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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그들의 죽음이 ... 순국이었을까? 29
  번호 130854  글쓴이 강진욱  조회 240  누리 0 (0,0, 0:0:0)  등록일 2022-5-11 09:59 대문 0

[연재] 그들의 죽음이 ... 순국이었을까? 29
최병효 책 <그들은 왜 순국해야 했는가> 독후기


29. 안기부 대공수사국장의 밀어 “너 어떻게든 살아야지”

전두환네는 아웅 산 묘소 사건 바로 다음날 남파공작원(비칭 ‘무장공비’)들에게서 압수한 권총 등 ‘물증’을 한 짐 싸들고 버마로 날아가 이들 물건이 아웅 산 묘소 테러범들이 갖고 있던 것과 동일하다며 “북괴 범행 발표만 남았다”고 떠들었다.

[[박세직의 진상]조사단은 1978년부터 1983년 사이에 한국에서 일어난 주요 간첩 사건에서 노획한 장비 131점과 침투 사건 별 획득 장비의 사진과 설명, 사살 및 자폭한 간첩의 사진들을 제공했고, ... ] (송영식 책『나의 이야기』187쪽 / 박세직팀이 가져간 물품들 가운데 강민철네가 갖고 있었다는 벨기에제 권총과 일련번호가 같은(끝자리만 다른) 권총도 있었다. 이들 일련번호가 같은 권총은 과거 체포된 남파공작원들이 갖고 있던 것으로, 강민철네가 갖고 있었다는 권총 역시 그 중 하나였을 것으로 본다. 당시 안기부는 일련번호가 같은 벨기에제 권총을 여러 개 갖고 있었을 것이다.)

( 조선일보 1983.10.18 / 발표만 남았다)

또 특사를 보내고 언론을 동원해 ‘북한 배후설’을 퍼뜨리며 이를 기정사실화하려 했다.

[10월 10일 오후 유해 운구 특별기로 도착한 이원경 특사는[당시 체육부장관, 며칠 뒤 외무부장관 임명] 다음날인 11일 우 산 유 대통령과 우 칫 라잉 외무장관을 면담 ... 이번 사건이 북한 만행임을 기정사실화하고 배후 세력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 강력한 응징 조치를 요구 ...] (송영식 책『나의 이야기』186쪽)

뿐만이 아니었다. 앞글(27.28편)에서 살펴봤듯이 전두환네는 중간수사 결과 발표(10.17)를 앞두고 미.일 정부 관계자들과 그 언론의 지원 사격까지 받으며 범인들이 이북 화물선 ‘동건애국호’를 타고 버마에 잠입했다고 떠벌렸다. 그러나 모두 허사였다. 버마 정부는 전두환네가 제시한 이런 ‘확실한(?) 물증들’을 인정하지 않았고, 언론을 통해 퍼뜨리는 선전전에 속지 않았다. 오히려 전두환네의 부당한 언론플레이를 못 마땅히 여겼다.

[현지에 파견된 한국 특파원들이 “북괴의 소행이 틀림없으며, 버마 당국도 이를 인정했다”고 보도하자, 버마 측은 이를 문제 삼아 그동안 서울에서 발행된 영자지를 모두 보내달라고 요청 ... ] (<조선일보> 1983.11.6)

버마 수사당국은 처음에는 이렇게 나름의 중립을 지키려 노력했고 중간 수사 결과 발표에서, ‘남도 북도 아닌 코리언’이 범인이라고 밝혔다.  

[[버마 수사당국의] 조사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은 일각이 여삼추 같은 피를 말리는 순간들이었다. 드디어 10월 17일 ... 중간 발표를 했다. 자세한 설명 없이 그냥 코리언이라고 밝히는 바람에 북한인인지 남한인인지를 구분할 수 없어 우리는 긴장을 풀지 못했다. 한국의 자작극이 아니라는 좀 더 확실하고 움직일 수 없는 증거를 찾고 있었던 모양이다.] (송영식 책『나의 이야기』187-188쪽)

버마 정부는 중간 수사 결과 발표 뒤 “버마 정부로서는 의심만 가지고는 금번 사건이 누구의 소행이라고 지적할 수는 없는 입장”(최병효 책 234쪽)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당시 전 정권이 느꼈을 당혹감을 <조선일보>는 다음과 같이 전했다.

[17일 버마 정부는 체포된 ... 범인들을 [강조]막연히 ‘코리언’이라고만 표현하면서 사태는 더욱 긴박해지기 시작 ... 혹시 ‘남한’임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마저[강조] 들기 시작 ... 버마 정부는 이후 한국 기자들의 철수를 요구했고, [강조]한국 측 조사단의 축소를 요구해 왔다. 사태가 심상치 않았다.[강조] ... 24일까지 한국 측의 범인 면담은 이뤄지지 않았고, ‘물 주스 아야’라는 말이 수록된 녹음테이프를 건네받았을 뿐이다. [강조]‘주스’라는 말은 한국 측을 긴장하게 만들었다.[강조] 그들은 주스를 ‘단물’이라고 한다는 것 때문이었다.] (<조선일보> 1983.11.5) 

온갖 물증을 들이대고 갖은 수단을 동원해 국내외 여론을 조작하며 ‘북괴 소행’이라는 분위기를 만들었음에도 결과가 이러했다면, 전두환네가 쓸 수 있는 카드는 딱 한 개가 남는다.‘북측이 시인’을 조작하면 된다. (* 이런 조작의 대표적 예가 바로 1968년 1.21 김신조 사건이고, 2010년 천안함 사건 때는 북측에 ‘시인 비슷한 것’을 구걸하다 개망신을 당했다. 이때 개망신을 당한 남측 대표 가운데 한 명이 새 정부 청와대 외교안보실 1차장으로 들어앉았다. 남북을 이간질할 모종의 공작이 우려된다.)

전통적으로, 역사적으로 남측이 ‘북측의 시인’을 조작하는 매뉴얼은 ‘가짜 간첩’ ‘가짜 북한 공작원’을 시켜 “우리가 했다”고 떠드는 것. 우선 아웅 산 묘소 테러범이 “나 북한 공작원이요”라고 말을 바꾸도록 만들면 된다(이때까지 강민철은 “서울에서 왔고, 이북에는 가 본 적도 없다”고 진술하고 있었다). 사실, 전두환네는 사건 직후부터 즉, 범인들이 생포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부터 이들과의 대면을 버마에 요구했다.

[[강조]한국과 버마 수사관들은 생포한 북괴 공작원에 대해 심문을 시작할 수 있게 되기를 초조히 기다리고[강조] 있다. 한국 측 특별조사단은 버마 수사당국이 그동안 수사해 온 결과를 상호 교환할 것과 생포한 북괴[?] [강조]공작원 2명의 신변을 안전하게 보장해 줄 것을 요청[강조]했다.  ... 소식통들은 북괴 공작원들이 의식을 회복, [강조]심문을 하게 되면 북괴의 범행 전모가 명백히 입증될 것으로 보고[강조] ... 아웅 산 묘소 폭파 테러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한국 측 특별조사반은 이번 사건이 북괴가 치밀한 계획 아래 단행한 요인 암살극이 틀림없다는 확증을 잡고 [강조]생포한[?] 북괴 공작원에 대한 심문을 마치는 대로 수사를 종결, 버마 측과 공동 발표할 준비를 갖추고[강조]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괴 범증’ 버마 발표만 남았다 - 한국.버마 수사 막바지」<동아일보> 1983.10.14)

박세직팀은 뭘 믿고 자신들이 강민철을 만나 심문하면 곧바로 사건의 배후를 이북으로 규정할 수 있다고 자신했을까. 강민철 등이 정말 북한 공작원이라면 이는 가당찮은 이야기다. 제3국에 붙잡혀 있는 북한 공작원을 상대로 남한 정보부가 무슨 심문을 할 것이며, 그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박세직팀의 자신감은 강민철이 ‘북한 공작원’이 아니라 강민철이 말하는 것처럼 남측에서 보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고 봐야 한다. 버마 정부가 ‘코리언이 범인’이라고 발표하자, 전두환네는 강민철의 말을 바꾸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중간발표가 있었던 10월 17일 오후, 틴툰 정무총국장을 만나 심기철 대사의 외무장관 특별대표 임명 사실을 통보하고 범인 합동신문 가능성을 타진했다. ... 정무총국장은 후임 대사를 임명하는 것도 아니고, 국제관례상 장관특별대표 임명이 적절하고 올바른지 것인지 모르겠다면서 ... 미온적 반응을 .. 나는 특수 상황임을 감안해 달라고 요청 ... 합동심문 가능성에 대해서는 ... 한국과 미얀마의 공모로 결과를 날조했다는 의심을 받을 수 있고, 한국이 범인은 북한 사람이라고 서둘러 판단해 단독 발표할 우려 때문에 응할 수 없다는 확고한 입장을 표명 ... ] (송영식 책『나의 이야기』187-188쪽)

버마 정부는 ‘합동 신문’도 거절했지만, 버마의 이런 완고한 입장은 금새 누그러진다. 버마 수사 당국보다 상위에서 어떤 힘이 작용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송영식 씨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지만, 전두환네는 외무장관 특별대표만 보낸 것이 아니었다. 버마가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날 안기부 대공수사국 국장(성용욱)과 과장(한철흠) 두 사람이 버마에 급파됐다.

성용욱 국장은 아웅 산 사건 발생 1년만인 1984년 10월 감사원 사무총장에 임명되고, 1987년 5월에 국세청장으로 영전해 전두환 정권의 권세를 톡톡히 누리게 된다. (*안기부 대공수사국장이 곧바로 감사원 사무총장이 된 것은 매우 비상식적이고 불합리한 일이다. 겉으로는 번듯해 보이지만 수많은 국가조작사건으로 점철된 ‘한국현대사’에는 이처럼 추악한 ‘공로와 보상’의 예가 수없이 많을 것이다.)

한철흠은 철저히 베일에 가려진 이다. 4년 뒤, 전두환 정권의 또 다른 자작테러극인 ‘KAL 858편 폭파 사건’ 때 바레인에 가 김현희를 데려 온 것으로 추정되는 인물이다.(*『전두환 회고록-2』543쪽에는 “안기부의 대공수사 전문요원인 한 모 과장을 현지에 급파”해 김현희를 데려왔다고 씌어 있다.)

그런데, 송영식 씨는 이들 2명의 버마 입국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았다. 송 씨는 기자단, 공연단, 무슨 대표단 등의 버마 방문을 주선하느라 진땀을 뺐다고 회고록에 여러 차례 밝히고 있다. 그런데도 안기부 대공수사국장 등의 버마 입국에 대해서는 일절 함구하고 있다. 이는 이 둘의 버마 입국이 정상적인 외교적 절차를 통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으로 본다.
(*송 씨뿐 아니라, ‘1983 버마 사건’을 이북의 공작이라고 보는 이들 모두 안기부 대공수사국장 등의 버마 입국에 대해 함구한다. 라종일의『아웅산 테러리스트 강민철』은 물론, 이 책을 반박한 필자의 책이 나온 지 3년 뒤, 필자의 책을 음모론으로 폄훼한 최병효의『그들은 왜 순국해야 했는가』도 두 사람의 버마 입국 경위를 언급하지 않는다. 이렇게 사건의 맥락을 엄벙덤벙 띄엄띄엄 읽으니 ‘1983 버마 사건 = 북한의 소행’이라는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다. ‘한국현대사’를 기록하는 방식이 이러하다.)

놀랍게도, 버마는 안기부 대공수사국 책임자 두 사람이 버마에 온 다음날(10.19) 이들과 강민철과의 면담을 허락했다. ‘단독 수사’를 고집하던 버마가 어떻게 이렇게 180도 돌변했을까.

[중간 수사 결과 발표 이틀 후인 10월 19일, 심기철 특별대표와 박세직 조사단장은 미얀마 외상을 면담 ... 이번 사건이 북한 소행임을 조속히 확인하고 발표해 줄 것과 단호한 응징 조치를 취해줄 것을 촉구하고 합동수사 문제 등에 관해 의견을 교환 ... 미얀마 외상은 우리 조사단 중 필수 인력을 제외한 나머지는 철수해 줄 것을 요망 ... 한국이 사건 관련 언론 보도에 신중을 기해 줄 것을 요청 ... 박세직 조사단장이 양곤에 도착하면서부터 요청해 온 범인 면담은 일주일 후 가능하도록 하겠다고 약속 ... 미얀마 정부는 많은 우리 조사 요원들이 여기저기 다니면서 주재국 허가 없이 조사 활동을 벌이는 것을 매우 못 마땅하게 여겼고, 우리 언론의 성급한 보도에 대해서도 매우 곤혹스럽게 생각 .... 이런 가운데 범인 면담을 실현...] (송영식 책『나의 이야기』194쪽)

“박세직 조사단장이 양곤에 도착하면서부터 요청해 온 범인 면담”은 위장이다. 안기부 대공수사국 국장과 과장의 버마 밀행과 이들의 밀행과 동시에 전두환네가 강민철을 만날 통로가 열렸다는 사실을 은폐하려는 것이다. 전두환네가 왜 그렇게 강민철과의 면담에 목을 맸는지, 왜 몰래 안기부 대공수사국장 등이 버마에 왔는지, 어느 순간 왜 갑자기 강민철 면담이 가능해졌는지를 밝혀내면 아웅 산 공작의 전모가 드러날 것이다. 우리는 송영식 씨의 회고와 최병효 씨가 남긴 기록을 통해 그 내막을 추리(推理)할 수 있다.

[10월 25일 실시된 외교단 대표와의 범인 면담은 ... 한국 측의 일방적인 ‘심문 후 북한 소행 단정 공표’를 자제시키려는 ... 미얀마 측은 범인의 “서울에서 왔다”는 말을 우리 측이 듣게 하여 수사에 어려움이 있음을 과시[?]하려는 계산도 ...] (송영식 책『나의 이야기』198쪽)

[ ... 미얀마 정부가 독자적으로 엄정한 수사를 진행한다는 사실을 과시하려는 ... 한국 측에는 범인에 대한 질문을 허용함으로써, 범인이 북한인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려는 것 같았다.] (송영식 책『나의 이야기』195쪽)

위 송영식 씨 회고는 최병효 씨의 기록과도 일치한다. 최 씨는 자신의 책에서 위 이야기를 ‘범인 면담에 대한 우리 측 평가’ 항목(235쪽)에 실었다. 송영식 씨는 또 버마 측이 강민철 면담 다음날에도 똑같은 이야기를 했다고 회고한다.

[틴툰 정무총국장은 10월 26일 오후 2시에 나를 외무성을 초치하여 서울에서 왔다는 범인의 주장을 언급하며 이제는 한국이 수사의 어려움을 알게 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송영식 책『나의 이야기』197쪽)

버마가 허락한 강민철과의 면담은 ‘니네(전두환네)는 주야장창 이북의 소행이라고 떠들지만, 정작 범인은 “서울에서 왔다”고 하쟎냐∼’는 버마 정부의 항변이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버마 정부는 전두환네와 강민철의 면담을 허용함으로써 이때까지 견지해 온 ‘중립’을 포기하고 전두환네와 - 또한 미국과 - 한통속이 된다. 왜 그렇게 됐을까? 10월 25일 면담부터 강민철의 진술 번복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서울에서 왔다”던 강민철이 “북한에서 왔다”고 말을 바꿨을까. 우리에게 전해진 ‘면담 이야기’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침대에 누운 범인 2명과 약 3미터 거리를 두고 45분 동안 대화가 허용되었다. 3명의 대사들은 35분 정도 범인들을 관찰한 후 떠났다. 나머지 10분 동안 우리 쪽 수사관이 이름, 연령, 출신 학교, 거주지, 미얀마에 온 동기 등 10여 가지의 기초적인 내용을 질문 ... 이름은 강민철, 28세, 성북초등학교, 서울대학 졸업, 영등포에 거주하며, 모친이 서울에 있고, 이북에 간 적이 없으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내용 ... 목소리는 부상자답지 않게 상당히 컸다. ... 우리는 더 이상 질의응답이 무의미하다고 판단해 병원을 떠났다.] (송영식 책『나의 이야기』195-196쪽)

여기에도 누락된 - 감춰진 - 이야기가 있다. 다른 나라 대사들은 모두 돌아가고 전두환네 사람들만 남아 강민철을 만났으며, 이때 성용욱 국장 또는 한철흠 과장이 강민철에게 “너, 어떻게든 살아야 할 것 아니냐”는 말을 건넸다는 사실이다. 이 놀라운 사실을 왜 뺄까. 송영식 회고록만 그런 게 아니라 최병효의 책에도 이 사실이 누락돼 있다. 최 씨는 “10.12 ... 체포되어 조사를 받아오던 강민철은 자신의 치료를 담당하던 군의관을 통해 사건 전무를 자백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하였다”고만 썼다. 그런데 이 수상한 밀어(密語)는 1995년 출간된 장세동의『일해재단』을 통해 일찌감치 공개된 이야기다. 물론 장 씨나 다른 누구도 이 수상한 밀어 속에 숨겨진 의미를 찾으려 하지 않았다.

(『일해재단』70쪽)

그 밀어는 2013년 나온 라종일 책에도 들어 있지만, 라 씨 또한 그 말에 의미를 모른 체 했다.

( 『아웅산 테러리스트 강민철』155쪽)

이렇게 널리 공개된 이야기를 무시 또는 간과하는 것은 이 수상한 대화가 ‘아웅 산 공작 = 북한 소행’이라는 정해진 결론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수상한 대화 정황을 자세히 파고 들어가면 ‘북한 소행’ 결론은 유지될 수 없다. “너 어떻게든 살아야 할 것 아니냐”는 말은 남한의 대공수사국 관계자와 북한 공작원 사이에 오갈 수 있는 말이 아니다. 또 그런 말은 서로가 잘 아는 사이가 아니면 무심히 꺼낼 수도 없다.

버마 수사당국이 “코리언이 범인”이라고 발표한 다음날 안기부 대공수사국 관계자 둘이 화급히 버마에 간 것은 강민철을 잘 아는 이들이 직접 그를 만나 “서울에서 왔다”는 말을 취하하게 만들 목적이었던 것이다. 앞서 박세직팀이 범인을 직접 만나 심문하면 모든 일이 정리될 것처럼 자신감을 보였던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강민철을 보낸 자가 직접 그를 만나 어르고 달래야만 그의 마음을 돌리려 했던 것이다.

지금까지 저들은 - 전두환네와 전두환네의 공식 결론을 순순히 따르는 이들은 - 10.25 면담에서 단호히 “이북에는 간 적이 없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했던 강민철이 어느 날 - 저들은 11월 3일이라고 말해왔다 - “나 북한에서 왔소”라고 말을 바꾼 것은 ‘어여쁜 간호사를 활용한 미인계’ 덕분이라고 떠벌린다.

[수사가 종결된 후 [버마] 담당국장에게서 들었다. ... 강민철에게 미모가 뛰어나고 마음씨 고운 간호사를 배치시켜 살고 싶은 의욕을 갖도록 유도한 이야기도 ... 미얀마 측이 사건 수사를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엿볼 수 있는 ...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런 노력들이 강민철로 하여금 사건 전모를 자백하게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송영식 책『나의 이야기』199쪽)

라종일 씨는 미인계를 ‘수사 기법’이었다고 주장한다.

[후에 버마 측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로는, 강민철이 밍가라돈 군 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받고 있을 때 그에게 특별히 관심을 쏟은 간호사는 실은 버마 당국이 조사를 위해 취한 조치 중의 하나였다는 것 ... 일부러 미모의 여성 간호사를 뽑아 그를 돌보면서 수사에 협조를 유도하고 그를 회유하도록 했다는 것 ... 강민철에게 살려는 의지를 되살려서 조사를 원활하게 하려는 계획이었다. 이는 잘 알려진 수사 기법의 하나였다.] (220-221쪽)

2017년 출간된『전두환 회고록』는 이렇게 ‘... 카더라’식으로 전해진 이야기를 사실로 승격시킨다.

[버마 수사당국은 ... 여자 간호사를 강민철에게 배치하여 정성을 다해 친절하게 돌봐주도록 했다. 북한 사회에서 자라고 특수부대의 훈련만 받아 온 젊은 강민철로서는 그처럼 따뜻하고 인간적인 대접은 처음 받아보는 ... 11월 3일 드디어 ... 모든 것을 털어놓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전두환 회고록-2』516쪽)

전두환을 암살하라는 지령을 받고 그렇게 끔찍한 짓을 저지른 어떤 공작원이 예쁘게 생긴 여자 간호사에 혹해 모든 것을 털어놨다는, 3류 만화같은 이야기다. 이런 같잖은 이야기가 정설로 둔갑하고 한국현대사로 기록돼 대북 적대감을 토대로 하는 남북 분단체제를 지탱하는 것이다. ‘미인계’에 더해 저들은 ‘자폭 수류탄에 대한 배신’을 곁들인다.

[강민철은 미얀마 측의 미인계로 생에 애착을 느껴 자백했다고 한다. 내가 들은 이야기 중에는 이런 것도 있다. 강민철은 잡히는 순간 북한에서 교육받은 대로 자살용 수류탄의 안전핀을 뽑았다. 하지만 강민철이 안전핀을 뽑는 순간 통상적인 폭발 전 2-3초의 여유도 없이 곧바로 터져버렸다. 그는 그의 조국이 자신의 변심을 우려, 안전핀을 뽑자마자 터지도록 만든 수류탄을 지급한 사실을 깨닫고 그 비인간성에 환멸과 배신감을 느낀 나머지 북한 공작원임을 자백했다는 것이다.] (송영식 책『나의 이야기』209-210쪽)

[기이한 것은 두 사람[김진수.강민철] 모두 한쪽 팔이 잘렸고 버마 군경과 교전 중에 상대방의 공격이 아니라 자신들의 화기 즉, 소지하고 있던 수류탄으로 부상을 당한 것... 이 점은 후일 강민철이 범행의 전모를 자백하는 심경의 변화를 일으키는데 한 요인이 되었다고 한다.] (라종일의『아웅산테러리스트 강민철』149쪽)

‘요원 살해용 수류탄’ 이야기는 자가당착이다. 강민철은 그와 동료 둘 모두 수류탄 핀을 뽑자마자 죽거나 손목이 날아갔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부터 배신감에 치를 떨었을 것이다.(*범인 셋 중 신기철은 죽었고, 김진수는 한쪽 손목과 한 쪽 손가락 넷을, 강민철은 왼쪽 상박을 잃었다.) 그래서 병상에서 심문을 받을 때 “서울에서 왔다”고 이야기한 것이다. “어머니와 서울에 살고 있다. 이북엔 간 적도 없다”는 강민철의 말은 그가 느낀 배신감이 누구를 향한 것이었는지를 웅변한다.

강민철 등이 체포된 직후부터 전두환네가 “이들의 신변 안전이 우려된다”며 이들과의 면담을 간정해 온 이유도 바로 그것 때문인 것이다. 자폭용 수류탄으로 범인들을 모두 죽게 만들려다 실패하자 생포된 강민철 등의 입에서 딴 소리가 나올 것을 우려했을 것이다. 결국 그 우려가 현실화돼 ‘코리언이 범인’이 된 것이다.

또 지금은 거론되지 않는 한 물 간 이야기도 있었다. 강민철에게 “너, 한국 보낸다”고 겁을 주자 자백했다는 이야기. 일본 쪽에서 나온 역정보였다.

[【동경=연합】버마 정부는 랭군 폭발 사건에 가담했다 체포된 북괴 특수부대요원 중 1명이 신병을 한국으로 송환하겠다는 위협에 굴복함으로써 북괴의 이번 사건 개입 사실을 자백받는데 성공했다고 일본 아사히신문이 5일 ... 싱가포르발 기사에서 랭군 소식통을 인용 ... 공작원은 처음 자신이 한국 출신이라고 주장했으나 “신병을 한국으로 보내겠다”는 버마 수사 요원의 위협에 굴복, 북괴의 범행 계획 사실을 순순히 자백하기 시작했다“고 ... 3일 밤부터 범행 사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고 ... 버마 정부는 4일 아침 긴급 각료회의를 열어 대북괴 외교 승인 취소 조치를 결정 ...] (<조선일보> 1983.11.6)

‘미인계’나 ‘자폭 수류탄’ ‘송환 협박’ 모두 가당찮은 이야기다. 강민철 면담(10.25)에서부터 그의 진술 번복의 내막을 은폐하려다보니 이 이야기 저 이야기를 꾸며낸 것이다. 그러면 버마는 왜 10월 19일 버마 주재 한국대사관 송영식 참사 등과의 면담에서 ‘강민철과의 일주일 뒤 면담’을 허락했을까? 안기부 대공수사국장 등이 버마에 오기 전까지 전두환네의 ‘합동 수사’ 요구를 거부했던 버마가 갑자기 태도를 바꾼 것은 버마 정부가(최고 의사결정권자인 네윈이) 거부할 수 없는 매우 강한 압박 내지는 회유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그렇게 버마 정부를 압박할 수 있는 세력이 있을까. 있다. 버마는 사회주의를 표방했지만 태생부터가 친미.친서방 정권이었고, 네윈은 바로 미국과 이스라엘 등 서방 국가들의 은밀한 지원 덕분에 권력을 장악할 수 있었다. 미국 등 서방은 1958년과 1962년 두 차례 네윈의 ‘친서방 반중반공’ 쿠데타를 배후 지원했고, 1970년대 말부터 매우 공격적으로 일본과 독일 자금까지 끌어들여 버마를 도왔다. 그런 가운데 버마가 소련을 비난하면서 비동맹운동(NAM)에서 탈퇴했다는 사실은 앞서 살펴봤다.

버마 네윈 정권의 갑작스런 태도 변화가 미국의 힘에 의한 것임을 짐작케 하는 문건이 있다. 미 중앙정보국(CIA) 정보본부(Directorate of Intelligence)가 10월 19일 작성한「랭군 폭파 사건 - 북한인들에게 혐의가 가는 사건(Rangoon Bombing Incident - The Case against the North Koreans)」라는 제목의 보고서다. 필자는『1983 버마』에서 처음 이 문건을 공개하면서, 한국 또는 버마 CIA 지부가 작성해 미국 버지니아주 랭글리에 있는 CIA 본부로 전송한 문건으로 추정했다(164쪽). (* 책에서 ‘북한인들이 저지른 것으로 보이는 사건’으로 번역했던 문건 제목을 조금 수정했다.)

( CIA 문건)

놀랍게도 5쪽 분량의 이 문건에는 전두환네의 아무 근거 없는 주장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동건애국호의 행적을 아웅 산 묘소 폭파 사건과 억지로 연결시키려는 것도 똑같았다. 이 배가 버마를 거쳐(9.17-23) 스리랑카에 머물렀다는(9.23-10.6) 공공연한 - 이미 널리 알려졌어야 하지만 전두환네가 꽁꽁 숨긴 - 비밀을 적시하며 “이 배가 버마에 들어온 시점은 북한 공작원들을 파견한 시점과 대략 일치한다(would be consistent with)”고 썼다.

문건 작성 시점 전까지는 결코 버마 정부의 인정을 받지 못했던, 그러나 강민철의 진술 번복과 동시에 사실로 둔갑해 최종 결론으로 정리될 내용이다. 특히 문건 첫 장 ‘Summary’(요약)는 ‘강민철의 자백’을 기정사실화하고 있었다. 10월 19일 작성된 문건에 이런 표현이 들어가 있다면 그것은 강민철의 자백이 이미 정해져 있었다는 말이다. ‘Summary’만 우리말로 옮긴다.

[OOOOO ... 한 자백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지만(Confessions ... ... are still lacking, but ...), 랭군에서의 전두환 대통령 시해 기도 사건과 북한의 연관성에 관한 매우 강력한 정황 증거가 있다. 공작 방식이나 사건이 일어난 뒤 버마 수사 당국에 체포된 코리언들이 소지하고 있던 장비는 과거 남한에 침투했던 수많은 북한 공작원들의 그것과 비슷하다. 랭군에서 사용된 원격조정 방식의 폭발물은 1970년 서울에서의 박정희 대통령 암살 시도 때 사용됐던 것과 유사하다. 북한 국적선의 행적과 북한 외교관들이 랭군[아웅산 묘소] 헌화식과 묘소 배치 구조를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은 이번 사건의 배후가 북한이라는 또 다른 정황증거다.]

( 서머리)

해설이 필요하다. “남파공작원들이 갖고 있던 장비와 비슷하다.” “1970년 사건(1970.6.22) 때 사용된 폭발물과 유사하다.” 모두 조작된 허구다. “남파공작원들이 갖고 있던 장비”는 대구 미 문화원 현관문 앞에서 ‘클레이모어(일명 크레모아) 유사한’을 가리킨다. 전두환네와 미국이 아웅 산 묘소 테러를 조작하기 약 20일 전, 역시 전두환네가 조작한 이 사건은 아웅 산 묘소 테러의 ‘오프닝 게임’이자 예고편이었다. 전두환네와 미국의 ‘광주 학살’에 분노한 시민과 학생들이 광주와 부산 등지 미 문화원이 잇따라 공격하자 - 점거 농성 또는 방화가 고작 - ‘역공작’을 꾸며 대학가와 시민사회의 반미.반전두환 투쟁을 무마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1970년 사건’ 역시, 1969년 ‘3선 개선’ 이후 날로 험악해지는 정국과 대학가의 반발과 날로 악화되는 민생고에 대한 불만을 무마하기 위한 박정희 정권의 자작극임에 틀림없다. 한국전 발발 20주년(1970.6.25)에 박정희가 국립묘지에서의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 현충문 아래를 지날 때 폭발물을 터뜨리려 했으나 폭발물이 미리 터져 미수에 그쳤다는 이야기.

아웅 산 묘소 테러의 ‘작업 방식’(modus operandi)과 비교해, 대구 사건은 사용된 폭발물이 동일하고 현충문 사건은 이에 더해 지붕에 폭약을 설치하려 했고, 그 폭약이 미리 터졌다는 것까지 동일하다. 저들은 아웅 산 묘소 테러 공작을 앞두고 안기부 버마 파견관(강종일 서기관)을 시켜 두 사건을 버마 정부에 들이대며 “유사 사건 발생”을 예고했다. 저들은 이처럼 무모했고 대담했다. 사건이 일어나자마자 버마 정부가 곧바로 전두환네 자작극을 의심한 것도 그 때문 아니겠나.

[안기부 파견관 강종일은 버마와의 사전 회의에서 ... 북한 공작원들이 이전에 국립묘지에서와 같은 테러를 감행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우리가 내부를 다시 검색해 볼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지만 ...] (라종일 113쪽 / 라종일 씨는 “전 대통령이 도착하기 전에 폭발이 일어난 것은 13년 전 서울의 국립묘지[에서]와 같은 경우의 사고 ... 결정적인 순간에 13년 전의 실패가 다시 한 번 되풀이된 것”(121쪽)이라는, 기상천외한 해설을 붙이며 이 사건과 아웅 산 묘소 사건과의 연관성을 강변했다.)

CIA 비밀문건에서 또 눈여겨 볼 것은 작성 시점이다. 10월 19일. 이날은 안기부 대공수사국장 등이 버마로 급히 날아간 다음날이고, 버마 외무장관이 전두환네 ‘장관 특별대표’(심기철)와 ‘진상조사단장’(박세직)에게 ‘일주일 뒤 강민철과의 면담’을 약속한 날이다. 전두환네와 미국이 이렇게 한 날 한 시에 손발을 맞춰 움직인 것, 이런 움직임과 동시에 버마가  ‘중립’을 포기한 것은 한.미 양측의 공모(共謀)과 버마에 대한 이들의 ‘어떤 작용’을 시사한다.

CIA 문건에 대해 혹자는 CIA가 한-버마 접촉에 대해 본국에 보고한 것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CIA 문건에는 한-버마 접촉이 언급돼 있지 않다. 또 일상적 보고 문건을 사건 발생 30여년이 지난 지금 공개하면서도 저렇게 시커멓게 먹칠을 해 놓을 리 없다. 또 ‘버마의 강민철 면담 허가’만으로 “강민철이 OOOO라고 자백할 것”을 예언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 ‘예언’은 미리 짜인 계획이고, CIA 문건은 사건 처리 기획(안)으로 봐야 한다.

또 버마가 “일주일 뒤”라고 예고한대로 - 엿새 뒤인 - 10월 25일 면담이 이뤄지고 그로부터 며칠 뒤 정말로 ‘강민철의 자백’이 나왔다면, 그리고 이런 말도 안 되는 반전극 대본같은 이야기를 버마가 두 말 않고 받아들였다면, 위 CIA 문건은 아웅 산 묘소 폭파 사건이 어떻게 결론지어져야 하는지를, 미국 측이 한-버마 양측에 제시한 ‘모범 답안’ 즉, ‘지시(지령)문’이라고 봐야 한다.

CIA가 이 문건을 작성한 날(10.19) 미국을 대표하는 신문 <뉴욕타임스>도 마치 결과를 다 알고 있다는 듯 버마 정부를 압박하는 메시지를 발신한 것도 특기할 일이다. 이 신문은 “이번 아웅산 폭발 사건이 한국 정부의 주장대로 북한의 소행으로 밝혀질 경우 버마 정부는 소련의 KAL기 격추 사건 때 침묵을 지킨 것과 같은 이제까지의 엄정 중립 노선에서 벗어나야 할지 모른다”고 주장했다. 이 또한 한-미 간 공모를 시사한다.

( NYT 버마 공관폐쇄 불가피 조선일보 1983.10.21)

이렇게 한-미가 매우 긴밀하면서도 은밀하게 움직이는 가운데 버마가 변심한 것도 우연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딱 한 번 강민철을 만났을 뿐인데, 그가 어느 날 갑자기 맘이 변해 자백하더라.’ 저들은 이렇게 우연처럼 상황을 조작했고, ‘1983 버마 사건’을 다루는 모든 이들도 그렇게 말한다.   

[10월 28일 우리는 범인 심문을 재차 요청했지만 거부당했다. 범인 심문을 위해 최환.윤동민 검사를 억지로 비자를 받아 미얀마에 오게까지 했지만, 이들은 범인 구경도 못하고 귀국 ... 같은 날 외무부 이상옥 차관보가 방문해 미얀마 주재 영국, 호주, 미국, 일본, 말레이시아, 필리핀,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인도 등 외교단과 접촉 ... ] (송영식 책『나의 이야기』199쪽)

최병효 씨도 “우리 측은 10.25(화) 1차 범인 면담에 사의를 표하고, 10.28(금) 범인 면담을 다시 할 수 있도록 허용해 줄 것을 버마 측에 요청했지만 거부당했다”고 그의 책에서 밝혔다(236쪽). 그러나 10.25 면담 이후 전두환네 안기부 대공수사국장 등이 강민철과 지속적으로 만나 은밀한 대화를 통해 그의 마음을 돌린 정황이 있다. 먼저 <조선일보> 기사.

[10월 31잎 모처럼 좋은 소식 ... 버마 측은 ... “수사는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으니 기다려 달라”고 대답했다는 전문 보고 ... 버마 정부는 이때 북괴의 신문-방송 보도를 정리해 보내달라고 우리에게 요청 ... 북괴 측과는 상대하지 않겠다는 태도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이때 네 윈 당의장과 우 칫 라잉 장관은 버마를 떠나 있었다. 두 사람은 공교롭게도 버마 독립에 크게 기여한 영국의 마운트바텐 공작의 기일에 참석하기 위해 런던을 방문 ... 11월로 들어섰다 ... 드디어 4일, 기대하지 않던 시각에 버마 정부는 용기 있는 결단을 내렸다.] (「지루한 기다림, 어려운 결단」<조선일보> 1983.11.5)

“수사는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으니 기다려 달라”는 말은 강민철이 이즈음 말을 바꿨거나 전두환네에 대한 적의를 누그러뜨리고 고분고분해졌다는 말이다. 강민철과 전두환네의 면담을 허락하면서부터 버마는 전두환네와 미국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려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엄중한 시국에 버마 지도자 네 윈이 영국 나들이 중이었다는 사실도 그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눈여겨 볼 것이 있다. 위 <조선일보> 기사에는 11월 3일의 에피소드가 없다. 이는 11월 3일 강민철이 의사에게 먼저 자백 의사를 밝혔다는 ‘전설’이 사후 조작됐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버마는 11월 3일 전부터 전두환이와 손발을 맞춰 ‘북한 소행’이라는 쪽으로 사건을 정리하고 있었다. 

[업무일지를 보면 ... [강조]미얀마 측이 11월 2일 우리 측의 범인 진술 내용을 확인[강조]한 결과를 외교 공한으로 요청하여, 11월 3일 한국에서 보내 온 북한공작원 노획 장비, 각종 테러 사건 사진첩, 신문 기사 등의 자료와 함께 미얀마 측에 전달 ... ] (송영식 책『나의 이야기』200쪽)

“미얀마 측이 11월 2일 우리 측의 범인 진술 내용을 확인했다”는 말은 안기부 대공수사국 국장(성용욱) 또는 과장(한철흠)은 10월 말 또는 11월 1일 경 강민철로 하여금 진술을 바꾸도록 하는데 성공했고, 11월 1일 또는 2일 강민철의 ‘번복한 진술’을 버마 측에 전달하니, 버마 측이 “그 진술 내용을 문서화해 달라”고 정식 요청했다는 말이다.

송영식 씨가 자신의 업무 일지를 보면서 11월 2일 이야기를 했으면, ‘11월 3일 강민철이 의사를 불러 자백(?) 의사를 밝혔고, 의사의 연락을 받은 버마 수사진이 와 강민철의 자백을 받아갔다’는 이야기가 나와야 정상이다.

자신이 30여년 동안 국내외를 전전하면서도 고이 간직해 온 기록에 의거해 책을 썼다는 최병효 씨도 “강민철은 자신의 치료를 담당하던 군의관을 통해 사건 전모를 자백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하였다”(『그들은 왜 순국해야했나』240쪽)고만 밝혔을 뿐, 11월 3일을 언급하지 않는다. 또 모든 조사가 11월 1일 마무리됐다는 보도가 있었다.

[버마 조사위원회 측근[?] 소식통들은 버마 조사위가 2명의 생포 범인에 대한 수사를 지난 1일 끝내고 4일 상오 비상각의를 소집, 대북괴 제재 조치를 결정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북괴와 단교, 정부 승인 취소 - 버마 암살 사건 최종 발표」<연합통신> 1983.11.5)

그러면 ‘11월 3일 강민철이 미모의 간호사의 극진한 간호에 감동해서’ ‘나 진술 다시 하겠소’라고 의사에게 말했다는 이야기는 조작된 것으로 봐야 한다. 그러면 이 전설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11.3 자백’을 처음 발설한 것은 일본 <아사히신문>이었다. 이 신문은 11월 6일 자에 다음과 같은 기사를 실었다.

[【동경=연합】일본 아사히신문이 5일 ... 싱가포르발 기사에서 랭군 소식통을 인용 ... 공작원은 처음 자신이 한국 출신이라고 주장했으나 “신병을 한국으로 보내겠다”는 버마 수사 요원의 위협에 굴복 ... 3일 밤부터 범행 사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고 ... ] (<조선일보> 1983.11.6 / 똑같은 기사를 <경향신문>은 하루 지난 11월 7일 자에 실었다.)

(사진 좌: (<조선일보> 1983.11.6 / 겁주자 자백)  / (사진 우: <경향신문> 1983.11.7)

이렇게 일본 신문을 통해 먼저 운을 띄워 놓고 군의관의 증언을 조작한 것이 아닐까.

[Mya Thein Han 중령(육군제1병원 외과 군의관) : ... 강민철이 버마에 도착하였는데, ... 왼쪽 팔꿈치 이하를 절단하고 복부 내장도 개복 수술하였음. 강은 치료에 감사하고 글을 쓸 수 있게 되면 모든 것을 털어놓겠다고 영어로 말하였음. 11.3(목) 자백할 준비가 됐다고 해서 조사위원회에 보고한 결과 이날 랑군지구인민법원에서 동 자백을 공식 접수하였음 ... 이 증인은 ... 강민철을 지적하면서 10.12(수) 병원에서 자백할 의사를 보인 자라고 말하고 ... ] (최병효 책 254쪽)

10월 12일 체포돼 병원에 실려와 수술을 받은 뒤 곧바로 자백할 의사를 밝혔다는 둥 전언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 (30편으로 계속)  

<1983 버마> 저자 강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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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대통령 ‘반지성주의’ 말할 자격이 있나 김용택 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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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그들의 죽음이 ... 순국이었을까? 29 강진욱 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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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이 오도하는 우크라이나 사태 ② 김종익 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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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철TV] 경남 통영 미분류표 어떻게 분류됐을까? 신상철 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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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이 오도하는 우크라이나 사태 ① 김종익 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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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심 교수 사면복권을 요구함 강기석 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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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대통령님, 대한민국 역사에 오명을 남기십시요. kenosis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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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감동이 사라진 곳에 권력투쟁만 남았구나. kenosis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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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철TV] 전북의 무소속바람 태풍된다 신상철 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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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법률 공포안 의결 사람일보 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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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칼럼] “검수완박? ‘검찰권력제한법’이라고... 임두만 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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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사면권 행사 ‘끼워넣기’ ‘먹튀사면’ 안... 김용택 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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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우크라이나 10억 달러 지원을 반대하는가? 시골목사 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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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라퍼의 한숨 권종상 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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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 비판자들을 비판함 강기석 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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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철TV]여러분의 지지와 공감이 필요합니다 신상철 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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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만 더 사과하라고 하면 니 아가리를 찟어 놓겠다. kenosis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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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기지 자주평화 원정단 소식 조헌정 목사 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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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을 노래하다. kenosis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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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비대위에 피가 꺼꾸로 솟는다. kenosis 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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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능력 없는 것이 검찰의 현실” 사람일보 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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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원 남원시장 예비후보 총 66편의 유튜브 정책홍보... 이주연 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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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철TV] 진실은 결코 침몰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 신상철 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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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에서] 윤석열엔 ‘신속’ 조국엔 ‘하세월’ ... 임두만 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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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생각’을 하고 투표해야 하는가 권종상 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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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혁명 62주년을 통해 본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김용택 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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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춘보의 노변정담] 문재인 정부와는 다르다면서요. ... 심춘보 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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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철TV] 세월호 8주기 특별방송-급선회, 사고의 ... 신상철 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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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철TV] Tracking the Truth of Sewol USA 2 신상철 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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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뿐이랴. 기대한 것 이상을 보게 되리라 권종상 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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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철TV] Tracking the Truth of Sewol USA 1 신상철 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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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그들의 죽음이 ... 순국이었을까? 28 강진욱 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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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철TV] 2022 대선 선거무효소송 접수 신상철 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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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치’는 윤석열 가족에게도 적용되어야” 사람일보 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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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철TV] 주권(主權)을 스스로 포기한 국민. ‘나라... 신상철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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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철TV] 개딸들, 참 이쁘다. 허나 대깨문 팬덤현상... 신상철 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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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 배려’는 헌법의 기본가치입니다 김용택 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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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철TV] 이재명 후보님께 드리는 말씀 신상철 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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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침몰사건 12년 지났는데도 논란 해소되지 않은... 미디어오늘 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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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긍정평가 46.7% 윤 당선자보다 높아… 정당지지도 ... 임두만 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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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지금, 이 혹성에서 일어나는 일 27 김종익 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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