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리한 전쟁을 거부할 용기와 구상 ― 이란 전쟁
(WWW.SURPRISE.OR.KR / 김종익 / 2026-05-19)
데라지마 지쓰로寺島實郞
트럼프의 미국은, 국제법과 유엔을 무시하는 형태로 이란 공격을 시작했다. 그런 트럼프를 노벨 평화상 후보로 추천한 일본은, 이번 공격에 대한 ‘법적 평가를 유보한다’라는 입장을 내세우며 침묵하고 있다. 이러한 구도에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위태로움이 응축되어 있다.
전후 80년 동안, 일본은 동서 냉전기 속에서 ‘군사력을 최소화한 경제 중심 국가’로서, 미․일 동맹에 의존해 오로지 경제적 가치(부흥, 성장, 번영)를 추구해 왔다. 그 과정에서 ‘미국을 통해서만 세계를 바라보는 시야’가 형성되고 말았다. 그 미국이 변질되어, 스스로 국제 질서의 원칙으로 내세웠던 이념을 부정하고, 자국의 이익에만 매달리는 지금, 세계는 거대한 전환점에 직면해 있다. 분명한 것은, 미국에 대한 의존과 동조를 계속하는 한 미래는 열리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나는, 1979년 이란 혁명 이후 1980년대에, 당시 재직하던 미쓰이물산이 이란․이라크 국경 인근에서 추진하던 대형 석유화학 콤비나트 사업과 관련해 혁명 정권에 대응하기 위한 정보 활동의 일부를 담당하며, 이스라엘, 걸프 산유국, 이란, 이라크를 오가며 활동했다.
또한 1990년대는 미국 동해안에 상주하며, 걸프전을 경험했고, 그 뒤 9․11 동시다발 테러, 이라크 전쟁을 거치며 미국의 중동 전략을 가까이에서 지켜보았다. 그것은 동시에 미국에 휘둘리며 방향을 잡지 못하는 일본 외교를 목도하는 일이기도 했다. ‘기억의 민족’인 유대인과 마주하며 내가 깨달은 것은, ‘역사의 교훈’을 직시하고 이를 민족의 지혜로 승화시키는 일의 중요성이다.
■ 네타냐후의 이스라엘과 트럼프의 미국
2월 28일 이스라엘과 미국의 이란 공격이 시작되었다. 급박한 이란의 위협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란은 경제 제재를 벗어나, 국제 사회로 복귀하기를 바라며, 핵 개발을 억제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보수 강경파였던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이 2024년 5월 헬리콥터 사고로 사망한 뒤, 이란 국민은 개혁파인 마수드 페제시키안을 후임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이후 지난해 6월 이스라엘과 미국의 공격(이른바 ‘12일 전쟁’)을 거치면서, 미국과의 핵 협상도 재개되어, 합의는 눈앞에 다가와 있었다.
이번 이란 공격의 기본 구도는 이스라엘에 휘둘린 미국이다. 자신의 수뢰 의혹을 안고 있는 네타냐후가 정치적 생존을 걸고 벌인 전쟁이라는 시각도 있지만,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란의 국제 사회 복귀를 저지하려는 이스라엘의 의도가 ‘제한적 공격’에 머무르려던 미국을 압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란의 ‘체제 전환’까지 노리는 이스라엘에 떠밀려, 미국은 공격 이후의 전망이나 구상도 없이 전쟁으로 내달리고 말았다.
나는, 이스라엘, 미국 동해안에서 많은 유대인들과 마주하면서, ‘디아스포라’라는 운명을 안고, 차별과 억압을 겪어온 그들의 역사에는 공감해 왔다. 그런 한편으로는 교양 있는 유대인들 가운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드러내는 ‘가자 학살’이나 ‘적대자 참수 작전’과 같은 비정상적인 공격성에 의문을 품어 왔다.
특히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강경한 정권’으로 불리는 네타냐후가 집권한 이스라엘(리쿠드와 극우 정당의 연립 정권)의 공격성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를 고찰한 책이, 졸저 『다윗의 별을 주시하며―체험적 유대인 네트워크론』(2022년)이다.
눈에 띄는 점은, 러시아․구소련 출신 유대인들에게서 나타나는, 피해자 의식이 반전된 형태의 공격성이다. 19세기 말에는 세계 유대인 인구 약 절반이 러시아에 거주하고 있었다고 한다. 우리는, 학살이라고 하면 흔히 나치에 의한 홀로코스트를 떠올리지만, 그보다 반세기나 앞서 러시아에서는 포그롬(Pogrom. 1881년부터 1921년에 이어진 유대인 박해와 대량 학살)이 발생했다.
이러한 기억이 깊이 각인되면서, 유대인 특유의 피해자 의식으로 거론되는 ‘마사다 콤플렉스’가 특히 강한 집단으로 러시아계 유대인이 지목되어 왔다. 그리고 이 집단 출신이 이스라엘의 보수․극우 세력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마사다 콤플렉스란 ‘마사다 요새’에서 유래한 심리로, 기원후 73년 로마군에 포위된 유대인들이 사해 인근의 마사다 요새에서 집단 자살한 사건에서 비롯되었다. 방심하면 민족이 흩어지고 멸망에 이른다는 인식이 약 2000년에 걸쳐 전해 내려온 유대 민족의 집단적 신념이며, 때로는 이러한 인식이 통제하기 어려운 공격성으로 분출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한편, 트럼프의 미국을 움직이고 있는 배경으로, 트럼프의 핵심 지지층으로 알려진 미국 인구의 30%에 이르는 복음주의 개신교의 심리, 즉 ‘크리스천 시오니즘’(기독교의 유대인 지지)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로마 제국이 기독교를 국교로 정하고, 기독교가 서구 사회 전반에 확산되는 과정에서, 유대인들은 ‘예수를 죽였다’라는 오명이 민족 전체의 책임으로 전가된 채 오랜 박해의 역사를 겪어왔다. 중동의 일신교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일종의 ‘근친 혐오’ 구도가 미국에서도 이어져 왔는데, 그런 흐름의 큰 전환점이 된 것이 2001년의 9·11 동시다발 테러였다.
‘이슬람의 위협’을 강하게 인식하게 된 미국 사회, 특히 복음주의 진영은 성서의 ‘그리스도 재림’을 강하게 믿는 처지에서, 주의 재림 시 성지 예루살렘이 ‘이슬람의 깃발’ 아래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정서를 강화해 왔다. 그 결과, 이슬람과 맞서는 유대인 시오니즘에 대한 지지로 기울게 되었다.
미국의 유대인 인구는 약 600만 명이며, 대다수는 고학력의 비교적 부유한 계층으로, 진보 성향이 강하고 중동 평화를 지지하는 이들이 많다. 2024의 대통령 선거에서도 유대인의 70% 이상이 민주당의 카멀라 해리스에게 투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유대인이 아닌 기독교 복음주의 세력과 그 세력에 의존한 트럼프 정권의 이스라엘 지지, 나아가 네타냐후 지지를 둘러싼 비대칭적이고 왜곡된 양상이 두드러진다.
이란은 미국에 뿌리 깊은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1968년 영국이 수에즈 운하 동쪽에서 철수한 뒤, 미국은 이란의 팔레비 왕조를 지원하며 페르시아만에서 주도권을 확보했다. 그러나 1979년 이슬람 원리주의 혁명으로 어처구니없이 팔레비 정권이 붕괴하자, 미국은 큰 충격을 받았다.
혁명 직후에는, 테헤란의 미국 대사관이 1년 2개월 동안 혁명 세력에 점거되었고, 인질로 잡힌 52명을 구출하려던 작전이 실패하면서 펜타콘, 그러니까 국방부는 위신은 크게 손상되었다. 이를 계기로 ‘이란 증오’에 가까운 적개심이 고조되었다.
이후 이란—이라크 전쟁(1980~1988년) 당시 미국은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을 지원했지만, 이러한 지원은 오히려 후세인의 오만을 부추겼다, 결국 후세인은 인접국 쿠웨이트를 침공했고, 이에 대응해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라 다국적군이 편성되어 ‘걸프 전쟁’(1991년)이 발발했다. 이 과정을 거치며, 미국은 후세인을 새로운 위협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이라크는 2001년 9.11 테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었지만, 미국은 ‘이슬람에 대한 보복 전쟁’과 같은 심리 속에서,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를 공격했다. 전쟁의 명분은 ‘테러와의 전쟁’에서 ‘대량 살상 무기 제거’, 그리고 ‘이라크 민주화’로 변화한다.
지금 돌아보면, 이 전쟁은 냉전 이후 약화된 미국의 군사력을 재건하려는 군산복합체와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의 결합 속에서 추진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수니파 정권이었던 후세인을 제거한 결과, 이라크는 인구 구성에 따라 시아파가 주도하는 국가로 재편되었고, 역설적으로 시아파 이란의 영향력 확대를 초래했다.
축출된 세력의 일부는 극단주의 조직인 ‘이슬람국가(IS)’를 형성해, 이라크와 시리아 일대를 심각한 혼란에 빠뜨렸고, 그 과정에서 미국은 이란과 이해가 일정 부분 일치하는 상황에서 ‘이슬람국가’와 맞서게 되었다.
이란은 이른바 ‘시아파의 초승달’을 형성하며, 이란을 중심으로 이라크·시리아·레바논으로 이어지는 시아파 영향권(저항의 주축)을 구축했다. 또한 레바논의 헤즈볼라, 가자의 하마스, 예멘의 후티 세력,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을 지원하며, 중동에서 영향력을 확대해 나갔다. 차분히 총괄해 보면, 미국은 늘 ‘적의 적은 친구’라는 단순한 단기적 이해관계에 따라 지역에 개입해 왔고, 그 결과 실패를 거듭해 왔다. 그 어리석음에 말문이 막힐 수밖에 없다.
그리고 또다시, 트럼프의 미국은 전후 질서와 안정적 통치에 대한 전망도 없이 전쟁에 발을 들여놓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는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것도 아니며, 절박한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것도 아니다. 스스로 ‘거래의 천재’라 칭하며, 이익만을 좇는 한 인물이, ‘순진한 듯한 오만함’ 속에서 실패를 되풀이하려 하고 있다.
■ 중동의 구조 변화―‘유라시아 축의 연결성’이 관건
개전 보름이 지나면서, ‘지상전’(상륙․침공․제압)을 둘러싸고, 이란의 체제 전환까지 추진하려는 네타냐후와 단기전의 ‘승리’ 이미지를 부각해 사태를 수습하려는 트럼프 사이의 온도 차가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미사일과 무인기, 드론 등 하이테크 무기를 활용한 공격에서는 이란을 압도하는 양상으로 보인다. 그러나 체제 전환을 위한 점령 통치에 들어가게 되면 지상전을 피할 수 없고, 전쟁은 ‘비대칭 전쟁’의 성격이 더욱 짙어지며, 게릴라전, 자살 폭탄 테러, 인간 방패 등 차원이 다른 육탄전과 소모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는 미국의 취약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국면이다. 실제로 베트남 전쟁에서는 약 5만 8천 명,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는 약 6,800명에 달하는 미군 희생자가 발생했다.
3월 13일, 미군이 오키나와에 주둔한 제31 해병 원정 부대에 약 2,500명의 이란 파견을 명령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해병대 투입은 ‘지상전’을 염두에 둔 준비로 해석될 수 있어, 과거의 악몽이 되살아났다.
실제로 오키나와의 제31 해병 원정 부대는 이라크 전쟁 당시 최대 비극으로 여겨지는 ‘팔루자 학살’의 실행자였다고 알려졌다. 2004년 11월 팔루자 제압 작전에서, 제31 해병원정단은 ‘어린이와 여성까지 포함해 1만 명 이상을 살해한 것’으로 알려진 소탕 작전을 수행했다.
이처럼 미군의 작전에 오키나와 기지가 활용된다는 점에서, 기지를 제공하는 일본 역시 완전히 무관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2004년 8월 13일 오키나와 국제 대학 인근에서 발생한 미군 헬리콥터 추락 사고 역시 같은 부대 소속 항공기와 관련되어 있었다. 적어도 주일 미군이 단순히 일본을 방어하는 역할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은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이란 공격 이후 어떤 체제를 구상하고 있는지조차 제시하지 않는다. 세속 정권 재건을 목표로, 이란 혁명으로 축출된 팔레비 국왕의 장남 레자 팔레비(1960년생)를 내세운다 해도, 국민의 지지를 얻기 어렵고, 혼란만 심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또한, 개혁파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시아파 지도자들과 긴밀히 연결된 혁명수비대가 군사력은 물론, 금융과 군수산업, 공공사업까지 지배하는 상황에서, 안정적 통치를 실현하기란 쉽지 않다.
중동 전역의 지정학적 구도를 고려하면, 이란과 러시아의 영향력 약화가 일정 부분 진행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저항의 주축’(시아파의 초승달)이라 불리는 세력, 이란이 지원해 온 레바논의 헤즈볼라, 팔레스타인의 하마스, 예멘의 후티 세력은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큰 타격을 입었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소모되면서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 역시 붕괴하고(2024년 2월), 그 결과 이란의 영향력도 일부 제약을 받고 있다.
그러나 중동에서 이란은 여전히 지역 강국으로서 존재감이 크다. 약 9,150만 명에 이르는 인구는 걸프협력회의(GCC) 6개국의 약 5,640만 명을 웃돌며, ‘오일 머니’에 크게 의존하는 ‘기름 위의 누각’과도 같은 GCC와는 달리, 이란은 산업 기반을 갖추고 있다.
트럼프는 이란을 ‘시대착오적 신권 정치’라고 매도하지만, ‘종교 국가’로서 결속된 사회가 보여주는 전시 동원력과 지속력은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다. 앞서 지적했듯이, ‘지상전’으로 전환될 경우, 정규군 약 40만 명에 더해 혁명수비대 약 19만 명, 민병대 바시즈 약 60만 명이 갖는 의미가 현실로 드러날 것이다. 여담이지만, ‘시대착오적 신권 정치’라는 매도는, 과거 태평양 전쟁 당시 미국이 일본에 가했던 인식과도 일정 부분 겹쳐 보인다.
주목해야 할 것은 ‘유라시아 축의 연결성’, 다시 말해, 이란․러시아․중국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유라시아 연대다. 이란 공격을 계기로, 유라시아 대륙의 질서 구조는 한층 복잡하고 미묘한 ‘연결성’(connectivity)을 드러내고 있다.
이란은 상하이협력기구(2023년 7월 가입)에 이어, BRICS(2024년 1월)에도 참여했으며, 중국과는 「이란․중국 25년간 포괄적 협력 협정」(2021년 3월), 러시아와는 「이란․러시아 20년간 포괄적 전략 파트너십 조약」(2025년 1월)을 통해 양자 협력을 본격화하고 있다. 이 협정과 조약은 군사 동맹은 아니지만,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과 북한까지 아우르는 ‘연결성’을 심화시키고, 결과적으로 ‘반미 연대’로 해석될 여지도 커지고 있다.
나아가 중동 재편의 결절점으로 주목받는 국가는 튀르키예이며, ‘에르도안의 야심’은 아랍권까지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또한 걸프 산유국에 ‘약 900만 명의 인도인이 거주’하고 있다는 현실이 보여주듯, 중동에서 인도의 존재감도 빠르게 커지고 있다. 이른바 ‘만다라 외교’로 불리는 비동맹·다각 협력 전략 역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요컨대, ‘민주주의 진영 대 권위주의 진영’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복합적이고 상호 연결된 세계 질서가 형성되고 있으며, Global South의 부상은 이러한 경향을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스라엘과 미국의 공조는 독립국의 최고 지도자를 겨냥한 ‘참수 작전’과 같은 방식으로 ‘힘의 논리’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는 국제 사회에서의 ‘정당성’을 약화시키며 고립을 심화시키고 있다.
트럼프 1기 행정부가 추진한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 간 관계 정상화 구상인 ‘아브라함 합의’ 역시, 핵심 목표였던 사우디아라비아의 참여가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여전히 미완의 상태에 머물러 있다.
또한 ‘이슬람 협력 기구’는 ‘예루살렘 해방’이라는 기조 아래 사우디아라비아 지다에 본부를 두고 있으며, 가자에서 발생한 대규모 민간인 살해에 반발해, 이스라엘은 물론 이를 지원하는 미국과도 거리를 두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유럽 각국도 미국․이스라엘과 미묘한 거리를 두면서, 중동에 점차 관여하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영국과 프랑스는 팔레스타인 국가 승인 문제를 둘러싸고 신중한 입장을 취하는 한편, “미국 주도의 전쟁에는 참여하지 않는다”라고 선을 긋고 있다. 영국은 카타르와의 군사 협력을 강화하고, ‘호르무즈해협 항행 안전 확보’를 위한 공동 구상에 관여하고 있으며, 프랑스는 레바논에 장갑차를 지원하는 등 독자적 대응을 이어가고 있다. 또한 스페인은 미군의 기지 사용을 제한하는 등, 이라크 전쟁 당시와는 다른 행보를 드러내고 있다.
■ 일본이 나아가야 할 길―21세기 외교의 기축을 내다본 선택
에너지 공급원으로만 중동을 바라보는 일본의 시각이, 외교의 표류와 전략적 정체를 낳고 있다. 1973년 오일 쇼크 이후 반세기가 지났지만, 일본 원유 수입은 여전히 약 97%를 중동, 특히 페르시아만에 의존하고 있으며, 그 대부분이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한다. 1차 에너지에서 석유 비중은 21세기 초 약 40%에서 2024년 기준 약 35%로 낮아졌지만, 이는 LNG 의존 증가에 따른 변화일 뿐, 화석연료 의존도는 여전히 80%에 이르는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참사 이후, ‘탈원전’ 기조 속에서 재생 에너지 확대가 강조되었지만, 1차 에너지 기준 재생 에너지 비중은 약 9%(발전량 기준 약 23%)에 머물러 있고, 화석연료 중심의 구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하는 원유는 하루 약 150만 배럴 규모로 추정되며, 그 가운데 미국으로 향하는 물량은 50만 배럴 정도로 제한적이다. 그 결과, 미국의 호르무즈해협 의존도는 낮은 편이다. 이는 21세기 들어 ‘셰일 가스․셰일 오일 혁명’으로, 미국이 세계 최대의 석유․천연 가스 생산국으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미국은 ‘호르무즈 봉쇄’ 자체에 직접적인 공급 충격을 크게 받지는 않지만, 국제 유가 급등에는 매우 민감하다. 이른바 ‘미국의 국화는 카네이션’이라는 농담이 있듯이, ‘차의 나라(CAR NATION)’의 말장난으로, 자동차 의존도가 높은 사회에서, 가솔린 가격 상승은 곧바로 생활비와 정치적 부담으로 이어진다.
그런 점에서 이란 공격이 초래할 수 있는 유가 상승과 ‘호르무즈해협 불안정’은 미국에도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트럼프의 계산에는 이러한 측면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얄궂게도 이란 공격의 반사적 수혜를 입은 나라는 러시아일 가능성이 크다. 외화를 벌어들이는 주요 수단이 화석연료밖에 없는 러시아로서는 에너지 가격 급등이 큰 호재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호르무즈해협 봉쇄’ 우려로 시장이 불안정해진 상황에서, 미국이 러시아산 원유 제재를 일시적으로 완화하는 조치를 한 사실은, 결과적으로 미국 정책의 일관성에 의문을 키우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이 수행할 수 있는 역할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 1979년 이란 혁명 후, 미국과 이란의 관계가 단절된 가운데, 일본은 이란과 ‘우호국’ 관계를 유지해 왔다. 또한 현재 페제시키안 정권에서 외교를 담당하는 압바스 아라그치 장관은 주일 이란 대사(2007~2011년)를 지낸 뒤, 2015년 이란 핵 합의 과정에서 핵심 협상에 참여한 인물로, 일본과의 인적 네트워크도 두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일본이 ‘플루토늄을 보유하면서도 핵 개발의 유혹을 억제해 온’ 입장의 의미를 이해하는 인물로 평가되며, 이란 개혁파 내부에서 ‘일본 모델’에 관심이 이어지는 한, 일본이 중동 안정에 기여할 여지는 여전히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역사에서 진지하게 교훈을 도출하는 일이다. 영국은 2016년, 이라크 전쟁 개입에 대한 7년간에 걸친 독립 조사 끝에 이른바 ‘칠콧 보고서’(Chilcot Report)를 발표하고, 9․11 테러 이후 격앙된 미국에 끌려다닌 블레어 정권의 판단을 상세히 검증했다. 반면, 일본에서는 이러한 정책 검증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걸프 전쟁 당시 약 130억 달러에 이르는 대미 협력 자금의 사용내역도 불명인 상태다.
이라크 전쟁 당시, 일본은 ‘국제 공헌’을 내세워 ‘대미 협력’에 나섰고, 미국의 암묵적 요구였던 ‘boots on the ground’(지상군 배치)에 호응해, 복구 지원을 명목으로 사마와에 자위대를 파견했다. ‘이라크 전쟁의 실패’가 분명해진 지금, 당시 어떤 판단과 논리로 정책이 결정되었는지를 검증하는 일은 일본의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과제다.
자연스럽게 일본이 나가야 할 방향도 분명해진다. 이란 공격과 관련해, 3월에 총리의 미국 방문 이후에도 일본은 놀라울 만큼 침묵을 이어가고 있다. ‘건드리지 않으면 화를 입지 않는다’라는 듯, 트럼프를 자극하지 않으려는 태도로 ‘법적 판단을 유보한다’라는 말만 되풀이한다. 그러나 국가 운영의 기본이 되는 가치 판단을 회피할 수는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일본의 원칙은 시험대에 올라가 있다. ‘무력을 분쟁 해결 수단으로 삼지 않는다’라는 헌법 아래에서, 일본의 판단 기준은 ‘비핵 평화주의’와 ‘국제 협조주의’에 두어야 한다. 자문자답을 해보자. 유엔에 가입한 독립국의 최고 지도자를 겨낭한 ‘참수 작전’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이란의 핵 개발을 부정하는 것은 당연하다 해도, 이스라엘의 핵은 용인되는 것인가. 일본은 중동, 나아가 세계의 비핵화’를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명확히 해야 한다.
나는, 미국이 이라크 전쟁으로 치닫고 있던 2003년 4월호 이 잡지에, 「‘불필요한 전쟁’을 거부하는 용기와 구상―이라크 공격으로 치닫는 ‘시대 분위기’ 속에서」를 기고했다. 그 글에서 나는 명분 없는 전쟁으로 치닫는 미국과 적절한 거리를 둘 것을 주장하며 “일본은 패전과 냉전형 패러다임에 사로잡힌 채 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글을 끝맺었다. 그로부터 4반세기가 흐른 지금, 이라크의 실패를 겪고서도, 일본은 다시 미국의 ‘잘못된 전쟁’에 휘말려서는 안 된다.
전망이 불투명한 상태에서, 21세기 세계 질서를 내다보며 일본이 취해야 할 현실적 행동을 구상할 필요가 있다. 분쟁을 초래한 미국의 페르시아만 함정 파견 요청에 응하는 것이 ‘존립 위기 사태’에 이르는 것은 아니다.
유엔을 기능 부전에 빠뜨릴 것이 아니라, 그 절차와 권위를 존중해야 한다. 유엔 총회를 통해 유엔 헌장을 무시하는 일방주의를 억제하고, 핵 확산 반대 결의를 추진하며, ‘유엔의 요청’에 근거한 함정 파견으로 페르시아만의 안정을 도모해야 한다.
이는 미국을 다시 유엔의 틀 안으로 끌어들이고, 중국과 이란과의 대화를 확대해 ‘공통의 이익’을 확인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리고 다음 단계에서는, 동맹국 미국의 변화와 세계의 구조 전환을 직시한 ‘대미 관계의 재설계’에 정면으로 임해야 한다. 21세기 미․일 관계를 근본부터 재검토하고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
(『세카이』, 202605월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