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안희정 지지자의 소회
(WWW.SURRISE.OR.KR / 편집국 / 2017-04-11)
더불어민주당 경선 이후 문재인 후보의 외연확장력에 적신호가 켜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보수.중도층의 가세에 힘입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의 맹추격으로 인해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는 시점입니다. 이미 내부 경선은 끝났고 호프집 원샷으로 4자간 갈등도 해소되었다고 하지만, 각 캠프 지지자들의 마음 속에 자리한 아픔까지 치유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후보의 지지율 상승을 고민함에 있어 외연확장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내부결속과 집토끼에 대한 배려와 헤아림도 고민해 보라는 의미에서 이 글을 소개합니다. 다소 쓴소리이지만 이러한 글을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민주당 캠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국
안녕하세요. 저는 지난 더불어민주당 경선 당시 안희정 후보를 지지했습니다. 저는 처음부터 문재인은 가망성 없다고 느꼈는데, 그래서 안희정을 밀었던 측면도 분명 있고요. 그 이유는 문재인은 딴 건 다 제쳐두더라도, 정치적 센스가 매우 낮은 수준의 후보입니다. 본인이 왜 그렇게 당하지 않아도 될 네거티브를 당하고 살아왔는지 상기해야 할 필요가 있는데 이 분 피해 의식만 발전하고 아무것도 발전한 게 없어요.
저는 문재인 후보가 안철수를 이길 가능성을 그리 높게 보지 않습니다. 이건 문재인 후보의 특성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제 나이가 많지 않아서 문재인 후보의 답답함이라는 어떤 기질에 대한 체감은 상대적으로 덜한 편이지만 아마 나이가 점점 많을수록 이런 체감은 더더욱 심할 거라 생각합니다. 문재인 후보는 그 특유의 원칙주의적인 이미지, 우직한 이미지로 계속 밀고 나가면서 본인도 그러하고, 지지자들도 그러하고, 위기의식을 느낄 때마다 그 특성이 배타성으로 변질됐죠.
이건 사실 그들의 주장이 옳고 그르다의 단순한 이분법 문제를 떠나서 그들 세력에 포함되지 않는 사람들이나, 반대급부 세력에 포함되어있는 사람들의 발언권을 사실상 박탈한다는 데에 큰 문제가 있습니다. 민주국가에서 발언권에 대한 박탈감이 의미하는 바는 결국 암묵적으로 침묵을 강요 당한다는 것이고, 그게 곧 권리의 박탈이라는 감정적인 파편들로 마음 한편에서 이곳저곳 떠돌게 되는 거죠. 문제는 그것의 종착지가 결국 '반문 정서'라는 마법의 단어로 귀결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에게 문재인이 대체 왜 싫냐고 물은들 정리된 답변으로 말하기가 어려운 것이고, 그 물음 자체가 또 침묵을 강요하는 것으로 느껴질 겁니다. 다소 관념적인 부분도 뒤섞여있을테고요.
게다가 반문 정서라는 마법의 단어에 대해 근거도 없고, 이유 없이 싫다고 그러는 것뿐이라는 배타적인 지지층들의 결벽스러운 반응들이 알게 모르게 반문 정서를 강화시키는 악순환을 반복하게 됩니다. 이게 문재인 후보의 확장성을 계속 막고 있던 본질적인 악재였는데, 하필이면 '적폐 청산'이라는 워딩이 본인의 배타적인 성격을 강화하고 있는 게 바로 현 상황입니다.
경선 과정 중에서는 이재명 시장의 강력한 배타성에 가려 문재인 후보의 배타성이 상대적으로 크게 주목받지 않았었지만, 경선 후 상대에 대해 가장 배타적이고, 적대적인 위치를 선점하고 있던 이재명 시장이 사라졌고, 반대로 통합을 말하고 가장 열려있던 이미지를 구축했던 후보인 안희정 지사도 사라졌죠. 어찌 보면 안희정 지사의 존재 자체가 문재인 후보의 배타성을 더 강하게 부각했다는 측면도 있습니다. 웃기게도 그 사이에서 갈팡질팡 이것도 저것도 아니었던 문재인 후보는 자기 자신의 브랜드가 반문 정서 밖에 없는 후보로 전락하고 맙니다. 문재인 지지층들은 부정하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게 우습게도 사실인 거죠.
경선 당시 민주당, 문재인 지지자들은 이재명 시장이 문재인 후보의 왼쪽 날개고, 안희정 지사가 오른쪽 날개라고 자의적으로 선언을 하며, 은근히 문재인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문재인이 낳은 유산들이라고 꾸미기 바빴습니다. 개인적인 소견으론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보다는 상대를 이용해 자기가 우상화하고 싶은 인물이나 지지하고 싶은 인물의 어떤 신화적인 이미지를 구축하고자 하는 행동이었다고 저는 해석합니다. 적어도 문재인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 눈에는요. 이게 본인들 깐에는 좋지만 막상 이재명 시장이나 안희정 지사를 지지하던 사람들 입장에선 불쾌할 게 당연하죠. 아무리 봐도 본인들이 보기엔 문재인 후보는 별 특징이 없는데, 자꾸 문재인을 신격화 내지 우상화하려는 행동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이 누적되고도 남았을 겁니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이놈도 저놈도 다 맘에 안 드는 구석 밖에 없으니 문재인 후보가 잘할 거라고 자부하진 않지만 문재인을 지지해야겠다는 말이 스멀스멀 기어 나오기 시작합니다. 본인들이 그걸 진심으로 말했는지, 전략적으로 말했는지를 논하는 건 별 의미가 없고, 그런 스탠스들이 어떤 생각을 더 공고히 만들어놨느냐를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바로 반문 정서죠. 기승전 반문 정서입니다. 이 이상한 단어를 무시하면 안 되는데 문재인 지지자들은 이걸 자꾸 무시하니까 지는 겁니다.
내가 지지하는 후보를 평가절하하는 행위라든가, 대세론이라며 자평하는 행위에 대해 느끼는 교만함이라든가 반문 정서라는 키워드만 없다면, 그것이 일시적인 감정에 불과해지겠지만, 그 일시적인 감정의 파편들에게 목적지가 배부된 이상, 결코 쉽게 볼 문제가 아니었죠.
문재인 캠프 측에 중심을 잘 잡고 있는 참모들이 있었다면 경선 과정부터 자기한테 생긴 반문 정서라는 이상한 단어에 대해 깊게 생각하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비판적인 목소리를 높여야만 했어요. 웃기게도 그 말을 했던 다수의 사람들은 소위 '비문'으로 불리던 인사들이었고, 문재인 측과 그 지지층들의 배타성에 의해 그들의 지적은 묵살되어버렸던 거죠.
그렇게 경선이 끝나고, 이재명 지지자들과 안희정 지지자들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상처들을 입게 됩니다. 이재명 시장이야 본인이 원래 강력한 배타성을 띠고 있던 후보라 솔직히 말해서 필연적으로 반발이 심한 거고(사실 이 사람들이 네거티브하고 다닌 거 보면 할 말이 없죠. 특히 최상천 교수를 중심으로 한 정체성 비토).. 안희정 지지자들은 좀 달랐죠. 이들의 상처는 쉽게 치유될 수 있는 수준의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바로 정체성을 비토 당한 것이 가장 큰 문제인데, 지지자들은 필연적으로 지지하는 후보를 닮게 된다고 이 사람들 또한 안희정이라는 사람을 신뢰할 수 있기 때문에, 이 사람의 인생을 알기에 강력하게 지지하던 사람이 많았어요. 그런데 그 사람들을 변절자라거나 사기꾼이라는 식으로 몰아간 거죠. 여기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게 여러 가지가 있는데,
1. 이재명 지지자들이 옆구리에 끼고 다니던 최상천 교수의 정체성 비토 강의
2. 최성의 대선자금 수사 관련 네거티브, 대연정을 비롯한 각종 정책들로 계속 박근혜 이명박과 결부 짓는 네거티브
3. 문재인 측의 어린애 다루듯 하는 훈계질과 안희정 발언들에 대한 교묘한 왜곡 해석
4. 반문 세력의 표, 역선택 표라고 하는 저질 프레임
5. 각종 팟캐스트, 유튜브 등을 통한 비토 (특히 손혜원, 정청래, 유재일)
등등등 나열하자면 수십 개라도 댈 수 있는데 이 문제들이 결국 어떤 종착지로 향하는지를 보면, 전부 정체성 비토라는 거죠. 후보가 정체성으로 비토 당한다면 그게 결국 그를 찍어주려고 하는 유권자들의 소신과 정체성에 대한 비토가 되고 마는데, 이 과정에서 원래 문재인에게 반문 정서가 없던 사람들도 반문 정서란 게 생겨버린 거죠. 근데 재밌는 게 이 반문 정서란 게 이제부터 실체가 없는 단어가 아니게 됐다는 거예요. 정말로 반문을 할만한 명확한 이유가 생겨버린 거죠.
안희정 지사가 선의 발언 때문에 폭락하던 시절 갤럽 세부 조사표 확인해보면 안희정 지지층 중 중도.보수 표심은 문재인 후보와 상호 관계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을 마치 반문 세력의 규합, 역선택 세력으로 규정해버리니까 이 사람들은 분개할 수밖에 없는 거죠. 여기에 빈정상하지 않은 사람이 오히려 더 이상하겠죠. 만약 문재인과 그 지지자들이 안희정의 주장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네거티브 하거나 비판만 하지 말고 폭넓게 이해해주고 보듬어줬더라면, 최성의 노골적인 네거티브에 조금이라도 반박을 해줬더라면 못해도 절반은 가져갔을 겁니다. 그렇게 하지 못한게 실수였죠.
이들은 문재인 측에서 내건 이른바 '역선택'이라는 슬로건에 병적으로 집착했기 때문에 애초에 우리 표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그야말로 바보들이에요. 누가 본인들 보고 내가 반문이요 한 적도 없는데요. 당장에 당시 역선택 논란이라던가 선의 발언이라던가 대연정이라던가 이거로 논란될 때도, 안희정 지지자들은 잘 보이지도 않았고, 보이던 사람들도 반문이 아니라 자기 후보를 변호하느라 정신없었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저라서 잘 알죠. 이 사람들은 오히려 반문이라기 보다, 안희정이라는 사람을 보니, 나도 이제 진보가 되거나, 민주당을 지지해보는 건 어떨까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었어요.
경선 패배 후에 안희정 지지자들이 원한 건 다른 게 아니었어요. 문재인 측의 계속된 사과와 위로, 그리고 정책에 대한 적극적 검토, 정체성 비토에 대한 확실한 사과를 원한 거였죠. 정말 원했던 건 딴 게 아니라 우리를 좀 사람으로 인정해달라는 호소였죠. 근데 웬걸 사과나 위로는커녕 MBN 나가서 18원 문자폭탄이 양념이라고 한데다, 통합이라고 외치면서 보여주기식 행보 밖에 안 되는(호프미팅이라던가) 것만 보여주고, 이젠 통합 선대위까지 잡음이 심하니 이 사람들 입장에선 안 그래도 꼴보기 싫은데, 꼴보기 싫어야 할 당위성까지 만들어준 셈이 돼버린 거죠.
게다가 묘하게 박영선이라는 사람이 안희정 지지층들의 억울함을 대변해주는 인물이 되어버렸는데, 박영선이 강경 자세로 나갈 때마다 비난을 일삼는 문재인 지지자들 때문에 아마 오만 정을 다 뗐을 겁니다. 여기에 박지원의 이호경식지계까지 먹혔고요.
자꾸 승복 승복 강요를 하는데, 사실 경선 승복이라는 걸 후보가 아니라 지지자들한테 이해시키려면, 승자가 대승적 차원에서 승복이라는 모습을 먼저 통크게 보여주어야 하는 것인데 그러지 않았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그냥 우리가 이겼으니 다 내 밑으로 들어와라 이게 민주주의가 아니고, 경선 결과에 승자도 패자도 모두 승복하고 모두들 위로와 사과를 건네달라고 메시지를 내고, 문재인은 오늘부터 다른 사람이라며 이재명, 안희정, 최성 그리고 민주당의 문재인이라고 천명했어야죠. 문재인의 정치적 센스가 계속 둔하다고 말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거예요.
이 분은 당최 어떤 상황에 놓이게 되면 뭘 해야 하는지 모릅니다. 방어만 하다 보니 퇴화된 것인지 그냥 원래 그런 능력이 없는 건지 이상할 정도에요. 상대를 적폐 세력, 적폐 연대라고 말하는 워딩을 고쳐도 문재인은 당선될 가능성 희박하다고 보는데, 하는 걸보니 고치지도 못할 거 같더군요. 오히려 발언 수위가 날로 강해지고요. 네거티브 안 하던 사람이 네거티브 해봐야 똥물만 튀기는 건데... 누차 말하지만 정치적 센스가 제로에 수렴해요. 애초에 역선택이라는 말을 들먹이면서 경선 컨벤션 효과 얻을 거라고 생각하는 게 교만이었어요.
마지막 소회로 저는 안희정이 이번에 경선에서 패배한 건 아주 잘 된 거라 생각합니다. 일단 안희정은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세력이 없었고, 진보 세력을 설득할 말재주가 부족했습니다. 아무리 집토끼들이 일부러 대연정과 선의로 깔고 뭉갰다고 해도, 대중의 언어를 습득하지 못했던 건 사실이죠. 저야 그가 하는 말이 다 이해가 되고, 무슨 말을 하는지, 이면에 어떤 저돌적인 생각이 내포되어있는지 알지만, 그걸 모든 사람이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게다가 전두환 표창으로 캠프(특히 박영선)가 삽질했을 때도 오락가락했던 게 아직 대연정을 설득시킬 단계로 완전히 성장한 것은 아니구나라는 걸 느꼈네요. 그래서 전 안희정 지지자지만 이번에 안희정이 안 된 건 정말 다행이라고 느낍니다. 좋은 인재를 미성숙한 채로 쓰는 건 너무 이른 선택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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