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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 코리언의 삶, 증오에 저항하는 길 ②
  번호 130899  글쓴이 김종익  조회 204  누리 0 (0,0, 0:0:0)  등록일 2022-7-1 09:50 대문 0

재일 코리언의 삶, 증오에 저항하는 길 ②
뿌리를 순회하는 여정 - 2, 가족의 궤적과 상흔

(WWW.SURPRISE.OR.KR / 김종익 / 2022-07-01)


이 글은, 올해 칸 영화제에 초청된 재일 코리언 사진 작가 야스다 나쓰키安田菜津가 일본 잡지 <세카이>에 4회에 걸쳐 연재한, <뿌리를 순회하는 여정, 증오에 저항하는 길>의 두 번째 글이다. 일본에서 나고 자란, 재일 3세로 母語가 일본어인 그는 왜 ‘뿌리’를 찾고 싶었을까요? - 역자 주

야스다 나쓰키 安田菜津紀
Dialogue for People 소속 사진 기자.
1987년, 가나가와神奈川현 출생. 동남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일본 국내에서 난민과 빈곤, 재해를 취재.
『사진으로 전하는 일 – 세계의 어린이들과 마주해』 『당신의 Roots를 가르쳐 주세요』 등의 저서가 있다.

 

비가 내리다가 그치곤 하여, 작게 접은 우산을 좀처럼 손에서 놓지 못하는 나를 놀리듯이, 어지럽게 날씨가 변하는 오후. 교토역에서 남쪽으로 나아가, 가모가와鴨川가 수런거리며 흐르는 소리를 들으면서 둑에 올랐다. 해가 구름 속으로 숨었어도, 푹푹 찌는 여름의 무더위가 땅 위에서 사라지는 건 아니다. 2020년 9월, 나는 아버지 생가가 있었던 후시미伏見구 후카쿠사深草 주변을 걷고 있었다. 묵은 서류에 적혀 있던 주소의 지번은, 지금은 이미 주차장이 되어 아스팔트로 덮여서 생활의 흔적은 거의 사라져 버렸다. 분명히 여기에 있었을 연립주택에는, 어떤 삶이 뿌리내리고 있었을까. 그런 상상을, 70년이라는 두꺼운 시간의 벽이 막아선다.

“사망한 외국인등록카드 말이야, 그거 교부를 청구할 수 있는 거 알아?”

오랜만에 다시 만난 친구와 한잔하면서 서로의 근황을 나누던 자리에서, 그런 사실을 전해들은 것은, 2년 정도 전이었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 때는 대학 시절이었다. 당시 그는 아직 자신의 아버지가 재일 코리언이라고는 몰랐다고 한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서류에서 그런 사실이 밝혀져서, 출입국관리소에 친족의 외국인등록카드의 사본 교부를 신청했다고 한다.

“그 서류에는 말이야, 조선 반도의 어디 출신인가 하는 내용도 적혀 있어, 나도 그걸 길잡이로 친척 찾기에 나섰어.”

그는 당시의 일을 생생하게, 여느 때와는 달리 눈을 반짝이며 얘기했다.

“내 가족이 재일 코리언이라고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고 할까 상상도 한 적이 없었던 거지”라며 웃는 그의 성장은, 나의 성장과 너무 흡사했다.

아버지는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돌아가셨다. 그 뒤, 호적을 보고 비로소 아버지가 재일 코리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와 아버지 친척의 내력을 알 수 있는 단서라고 하면, 호적에 기재된 ‘한국적韓國籍’이라는 문자와 조부모님 성함뿐이었다. 아버지 가족은 도대체 조선 반도 어디에서 왔으며, 어떤 곳에서 이주 생활을 시작했을까―. 이미 돌아가신 분들께 여쭐 수 없는 이상, 더는 더듬어 찾을 수 없겠지, 라고 체념했었다. 그러던 차에 듣게 된 친구의 말에, 갑자기 시야가 확 트인 심정이었다. 마침내 어떤 여정의 출발점에 선 것처럼 가슴이 쿵쾅거렸다.

외국인등록카드라고 하면, 생소한 분들도 많지 않을까. 알기 쉽게 말하면, 전후 재일 코리언을 중점 대상으로 한 ‘외국인’을 ‘관리’하고, ‘치안 유지’를 위해 만든 제도다. 등록카드에 필요 사항을 기재한 것이 ‘외국인등록증’이라 불리는 것으로, 외국인은 항상 휴대하도록 규정되어 왔다. 2012년 외국인등록제도가 폐지되고, 외국인등록증이 재류在留카드로 대체된 뒤에도, 휴대 의무는 바뀌지 않는다.

일본에서 태어난 아버지나, (조선에서 태어난 - 역주) 조부모님 등록카드도, 지금은 각 자치단체에서 거둬들였다. 출입국관리 사무소에는 관련 기록이 남아 있으리라.

■ 외국인 등록카드에 남겨 있는 단서

신형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이 확대되기 시작한 2020년 봄, 취재를 나갈 수 없어 애를 태우며 집 안에서 지내던 내게로, 두툼한 모종의 갈색 봉투가 배달되었다. 발신처는 출입국관리사무소였다. 서둘러 봉투를 자르고, 구겨지지 않게 살짝 서류 묶음을 꺼냈다.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외국인등록카드는, 복사에 복사를 거듭했던 걸까, 거칠고, 빛에 비춰도 손상되어 읽을 수 없는 글자가 눈에 확 들어왔다. 사실상 검게 변해버린 부분을 아쉬워하면서, 이것만으로도 이제 ‘나의 일부’를 되찾은 듯해 마음이 훈훈해졌다. 서류에는, 일본으로 건너온 날짜, 살았던 주소 등, 가족의 역사가 입체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동시에 ‘관리’를 위해 만든 이 제도로 비로소 가족의 발자취를 더듬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심사가 뒤틀렸다.

할아버지 김명곤金命坤(일부는 金明根)은 전쟁이 한창이던 열네 살 때 일본으로 건너왔다. 지금은 일본에서 관광 차 많은 사람이 찾는 조선 반도 남쪽 끝자락의 항구 도시, 부산에서였다. 서류상 본적지는, 부산에서 보면 북서쪽 약 90km에 있는, 현재의 대구광역시 근처다.

자세히 살펴보면, 할아버지 카드의 필적이 서류마다 다르다. 누군가 대필해준 게 아닐까. 어쩌면 일본어의 독해와 쓰기를 익힐 겨를도 없이 일본으로 건너온 건 아닐까. 시대 배경에 비추어 생각하면, 할아버지가 살아온 삶을 조금씩,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겠다는 기분이 들었다.

할아버지가 일본으로 건너와서 최초로 취득한 주소의 소재지는, 교토시 후시미구伏見區였다. 그리고 1948년에 아버지가 태어난 뒤에는 잠시 오사카시 니시나리구西成區에서 살았던 모양이다. 할아버지의 직업란에는, ‘음식점’과 ‘옷감 중개’로 기재되어 있다. 니시나리를 떠난 뒤에는, 군마群馬와 도치기栃木, 도쿄 등 여러 곳을 전전한 행적이 있었다. 생계와 관련된 일 때문이었을까. 그래도 뭔가 다른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어쨌든 어딘가에 정착해 살지 않았던 건 확실하다. 아쉽게도 내가 태어난 몇 년 뒤에, 할아버지는 세상을 떠나셨다. 아버지가 할아버지와 관계를 끊지 않았다면, 어린 시절에 만났을 가능성도 있지 않았을까.

아버지 서류를 넘기다 보면, 아버지가 아직 초등학교에 다닐 나이에 ‘보호자’가 어느 순간에 바꾼 사실을 알 수 있다. 나도 귀동냥한 적이 있는 이름이다. 성이 전혀 다른 그 사람을 아버지는 ‘숙부’라고 불렀는데, 혈연관계 여부는 알 수 없다.

내 친정집에는 아버지 소지품으로 유일하게 신쥬쿠구 안에 있는 초등학교의 낡은 졸업 앨범이 남아 있다. 다갈색 표지를 열면, 흑백의 단체 사진이 나타나는데, 거기에는 아버지의 얼굴도 이름도 안 실려 있다. ‘숙부’는 일 때문에, 아버지를 데리고 있거나 시설에 맡기거나를 반복한 모양이다. 주소로 보아 아버지는 졸업 직전까지 이 학교에 다녔을 확률이 높다. 앨범의 졸업생들과 함께 이 학교를 졸업할 수 없었던 아버지를 배려해, 선생님이 앨범만이라도 보내주었던 게 아닐까. 과거의 흔적을 거의 남기지 않은 아버지가, 이 앨범만은 보관했던 일을 생각하자, 뭔가 깊은 뜻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윽고 아버지는 열네 살에 숙부댁을 뛰쳐나와, 중학교도 다니지 않고, 대를 이어 장사를 하는 오래된 장어 요리점에 더부살이로 들어가 일하기 시작했다. 그 뒤 독립해, 신바시新橋에 꾸린 그 가게에서, 내 어머니가 아르바이트로 일하기 시작한 것이 두 분의 만남이었다. 어머니가 아는 것과 외국인등록카드의 정보를 서로 이어 붙여도, 알 수 있는 것은 거의 이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부모님 성함도 존재도 몰랐다. 어쩌면 할아버지가 그랬듯이, 아버지 또한 불안정한 생활로, 제대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글자를 술술 읽기가 어려웠던 사람이었다.

등록카드에는, 3년마다 찍은 지문과 그때마다 찍은 얼굴 사진이 나란히 있었다. 조금 미더워 보이지 않는 모습의 청년에서, 풍채 좋은 노인장이 된 할아버지. 예전부터 호리호리한 몸매의 아버지. 하지만 사진에 나란한 아버지의 눈은 얼이 빠져 있어, 내가 아는, 온화한 웃음을 띤 아버지의 얼굴이 아니었다.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외국인으로 계속 ‘관리’된 사실을 아버지는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등록카드에 기록된 아버지 생가 주변을 찾았지만, 이미 당시의 모습은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런데도 아버지와 조부모님 들이 여기서 숨을 쉬고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 뭔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개가 치밀어 올라왔다.

아버지 생가터에서 가모가와를 건너 조금 북쪽으로 나가면, 재일 코리언이 많이 거주해 온 히가시쿠죠東九條다. 지금도 좁은 길을 따라 곱창과 조선 음식 재료를 파는 상점이 있어, 생활의 숨결을 느낄 장소가 남아 있다. 특히 가모가와와 용수로 같은 다카세가와高瀨川에 끼어있는 이중 제방 지역은, 예전에 전기와 수도, 가스 등의 공급선이 전혀 없는 열악한 환경이었다고 한다. 법적으로 택지로 인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행정 기관에서도 퇴거라는 행정 조치가 시달되고, 주변으로부터 ‘0번지’ ‘제방’이라 불리며 멸시를 당했다. 지금은 다카세가와의 일부가 매립되고, 그곳에 세 동의 공영주택이 서 있다.

0번지 - 역주
강제 연행 등으로 일본에 끌려와 인간으로 대우받지 못했던 재일 코리언들이 근근이 살았던 지역. 주소도 부여되지 않아, 속칭 ‘0번지’로 불려 왔다.

그리고 아버지가 태어난 집이 있던 자리에서 가모가와를 끼고 대강 강 건너편 땅에는, 2012년까지 교토조선제일초등학교가 서 있었다. 지금은 이전하고, 학교가 있었던 땅에는 호텔이 들어서, 아이들이 공부했던 무렵의 흔적은 거의 남겨져 있지 않았다. 저 역겨운 사건의 흔적도.

2009년 12월부터 세 번에 걸쳐, ‘재특회(재일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 모임)’ 회원들이 이 학교를 습격했다. 주택가의 정적을 갑자기, 추악하기 짝이 없는 욕설이 찢어발겼다. 나도 사건 당일의 영상을 본 적이 있다. 그들은 “밀입국자 자손이잖아” “반편이”※ “김치 냄새” “범죄자 조선놈” “일본에서 내쫓아라.”라며, 학생과 관계자 들이 마치 살 가치가 없는 존재라는 듯한 말을 확성기로 계속 퍼부었다. 차별을 마치 오락처럼 소비하고 있었다. 쉼 없이 퍼부어지는 언어폭력을 앞에 두고, 경찰은 공격의 대상이 된 쪽을 지키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 경찰의 태도는, 습격한 쪽에 사실상의 ‘허가증’을 준 것이나 마찬가지다. 어린이들에게는, 생명의 위험을 느끼는 경험이었으리라.

※ 원문은 ‘チョンコ’. 원래 ‘チョン’은 에도 말이며, ‘반편이’ ‘반병신’ 따위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朝鮮의 일본어 발음은 ‘チョソン’으로 이 가운데 ‘チョ’를 취해 ‘チョンコ’, 즉 조선인을 ‘반편이’ ‘반병신’이라는 의미로 멸시해 불렀던 말이다. 다양한 시대 배경을 가진 차별 용어다.

■ “조선인은 나쁜 거야?”

오후가 되자 빗발이 강해져서, 내려치듯이 억수로 내렸다. 나는 대피하듯이 쏟아지는 빗속에 류코쿠龍谷 대학 안으로 들어갔다. 연구실이 나란한 한 귀퉁이로 찾아갔던 사람은, 이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김상균金尙均 씨다. 흠뻑 젖어서 들어온 내게 놀라,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새 수건과 따듯한 에스프레소로 맞아 주었다.

상균 씨는 습격 사건 당시, 학교의 아버지회 부회장을 맡고 있었다. 수업이 없는 짬을 이용해 연구실에서 점심을 먹으려던 참에, 습격을 알리는 학교의 전화를 받고, 바로 자전거로 달려갔다.

“일본에 살게 해 주는 거야!” “어린애는 무슨, 스파이 자식이지!”―. 일장기를 드높이 내걸고 고래고래 소리를 내지르는 집단을 마주하자, 정신이 아찔했다고 한다.

“그때 느낀 것은, 일본어라는 공통 언어를 말하는데도, 대화가 통하지 않는 공포였어요. 그들이 무얼 지껄이고, 무얼 말하는 건지, 전혀 알 수 없었어요.”라고 자신도 계속 욕을 얻어먹었던 당시의 일을 회상했다.

상균 씨는 예전에 가네시로金城라는 잘 알려진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金’이라는 한자가 붙은 이름에 재일 코리언이 많다는 것은,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조차 알고 있었다. 유소년기에 주변으로부터 차별적 말을 들은 경험은, 자신의 출신을 긍정하는 일을 저해했다고 한다. ‘가네시로’가 아니라, 본명을 갖게 된 것은 대학 시절이었다.

“역시 싫었어요, 감추고 있는 자신이. 편해졌어요, 정말로. 지금으로 말한다면, 마스크를 벗었을 때 같은, 시원하고 후련한 느낌이에요.”

상균 씨도 파트너도, 조선학교에서 공부한 경험은 없지만, 아이들은 조선학교에 보내고 있다. 아이들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긍정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 수 있도록, 부모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뭔가라고 생각했을 때, 그것이 좀 더 나은 선택이라고 여겼던 거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깨부순 것이, 바로 저 습격 사건이었다.

“재특회의 습격은, 바로 나, 자신을 부정하러 온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라고 상균 씨는 말한다.

사건이 학교 관계자와 어린이들에게 남긴 상처는 깊었다.

“저는 아이들에게, ‘학교는 전혀 나쁘지 않아’ ‘우리는 나쁘지 않아’라고 사건이 있을 때마다 말해 왔어요. 그런데 역시 사건 초기,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딸은, ‘조선인은 나쁜 거야?’라고 묻기도 했어요.”

혐오 집단에서 발산되는 말 가운데는, “우리 선조의 땅을 탈취했다.” 등등, 자신들이야말로 피해자라고 주장하기 위한 ‘악선전’에 더해, 특정 민족을 벌레나 동물에 비유하는 표현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그들은 ‘바퀴벌레 조선인’이라고 말하기도 하죠. 이런 표현에는 역사적 의미가 있어요. 바퀴벌레라고 하며 때려죽이지요. 예를 들면 나치 시대, 유대인은 ‘피를 빨아먹는 흡혈이’라고 불렸어요. 르완다 살해 때에도, ‘바퀴벌레’라는 말이 사용됐어요. 인간을, 일반적으로 혐오하는 생물에 비유함으로써, 죽여도 되는 존재라고, 사회를 선동하는 거예요.”

■ 당당하게 내 몸을 꼿꼿이 바르게 펴다.

상균 씨에게, 내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외국인등록카드를 보여주었다. 출생 연대는 다르지만, 상균 씨도 내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일본에서 태어난 2세다.

“거쳐야 할 절차 같은 걸로 시청에 갈 때마다, 내 정체성과 마주하게 되는 거예요. 저는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자라고, 일본어도 말하고, 가끔은 낫토도 먹어요. 그런데 시청에 가면, ‘너희는 달라’라고 하는 것을 알게 돼요.”

이렇게 좋든 싫든 ‘타자’로서 제도 안에 편입되어 가는 것에, 아버지 나름대로 갈등은 없었을까. 또 아버지처럼, 자신의 뿌리를 자식에게도 감추고 사는 재일 코리언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외국인등록카드에 대해 알려준 그 친구도, 지금까지 가족의 반대로 친구 몇몇을 제외하고, 뿌리를 공개하지 못한 상태다.

누구라도 뿌리를 소상하게 꼭 밝힐 필요는 없다. 다만, 학교 습격 사건을 비롯해, 재일 코리언이라는 것만으로 표적이 되는 사건이 잇달아 온 사실이 보여주듯이, 적어도 숨기고 싶지도 않은데, 숨겨야만 하는 상황이, 일본 사회에는 뿌리 깊게 남아 있는 것이다.

“제가 아는 사람은 말이죠, 열여덟 살 무렵에, 우연히 시청에 가서, 어머니가 자신의 외국인등록카드를 떨어뜨려서, 처음 알았다고 해요.”

나는 아버지에게 “왜 가르쳐 주지 않았어”라고 추궁하고자 하는 감정은 전혀 없다. 오히려 왜 감춰야만 했을까, 그런 삶의 방식을 가져야 했던 배경은 뭘까, 그것을 찾아 밝히고 싶어서, 뿌리를 찾는 이 ‘여정’을 시작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문득 생각한다. 어쩌면 아버지는 저 습격 사건 같은 일을 내 자식에게 경험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자신의 뿌리를 그저 숨기기만 해 온 것이 아닐까, 라고.

이 여정을 계속하는 데에는, 많은 사람이 아낌없이 힘을 보태주었기에 가능했다. “뿌리는 소중하니까 말이야”라며, 온정이 밴 말을 해 주었다. 나도 ‘뿌리가 소중’하다는 말은 어디선가 들어서 알고 있다. 그렇지만 ‘왜 소중한 것인가’를 아직 능숙하게 언어화할 수 없다. 그런 애매한 마음을 상균 씨에게 전하자,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어떻게 태어났을까, 어떻게 자랐을까, 뿌리를 안다는 것은, 자기 자신의 등뼈를 꼿꼿하게 펴는 일과 같지 않을까 해요. 등뼈가 없다면 살아갈 수 없어요. 자신의 등뼈를 단단히 붙이고 걸으라고 해야 하나.”

상균 씨는 잔잔하게 계속했다.

“왜 아버지가 자식에게 그의 뿌리를 알려주지 않았을까, 여러 이유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떻게 알려야 할지 방식을 몰랐을 수도 있고요, 그건 알 수 없어요. 다만, 언젠가 야스다 씨처럼, 자식이 거기에 의문을 느꼈을 때, 뭔데 내게 ‘걸리는’ 걸까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기회라는 생각이 들어요. 의문을 의문으로 방치하는 게 아니라, 왜 그렇게 ‘걸리는’ 걸까를 실제로 맞닥뜨려 보는 거지요. 지금 그걸 하시는 거네요.”
 
자식들이 조선학교에 다닐 기회를 구축한 상균 씨와 자식들을 ‘일본인’으로 기르고, 자신이 걸어온 인생길을 죽는 순간까지 얘기하지 않았던 내 아버지. 언뜻 보면, 정반대의 행동처럼 보이지만, 근저에 있는 갈등은, 확실히 겹치는 게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자식이 자기 자신을 긍정하며 살 수 있도록, 최선의 길이 뭔가를 흔들리면서도 고심하며, 선택을 거듭해 온 것이다.

■ 사회보장제도 밖에서 살아 온 고령자들

슬슬 코트가 필요한 계절이 다가오고 있었다. 뺨을 스치는 바람에 겨울 냄새를 조금씩 느끼기 시작한 2020년 11월, 나는 다시 교토역 남쪽, 히가시쿠죠東九條의 좁은 길을, 용수로를 따라 걷고 있었다. 주택가 한 귀퉁이에 있는 비영리 법인 교토코리언생활센터 ‘에루화’ 시설은, 재일 코리언 고령자분들의 중요한 거점이다. 내가 찾은 당시, 40명이 Day Service(재택 노인을 양로원 등에 보내 목욕‧간병‧식사 등을 제공하는 지원 서비스. 일본식 조어 – 역주)를 이용하고 있었다. 재일 코리언 1세, 2세만이 아니라, 1980년대 이후에 일본으로 새로 건너온 할머니들도, 새로운 ‘1세’로 참여한다고 한다. 1층 현관 앞에 있는, 대형 창이 있는 개방된 공간은 카페로 운영하는데, 비빔밥이 가장 맛있다고 한다. 그 안쪽이 고령자들이 모이는 방이 있는 곳이다.

방문을 열자, 열 명 정도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자리에 앉아, 한창 가라오케 대회를 진행하고 있었다. 코로나 재해도 있었던 탓에, 밀집을 피해, 칸막이로 구분되어 있지만, 열중해 고향의 노래를 부르는 할머니들의 즐거운 모습에, 다른 할머니가 갑자기 일어나 춤을 추기 시작했다. 장구의 경쾌한 음향이 장단을 맞춘다. 직원들의 대화에는, 조선말과 때때로 일본말이 섞여 있어, 복수의 언어가 자연스럽게 울리는 공간이었다.

“안녕하십니까?”라고 조금 어색하게, 할머니들에게 인사를 한다. 조선말을 배우지 않았던 나는, 이런 간단한 인사마저, 자신의 말이 지닌 음감과 발음에 자신이 없다.

뭐라고 이름을 대야 하나, “제게는 일본 이름밖에 없어서…”. 그런 곤혹을 아랑곳하지 않고 할머니 한 분이 자신에 관한 일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나는 제주도 출신이네, 여덟 명의 형제 가운데 다섯째야, 여자라고 학교에 안 보내주었어”라고 봇물이 터지듯 이야기한다.

방을 나올 때는, 백세 살이라고 하는 할머니가, “차도 내오지 말라고 해서, 미안해요”라며, 지팡이도 짚지 않고 걸어서 연관 앞까지 전송해 주셨다. “자택처럼 생각하는 거예요”라고, 사무국장 남현순南珣賢 씨가 미소를 지었다. “고맙습니다.”라고 하면서 쥔, 오랜 연륜이 새겨진 그의 손은,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지금은 여기에 살지 않는 사람도, 한 번은 구죠九條 땅에 발을 들였던 사람이 많아요. 여기 오면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남 씨는 이 땅의 역사를 이야기했다. 에루화의 성립에도 히가시쿠죠東九條에서 어려움을 견디며 살아온 1세들의 역사가 깊게 관련되어 있었다.

일본 정부는 오랫동안 ‘재일 외국인’을 국민연금제도 대상에서 제외해 왔다. 국민연금법이 제정된 1959년 당시, 일본 정부가 ‘파악’한 외국인 국적자 가운데, 90% 이상은 재일 코리언이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전쟁으로 계속 농락당한 사람들을 상대로, 그 책임을 올바로 마주하기는커녕, 오히려 생존권을 무시하는 듯한 취급을 계속해 온 셈이다. 난민조약 비준에 수반해, 제도의 ‘국적 조항’이 1982년에 철폐되었는데도 여전히, 그 사이에 법적 조치에서 제외되어, 무연금 상태로 방치되어 버린 장애인과 고령자 들이 있다.

일본에서 돌봄보험제도(일본 용어는 ‘介護保險制度’ - 역주)가 시작된 것은 2000년이다.
“이 제도가 국적 조항 없이 출발한 것은, 실은 당연한 건데도, 우리에게는 획기적인 사건이었어요. 그런데 줄곧 사회보장제도 밖에서 살아온 고령자들에게, 이제는 제도를 이용할 수 있다고 해도 좀체 믿어 주지 않았어요. 우선은 알려 드리고자 2세들이 모여 한 집 한 집 돌며 설명해 갔어요. 그런데도 1세들은 ‘너희, 속고 있어’ ‘사용할 수 있을 리 없어’ ‘그건 일본인 것이어서 우리와는 관계없어’라고 단정하는 거예요.”

불합리한 경험을 수없이 해 온 1세와 그들보다 젊은 세대는, 가정 안에서 문화와 모어母語도 달라서, 의사소통이 어려운 일도 있다고 한다. 특히 치매에 걸리면, 후천적으로 배우는 것을 잊어버리고 말아, 일본어로 소통할 수 없게 되는 일도 있다.

“내 부모가 상태가 나빠 보여도,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병원의 어떤 과에 데리고 가야 하는지 알 수 없어요. 1세들에게도, 자신의 가족에게 이해받을 수 없는 일은 쓰라린 일이지요.”

문제는 언어에 국한된 것만 아니다.

“가족이 일본인과 결혼했으면, 1세 분들은 민족성이 짙은 자신의 존재를, 가족을 위해 숨기고 싶어 하거나, 사양이 있거나 한다. 모처럼 제도가 생겨도, 이용하지 않고, 자기 힘으로 살아가는 것이 자신을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하시는 적도 있어요,”

에루화에서는 고령자가 병원에 갈 때 동행하는 활동도 하고 있다. 병상 등 의료 관련 사항을 그냥 통역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personality와 지적 수준에 맞춰서 의사의 말을 전하고, 나아가 고령자 본인이 처한 상황도, 의사와 가족에게 전한다. 이렇게 에루화는, 중재 역할을 해왔다.

돌봄보험제도는, 하여간 도장을 찍어야 할 데가 많다. 도우미가 올 때마다, 도시락을 받을 때마다, 도장을 찍어야 한다.

언젠가 혼자 사는 남성이 도시락 배달을 받았지만, “가라”고 하며 어떻게 해도 수령 절차를 받아들이지 않은 적이 있었다. 직원이 달려가서 보니, 도장을 찍는 것에 저항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사람은 조선 반도에 있을 때는 농사를 지었다고 해요. 식민지 시대, 모두 일본어로 작성된 서류가 배달되고, 도장을 찍으라고 해서 찍었는데, 땅을 몽땅 빼앗겼다고 해요. 그 후, 일본 탄광 여기저기로 보내져서, 가족과 생이별을 하고 말았어요. 글자를 읽을 수 없어, 그 서류에 뭐가 적혀 있는지 모르면, 도장을 찍을 수 없는 거죠. ‘도장은 사람의 인생을 만신창이로 만드는 거야’라고 호소했어요. 그런데 이런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보면, ‘도장에 신경질적인 노인네’라는 딱지를 붙여 버리게 되는 거죠.”라고, 남 씨는 말한다(현재는 제도가 정비되어, 도장 날인은 원칙적으로 필요 없게 되었다.).

이러한 ‘오해’를 받기 쉬운 장면은 다른 데도 있다.

“예를 들면 Day Service에서 글자를 익히는 시간이 있는데, ‘볼일이 생각나서 집에 가야 해!’라는 할아버지가 계셨어요. 사정을 모르면 ‘또 집에 가겠다고 강짜를 부리는군.’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배경을 알게 되면, ‘아, 이 할아버지가 글을 쓸 수 없는 거구나, 그래서 여기서 빠져나가고 싶은 거구나’라고 상상하는 거죠. 결코 차별할 생각은 없었는데도,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해 버리면, 쓸 수 없는 사람이 고립되고 마는 거죠.”

■ “왜 물러서야만 하는 거지”

교토조선제일초등학교를 향한 폭력의 창끝은, 학교 관계자와 어린이들에 한정된 것이 아니었다. 재특회는 두 번의 조선학교 습격 후, 이번에는 에루화로 창끝을 돌렸다. 이곳에 연금을 받지 못하는 재일 코리언 고령자, 장애인이 원고가 된 소송의 사무국도 있기 때문이다. 재특회의 습격에 대항하기 위해 모여든, ‘차별에 반대하는 시민의 힘’에서 최종 방어막을 쳤지만, 모퉁이를 돌면 에루화가 코앞인 데까지, 재특회는 욱일기를 내걸고, 메가폰으로 소리를 지르며 ‘행진’을 계속했다.

애당초 예고된 시간은 오후 3시, 이용자들을 보낼 시간과 겹쳐 버렸다.

“그 사람들이 퍼붓는 그 말을 들게 해야 하는가, 라는 걱정도 있어, 쉴까 했어요. 그런데 사정을 이야기하자, ‘왜 우리가 피해야 하는데’라고 이용하시는 할머니들이 말씀하시는 거예요. ‘나쁜 짓을 하는 쪽은 저쪽이잖아’ ‘나쁜 짓을 하지도 않았는데 왜 물러나야 해’ ‘한걸음 물러서면, 두 걸음 세 걸음 계속 물러나게 되는데’라고.”

그 말은 남 씨에게도 쿵 하고 와 닿았다. “계속 물러나게 되는데”라는 말은, 할머니들이 강요당해 온 이제까지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만일을 위해, 심장 질환이 있는 이용자는 일찍 귀가를 부탁드리고, 이날도 여느 날과 다름없이 운영하도록 결정했다.

습격이 예고된 당일, 에루화 1층 카페는, 각지에서 모인 200명이 넘는 ‘증오 발언에 대항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로 입추의 여지가 없이 꽉 들어찼다.

“그 모습을 본 이용자분들이, ‘저, 봐라, 재특회가 최고야. 이렇게 새로운 사람들과 연결되잖아’라고 말씀했어요. ‘이렇게 버티니까 동료가 생기네.’라고. 우리는 저런 걸 모르고, 되도록 ‘피하자’ ‘섞이지 않도록’하자고 했지만, 이용자분들은 그렇지 않았다는 거죠. 그 긍정성에 이날 시설을 운영하도록 판단한 게 옳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에루화에는, 앞서 습격당한 교토조선제일초등학교 학생들의 어머니들도 모여들었다. 이날은 학교 습격 사건의 민사 소송이 열리기로 되어 있는 날이기도 했다.

“민사 소송을 하게 되었어, 이제 어떡하면 좋아”라며 흐느끼는 어머니들을, 할머니들이 사정은 모르면서도 “괜찮아, 괜찮아”라고 따듯하게 계속 격려했다고 한다.

에루화에 다니는 고령자 가운데도, 특히 여성들은, 어린 시절부터 행상 일을 하거나, 입주해 가사도우미로 일을 하거나 하여, 공부할 기회를 빼앗긴 사람들이 많았다.

“방문하러 온 교복을 입은 중학생을, ‘좋겠다, 정말 좋겠다’라며 마음속으로 부러워했다. 그런데 그런 말을 접한 자식들은 당연한 일이었던 학교에 다닌다는 사실을, 뜻밖에 객관적으로 생각하기도 하는 거죠.”

그런 이용자들에게, 방문자의 존재는 사는 보람이었다고 한다.

“누군가가 와 줌으로써, ‘이런 나도 도움이 되네’라며 뿌듯해하는 듯했어요. 자기 자신을 위해 살아 보지 못한 사람들이기에, ‘모두에게 폐를 끼친다’, ‘빨리 죽어 모두에게 폐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아요. 그런 이용자들이, 방문자라는 존재로, 살고 싶다고 생각할 수 있는 거죠.”

코로나 재난의 영향으로, 우선은 이용자들이 감염되지 않도록, 직원들도 매일매일 긴장 속에서 일하고 있다. 이전처럼 교류가 이루어지지 않고 단절되어 버린 것에 안타까워하면서, 외부에서 다시 안심하고 방문할 수 있는 날을 마음속으로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내가 방문한 날 마지막에, 에루화 직원들이 “아버지에 관한 일을 알 수 있었으면 좋겠네”라며 전송했다. 이상한 느낌이었다. 나는 부친을 ‘아버지’로 부른 적이 없다. 그러고 보니, 마음속에서조차, 조부모를 ‘할머니’ ‘할아버지’로 부른 적도 없었다.

돌아오는 길에 문득, 이제까지 자신의 고생담을 이야기해 준 할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에루화에 계신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행보와 내 조부모님의 행보는 다르다. 그런데도 이렇게 목소리를 들려주시고, 서로 접촉함으로써, 어떤 시대를 살아온 건지, 어떤 벽에 부닥쳐온 건지, 그 땅에 뿌리를 내린 사람들의 기억과 함께, 조부모님의 체험이 조금씩 ‘보이는’ 느낌이 들었다.

교토조선제일초등학교가 습격당하고 10년 이상 지난 지금도, 온라인상에는 치마 읽을 수조차 없는 온갖 욕설이 넘치고, 각지에서 증오를 퍼뜨리는 길거리 선전이 반복되고 있다. 아버지가 음식점을 열었던 신바시新橋에서도 증오 행진이 벌어진 적이 있었다. 일고여덟 명밖에 안 되는 ‘대열’을, 몇십 명, 혹은 그 이상의 경찰이 에워싼다. 경찰들은 데모 행진 쪽이 아니라, 그 바깥쪽을 향하고 있다. 마치 대열을 ‘경비’하는 것처럼 ―. 데모 행진이 종착지 공원에 도착하자, 거기서 놀고 있던 아이들을, 부모들이 서둘러 데리고 나온다. 재특회에 대항하는 쪽은 경찰에 막혀, 공원 안으로 들어갈 수조차 없었다.

증오 범죄에 재갈을 물리기 위한 법체계가, 아쉽게도 이 나라에는 부족하다. 이렇게 전하는 일을 계속하며, 뿌리란 뭔가를 생각하는 일이, 아버지가 내게 맡긴 역할이라고 한다면, 다음 세대가 차별이라는 창날에 찔리고, 침묵을 강요당하는 일 없도록, 사진으로, 말로, 계속 저항해야겠지…. 이렇게 교토에서의 취재는, 내 ‘뿌리를 더듬는 여정’에 새로운 축을 부여해 주는 역할을 했다. <계속>
(『세카이』, 202204월호에서)

http://surprise.or.kr/board/view.php?table=surprise_13&uid=130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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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 비판자들을 비판함 강기석 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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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철TV]여러분의 지지와 공감이 필요합니다 신상철 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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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만 더 사과하라고 하면 니 아가리를 찟어 놓겠다. kenosis 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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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기지 자주평화 원정단 소식 조헌정 목사 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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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을 노래하다. kenosis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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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비대위에 피가 꺼꾸로 솟는다. kenosis 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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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능력 없는 것이 검찰의 현실” 사람일보 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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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원 남원시장 예비후보 총 66편의 유튜브 정책홍보... 이주연 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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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철TV] 진실은 결코 침몰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 신상철 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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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에서] 윤석열엔 ‘신속’ 조국엔 ‘하세월’ ... 임두만 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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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생각’을 하고 투표해야 하는가 권종상 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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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혁명 62주년을 통해 본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김용택 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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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춘보의 노변정담] 문재인 정부와는 다르다면서요. ... 심춘보 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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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철TV] 세월호 8주기 특별방송-급선회, 사고의 ... 신상철 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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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철TV] Tracking the Truth of Sewol USA 2 신상철 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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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뿐이랴. 기대한 것 이상을 보게 되리라 권종상 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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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철TV] Tracking the Truth of Sewol USA 1 신상철 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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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그들의 죽음이 ... 순국이었을까? 28 강진욱 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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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철TV] 2022 대선 선거무효소송 접수 신상철 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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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치’는 윤석열 가족에게도 적용되어야” 사람일보 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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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기대해도 그 이상을 보여줄 굥산군과 언... 권종상 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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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철TV] 주권(主權)을 스스로 포기한 국민. ‘나라... 신상철 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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