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故 안병하 평전 ①
(WWW.SURPRISE.OR.KR / 안호재 / 2021-06-22)

【제1부 발포를 거부하다】

「경찰이 무장을 하고 도청을 접수하시오」

5월 25일 오후 5시 30분경 안병하 국장(현 광주전남지방경찰청장)은 이재웅 도경 항공대장이 운전하는 헬기를 타고 전교사에 최규하 대통령이 왔을 때 장형태 도지사(전남)와 함께 자리에 참석했다. 대통령의 광주방문은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요청해서 이뤄졌다. 도청 진압작전을 앞두고 계엄사가 최선을 다했다는 명분을 쌓기 위해서였다. 대통령을 수행한 사람들은 계엄사령관 이희성, 내무부장관, 보사부장관, 건설부장관 등이었고, 광주에서는 전교사령관 소준열 소장과 부사령관 김기석 소장, 전투발전부장 김순현 준장 등이 함께 자리를 했다.

소준열 전교사령관이 상황보고를 한 뒤 최 대통령이 도지사에게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사태 기간이) 10일 가까워지니까 생필품이 궁색해지고 치안 공백 상태가 더 이상 지속되어서는 안 되겠으니 조속히 수복되어야겠지만 이 이상은 희생이 없어야 되겠습니다”라고 답변했다. ‘공수부대의 과격한 진압이 사태 악화의 원인’이라는 말은 꺼낼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러자 이희성 계엄사령관이 화를 내며 “그럼 계엄군이 들어가란 말이냐, 들어가지 말란 말이냐”고 윽박질렀다. “도지사로서 그 이상의 말을 제가 어떻게 합니까?” 군이 들어가고 안 가고는 군 작전상의 문제 아닌가요?“라고 대꾸했다. 대통령이 “이 장군, 이 장군”하면서 만류했다. 계엄사령관은 대통령 맞은편에 앉아 있던 소준열 전교사령관을 향해 “소 장군, 도지사가 들어가라 거든 들어가”라고 소리쳤다. 그야말로 대통령은 안중에도 없는 무례한 태도였다. 『장형태 서울지검 진술조서(1995년 12월 26일) 12~13쪽』
이희성 계엄사령관은 대통령 면전에서 안병하 국장에게도 면박을 주었다. 안병하 국장이 훗날 아들 안호재에게 들려준 당시 상황은 “최규하 대통령이 연단에 섰는데 밑에 앉아 있던 하급 장군들이 다리를 꼬고 담배들을 피우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군부의 쿠테타라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다음은 당시 대통령과의 간담회가 끝난 직후 도지사와 안병하 국장을 전교사에서 광주비행장으로 헬기로 이동시킬 때 이재웅 도경 항공대장이 들었던 이야기를 재구성한 증언이다.

(이희성 계엄사령과) 경찰이 무장을 하고 도청을 접수하시오.
(안병하 전남도경 국장) 경찰은 시민군의 형제, 가족도 있을 테고 이웃도 있는데 경찰이 어떻게 시민들에게 무기를 사용하면서 진압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희성 계엄사령관) 아니, 저런 사람이 전남 치안을 맡고 있는 경찰국장이요?

『이재웅(전남도경 항공대장) 증언. “순직진상보고” 161쪽, 2005. 이재웅 항공대장은 회의가 끝나고 헬기에 탑승하기 전 장형태 전남도지사와 안병하 국장의 대화내용을 듣고 이런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이희성 계엄사령관은 육사 8기로 안병하 국장과 동기인데다 가족 간에도 서로 친분이 있는 사이였다. 안 국장이 경기도경찰국장 시절 함께 찍은 사진도 있다. 그는 안병하와 달리 5.16군사쿠테타에 동참했다. 1979년 10∙26사건으로 중앙정보부장직이 공석이 되자 현역 육군 중장으로 중앙정보부장 서리에 임명됐고, 뒤이은 12∙12군사반란 직후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육군참모총장으로 추대됐던 인물이다.

안병하 국장은 이때 대통령 앞에서 계엄사령관 이희성의 강한 지시, 즉 경찰이 총을 들고 앞장서서 전남도청을 진압하라는 압박을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거부했다. 만약 이때 경찰이 시민을 향해 총을 겨누고 발포했다면 광주의 역사는 ‘피의 학살극’으로 기록됐을 것이다. 경찰에게는 ‘학살자’라는 오명이 영원히 따라다니게 되었을 것이다. 안 국장은 신군부의 부당한 명령을 거부함으로써 광주시민의 목숨을 살리고, 경찰의 명예를 지켰다. <계속>

＊저자 이재의 전남대 경제학과 졸업, 조선대 경영학 박사, 《광주일보》 ‘월간 예향’ 기자, 《광남일보》 논설위원. 1980년 5월 항쟁 당시 시민군으로 전남도청 상황실에서 활동, 그해 10월 체포, 1981년 5.18특사로 석방. 1985년 5∙18 광주항쟁 최초 기록물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황석영 기록) 초고 작성, 2017년 전면개정판 공동 집필. 2000년 내외신 기자들의 5∙18 취재기 The Gwangju Uprising(M.E, Sharpe)을 《뉴욕타임스》 특파원 헨리 스콧 스톡스(Henry Scott Stokes)와 함께 편집하여 미국에서 출판. 현재 5∙18기념재단 비상임연구위원으로 활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