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운동에 임하는 기본자세

김현환(재미자주사상연구소 소장)

나는 1970년대 중반부터 시카고에서 동포 학생들과 성서연구모임을 시작하였다. 이 모임은 차차 발전하여 조국의 분단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조국통일운동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 모임의 회원들은 엘에이에서 개최되는 통일수련회에도 참여하게 되었고 1980년 5.18민주화투쟁 이후에는 이남의 민주화운동에도 열심히 참여하였다. 1981년에 엘에이로 이사한 후 나는 엘에이 지역에서 민족운동에 참여하는 분들과 합께 <민주자주통일협의회(민자통)>를 만들어 활동하다가 1986년에 이 모임을 더 발전시켜 동지들과 함께 <조국통일북미주협회(통협)>를 조직하고 나는 오래 동안 이 조직의 사무국장으로 활동하였다.

이 당시 나는 30대의 젊은 활동가로서 나의 운동원칙에 어긋나는 사람들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남의 약점을 용서하지 못하고 그 즉시에서 지적하곤 하였다. 그러다 보니 주위 사람들에게 비판도 많이 받았다. 그리고 젊은 혈기에 조급증에 걸려 일이 빨리 진척되지 않으면 화부터 내곤하였다. 그러다가 언제부터인가 내 성격이 변하기 시작하였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통협>의 회원이 된 동지 한 사람 한사람이 너무 소중하게 생각되기 시작하였다. 우리 민족의 분단의 문제에 괸심을 가지고 어렵게 이북을 방문하고 돌아와 기행문을 쓰는 분들, 어렵게 주위의 비난을 무릅쓰고 예술단을 이끌고 북을 방문한 회원들, 유럽에서 시작된 북과 해외학자들과의 대화에 참석한 학자들, 평범한 회원들, 모두가 하나하나 귀한 분들로 생각되었다. 전두환이 엘에이를 방문한다고 할 때 방문을 반대하는 시위를 내가 직접 나서 사람들을 모아야 했는데 그 시위에 참석해주는 동지들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나는 왜 김일성주석이 해방 후 조국건설을 할 때 “돈있는 사람은 돈으로, 지식있는 사람은 지식으로, 힘있는 사람으로 힘으로”를 강조하였는지 알 것 같았다. 우리가 통협 사무실을 운영할 때 어떤 동지들은 가끔 나와 사무실 청소를 깨끗이 해 놓는 연세드신 동지가 있었다. 어느 동지는 빵가계를 하면서 가끔 사무실 냉장고에 빵을 채워넣어주었다. 이미 작고하신 서정균선생은 [조국]이라는 잡지를 매달 내기도 했다. 각계 각층의 동지들이 모두 하나 하나 귀중하다는 것을 나는 차차 느끼면서 동지들의 약점보다는 장점이 보이기 시작하였고 그들이 한없이 고맙다는 생각이 앞섰다.

그러한 경험을 하면서 나는 어떤 사람과 대화하더라도 상대방의 말을 꼬투리 잡아 틀렸다고 말하기 보다는 둘러가며 내가 생각하는 것을 조리있게 설명하곤 하였다. 상대방이 “아, 저렇게도 생각할 수 있구나” 하고 숙고할 수 있는 기회를 주자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연방자세>라고 부른다. 체제와 사상이 다른 남과 북이 통일할 때만 연방자세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들이 다른 사상과 종교, 이념을 가진 사람들과 대화할 때도 <연방자세>가 필요하다고 나는 늘 생각해왔다. 나는 민족운동을 하면서 운동 이론, 법규보다는 사람을 먼저 보게 되었다. 나는 신약성경의 핵심사상은 안식일(사상, 이념, 종교, 법률, 등)이 인간을 위하여 있는 것이지 인간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는 예수의 말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어려운 상황에서 우리 민족의 자주, 민주, 통일을 위하여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는 동지들이 한없이 고마울 뿐이다. 그들이 이러한 민족운동에 참여하지 않으면 가족이나 주위의 사람들에게 욕을 먹을 이유가 없이 잘 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렵게 결단하고 민족운동에 참여했다는 그 이유만으로도 우리는 그들을 존경하고 무조건 그들을 잘 돌봐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질위주의 개인주의 사회인 미국이나 이남에 사는 우리들이 약점이 없는 사람들이 어디있겠는가? 동지들이 약점이 많더라도 그들이 명백한 적이 아니라면 동지를 아끼고 사랑으로 감싸주고 서로 도와주는 풍토를 만들어야 겠다. 이것이 우리가 운동에 임하는 기본자세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미국에서 여러 조직활동을 해오면서 운동원들은 <폭이 넓어야 한다>는 것을 직접 경험으로 배웠다. 조직의 규율을 따지기 전에 동지들의 입지를 먼저 생각해주고 그 동지들이 어떻게 하면 조직 내에서 자신들의 특기를 잘 살려 활동을 잘 할 수 있을 가를 생각하고 아껴주고 도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여기 엘에이에서 6.15활동을 하면서 부회장을 극구 사양해도 소위 종북으로 찍힌 사람도 함께 해야한다는 역대 위원장님들의 권고에 의하여 지금까지 4년간 부위원장을 하고 있다. 어떤 분들은 조용히 부위원장을 그만두는 분들도 있다. 그러면 우리 간부들이 그를 찾아가 다시 활동하도록 여려 면에서 권고도 하여 다시 돌아와 부회장으로 활동하는 분도 있다. 나는 엘에이에서 6.15활동을 하면서 규약을 가지고 누구를 제제한 일도 못보았고 규약을 강조하여 할 일을 못한 일도 경험하지 못했다. 부회장이 더 필요하면 규약이야 어땠든 더 늘려 활동을 더 잘하도록 하면 되었다. 규약은 운동을 더 잘하기 위하여 필요할 뿐이다.

김일성주석은 혁명활동을 시작할 때 동지 하나를 얻는 일부터 시작했다고 늘 강조했다. 우리도 동지 하나를 얻는 일부터 민족운동을 다시 시작하자. 동지 하나를 얻으면 그를 아끼고 사랑하고 진심으로 도와주자. 그리고 조직의 약한 부서나 약한 지역을 도와 그 부서와 지역이 강해지도록 물질적으로나 인적으로나 서로 도와주자. <동지애>야말로 운동에 임하는 기본자세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