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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 코리언의 삶, 증오에 저항하는 길 ③
  번호 130902  글쓴이 김종익  조회 186  누리 0 (0,0, 0:0:0)  등록일 2022-7-5 09:25 대문 0

재일 코리언의 삶, 증오에 저항하는 길 ③
뿌리를 순회하는 여정 - 3, 죽고 없는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

(WWW.SURPRISE.OR.KR / 김종익 / 2022-07-05)


이 글은, 올해 칸 영화제에 초청된 재일 코리언 사진 작가 야스다 나쓰키安田菜津가 일본 잡지 <세카이>에 4회에 걸쳐 연재한, <뿌리를 순회하는 여정, 증오에 저항하는 길>의 세 번째 글이다. 일본에서 나고 자란, 재일 3세로 母語가 일본어인 그는 왜 ‘뿌리’를 찾고 싶었을까요? - 역자 주

야스다 나쓰키 安田菜津紀
Dialogue for People 소속 사진 기자.
1987년, 가나가와神奈川현 출생. 동남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일본 국내에서 난민과 빈곤, 재해를 취재.
『사진으로 전하는 일 – 세계의 어린이들과 마주해』 『당신의 Roots를 가르쳐 주세요』 등의 저서가 있다.

 

2020년 섣달그믐날. 오빠가 세상을 떠나고 18년가량 지났지만, 처음으로 생전의 모습이 또렷한 오빠가 나오는 꿈을 꿨다. 전에도 꿈에 나온 적이 있었지만, 얼굴이 보이지 않거나, 아주 짧은 순간 말을 주고받거나 했을 뿐이었다. 꿈에서 우리는 차 안에 있었는데, 오빠는 운전석, 나는 조수석, 그리고 뒷자리에 여동생이 타고 있었다. 차를 길가에 세우고, 오빠는 윗몸을 여동생 쪽으로 돌려, 천천히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가족 속에서 힘들었던 일, 결혼했던 소중한 사람과의 일, 오빠는 꽤 긴 시간에 걸쳐 이야기해 주었다. 내게 말을 걸어주었다는 것보다도, 오빠가 얼굴도 거의 모르는, 여동생을 상대로 얘기해 주었다는 것이, 무엇보다 기뻤다.

꿈에서 깨어났을 때, 날이 밝기까지 아직 시간이 있어 다시 잘 수도 있었지만, 오빠가 이야기한 내용을 잊어버리고 싶지가 않아서, 방바닥의 냉기조차 잊고 맨발로 일어나, 오빠의 말을 적어 두었다. ‘왜  오늘따라 이런 꿈을 꾼 거지’라고 생각했을 때, 문득 그 전날의 일이 머리를 스쳤다. 그날 나는, ‘죽은 자’에게 편지를 부쳤다. 그 편지는, 돌아가신 할아버지에게 보낸 편지였다.

■ 서류에서 더듬어 찾는 가족의 행보

앞의 연재들에도 써 왔듯이, 아버지 야스다 세이타쓰安田淸達는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돌아가셨다.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여권을 만들기 위해 처음 호적을 떼었는데, 거기에서 낯선 글자를 발견했다. 아버지의 가족 칸에 ‘韓國籍’이라는 글자가 기재되어 있었다. 왜 아버지는, 자신의 뿌리를 이야기하지 않았던 걸까. 이제 죽은 자에게 묻는 건 불가능하지, 라고 반은 체념하고 있던 참에 알게 된 것이 ‘외국인등록증’이었다.

친족 사항을 알기 위해, 재일 코리언을 관리하기 위해 만든 이 제도를 의지해야 한다는 것은 복잡한 심사를 불러일으켰지만, 그렇다 해도 가족의 족적에 ‘닿고 싶다’는 심정은 날로 강해졌다.

2020년, 호적과 아버지의 출생 신고서에 남겨진 쥐꼬리만 한 정보를 길잡이로 찾아낸 아버지와 조부모님의 등록증에는, 처음 보는 조부모님의 얼굴 사진이 나란히 있었다. 봉투를 개봉했을 때의 고동치는 가슴의 떨림은, 말로 형용하기 어렵다. 겨우 내 자신의 일부를 회복해 가는 듯한, 촉촉하고 따듯한 감정이 가슴 저 구석에서 끓어올랐다.

할아버지 김명곤金明坤(일부는 金明根으로 기재)이 일본으로 건너 온 때는 전쟁이 한창인, 열네 살 때였다. 조선 반도 남쪽 끝의 항구 도시, 부산에서였다. 본적은 현재 대구광역시 부근이다. 아직 십대 중반이었던 할아버지는, 어떤 심사로 고향을 떠나 바다를 건넜을까. 외국인등록제도가 만들어진 때는 전쟁이 끝난 후였기에, 아쉽지만, 전쟁 중의 조부모님이 어디서 어떻게 견디며 살아 왔는지, 서류에는 그 흔적이 없다. 교토시 후시미구伏見區, 오사카시 니시나리구西成區에서 군마群馬와 도치기栃木, 도쿄 등, 각지를 전전한 행적이 있었다. 그리고 1994년, 할아버지는 도치기에서 돌아가셨다. 그 무렵, 나는 일곱 살. 아버지 쪽의 할아버지라는 존재 같은 건 전혀 모르고 살았다. 아버지를 책망할 심사는 손톱만큼도 없지만, 아버지가 할아버지와의 관계를 끊고 있지 않았다면, 어린 시절에 만날 가능성도 있지 않았을까.

한편, 할머니는, 지금의 나보다도 젊은, 서른두 살에 세상을 떠나셨다. 할머니는 1938년, 열한 살 때, 본적이 있는 부산에서 야마구치현山口縣 시모노세키시下關市로 건너 온 모양이다. 기록되어 있는 13년간에, 교토와 오사카, 나고야 등, 13곳이나 주소를 옮겨 바꾼 뒤, 마지막 주소는 고베로 되어 있었다.

할아버지의 등록증에는, 고베에 살았던 행적이 없다. 교토와 오사카를 떠난 뒤는 따로 살았던 것일까. 적어도 말할 수 있는 것은, 할아버지가, 할머니와도, 그리고 아들인 아버지와도 떨어져, 떠돌 듯이 거처가 변한다는 사실이다.

그런 다음 나는, 서류 기록과 내 기억을 길잡이로, 가족에게 연고가 있는 장소를 찾아 돌아다녔다. 아버지가 다녔던 도쿄 시내의 강가에 있는 자그마한 찻집은, 새하얀 벽의 바Bar로 바뀌어 있었다. 조사해 보았더니 바로 3년 전에, 긴 역사를 마감한 듯 했다. 책임자는 아버지를 기억하고 있을까. 아버지 생가가 있었던 교토시 후시미구의 주소는, 아스팔트로 덮인 주차장으로 바뀌어, 생활의 흔적은 자취도 없었다. 이처럼 흘러간 긴 세월이, 살았던 나날을 더듬어 찾는 일을 막았다. 어쨌든 가능한 것을 찾자고 생각하며, 외국인등록증에 이어 손에 넣을 수 있는 서류를 찾았다.

■ 죽고 없는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

2020년 초가을, 나는 몇 번인가, 도쿄 미나토구港区에 있는 한국영사관에 걸음을 했다. ‘韓國籍’이라는 기재가 남겨져 있는, 조부모님과 아버지의 ‘제적등본’을 입수하기 위해서였다. 타이완과 한국 등, 일본 식민지 지배를 받은 땅에는, 역시 사람을 ‘관리’하기 위한 호적 제도가 남아 있는 경우가 있다. 한국은 그 제도를 2012년에 폐지했지만, 옛 기록은 남아 있을 법 했다.

뭔가 생기가 없는 분위기의 영사관 대기실에 작은 TV 소리가 울린다. 일반 시청자가 출연하는 퀴즈 프로그램일까, 중년의 남녀가 책상 앞에 나란히 서서, 단추를 누르고는 뭔가를 답하고, 일희일비하는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창가에서 떨어진 살짝 어둠이 깃든 자리는, 휴대전화도 잘 터지지 않았다.

여기에는 다양한 사정을 가진 사람이 모인 듯하다. 가까이에 앉은 젊은 커플은 말씨에서 재일 코리언 남성과 일본인 여성 같은 모습을 풍긴다. “저 있잖아, ‘통명’이라는 건 결국 뭐야?”  “응, 뭐 ‘예명’ 같은 거 아닐까”라고, 남성은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며 나른한 듯이 대답했다.

내 앞 차례였던 초로의 남녀는, 둘이서 창구로 향했지만, 남성 목소리의 전압이 점점 올라간다. “엥, 출생 신고가 안 되어 있다고요?” “엥, 이름의 한자가 다르다고요?”라며, 고함을 지르듯이 이야기하는 남성을, 자자, 라고 하면서 여성이 한국말로 돕는다. 여기에 오는 사람들은 대체로 뭔가의 어긋남에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그 벽에 부딪치게 된다.

특히 할머니에 관해서는, 기록되어 있었던 주소가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 현재 어딘가를 알 수 없다”고 퇴짜를 맞았다. “현재 어느 지역에 해당하는가는, 공적 기관인 여러분이 찾아주지 않으면 알 수 없어요.”라고 해도, 상대해주지 않았다. 어쨌든 대략적인 주소를 알아내 다시 제출하자, “전자화된 호적에서, 같은 지역에 사는 사람의 후보가 너무 많다. 전자화되지 않은 경우는 ‘호주’를 알 수 없다…”라고, 또 벽에 막혔다. 중요한 일이니까 조바심이 심해진다. 창구의 아크릴 간판에는 “직원에게 폭력적인 행동을 하지 않도록”이라는 주의 문구가 있지만, 이렇게 조바심이 심해지면, 어느 날 고함을 질렀던 남성처럼 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그 후에도 “통명과 여기에 등록된 이름이 다를지 모른다” “생일이 여럿이다”라는 지적을 여러 번 받았다. 옛날 서류는 오늘보다 엄밀하지 않고, 생일이 서류에 따라 제각각인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에게는 몇 개의 생일이 있고, 출생 연도마저 다른 경우도 있었다. 부족한 서류를 채우려 다른 기관에 간 적도 있었고, 폐관 시간을 지나서, 조용해진 영사관 대기실에서, 하염없이 서류 복사를 계속한 적도 있다.

그런 한편으로, 새로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먼저 아버지다. 창구의 여성이, 미안하다는 듯이 살짝 웃는다.

“기재되어 있는 주소와 성함, 생년월일로 조사해 봤지만, 아버님의 등록은 없었어요.”
“등록이…없다?”
“재일의 사람들에게는, 자주 있는 일인 데요.” 

외국인등록증에도, 일본 호적에도 ‘한국’으로 기재되어 있는 데도, 왜 한국 쪽 공적 기관에 아버지의 서류가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혼란스러워, 바로 지인인 언론인에게 연락했다. 그러자 재일 코리언 가운데에는, 일본 쪽 서류상은 ‘한국적’이라는 표기로 되어 있어도, 한국 쪽에 신고하지 않은 경우가 있는 거라고 했다. 아버지가 그런 사정을 알고 있었던 걸까, 그렇지 않으면 누군가에 의지해 서류를 제출했기 때문에, 한국 쪽에 자신의 등록이 없는 것을 알지 못했던 것인지, 지금은 알 수 없다. 제도와 제도의 틈새에서, 뭔가 착오가 있었을지 모른다. 만약 그런 경우, 아버지는 사실상 ‘무국적’ 상태였던 게 된다. 내가 태어난 뒤, 일본 국적을 취득할 때, 시간이 많이 걸린 것도, 이 때문이었던 모양이다.

어머니에게 연락하자, “무국적 상태인 것은 알았다”고 대답했다. “나에게는 그 이상, 아무것도 알려 주지 않았다”며, 어머니는 조금 서운해 했다. 서류로 처음 알게 된 사실이 많은 것에, 어머니 자신도 심사가 복잡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할아버지에 대해서도, 새로 안 사실이 있었다. 그날, 창구의 여성은 여느 때와 달리 부드러웠다.

“오래 기다리셨어요, 남아 있는 것은 이거예요. 결혼과 자식이 있었던 내용은, 어쩌면 이쪽에는 신고가 안 되었던 모양이네요.”

건네받은 종이 다발은 굉장히 두꺼웠다. 서류를 넘겨가자, 웬걸, 모르는 친척이 열세 명이나, 같은 호적에 올라 있었다. 첫 번째 젊은 친척은, 겨우 고등학생 정도의 나이였다. 할아버지는 아무래도, 할아버지에게 조카뻘인 사람의 호적에 올랐던 모양이다. 그리고 다른 친척과 달리, 할아버지 칸에는 결혼도 자식이 태어난 사실도 기재되어 있지 않고, 공백으로 남아 있는 게 눈에 띄었다.

열세 명 각자, ‘본적’ 주소 이외에, 각자의 태어난 주소가 기재되어 있었다. 어쩌면 편지를 보내면, 열세 사람 가운데 누군가에게 닿을지 모른다. 다만, 갑자기 일본에서 모르는 친척의 편지가 도착하면, 놀라 버리리라. 실제로, 같은 ‘여정’을 겪은 친구가, “왜 갑자기 모르는 일본에서 친척이 찾아온 거야! 재산을 노린 거야!”라고 의심을 받고, 오해를 푸는 데 힘이 들었다고 얘기해 준 일이 있다. 신중하게, 하지만  조금 두근두근하며, 편지의 문구를 생각했다.

편지를 보내기까지, 서울 근교에 사는 아는 여성이, 화상 통화를 하면서 도움을 주었다. 그녀는 일본서 자란 재일 코리언으로, 두 나라 말에 능통했다.

“지금 점심 무렵인데, 서울은 18℃야. 코로나로 이동도 자유롭게 할 수 없고 말이야….”라고 하는 화면 너머의 그녀는, 재택근무로 다소 피곤한 기색의 모습이었지만, 편지의 번역까지 도와주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살을 에는 듯한 서울의 겨울 추위가 묘하게 그리워졌다.

제적 등본에 기재된 주소 가운데는, 현존하지 않는 지명이 몇 개나 있었기 때문에, 편지가 도착할 가능성이 있는 주소를 좁혀 갔다. 지인은, “한국에서는 바로 이사하기도 하여, 가능성은 낮겠지만”이라고 하면서도, “어쨌든 해 보자”며 등을 떠밀었다.

친척만이 아니라, 할아버지 자신의 주소에도 편지를 부쳤다. 친척이 받을 가능성이 아주 없지는 않다고 충고해 주었기 때문이다. 죽고 없는 사람에게 편지를 보내는 것은, 이상한 기분이었다.

김명곤 님 친척 여러분께
처음 뵙습니다. 갑자기 이런 편지를 받으시고 놀라셨겠지요. …
사실은, 제가 열세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그 뒤에 비로소 아버지 가족이 대략 80년 전, 일본이 식민지 지배를 하던 시대에, 조선 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오신, 재일 코리언이라는 사실을 알았어요. 그때부터, 제 친척에 관해 알고 싶다, 제 가족의 사연과 뿌리를 알고 싶다고 소원해 왔습니다. 그런 것들을 전혀 몰랐던 동안은, 마음속에 큰 공백이 자리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올해 가족의 묵은 서류를 찾거나, 한국 대사관에 제적 등본을 발급받으러 갔는데, 할아버지 김명곤이 올라 있는 호적에, 여러분의 성함과 태어난 주소가 기재되어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할아버지께 조카뻘인 김용구金龍九 님의 호적에 오른 모양입니다. 여러분 같은 먼 친척이 계신 것을 알았을 때의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컸습니다.

갑자기 이렇게 편지를 받으시고, 당혹스러워 하실 모습을 떠올리며, 새삼 용서를 구합니다. 만약 가능하다면, 코로나가 수습된 뒤에, 할아버지의 고향과 여러분을 찾아뵙고 싶습니다. 괜찮으시면 편지와 메일 같은 것으로, 답장을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희망을 걸고 편지 부친 몇 달 뒤, 수신인의 주소 불명 상태로, 모든 편지가 되돌아왔다. 봉투에는 손으로 쓴 글씨로, 가까운 주소와 성명을 찾은 흔적이 몇 개나 남아 있었다. 이 편지를 한 손에 들고, 옛날 지도를 대조하거나, 주위를 돌아다녔을 우편배달부 여러분에게 감사를 보내면서, 다시 여정의 출발점으로 밀려서 되돌아오고 만 듯한 기분이었다.

■ 할아버지의 모습

여름도 서서히 끝으로 접어든 교토의 가모가와鴨川 연변은, 해가 질 무렵이면 불고 지나가는 바람에서 아스라이 가을의 향내를 느낄 수 있었다. 2021년 9월, 신형 코로나의 심각한 감염 확대가 잠시 진정을 보였지만, 많은 사람이 자숙 일변도의 사회 분위기로 너무 피폐해졌던 무렵이었다. 눈부신 거리의 불빛을 어른어른 흔드는 강의 수면을 바라보면서, 캔 맥주를 한 손에 들고 강가에 앉아, 편하게 담소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띈다.
 
강변길과 간선도로를 잇는 작은 길에는 음식점과 스낵이 빽빽이 들어선 건물이 줄지어 있다. 옛날 주소와 지금의 지도를 대조하면, 할아버지가 땀을 흘린 권투 도장, 교토국제권투구락부는, 이 주변에 있었던 게 틀림없다.

“찾았어요, 할아버지를 아는 사람을”

이런 연락을 받았던 때는, 지난해 여름이었다. 전화 너머로 들리는 “할아버지”라는 말을, 잠시 이해하지 못해 당황했다. 조부를 그렇게 부른 적도 없고, 애당초 어떤 인물인 건지, 바로 직전까지 호적상에 남은 이름만 알고 있었다. 전화를 준 사람은, 코리아국제학원 이사장도 겸하는 김순차金淳次 씨였다. 나아가 순차 씨는 이어 말했다.

“할아버지, 프로 복서였다면서?”

생각지도 못한 말에 놀라, 감사 인사도 제대로 건네지 못한 채 전화 통화를 끝내고 말았다. 이제까지 서류상의, 흑백의 평면밖에 없었던 할아버지 정보가, 하나의 ‘인간’으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이미 20년에 가까운 세월이 흘러, 끊어졌기 마련이던 실이, 마침내 이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만년에 가까운 무렵의 할아버지 외국인등록증에는, 도치기의 파친코 가게 ‘New Reito’와  ‘Big’이라는 이름과, 그 가게들에서 지배인을 지낸 사실이 적혀 있었다.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이미 그런 이름의 가게는 ‘폐점’이라고 나온다. 한국 쪽에 보낸 편지가 도착하지 않은 사실도 알고, 일본에 있으면서 더듬어 찾을 수 있는 것은 이제 이것이 한계겠지, 라는 생각을 한창하고 있을 때, 도치기에서 사업을 하는 순차 씨로부터 전화가 걸려온 것이다.

국도 연변에 있는 파친코 가게는, 코로나 재난이라는 점도 있어서일까, 한산하기 짝이 없었다. 어느 사이엔가 가게 안에서 울리는 요란한 소리에 필적하거나 그 이상으로 강한 빗소리가, 실외에서 들리기 시작했다. 현기증이 날 정도로 계속 점멸하는 받침대와 받침대 사이를 비집듯이 나간다. 할아버지가 일하시던 당시와 같은 장소라고, 순태 씨가 알려 주었다.

그 파친코 가계를 경영하는 후쿠다 류데쓰福田優哲 씨가 이날, 우리를 맞아 주었다. 60대 중반으로, 할아버지보다 훨씬 연하였지만, 할아버지에 관해 기억을 하는 한 사람이었다. 등록증의 할아버지 사진을 보자, “아아, 고시지越路 씨네”라며, 희미하게 쓴웃음 같은 표정을 띠었다. ‘고시지越路’란, 할아버지 등록증에 기재된 마지막 ‘통명’이었다.

“기억해요, 이런 인상으로 상당히 영향이 있는 분위기였으니까요”라고, 후쿠다 씨는 턱을 당기며, 쏘는 듯한 시선으로 나를 봤다. “전직 프로복서여서 그럴까요, 사람을 볼 때도 이렇게 비스듬하게 노려보듯이 봤어요. 나는 강해, ‘예’ 이외의 답을 상대에게 요구하지 않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우리지 않았던 사람이었으니까요.”

같은 조선 반도 출신이었던 후쿠다 씨의 아버지를 의지해, 할아버지는 1980년 무렵까지 몇 년 간, 지배인을 맡았다고 한다.

“구두는 표범 무늬든가 호랑이 무늬이고, 연지색 바지에 핑크색 재킷으로, 그 당시 그런 복장을 착용하는 사람은 없었으니까요. 인품은 뭐, 이 사진 그대로고요. 여기에 찍혀 있는 넥타이도 특이한 색이었다고 생각해요”라고, 후쿠다 씨는 내가 지참한 서류를 보고 빙긋이 웃었다. 대단히 강렬한 외모였던 거다. 눈앞의 외국인등록증에 나란한 할아버지의 흑백 사진이, 갑자기 컬러로 변한 것처럼 보였다.
 
남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 고집이 센 성격인데 반해, 일에 임하는 자세는 한결같이 열심이었다고 후쿠다 씨는 말한다.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종업원의 교대는 벌써 두 번 정도 이루어졌는데도, 계속 가게에 있는 거지요. 보통, 지배인이라는 존재는 장사를 시작하고 좀 있으면 나가서, 도중에 시비가 있으면 나타나거나 하는 데, 책임감이 강했거든요. 뭐 계산대 안쪽에서 존 거지만. 거기서 꾸벅꾸벅 존 지배인은, 그 전에도 그 후에도 고시지 씨가 유일했어요.”

화려한 색상의 셔츠를 입고 꾸벅이며 자그마한 계산대 안쪽에서 선잠을 자는 할아버지를 상상하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런 호쾌한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묵묵히 곁에서 듣고 있던, 순차 씨 회사의 관계자인 남성이, 또박또박 말했다.

“그러니까, 세상을 잘 모른다는 거네요. 사느냐 죽느냐의 세계를 넘어 온 사람이니까, 다른 사람의 의견을 안 듣는 거고 말입니다. 이 업계는, 옛날에는 야쿠자 일당에게 괴롭힘을 당했는데, 놈들은 받침대를 걷어차고, 자리를 차지하고…. 그 시대의 매니저 역할은, 야쿠자 일당을 내쫓는 게 일이었을 겁니다. 고시지 씨도  그런 역할을 수행해 왔겠죠.”

후쿠다 씨도 말을 잇는다.
“가게와 종업원, 그 다음에 못 관리를 잘 할까, 그런 수완이 요구되지요. 매일 같이 싸움이 있기도 하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장사가 아니지요.” (파친코 못이란, 파친코 구슬의 흐름을 제어하기 위해 파친코 받침대의 표면에 박혀 있는 못을 말한다. - 역주)

자유롭게 직업을 선택했을 리 없다, 아무 뒷배도 없던 시대에, 할아버지도, 같은 시대를 살았던 재일 코리언들도, 죽기 살기로 살아가고 있었으리라. 그런데 시대의 물결은, 할아버지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변화가 빨랐던 모양이다. 할아버지가 일했던 시기는, 아날로그 스타일의 받침대가 차례로 복잡한 기기로 대체되어, 파친코 가게에서 울리는 소리가 전자음으로 바뀌어 가는 과도기였다고 후쿠다 씨는 회상한다.

“세븐기라고 불리는, 새로운 기계가 도입되었을 때, 그 기계를 다룰 수 없어 그만두게 된 거지요. 그만두겠다고 하고 나서 아버지와 옥신각신한 것이, 마지막으로 본 모습이고요. 시대가 변하지 않았다면, 매니저로는 솜씨가 좋았던 거죠. 무서운 기세로 나가고, 그 후 어디로 갔는지는 몰라요.”

좋게 말하면 “제 힘으로 꼭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이었다고 후쿠다 씨는 덧붙였다. 시대에 농락당하며 살면서, 그 변화를 따라갈 수 없었던 때의 할아버지의 답답함, 유감스러움은 어느 정도였을까. 그 후 할아버지가 어떤 인생을 더듬어 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한다.

사실 나는 처음, ‘프로 복서’라는 말은, 할아버지가 자신을 과장해, 강하게 보이고 싶어서 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뭔가 미심쩍어, 나는 옛날 복싱 잡지를 주문하거나, 자료를 도서관에서 열람하거나 하면서 복싱의 전후사戰後史를 더듬어 보기로 했다.

인터넷상에서 찾아서 구입한 『Boxing Gazette』는, 고작 18쪽에 불과하고, 복싱 잡지라기보다도, 습자 연습장처럼 얇았다. 당시 가격으로 한 권에 25엔은 고액이었으리라. 누런 책장을 넘기다가, 「간사이關西 시합」 란을 보고 나도 모르게 펄쩍 뛰었다. 거기에는 분명하게 할아버지의 성함이 적혀 있었다. 좀 더 찾아보니 1947년부터 1948년 무렵에 간행된 호에, 반복해 성함이 게재되어 있다. 그것도 ‘고시지越路’라는 통명이 아니라, 김명근金明根이라는 본명으로. 대회장으로 기재된 ‘교토가부키(스케이트장)’는 현재, 쇼치쿠松竹(영화 제작사 및 배급사 - 역주)가 소유한 부지로, 당시는 미군이 접수한 시설 가운데 하나였던 모양이다.

피스톤 호리구치ピストン堀口(1914~1950년. 프로 복서. 본명은 호리구치 쓰네오堀口恒男 - 역주) 등 유명한 선수가 아직 활약하던 시대로, 할아버지는 교토시 나카교구中京区 롯카쿠六角 거리에 있었던 교토국제권투구락부 소속으로, 기록에 남은 마지막 시합에서는, 6회전 복서로, 2라운드에 TKO승을 한 모양이다.

“‘자칭 복서’로 그런 눈과 자세로는 안 돼요”라며 웃는 후쿠다 씨의 얼굴이 떠오른다. ‘허세’는 아닐까, 라고 터럭만큼이라도 의심했던 것을, 할아버지께 진심으로 사죄를 올린다.

옛날 신문을 찾아본 지인이, 할아버지가 링에 오르는 시합의 예고 기사를 보내주었다. 어쩌면 이 시대, 공식 시합으로 기록에 남아 있지 않은 흥행 시합 등도 분명 많았으리라. 할아버지도 예전에 살았던 오사카의 니시나리西成에 오래 사는, 중년의 재일 코리언 남성이 문득 얘기해 준 사연이 있다.

“전후가 되고 얼마 안 되었을 때, 가까운 초등학교에서 자주 복싱 흥행 시합이 열렸어요. 몰래 그 체육관에 숨어들어, 열광하는 어른들의 발밑을 빠져나가, 시합을 보곤 했어요.”

소년이었던 그가 쳐다보는 시선 앞에, 땀투성이 주먹을 흔드는 할아버지 모습이 있었을지 모른다. 복싱이라는 한 측면으로 알아보면, 할아버지에 관한 일을 기억의 한 구석에 간직한 사람을 또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가슴이 설렜다.  

■ 조부모가 보아 온 풍경을

시원하게 탁 트인 푸른 하늘에, 붉고 누런 낙엽이 눈부시게 떠오르는, 기분 좋은 맑은 가을 날. 햇살이 따듯한 운동장과는 대조적으로, 지하실은 차고 눅눅한 공기에 휩싸여 있었다. 오사카부 동오사카시에 있는 오사카조선중고등학교 복싱부 연습장은, 그런 지하에 한 귀퉁이에 있다.

높은 천정과 널찍한 실내에는, 고등학교로는 드물게 공식 규격의 링이 설치되어 있다. 근사한 모습의 연습장도, 지금은 정적 속에 잠겨 있다. 숱한 성적을 전국 대회에서 거두어 온 전통 있는 이 복싱부도, 지금은 부원이 없어 휴부休部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이 오사카조선고등학교에서, 오랜 세월에 걸쳐 복싱을 지도해 온 양학철梁學哲 씨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한데 묶을 수는 없지만, 일본 식민지하에서, 우리 민족은, ‘주먹에서 져서는 안 된다’ ‘주먹을 단련해야 한다’며, 복싱을 하는 사람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해방 전, 조국에서 건너 온 사람들이, 전일본선수권에 나가 두드러진 활약을 한 적도 있었어요.”

예를 들면, 1917년에 제주도에서 태어난 현해남玄海男은, 그 후 도쿄니치니치신문東京日日新聞(현 마이니치신문)과 전일본권투연맹 공동 주최의 일본선수권 결승전에서 밴텀급 챔피언이 되어, 세계적 선수로 한 시대를 풍미한 피스톤 호리구치와도 무승부를 이뤘다. 1938년의 전일본아마추어선수권에서는, 모든 체급에서 조선 선수가 우승했다. 전후 최초의 공식전에 가까운 시합은, 1945년 12월, 재일 조선인연맹 오사카 본부가 주최해, 니시노미야야구장西宮球場에서 열렸다.

할아버지의 기록이 게재된 잡지에도 ‘玄’  ‘高麗’와 같은 조선에 뿌리를 두었을 이름의 체육관이 눈에 띤다.

“일본 식민지 지배로, 나라를 빼앗겼던 백성이 지닌 분함으로, ‘일본 선수에 주먹으로는 지고 싶지 않다’라는 생각이 선대의 분들에게는 강하게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특히 당시는, 패전 후의 혼란으로, 오늘날처럼 물질이 충분했던 시대가 아니었다.

“그 시대의 글로브라고 하면, 굉장히 얇고, 주먹만으로 몸을 서로 때리는 거죠. 복싱의 본질은 ‘서로 때리는 것’, 그 본질적인 싸움에서, 절대로 질 수 없다는 것이, 해방 후에 힘겹게 살아 온 선대 분들의 마음이었던 거죠.”

전전에는 현 선수 같은 분들의 활약이 있었던 반면, 일본의 패전 후 복싱 잡지를 살펴보면, ‘본명’을 밝히는 조선에 뿌리를 둔 선수는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런 가운데, 본명을 관철하는 할아버지의 성함이 더욱 페이지 속에서 돋보여 보인다. 이것만은 물러설 수 없다는 뭔가가, 할아버지의 내면에는 있었을지 모른다.

“복싱 세계에서는 ‘달리면 이긴다’고 할 정도로, 달리기 연습이 중요하다”고 양 씨는 말한다. 할아버지가 소속했던 체육관 주소 터와 아버지 생가는, 가모가와 제방 옆길로 이어져 있다. 프로 선수가 달리면 30분도 걸리지 않을 것 같다. 강물이 흐르는 소리를 곁에 두고, 집에서 체육관에 도착하기까지, 숨을 헐떡이며 Road work을 소화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나도 모르게 상상한다.

“재일 복서의 뿌리에, 야스다 씨의 할아버지 같은 선배가 계셨다고 생각하면, 뿌듯해요”라고, 양 씨는 웃으면서 얘기해 주었다. ‘선배’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왠지 나까지 멋쩍어진다. 할아버지가 이렇게 몇 번인가 누군가의 입에서 ‘불리는’ 것으로, 좀 더 깊게, 그가 산 흔적이 이 세계에 새겨지는 듯한 심정이었다. 나는 할아버지의 시대로부터 땅이 연결된 ‘지금’이라는 지평에 서 있는 것이다.

마지막에, “패전 직후에 프로가 되었다는 것은, 할아버지는 조국에서도 복싱을 하고 있었을지도 몰라요”라고 하는 양 씨의 말에 신경이 쓰였다. 열네 살에 시모노세키에 내렸을 때, 할아버지는 이미, 주먹으로 입신하려는 결의를 굳히고 있었던 것일까. 거기에서 단서를 끌어올 수 있을까.

돌아올 때, 오사카조선고등학교에 자녀를 보내고 있는 아버지들 가운데 한 명으로부터 이런 소리를 들었다.

“나는요,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고향의 모습을 보고 싶다고 하셔서, 한국의 본적지 주소에 갔던 적이 있어요. 그 주소지 자체는 이제 빈터였어요. 웬걸, 그 옆이, 할아버지의 형제 분 집이었던 거지요. 깜짝 놀랐어요.”

현지에 가면, 생각하지 못한 인연이 이어질지 몰라요, 라며 그 사람은 웃었다. 이렇게 누군가 뿌리를 더듬어 찾는 여정의 이야기를 들려줄 때마다, 기대로 가슴이 쿵쾅거린다. 조부모가 보아 온 풍경은, 오늘을 사는 내 눈에 어떻게 비칠까. 바다 너머로 이어질 이 여정의 연속에 기대는 부풀어 오를 뿐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그렇게 간단하게는 진행되지 않았다.

이 2년가량 시기를 가늠하고, 격리 기간도 고려해, 2021년 12월부터 이듬해 새해 첫머리에 걸쳐서 일거리를 받지 않고, 겨우 한국으로 가는 단계로 돌입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한국에서 신형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확대와 오미크론에 대한 경계로, 비자 자체가 나오지 않았다.

“간단히 이 바다를 건널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고, 조부모님께서 말씀하시고 계신 것일까, 그렇지 않으면, “안전한 때에 오라”고 하는 지시일까. 두 분이 시모노세키에 내렸을 때는, 지금처럼 비행기로 가볍게 갈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다. 겨울 바다를 건너는 관부연락선은 마구마구 흔들렸으리라.

앞서, 한국 신문으로부터 취재를 받았을 때에, “왜 친척을 만나고 싶은 가요”라는 질문을 받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나는 ‘핏줄’에 집착하고 싶은 게 아니다. 오히려 ‘핏줄’로 얽으려고 하는 사회 분위기에 저항하고 싶은 마음마저 있다. 거기에서 자유로워지고 싶다. 하지만 때로 그것은, 끊기 어려운, 성가신 존재인 법이다. 그리고 기자에게 전했다.

“아버지가 뿌리를 얘기하지 않음으로써, 나는 아버지 쪽 가족을 모르고 이제까지 살아왔어요. 나는 실이 끊어진 연처럼 둥실둥실 떠 지나왔어요. 겨우 그 실이 조각조각 끊어진 게 아니라, 더듬어 되살릴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어요. 그것이 기쁘고, 그저, 만난다, 말을 나누고 싶다는 마음으로 벅찹니다.”

2022년이야말로, 라는 기대를 품고서 지금, 매일 같이 두 나라의 감염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전망을 알 수 없는 세계정세도 마음에 걸린다. 그래도 조금씩 앞으로 나가려고 한다. 뿌리를 더듬어 찾는 이 여정을. <계속>
(『세카이』, 202205월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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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우크라이나 10억 달러 지원을 반대하는가? 시골목사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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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라퍼의 한숨 권종상 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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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 비판자들을 비판함 강기석 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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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철TV]여러분의 지지와 공감이 필요합니다 신상철 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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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만 더 사과하라고 하면 니 아가리를 찟어 놓겠다. kenosis 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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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기지 자주평화 원정단 소식 조헌정 목사 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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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을 노래하다. kenosis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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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비대위에 피가 꺼꾸로 솟는다. kenosis 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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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능력 없는 것이 검찰의 현실” 사람일보 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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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원 남원시장 예비후보 총 66편의 유튜브 정책홍보... 이주연 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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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철TV] 진실은 결코 침몰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 신상철 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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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에서] 윤석열엔 ‘신속’ 조국엔 ‘하세월’ ... 임두만 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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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생각’을 하고 투표해야 하는가 권종상 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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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혁명 62주년을 통해 본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김용택 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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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춘보의 노변정담] 문재인 정부와는 다르다면서요. ... 심춘보 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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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철TV] 세월호 8주기 특별방송-급선회, 사고의 ... 신상철 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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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철TV] Tracking the Truth of Sewol USA 2 신상철 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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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뿐이랴. 기대한 것 이상을 보게 되리라 권종상 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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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철TV] Tracking the Truth of Sewol USA 1 신상철 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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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그들의 죽음이 ... 순국이었을까? 28 강진욱 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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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철TV] 2022 대선 선거무효소송 접수 신상철 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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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치’는 윤석열 가족에게도 적용되어야” 사람일보 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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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기대해도 그 이상을 보여줄 굥산군과 언... 권종상 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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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철TV] 주권(主權)을 스스로 포기한 국민. ‘나라... 신상철 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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