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친일파라는 말의 뜻의 변천사를 한번 살펴볼까 합니다.

"이런 쳐죽일 친일파!"

만주벌판에서 나라를 찾겠노라 말달리던 선구자들이 내뱉었을 것 같은 이 말투의 기원은 실은 일제시대보다 훨씬 이전에 민비가 썼던 말입니다.

언제요? 명성황후 민비가 일본의 개방/근대화를 롤모델로 벤치마킹해서 조선도 근대화 하자는 취지의 개화파들, 그리고 조선조정과 관료들의 갑질에 참다못해 들고 일어난 동학운동가들을 학살하면서 내뱉은 말투였습니다. 민비는 이런 개화파들과 동학운동가들의 아우성을 일본과 짜고하는 자신의 권력에 대한 중대한 도전으로 판단하고는, 이들을 학살하기로 작정... 그것도 청나라군대를 요청해서 전부 학살해 버립니다.

즉, "친일파"라는 말은 처음엔 (1) 조국의 근대화를 추구하는 개화파들과 + (2) 조선조정과 양반들의 갑질로 억울함을 호소하는 동학농민운동가들, 이 두쪽 무리들이 조선의 부패한 기득권에 대항한다고 해서 붙여진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민비가 암살당하게 됩니다. 이 때부터 이 "친일파"라는 말은, 부패하긴 했지만 조선조정 및 관료들을 일본이라는 외세를 빌어 무너뜨리려는 반체제 무리들을 일컫는 대명사가 되어 버렸습니다. 즉, 뜻이 바뀐 것이죠. 조선조정의 갑질과 또 근대화의 시대적 요구에 응하고자 하는 그런 무리들이, 반체제 반정부를 상징하는 음... 그러니깐 "체게바라"와 비슷한 상징성의 무리들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긍정적이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부정적이기도 한 그런 정체성... 이게 일제시대 이전에 쓰였던 "친일파"라는 단어의 뜻입니다.


1. "북한의 소행"보다 더 심했던 "친일파의 소행"

그러나, "친일파"라는 단어의 뜻이 한일병합 때에 크게 변합니다.

한일병합후, 동네방네 나라를 팔아넘긴게 "친일파의 소행"이라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합니다. 을사오적이 어쩌구 저쩌구, 국새를 이완용이 훔쳐서 고종이 어쩔수 없이 일본에 나라를 넘길수 밖에 없었느니 뭐니 어쩌구 저쩌구...

여기서, 여러분들 한번 가만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국새를 훔쳤다고 일개 내각대신이 나라를 일본에 팔아넘길 수 있을까요? 또, 아무리 민비라고 하지만, 임금도 아닌 왕후가 청나라군대를 요청한다고 청나라가 군대를 파병했을 까요? 조선의 임금이 간곡히 부탁해도 들어줄까 말까 한데.

이게 무슨 뜻인고 하면, 구한말 이 모든 크고 작은 사건들은 전부 고종이 배후에서 자신의 권력보호를 위해 벌린 짓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신변보호를 위해 주위 인물들 전부 자기 대신 총알받이 시키게 측근들을 통해 그런 소문은 퍼뜨렸다는 뜻입니다. 민비는 이로 인해 고종이 맞을 비난의 화살을 대신 맞고 총알받이가 되어 암살당한 것이 되겠네요.

왜냐하면, 고종은 임금입니다! 또 전주이씨 가문의 장손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백성들에게 돌맞아 죽는 일은 없어야 겠죠? 그래서 대신 백성들의 통곡의 화살을 맞아 줄 총알받이가 필요했던 겁니다. 그런 겁니다. 왕비든 신하든... 고종이 일본에 나라를 팔아먹은 일을 숨기기 위해 누군가 총알받이 시키기 위해 이 "을사오적"이라는 것도 등장한 것이구요.

이때부터 이 "친일파"라는 의미는, 음.... 그러니깐 일종에 국정원이 툭하면 "북한의 소행"이라고 언론에 내뱉는 말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디도스 공격이 와도 "북한의 소행", 천안함침몰도 "북한의 소행", 세월호도 "북한의 소행", 518사건도 "북한의 소행" 전부 "북한의 소행"으로 계속 여론몰이 시키고 있습니다. 왜 일까요? 이 모든 일에 진범이 국정원이기 때문에 수사할 수 없는 가장 쉬운 곳 "북한의 소행"으로 몰아가는 것입니다. 검찰이 북한에 들어가 수사를 하겠습니까 뭘 하겠습니까?

이와같이, 이 조선/대한제국에 모든 불행 또한 전부 "친일파의 소행"이 된 것입니다. 길가다가 재수없이 미끄러져 넘어져도 "친일파의 소행" 한여름에 감기가 걸려도 "친일파 때문에..."

실제로, 최근에 와서야 고종이 일본정부로부터 거금을 하사 받고, 일왕 바로 아래 서열 귀족으로 귀화한 일이 알려지게 되었죠. 2000년대 이전만 해도 사학자들이 사회적 합의가 있던 것인지, 아니면 자신들도 몰랐던 것인지, 이 일에 대해 전혀 언급이 없었습니다. 그냥 무조건 "을사오적"이 어쩌구 저쩌구 3류 소설같은 얘기만 늘어놨죠. 일본에 귀족으로 귀화한 후 이들 고종일가가 일년에 일본정부로 받은 예산이 실로 어마어마 했다고 하네요.

그런데, 왜 친일파 청산하자는 소위 진보 세력들은 나라 팔아먹은 진범 고종에 대해서는 쉬쉬하고 절대로 언급을 피하고 있는 것인지? ("친일파"라는 여론몰이가 정치적인 목적이 있지 역사를 바로 세우거나 진실을 파헤치자는 뜻이 아닌 것으로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이런식으로 일제시대 초기에 대한제국은 "이런 쳐죽일 친일파!"에 의해 일본에 넘어간 것으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어떤 한 무리들을 집중적으로 마녀사냥질 해서 공공의 적을 만드는 것.... 이건 권력을 가진 무리들에겐 아주 쉬운 일인 듯 하네요.


2. 유관순의 "대한독립만세"와 양립한다고 보기 힘든 "친일파"의 의미

자, 그런데 1917년 제정 러시아의 황제 로마노프2세가 강제로 제거당하고, 볼셰빅 공산혁명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점차 세력을 동북아로 확장해 나갑니다. 문제는 이 시대적 변화 속에 이 "친일파"의 의미가 또 한번 바뀌게 됩니다. 이제는 나라를 팔아먹은 무리들이 아닌, 동북아 지역에 공산혁명을 하기위해 반드시 쫓가내야 할 적군이자 이 지역을 장악한 동네 깡패로서의 의미가 부여됩니다.

아니나 다를까. 일본이 만주에 이 북쪽으로부터 세력을 확장하는 공산혁명세력을 대항하기 위해 대항마를 만드는데 그게 바로 "만주국"입니다. 청나라의 마지막황손 애신각라 푸이를 내세워 이 만주국을 세워주었죠. 그리고, 북쪽으로 부터 소련공산당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엘리트층을 양성시키길 원했는데, 이게 바로 "만주군관학교"입니다. 여기에 수많은 장개석과 같은 한국, 대만, 일본의 수재들을 모아 엘리트 훈련을 시키고, 만주에 미국과 같은 동북아민족 대동단결한 강대국 체제를 만들길 원했었습니다. 박정희대통령이 이 만주군관학교 출신이죠. 애신각라 푸이와 몇번 만났었을 거라 생각됩니다.

그러니, 북조선의 입장에서는 박정희는 분명히 적이 맞습니다. 공산혁명을 하고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는데 반드시 뿌리 뽑아야 할 적폐였던 것이었죠. 당연한 겁니다.

반면, 사회주의가 아닌 자유민주주의를 택한 대한민국의 입장에서는 박정희는 적이 아닙니다. 위에 설명드린 바와 같이, 만주군관학교는 공산혁명세력에 대한 대항마를 양성하기 위해 특화된 학교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일본천황에 선서를 했다고는 하지만, 군대에서 최고국군통수권자나 왕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것은 어느 나라에나 장교가 되기 위해 반드시 거쳐가는 절차입니다. 그리고,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패전했기 때문에, 1945년도 해방되어 1948년도에 정부 수립해서 주권국가의 일원으로써 살았던 것이구요.

만주쪽에 공산혁명으로 나라를 세우길 원했던 "독립운동가"들과는 달리, 남쪽의 독립운동은 뭐랄까... 국민 계몽운동을 주도한 도산 안창호 선생 코드쪽 독립운동입니다. 일제시대가 현실인 것을 인정하지만, 우리 민족의 역량을 키워 전세계 만방에 "우리 한민족도 이제 일본으로 부터 독립할 준비가 되어 있다!"라는 것을 보여 주길 원했던 것입니다. 일본을 때려잡자가 아니라, 우리도 일본으로 부터 독립할 성숙된 국민의식과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을 국제사회에 증명해서 독립을 인정받자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문재인정부가 가는 비슷한 방향인 듯 해요.)

굉장히 다르죠?

북쪽은 공산혁명을 해 일본을 때려잡고 우리 민족을 해방시키길 원했고, 반면 남쪽은 국민의식과 역량을 키워 우리 스스로 주권국가로써 일본으로 부터 독립할 수 있게 힘을 키우자는 것이었고. 당연히, 북쪽에서 보면 박정희는 죽일넘이고 "친일파"이고, 남쪽에서 보면, 박정희는 그냥 일제시대에 태어나 군인으로 살다가 해방후 부강하고 잘사는 나라를 만들어 보겠다고 헌신한 국가 지도자인 것입니다.

즉, 일제시대 후반기로부터 현재까지에 이르는 이 "친일파"에 대한 논란은 대한민국 사회에선 절대로 나올 수 없는 논리입니다. 또, 이 친일파라는 것이 구한말에 나라를 팔아먹은 친일파라는 것인지... 아니면 공산혁명에 거침돌로 제거해야 했던 적폐로써의 친일파인지... 이에 대한 구분조차 진보진영은 스스로 헷갈리고 있습니다. 정치적으로 반대세력을 친일파로 몰아부쳐 죽이는 일에만 혈안되어 있을 뿐. 박정희는 분명히 구한말때 나라 팔아먹은 친일파가 아니거든요. (오히려, 박정희의 아버지는 동학운동가였죠.) 이런 논리는 공산혁명으로 사회주의 세상을 건설하자는 북조선에서 나오는 논리인 것입니다.

물론, 세월이 많이 지나서 이젠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이 친일파 논란이 원래 북조선 공산혁명을 위해 비롯된 것인지 아닌지... 또 대한민국 체제와는 양립할 수 있는 논리인지 아닌지... 아무도 그런 것에는 관심없는 듯 합니다. 그냥, 막연하게 친일파를 청산해야 한다고들 자꾸 여기저기 떠들어서, 그런가 보다... 그게 맞나보다... 그러는 거죠.

헌법적으로도 무슨 "이 사람은 조상이 친일파라서 이래야 하느니 저래야 하느니" 하는 진보측의 정치적 주장은 대한민국 헌법에 위배되고 법적인 효력이 있을 수 없습니다.


3. 동학농민운동과 개화파의 근대화운동...

다시 구한말로 돌아가, 이 개화파와 근대화운동과 동학농민운동은 그 당시 현실과 갈등을 가장 잘 반영해주는 운동입니다. 어떻게 하면 나라를 살리고 백성을 살릴까.... 하나는 내부적 조선조정 및 양반층의 부패로 인한 갑질로인해 농민들이 들고 일어난 것이고, 또 하나는 근대화를 해야 하는 외부적 압력에 대한 반응으로써 일어난 것이구요. 조선조정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이 두쪽 중 그 어느 하나도 용납할 수 없는 처지였습니다. .... 왜냐하면, 이런 변화는 나라 전체가 뒤바뀌어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생긴게 대한제국입니다. 조선조정이 청나라군대를 요청해 학살했지만, 그후 태도를 조금 바꾸어 개화파들과 동학운동가들의 정신을 어느정도 반영해서, 일본을 롤모델로 근대화도 하고, 또 계급성분주의도 타파해서 근대적 사회로 거듭나는 모습이라도 보여주자는... 조선조정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놓지않고 어느정도 중간지대에서 타협한 것이죠.

물론, 오래가진 못했습니다. 중간지대에서 적당히 타협하는게 아니라, 뭔가 근본적으로 변해야 했던 것이기 때문에. 이런 변화의 바람을 제대로 타지 못한 대한제국은 결국 일본의 통치하에 넘어가게 된 것입니다.

현 대한민국의 정체성 또한 이 근대화를 추구한 개화파들과 동학농민운동가들의 정신을 이어받은 것을 기초로 하고 있습니다. 즉, 조선말기 조정과 민비가 "이런 쳐죽일 친일파!"라며 그토록 죽이려 했던 이들의 정신을 이어받은 후손들이 세운 나라가 북조선과 대한민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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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렇다면 북조선의 정통성은 어떻게 된 것일까요?

옛날엔 "대한독립만세"를 외친 유관순의사때문에, 또 사회주의 체제와 공산혁명은 훨씨 이후에 일이기 때문에, 절대로 북조선에는 우리 민족의 정통성이 없다고 보았지만, 최근에 그게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왜냐하면, 이승만, 김영삼, 이명박, 박근혜, 같은 국가 지도자들이 대한민국의 주권적인 선택을 미국만 의지하려는 것을 보고, 삼일절 "대한독립만세"와 동학농민운동 같은 주권을 위하고 갑질에 대항하는 싸움을 하지 않은게 이상했고, 오히려 이런 모습을 북조선이 보여왔기 때문입니다. 오하려, 자주적으로 주권을 되찾기 원하는 박정희를 암살해버렸죠.

그래서 그런지, 문재인대통령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이 삼일절에서 찾고 있었다는 것은 굉장히 절묘합니다.

우리민족의 오리지날 정통성의 두개의 축인 개화파운동과 동학운동 중, 개화파/근대화의 열매는 대한민국 쪽에, 반면 동학운동/독립운동의 열매는 북조선 쪽에서 맺힌 듯 해 보이는데, 이 삼일절은 이 두개가 아직 갈라져 나가지 않고 하나의 목소리를 내었을 때 이거든요.

현재 한쪽에선 "친일파!" 다른 한쪽에선 "빨갱이!" 이렇게 으르렁 되고 있지만, 조금 다른 시각으로 보면, 서로는 오히려 상호보완적이라는 것을 금방 알수 있습니다. 한쪽은 근대화에 성공하였고, 다른 한쪽은 주권국가 독립성에 성공하였기에, 둘은 분명히 서로 미워해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서로의 장점으로 서로를 단점을 보완시켜 줄 수 있는 존재들 입니다.

어쩔수 없이 북조선과 대한민국은 서로가 합쳐야 서로 반쪽짜리가 아닌 하나의 완전체로써의 우리 한민족의 진정한 정체성을 되찾을 것 같아 보입니다. 이게 바로, 제가 남북평화통일을 바라는 이유입니다.

뭐, 연방제든지, 다른 것이든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는 실무자들이 최선을 다해 현실적으로 잘 고안해 봐야겠죠.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