이서 대변인과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13일(현지 시간), 펼쳐진 정례 브리핑도 예외는 아니었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이 대선 후보 시절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자신을 도청했다고 주장했지만, 별다른 증거를 내놓지 않아, 이날도 스파이서 대변인이 코너에 몰린 상태였다.
참다 못한 기자들이 "당신은 대통령이 어떤 주장을 하든 진실이라고 확신하느냐"고 쏘아붙였지만, 스파이서 대변인은 "트럼프는 미 대통령의 권위를 갖고 말하는 데, 농담이 아니라면 당연히 진실이라고 믿는다"며 되받아쳤다. 이 말에 참석한 기자들이 '대책이 없다'는 표정이었다.
이렇게 한참을 진흙탕 싸움을 이어가고 나서야, 한 기자가 정말 중요한 이슈인 미중 정상회담에 관해 가까스로 질의했다. 하지만 이 기자 역시 "대통령 휴양지에서 개최한다는 데, 그러한 다소 비공식적인 회담에서 무엇을 성취할 수 있겠느냐"와 "동아시아 차관보도 공석 중인데, 대통령에게 정상회담 준비 관련 계획이 보고나 잘 되겠느냐" 등의 비꼬는 질문이었다.
정례 브리핑을 하고 있는 숀 스파이서 트럼프 행정부 백악관 대변인ⓒ뉴시스
그런데 스파이스 대변인의 답변은 의외로 단호하고도 간단했다. "(정상) 회담의 목적은 북한과 최근 사드 포대 한국 배치를 둘러싼 긴장을 완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힘주어 말한 것이다. 누가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를 묻지도 않았고, 이에 따른 미중 갈등이 논의될 것이냐고 묻지도 않았는데, 그것도 회담의 '목적(purpose)'이 '사드 관련 논의'라고 분명히 한 것이다.
기자가 당시의 백악관 브리핑 상황을 자세히 전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스파이서 대변인이 무언가를 답변하면 졸지에 '가짜 뉴스' 매체 소속 신분이 된 주류 매체 기자들이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거의 없다. 하지만 누구도 스파이서 대변인의 이날 이러한 답변에 토를 달지 않았다. 쉽게 말해 '사드'가 이번 미중 정상회담에서 논의되지 않는다고 보는 사람이 바보라는 것이다. 스파이서 대변인이 그것이 회담의 목적이라고 '알박기'한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솔직히 스파이서 대변인의 이러한 발언은 미국 대통령인 트럼프의 속내와 의중을 반영한 것이지만, 우리로서는 매우 기분 나쁜 발언일 수가 있다. 사드는 그동안 북한의 위협을 내세우면서 '한미 동맹 결정'이라고 '재론 불가' 입장을 고수했던 미국이 '긴장 완화'를 명분으로 하더라도 중국과 다시 논의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혔기 때문이다.
같은 날, 미 국무부의 실무자('차관보 대행''이지만, 굳이 실무자라고 칭하고 싶다)는 사드에 관해 또 다른 답변을 내놨다. 수전 손턴 미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 대행은 언론 브리핑에서 "만약 한국이 사드 배치 결정을 뒤집는다면, 수용할 것이냐’는 질문에 "사드 배치는 미국과 한국이 공동으로 한 동맹 결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드 배치는 정치적인 상황이나 다른 고려 사항과는 관련이 없으며, 한국민이 직면하고 있는 매우 도발적인 위협에 대한 매우 합리적이고 실질적인 반응”이라고 강조했다. 한마디로 번복할 수 없는 '한미 동맹의 결정'이기에 한국에 새 정부가 들어서든, 어떠한 정치적 상황과는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이 보도를 접하는 순간, 기자의 입에서는 쓴웃음이 나왔다. "아니 한국 정치 상황은 고사하고, 그럼 왜 자기들 대통령이 중국 주석 만나서 논의할 핵심 의제가 사드라고 백악관 대변인이 말했단 말인가"라는 의문이 바로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기자가 그래도 '차관보 대행'인데, 굳이 '실무자'라고 칭했는지도 모르겠다.
기자가 그날 통화한 우리 외교부 당국자도 이와 관련해 비슷한 내용이 답변의 핵심이었다. 하지만 이전보다 그 답변이 많이 '톤 다운(위축)'되고 있다는 느낌이 그대로 다가왔다. "미국이 중국과 갈등을 풀고 협력할 것은 협력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가 그의 답변이었다. 하지만 기자는 그 톤 다운된 목소리에 다짜고짜 "사드가 철회되면, 외교부의 이후 전략은 무엇인가요"하고 차마 물어볼 수는 없었다.
국제관계 기본은 '자국의 이익'... '미국 바라기'에 여념 없는 극보수 세력들
거의 25년 전부터 학부와 대학원에서 정치학과 국제관계를 전공한 기자가 늘 귀가 따갑게 들어 온 소리가 있다. "국제관계는 자국의 이익에 따라 움직인다", "국제관계에서 오늘의 적은 내일의 동지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 기자는 사드와 관련해 거의 만 3년 이상을 집중적으로 취재해 오면서, 유독 "한국의 (전임) 박근혜 정부만 이 국제관계의 '진리'가 통하지 않는구나"하고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쉽게 이야기하자. 미 백악관 대변인이 곧 개최될 미중 정상회담의 목적이 '사드 문제'라고 했는데, 한국 정부는 "그것이 어떻게 중국하고 이야기할 문제냐"고 즉각 항의해야 정상이 아닌가? 하기야 이제는 박근혜 정부도 사라졌으니, 항의할 주체가 없을지도 모른다.
지난 2009년 9월 17일, 당시 레흐 카친스키 폴란드 대통령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내용은 '이미 합의했던 미사일방어(MD) 요격 미사일의 폴란드 배치를 철회한다'는 것이었다. 그나마 미 백악관이 공식 발표를 1시간 앞둔 시점에서 그래도 예의를 갖춘 일방적인 통보였다. 그렇게 트럼프보다도 나름 민주주의적(?)이라는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도 러시아와의 담판 끝에 미사일 방어체계의 폴란드 구축을 전격적으로 철회했다.
이제 '태극기 집회'로 상징되는 극보수 세력에게 묻고 싶다. "그대들은 만일, 사드 한국 배치가 철회된다면, 당장 성조기를 메고 미 백악관을 방문해 항의 집회를 할 용의가 있느냐"고. 그리고 하나 충고하고 싶다. "제발 백악관 앞에서는 집회 끝나고 성조기는 버리고 오지 말라"고. 그래야 적어도 그대들이 순진한 '미국 바라기'라고 어필할 수 있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