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의 경제민주화에는 ‘민주주의’가 없다
(민중의소리 / 이완배 기자 / 2017-04-05)

“저를 비롯해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홍석현 전 중앙일보·JTBC 회장 등 우리 셋 모두 대통령이 되고 싶어 한다.”

4일자 <조선일보>에 보도된 정운찬 전 국무총리의 말이다. 정 전 총리는 3일 전북 전주시 전북도의회 기자회견에서 김 전 대표, 홍 전 회장 등과 만난 지난달 29일의 회동을 설명하며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정 전 총리건, 김 전 대표건, 홍 전 회장이건, 피선거권이 있는 대한민국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욕구는 비판받을 일이 아니다. 잘 될 것 같지는 않지만 모쪼록 세 분 다 “화이팅!” 하시기 바란다.

그런데 이들의 개인적 욕망과는 별개로 이들이 어떤 세상을 꿈꾸며 대권을 노리는지에 대해서는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특히 최근 민주당을 탈당한 김종인 전 대표의 경우 ‘경제민주화’라는 용어를 마치 자신만의 전매특허인 것처럼 사용해 왔기에 이에 대한 검토는 더욱 필요하다.

김종인의 경제민주화는 상법 개정?

경제민주화는 천박한 자본주의가 장악한 한국 경제 시스템에 매우 필요한 경제철학이다. 하지만 김종인이라는 그릇된 스피커를 통해 그 동안 본질이 잘못 알려진 측면이 많다. 게다가 “경제민주화는 나만 해낼 수 있다”는 김 전 대표의 프레임이 확산되는 것도 큰 문제다. 이런 생각이 번지면 정작 경제민주화를 통해 우리 사회가 얻어야 할 핵심적인 이해를 놓칠 수밖에 없다.

더불어민주을당 탈당한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와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이 지난달 9일 서울 여의도 63스퀘어의 한 식당에서 회동하고 있다.ⓒ정의철 기자

그동안 김 전 대표의 지금까지 언행을 보면 그의 경제민주화는 ‘대기업을 규제해 시장 질서를 지키자’는 낮은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듯 보인다. 민주당을 탈당하면서 김 전 대표가 한 말은 “내가 경제민주화의 일환으로 제출한 상법 개정안이 유야무야됐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김종인 표 상법 개정안의 핵심은 대기업 오너 일가를 견제하고 소액주주의 권리를 강화하는 내용이었다. 이 법안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소액주주의 권한을 강화해서 재벌을 견제하자’는 그의 주장이 경제민주화의 핵심이 아니라는 게 문제의 본질이다.

김 전 대표의 경제민주화에 대한 인식을 엿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장면이 있다. 지난해 총선을 앞두고 김 전 대표가 민주노총을 찾았다. 그곳에서 그는 “노조가 사회적 문제에 간혹 관심을 가질 때도 있지만 너무 거기에 집착하면 근로자의 권익 보호가 상당히 소외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즉 김 전 대표는 재벌에 대한 규제를 소액주주에 대한 권한 강화로 풀려 하고, 노조의 사회 활동은 제한하려 한다. 전형적인 자유주의의 기반 위에 대기업 횡포만 규제하는 낮은 수준의 경제 개혁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경제민주화의 본질은 자본주의에 민주주의를 접목시키는 것

안타깝게도 그 정도로는 경제민주화를 절대 이뤄내지 못한다. 자본주의란 원래 돈이 장땡인 시스템이다. 그래서 근본적으로 노-자 관계는 심각한 종속을 전제로 한다. 당연히 자본과 노동은 평등하지 않다. 이것을 ‘1원1표’ 시스템이라고 부른다.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기업의 핵심적인 의사결정은 대부분 주주총회에서 이뤄지는데, 주총의 표결 방식이 바로 1원1표 시스템이다. 1원을 내면 한 표를 받고, 10원을 내면 10표를 받는다. 가진 돈의 액수에 따라 불평등이 당연시되는 것이 바로 자본주의라는 경제 시스템의 본질이다.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이 지난달 8일 국회 의원회관 집무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물 마시고 있다.ⓒ정의철 기자

반면 민주주의는 자본주의와 쉽게 결합될 수 없는 정반대의 정치 시스템이다. 민주주의는 천부인권 사상을 바탕으로 누구에게나 1인1표의 권한을 부여한다. 태어난 이상 모두가 평등하다. 투표장에 가보면 이재용도 한 표를 행사하고, 시골 장삼이사도 한 표를 행사한다.

따라서 1원1표라는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과 1인1표의 민주주의 정치 시스템은 필연적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다. 경제민주화란 바로 1원1표를 원칙으로 하는 경제시스템에 1인1표라는 민주적 정치 시스템을 접목하는 과정이다. 매우 근본적이고, 매우 어려운 과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 과제를 ‘소액주주 권한 강화’와 ‘노조의 활동 제약’으로 풀려 한다면, 민주주의라는 천부인권 사상은 절대 1원1표가 지배하는 자본주의에 녹아들지 못한다. 김 전 대표의 뜻대로 되면 노조는 입 닥치고 노동환경 개선에만 몰두해야 하고, 모든 결정은 여전히 주주총회장에서 결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총에서 더 많은 결정권을 얻기 위해서는 여전히 더 많은 주식을 사모아야 한다. 이건 민주주의가 아니다. 경제민주화의 본질도 당연히 아니다. ‘1원1표’에 뿌리를 두고 민주주의를 외치는 순간 그 말은 ‘동그란 네모’ 같은 형용 모순이 된다.

진정한 경제민주화를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노동권의 대폭적인 강화다. 회사에 참여하는 가장 중요한 주체인 노동자들에게 충분한 결정권을 부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주식이 없어도, 돈이 없어도, 한 기업에 속한 노동자라면 1표의 천부인권을 부여하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의 사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종인 표 경제민주화에는 민주주의가 없다. 1원1표의 시스템을 1인1표로 바꾸기 위해서는 주주들 뿐 아니라 노동자, 지역사회, 소비자 등 기업 생태계를 구성하는 모두에게 민주적인 의사결정권을 부여해야 한다. 정치 민주주의가 소외됐던 민중들에게 투표권을 부여하는 것부터 시작됐던 것처럼, 경제민주화 또한 자본이 지배하는 경제 시스템에 대한 노동과 시민사회의 의결권 확보로부터 시작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