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엔탈리즘과 동아시아*
근대 동아시아의 ‘他者化’와 저항의 논리* 이 논문은 2004년 학술진흥재단의 지원으로 연구되었음(2004-073-BS3004)
金 正 賢 (韓國外國語大)
Ⅰ. 머리말
Ⅱ. 근대 동아시아의 ‘타자화’와 오리엔
탈리즘
1. 근대 서양문명과 일본의 ‘타자’로
만들어진 ‘동양’
2. 오리엔탈리즘의 체계화와 내면화
Ⅲ. 동아시아의 연대와 저항의 논리
1. 동아시아 연대론
2. 오리엔탈리즘 극복을 위한
저항의 논리
Ⅳ. 맺음말
Ⅰ. 머리말
오리엔탈리즘은 근대 서양의 제국주의적 충격에 의해 전 세계에 확산되고 받아들여졌다. 오리엔탈리즘이란 에드워드 사이드가 지적했듯이, ‘동양을 지배하고 재구성하며 권위를 갖기 위한 서양의 사고 양식’이며, 주체인 서양에 의해 객체인 동양이 타자로서 관찰․탐구․정의되는 것을 의미한다. 오리엔탈리즘은 서구의 식민주의, 인종차별주의, 자민족 중심주의 등과 결부된 동양에 대한 지배 양식으로 대두하여, 비서구를 서구라는 모범을 ‘결여’하거나 ‘일탈’한 문명 부재로 규정하는 논리로 작동해 왔다. 이리하여 서양-오리엔트, 문명-야만, 근대-전통, 합리-불합리, 선진-후진이라는 이항대립의 오리엔탈리즘 담론은 ‘스스로 자신을 대변할 수 없는 동양’을 대신하여 서양에 의해 학문적으로 규율=훈련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면서 ‘권위’를 갖고 재생산되어 왔다. Edward Said, Orientalism, Vintage Books, 1978. (박홍규 역, 오리엔탈리즘, 교보문고. 1991.)
19세기 후반 오리엔탈리즘에 의한 문명/야만의 논리는 근대화론의 근대/전통의 틀로 바뀌었을 뿐 전후 동아시아 연구자들에 의해 일관되게 이어져왔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사회과학자들에 의해 본격적으로 개발된 근대화 접근법 역시 그 이론의 전제는 19세기의 선구자들과 마찬가지로 서양의 제도및 가치와 어느 정도 비슷한가를 기준으로 다른 국가들의 진보정도를 판단하였다. 서양과의 만남을 토대로 하여 그 이전의 동아시아 역사를 조망했을 때 1950, 60년대에도 여전히 상대적으로 변화가 결여되어 있는 것으로 생각되고 있었다. 그런 사실은 전후 미국에서 나온 동아시아 역사에 관한 교과서 중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동아시아의 역사시리즈 (Fairbank, Reischauer, and Craig, History of East Asian Civilization, (Houghton Mifflin, 1962) East Asia: The Modern Transformation (Houghton Mifflin, 1965)에서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에 따르면 “동아시아 국가들에서는 사고와 행동의 주요한 전통적 형식은 일단 확립되지 마자 관성을 얻게 되어 그 형태 그대로 지속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 국가들의 환경이 서양과의 접촉이 없는 상태에 머물러 있는 한, 전통의 틀 안에서의 변화(change)는 일어날 수 있었다 하더라도 틀 그 자체의 변혁(transformation)은 일어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식민지의 독립으로 제국주의의 정치 경제적 충격은 약해졌지만, 사상이나 관념 혹은 문화적 영역에서 오리엔탈리즘은 오늘날도 여전히 강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에 대해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 비판 등 ‘탈’식민주의 전략과 더불어 많은 학자들이 서구 중심적 세계관을 극복하려고 노력해왔다. 실제 19세기 이전에는 유럽 중심주의가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비판 Andre G. Frank, Re Orient-Global Economy in the Asian Age,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98(이희재 옮김, 리오리엔트, 이산, 2003).
, 서양의 충격으로 중국이 비로소 역사를 진전시켰다고 파악하는 ‘충격-반응’이론이나 근대화론 및 제국주의 패러다임이 갖는 서양 중심주의를 비판한 후, 그 대안으로 제시한 중국 중심의 접근법 Paul A. Cohen, Discovering History in China, Columbia University Press, 1984(이남희 역, 학문의 제국주의 -오리엔탈리즘과 중국사, 산해, 2003).
, 한국에서 학문의 서구 중심주의 추종과 대외 종속성에 대한 비판들이 지적된 바 있다. 강정인, 서구중심주의를 넘어서, 아카넷, 2004.
특히 1990년대 탈냉전이라는 국제 정세의 변화와 동아시아의 경제성장으로 서구 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을 넘어 문명적 대안으로 동아시아 담론이 등장하였다. 그런데 주체적인 관점을 수립하기 위해 등장한 동아시아 담론은 그것이 갖는 긍정성에도 불구하고 간단하게 규정할 수 없는 문제들이 포함되어 있다. 우선 동아시아가 과연 하나의 통합된 역사적 지역으로 개념화할 수 있는가도 문제이다. 딜릭에 의하면, 동아시아란 그 실체가 지리적 범위에 갇힌 고정된 것이 아니라 그곳에 사는 인간들의 행위(인식행위를 포함해서)에 의해 변하는 문화적 구성물이다. Arif Dirlik, “The Asian-Pacific Idea: Reality and Representation in the Invention of a Regional Structure”, Journal of World History, Vol3, No.1(Spring 1990), 창작과비평, 1993. 봄호; A. 딜릭, ｢아시아 태평양권이란 개념｣, 정문길 외편 동아시아, 문제와 시각, 문학과 지성사, 1995.
지역적 개념은 지리적으로 고정된 것이 아니라 인식 주체의 경험에 따라 변화하는 ‘창안물’ 동아시아 지역의 명칭은, 서구의 중심이 영국일 때는 극동(Far East)으로, 2차 대전후 미국이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나서는 ‘동아시아’로 불렸다. 그런데 1970년대 중반이후 미국이 아시아 대륙 연안의 성장하는 지역에서 헤게모니를 관철하기 위해 동-동남아시아를 재평가하면서 아시아-태평양 이란 어휘가 주목받게 되었다고 한다(백영서, ｢동아시아의 근대화와 사회문화 변동｣, 동아연구, 46권, 2004, pp.114-115).
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론은 서로 다른 논리와 입장으로 나뉘어져 있는 실정이다. 예컨대 탈냉전 이후 동아시아의 현실적인 이해에 기반한 상호협력과 연합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한 논의, 경제발전에 대한 설명방식이자 자신감의 표현으로 ‘동양’ ‘유교’ ‘아시아적 가치’ 등이 되살아나는 것, 또는 서구중심주의에 대한 극복과 대안 논리로 동아시아성에 대한 탐색, 그리고 일국적 시각과 세계체제적 시각의 매개항으로 제기된 ‘동아시아적 시각’ 등 다양하다. 정문길 최원식 백영서 전형준 편, 동아시아, 문제와 시각 문학과 지성사, 1995; 정문길 외편, 발견으로서의 아시아, 문학과 지성사, 2000; 백영서, ｢진전한 동아시아의 거처: 20세기 한중일의 인식｣ 동아시아인의 ‘동양’인식:19-20세기, 문학과지성사, 1997.; 조병한, ｢ 90년대 동아시아담론의 개관｣, 정재서 편 동아시아연구, 글쓰기에서 담론까지, 살림, 1999; 하세봉, ｢한국학계의 동아시아 만들기｣, 부대사학 23, 1999; 등 참조.
이렇게 동아시아의 역사적 실체와 개념정의에 대한 논의가 분열되어 있는 이유는, 오리엔탈리즘에 의해 왜곡된 동아시아의 역사성이 현재까지 남아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아시아 담론의 과제는 근대 이후 여러 번 반복되었던 일본 주도의 아시아주의나 동아연대론 등의 역사적 유산을 해체하고 극복하는 것이다. 또한 서구와 일본의 오리엔탈리즘의 유산이 중층적으로 남아있는 근대 동아시아의 역사성이 재해석되어야 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본 연구가 진행되었지만, 여기서 문제의식 전부를 망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본고는 우선 동아시아에서 서구의 오리엔탈리즘과 일본에 의해 재생산된 오리엔탈리즘에 의해 타자화되고 허구적으로 만들어진 ‘동양’과, 그것이 동아시아에 내면화된 역사적 흔적을 조사하고자 한다. 근대 동아시아에서 ‘서양화’는 한편으로는 제국주의에 의해 강요되었지만 다른 한편 자발적인 측면도 있다. 즉 오리엔탈리즘의 체계화와 내면화이다. 다음은 오리엔탈리즘의 왜곡에 대한 비판과 저항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서양에 공동 대응하기 위해 등장한 동아시아 연대론의 논리와 그 한계, 그리고 오리엔탈리즘 극복을 위한 저항의 논리를 주체의 성립이라는 측면에서 재해석할 가능성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Ⅱ. 근대 동아시아의 ‘타자화’와 오리엔탈리즘
1. 근대 서양문명과 일본의 ‘타자’로 만들어진 ‘동양’
‘동양’은 유럽인이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설정한 ‘타자’였다. 자기와 타자의 관계는 ‘문명-야만’의 틀로 규정되었다. 유럽은 19세기에 들어서면서 동아시아에 유럽의 문명을 따르도록 강요하였고 이러한 팽창과 강요는 과학기술과 군사력의 우월성에 기초하고 있었다. 장인성, ｢自己로서의 아시아, 他者로서의 아시아｣, 新亞細亞, 1998 겨울호, p.10.
19세기 후반 동아시아 3국의 서양문명에 대한 대응은 ‘야만’으로 적대시하는 단계, 제한적으로 수용하는 단계, 그리고 전면적 수용단계 등으로 나아가는 보편성을 보여준다. 서양과 접촉 초기 단계에서는 3국이 모두 쇄국정책의 단계를 거쳐, ‘선별적 수용’인 중국의 중체서용(中體西用), 한국의 동도서기(東道西器), 일본의 화혼양재(和魂洋才)라는 대응의 공통성을 보여주었다. 신연재, ｢동아시아3국의 근대사상 형성과 서양문명의 수용｣, 울산대학교 사회과학논집 제12권, 2002. p.129.
그런데 메이지 유신 이후 동아시아에서 홀로 자신만이 서양화=서구적 근대에 성공했다고 자부하게 된 일본이 동아시아에 대한 서양의 제국주의적 시점과 동일한 시점을 갖게 되면서 점차 ‘동양’을 타자화하는 일본형 오리엔탈리즘을 만들어나갔다. 이리하여 동아시아의 오리엔탈리즘은 서양과 동양의 이항대립만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라, 서구-일본-동양의 중층적 구조로 진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오리엔탈리즘의 산물로써 ‘東洋’이라는 개념이 표상화되었다. 즉 ‘東洋’이란 용어는 처음에는 단순히 ‘서구가 아닌 것’이라는 의미로 사용되다가, 일본이 자기를 서구와 동일시하면서, 일본이 포함되지 않는 여타의 동아시아 지역을 의미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스테판, 다나카 저/ 박영재, 함동주 옮김, 일본 동양학의 구조, 문학과 지성사, 2004.
그것은 다음과 같은 역사적 과정을 거친다.
먼저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의 아시아 정책은 근대 자본주의체제와의 접촉에 의한 아시아에서 일본의 분리로 출발하였다. 유교, 한자 등의 기존 문화권으로서의 조선, 중국과의 동질성 보다는 서구적 근대 국민국가의 수립과 직결되어 있는 국방, 외교 우선의 정책이었다. 물론 일본에서도 서양에 대한 공동의 방어를 위해서 조선 또는 청과의 연합 또는 동맹을 주장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정책으로 관철된 주류적 경향은 서구와의 대응과정에서 비롯된 세계관에 의해 중화적 동아시아에서의 분리였다.
서구와의 불평등 조약체제 하에 편입된 중국은 전통적인 중화체제를 배경으로 동방의 연대를 주창하였지만, 조선의 개항 전후 청은 근대 서구의 압력에 맞서기 위해 연일(連日)정책을 표방하였다. 이것은 黃遵憲의 朝鮮策略에서 “防俄 親中國 結日本 聯美國”으로 표현된다.
점차 일본이 같은 문화와 동병상련의 처지에 있다는 믿음에서 깨어나기 시작하면서 서구와의 연대로 일본을 제어하는 방일(防日)정책으로 전환하였다. 그것은 한편으로 러시아와 국경문제가 타결되었고, 다른 한편으로 중국의 변경이었던 오끼나와․조선에 대한 일본의 진출에 위협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영미의 서구세계는 1876년 ｢강화도조약｣에서 1882년 ｢조미조약｣에 이르는 시기에 일본과 협력한 반면, 중화세계는 영국, 미국, 프랑스에 의해 점차 분할되어 갔다. 특히 1884년 청불전쟁에서 패배한 청국을 “이미 망한 나라”로 인식한 일본에서는 ｢支那帝國分割圖｣가 신문에 게재되었으며, 조선을 중화세계에서 분리시키려는 갑신정변의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上垣外憲一, ある明治人の朝鮮觀, 筑摩書房, 1996, p.219.
이 당시부터 중국을 더 이상 중화(中華)로 보지 않고 세계의 여러 문명 중 한 지류(支那) ‘支那’라는 명칭은 China를 본뜬 것이거나 만주족 청나라의 별칭으로 알려져 왔으며, 청말 만주 타도에 뜻을 둔 중국의 개혁가들이 ‘청국’을 싫어했기 때문에 ‘지나’라는 명칭을 의식적으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청일, 러일전쟁 승리후 ‘지나’라는 명칭에 중국을 경멸하는 느낌이 담기게 되면서, 일본은 청조가 무너지고 중화민국이 수립된 뒤에도 여전히 중국이 정한 공식 국호 대신 ‘지나’로 불렀다. 일본 정부는 중화민국이 수립된 지 20년이 지나도록 외교문서에 주권국인 중국이 정한 공식 국호 대신 ‘대지나공화국’이라는 명칭을 썼는데, 1930년에 중국정부의 요청에 따라 비로소 이를 바로잡았다 (嚴安生, 日本留學精神史-近代中國知識人の軌跡, 岩波書店, 1991 / 한영혜 옮김, 神山을 찾아 동쪽으로 향하네 - 근대 중국 지식인의 일본 유학, 일조각, 2005, pp.72-73).
로 보게 된 일본은 망해가는 중국-동양과의 차별성을 확실히 준비하고 있었다.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가 ｢탈아론(脫亞論)｣(1885, 時事新報)에서 아시아의 ‘나쁜 친구’들과 관계를 끊는 것이 일본의 살 길이라고 본 것은, 근대 서구와의 관계에서 재창출된 아시아관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후쿠자와는 일본이 서구열강의 오리엔탈리즘적 시선에 의해 ‘조선’ ‘지나’와 동등하게 취급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아시아에서 자신을 분리시켜야 함을 호소한 것이다. 이는 아시아 내부에 ‘문명-야만’의 틀을 적용하여 황인종 내 민족적 차별화를 시도한 ‘일본형 오리엔탈리즘’ 이라 할 수 있다. 후쿠자와의 ‘탈아입구’론이 보여주듯, 문명=서양문명으로 받아들인 일본은 지리적으로 동아시아에 속했지만, 스스로를 ‘아시아의 영국’ ‘명예 백인’으로 규정하기 시작하였다. 박지향, 일그러진 근대-100년전 영국이 평가한 한국과 일본의 근대성, 푸른역사, 2003.
심지어 일본인은 황인종이 아니라 백인종이라는 극단적인 주장까지 제기되었다. 장인성, ｢‘인종’과 ‘민족’사이:동아시아 연대론의 지역적 정체성과 ’인종‘｣, 국제정치논총, 제40집 4호, 2000, p.134.
이 시기 일본은 동양을 ‘야만-타자’로 설정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나갔다.
그러나 후쿠자와의 문명론은 정작 문명이란 무엇인가, 문명사회란 어떤 사회인가에 대해서는 명확한 개념규정이 없다. “문명이란 상대개념이다. 문명화란 야만을 이탈하여 진보하는 과정”이라고 한 후쿠자와의 문명개념은 야만의 상대개념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또한 후쿠자와가 기조(Guizot)의 유럽문명사(1828)를 자신의 문명론 전개의 기반으로 삼은 것은, 유럽문명사가 갖는 구조적 성격을 후쿠자와도 공유한 것이다.. 子安宣邦, ‘アジア’はどう語られてきたか-近代日本のオリエンタリズム, 藤原書房, 2003. p.13.
결국 문명사회란 미개사회 및 정체사회의 ‘상대적’ 개념이고, 여기서 필요한 것은 야만사회의 ‘발견’이었다. 일본은 이 시기 일본은 문명/야만 이라는 새로운 문명어의 딱지붙이기에 나섰는데, 그 전형적인 사례로 1903년 오사카 박람회에서의 “인류관”을 들 수 있다. 그것은 파리 박람회를 본떠 학술 인류관이라 불리는 전시관을 만들고 중국, 대만, 북해도, 류쿠, 조선, 아프리카인 등의 ‘야만’적인 풍속을 실지에서 보여주는 것이었다. 坂元ひろ子, 中國民族主義の神話-人種身體ジェンダ-, 岩波書店, 2004.
특히 ‘야만’적 ‘지나’의 사례로 전족과 아편 기구를 각종 박물관에 전시하여 드러내 보이고자 애쓴 것은, 일본에 의해 ‘만들어진 야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이나 조선이 ‘정체되어 있으며, 변화가 없다’는 것은 서양인이 서양인의 시각에서 마음대로 ‘문명이란 무엇인가’ ‘어떤 문명이 중요한가’를 정의하고, 또 그것을 중국과 조선에 외재적으로 적용하고, 그 결과 ‘문명, 변화가 없다’고 결론지은 것이다. 그것은 19세기 유럽과 동아시아의 ‘역전’에 기초하여 수립된 유럽중심사관을 그대로 받아들인 역사인식 Andre G. Frank, ReOrient-Global Economy in the Asian Age,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98 (이희재 옮김, 리오리엔트, 이산, 2003).
일 뿐, 실제로 정체되어 있었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이러한 ‘서양’을 전제로 한 ‘동양’에 대한 유럽중심사관의 서술은 ‘서양’이라는 개념이 실은 상대적인 개념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간과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같이 만들어진 동양의 ‘야만’은 그것이 ‘서양 또는 문명이 아니다’라는 관점에서 정의된 것이기 때문에 쉽게 기술되어 왔다. 하지만 그것은 전혀 분석적이지 않다. 만약 ‘서양’에 대칭되는 비서구로서의 ‘동양’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당연히 ‘서양’이라는 개념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이 아니다’라는 개념(비서양이라는 개념도 포함)은 쉽게 기술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유용할지 몰라도 분석에 있어서는 전혀 무의미한 것이다(폴 코헨/이남희 역, 학문의 제국주의-오리엔탈리즘과 중국사, 산해, 2003. p.194).
예컨대 그 논의의 초점은 중국이나 조선이 ‘왜 정체되고 자본주의가 발전하지 않았는가’에만 두어졌을 뿐, 서구의 폭력적인 자본주의 발전 동아시아에서 자본주의의 맹아가 본격적인 자본주의로 발전하지 않은 것은 국가권력에 의한 폭력적인 본원적 축적이 없거나 약했기 때문인 반면 서구에서는 19세기에 들면서 폭력적으로 자본주의가 개시되었고 일본도 그 뒤를 이었다(中村哲, ｢世界史をどう促えるか-東アジア史の觀點から｣, 唯物論と現代, 31. 2003, p.26).
이 과연 바람직한 ‘문명’인가 라는 것에 대해서는 애초부터 논의되지도 않았던 것이다.
2. 오리엔탈리즘의 체계화와 내면화
1) 일본형 오리엔탈리즘의 체계화
일본형 오리엔탈리즘의 근거가 근대적 서구에서 비롯되었듯이, 일본의 동양관도 근대적 서구의 역사방법론과 결합되어 있다. 일본에서 근대 역사학은 1887년 제국대학에 사학과가 창설되면서 랑케의 제자 리스(Ludwig Riess)를 초빙하여 서양사학으로 출발하였다. 이 서양 실증사학의 기초 위에서 리스의 제자 시라토리(白鳥庫吉)와 그의 문하에서 배출된 인물들이 일본의 관학 아카데미즘을 형성하고 동양사를 연구하였다. 일본 동양사학의 이러한 탄생 계보는 오리엔탈리즘적 경향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즉 서양의 근대적 합리주의와 아카데미즘을 기초로 ‘동양사’를 창출하고, 이에 기반하여 근대 일본이 아시아의 최선진국으로서 유럽과 대등한 나라이며, 중국과 다를 뿐 아니라 문화적 지적 구조적으로 더 우월하다는 정체성을 확립해 갔다. 서양과 비교하여 여타의 동양을 후진지역으로 타자화시키고, 그 속에서 일본의 정체성을 마련해 나갔던 것이다. 즉 일본과 동양의 관계를 중심과 주변부, 현재와 과거의 것으로 규정한 ‘동양학’이 만들어졌다. 스테판, 다나카 저/ 박영재, 함동주 옮김, 일본 동양학의 구조, 문학과 지성사, 2004.
그 대표적인 사례로 시라토리 사학의 특징은 오리엔트 연구자의 분류학에 도전하여 아시아의 과거를 서양의 오리엔트로부터 ‘일본의 동양’으로 전환시킬 새로운 분류체계를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시라토리는 그러한 동양사의 구상만이 서양 중심의 위계적인 세계질서로부터 일본을 자유롭게 하여 유럽에 대한 아시아의 열등한 지위로부터 스스로를 벗어나게 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강상중 저/이경덕 임성모 옮김, 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서, 이산, 1997, p.132.
또한 독일 역사학파 경제학의 대가 브렌타노 밑에서 공부한 후꾸다(福田德三)의 “정체성론”을 들 수 있다. 그는 1902년 조선을 여행하고 난 후 조선에는 서구나 일본과 달리 봉건제가 결여되어 정체되어 있다고 보았다. 그는 중화적 동아시아 문화의 공통성을 주장하는 중화주의자들이나, 고대 일본의 조선 지배 등을 주장하는 국학자들과는 달리, 근대적 방법론으로 일본과 조선의 서열을 정하고, 후진적 조선의 민족적 특징을 소멸시켜 일본과 동일한 것으로 동화시켜나가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오리엔탈리즘의 역사학적 서열화 내지 권력화의 단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탈아론적 발상에서, 일본과는 분리된 대상으로서의 ‘동양’ 지역이라는 개념이 등장하는 한편, 이전의 문화적 규범이었던 중국사 중심의 동양사를 일본사 중심으로 바꾸는 작업이 진행되었다. 奈須惠子, ｢中等敎育における[東洋史]槪念の展開｣, 敎育學硏究, 59-4. 1992.
일본은 지역으로서의 ‘동양’의 일원이고 그 盟主이지만, 그러한 동양 지역의 맹주로 될 수 있었던 것은, 뒤떨어진 ‘지나’ 문명을 벗어나 서양문명을 적극적으로 섭취한다는 진보의 길을 걸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논어｣를 만든 ‘지나’와 ‘아편’을 피는 ‘지나’를 함께 설명해야 한다는 논리가 전제되면서, 중국 고전을 연구하는 데에도 중국 학자보다도 오히려 일본학자가 연구하는 편이 더 낫다고 여기게 되었다.
이러한 오리엔탈리즘적 중국학이 등장한 것은 근대 중국을 보는 일본학자의 시각이 서양 제국주의의 시각에 맞춰져 있음을 의미한다. 헤겔적인 ‘지속하는 帝國’으로서의 중국상은 늘 근대유럽으로부터 중국 인식 안에 재생되고 반복되었듯이, 근대일본의 중국인식에도 재생되어 왔다. 子安宣邦, ｢近代知と中國認識-支那學の成立をめぐつて｣, 脫西歐の思想, 岩波書店, 1994, p.68.
그 대표적인 중국연구가 나이토 코난(內藤湖南)의 支那論이다. 1914년 초판이 발행된 支那論은 1924년 新支那論, 1938년 支那論으로 합본되어 간행되었다.
중국을 둘러싼 근대 일본의 학술적 언설로써의 ‘중국학’이자 동시에 시대에 영합하는 근대 일본의 정치적 언설로서 적절한 시국론이었던 이 책은 ‘정체되고 둔하고 무겁고 타성에 젖은 노대국 중국’을 표현하였다. 또한 중국사회는 내부에서는 혁신이 안 되고 외부에서 처방이 베풀어지는 대상으로 폄하되었다. ‘지나론’이라는 명칭 자체가 자기 혁신없이 ‘지속하는 帝國’으로서의 중국에 대한 멸시와 폄하의 명칭으로 쓰여진 것임은 두말할 나위없다.
이같은 문화주의적 해석이 중국(인) 멸시론으로 이어지면서 1920-30년대 일본 학계에서는 중국의 ‘국민국가 결여론’과 ‘中國非國論’까지 등장하였다. 李明, ｢日本的‘中國論’的檢證-一九二O∼三O年代的中國非國論｣, 社會科學硏究(中京大學) 9-2, 1988. 참조.
20세기 동아시아에서 문명은 국제관계의 위기에 처한 개별 사회가 집단적 주체인 ‘국민’을 창출하여 개혁을 추진함으로써 ‘국민국가’를 세워나가기 위한 목표이자 방편 백영서, ｢20세기형 동아시아문명과 국민국가를 넘어서｣,동아시아의 귀환, p.16.
이라고 할 때, ‘국민국가 결여론’은 중국을 타자화하고 왜곡하는 일본형 오리엔탈리즘을 체계화하기 위해 동원된 또 하나의 허구적 논리라 할 수 있다.
2) 동아시아에 내면화된 오리엔탈리즘
서구문명의 지배력이 동아시아에서 학문 권력으로 구조화되면서 ‘타자’인 동양 내에서도 스스로 오리엔탈리즘을 재생산하는 내면화가 이루어졌다. 일본인의 관점을 수용한 조선의 문명개화론자들은 ‘동양’의 대명사인 중국을 멸시하면서 타자화하였고, 서구 열강과 동일시된 일본을 발전모델로서 자기화하는 새로운 자기-타자 규정이 형성되었다. 예컨대 후쿠자와 유키치로부터 서구중심의 문명사관을 받아들인 유길준은 중국을 ‘支那’로 표현하였고, 일본을 포함한 서양제국은 개화, 조선과 중국을 비롯한 동양제국은 ‘반개화’ 상태라고 보았다. 유길준, 서유견문, 1895(허경진 역, 서해문집, 2004).
청일전쟁에서 청국이 패배한 이유는 ‘문명화’하지 못한 것이라는 일본의 시각을 조선도 받아들이게 되면서, 1896년 창간된 독립신문에서 청은 문명개화의 장애가 되는 전통의 상징으로 부각되었다. ‘천한 청’이라는 청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진화론적 문명관에 의해 새롭게 만들어진 인식임과 동시에, 중국으로부터 독립을 확보하기 위한 개화운동 과정에서 형성된 것이기도 하다(백영서, ｢대한제국기 한국언론의 중국인식｣, 동아시아의 귀환, pp.174-175).
이러한 대외성향은 아시아에 대한 서구 제국주의의 침략성을 비난하기 보다는 동아시아 내부나 여타 아시아의 국가들의 ‘미개’ ‘야만’을 추궁하거나 심리적으로 거리를 느끼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박영효는 세계를 유럽의 문명강대국(歐洲文明强大之國)과 아시아의 미개한 약소국(亞洲未開弱小之國)으로 이분하면서 식민지화의 위기에 처한 아시아국가들의 미개성 - 나태함과 어리석음, 無恥함, 기상의 부족-을 비판하였다. 장인성, ｢自己로서의 아시아, 他者로서의 아시아｣, p.30.
특히 러일전쟁에서 일본의 승리 이후 일본의 근대문명에 주목한 조선 지식인들은 중화문명에서 근대문명으로, 순환론적 역사관에서 단선적 사회진화론으로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졌다.
자신의 생활방식을 서구의 눈으로 재평가하면서 자기문명의 전통이 벗어나야 할 대상으로 전락하게 된 것은 청말의 중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일본에 망명해 있던 청말 개혁론자인 량 치챠오(梁啓超)는 미국여행기 ｢新大陸遊記｣(1904)에서 미국문명의 장점과 비교하여 중국인의 결점에 대해 지적하면서, “시민의 자격이 없는 것, 국가사상이 없는 것, 눈앞의 이익에 빠져 숭고한 목적의식이 없는 것” 등을 열거하였다. 동시에 중국 민족의 특성으로 ‘더러움’ ‘시끄러움’(코풀기, 침뱉기, 모여 떠들기) 등을 지적하였다. 이는 문명국에는 있다고 가정된 것이거나 서구가 규정한 ‘문명’과 반대되는 것이었다. 梁啓超, ｢新大陸遊記節錄｣, 飮冰室合集7, 中華書局, 北京, 1996.
이러한 내면화된 오리엔탈리즘 위에서 량 치챠오는 중국인은 “전제를 받을 수 있을 뿐 자유를 향수하지 못한다”고 주장하였고, 강국화의 절대적 과제 앞에서 중국인에 적절한 제도는 공화국이 아니라 개명 전제뿐이라고 생각하였다. 그것이 강한 중국을 만드는 일 즉 ‘문명’을 이룩하는 길이자, 적자생존의 진화론에 다다르는 것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조경란, ｢중국에서 사회진화론 수용과 극복｣, 역사비평, 1996, 봄.
량 치챠오의 주장에서 잘 드러나듯이 서구 중심적 문명관의 내면화는 20세기 초 맹위를 떨치고 있던 사회진화론의 영향과 관련이 있다. 량 치챠오의 사회진화론은 일본을 통해 형성된 것이다. 일본이 사회진화론을 받아들이고 전파한 이유는 그것이 ‘진보의 틀’ 안에서 차이의 가능성을 강조함으로써 유럽이 만든 고정된 경로에 대안을 제공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사회진화론은 현재의 열등성의 원인을 설명해주는 한편 진화적 생존경쟁의 과정에 진보의 경향이 내포되어 있다고 여겨졌기 때문에, 부국강병과 자주독립을 추구했던 당시의 동아시아 지식인들에게 지배적인 담론체계로 기능하였다. 김석근, ｢구한말 사회진화론의 수용과 기능에 대한 비판적 재검토｣, 연세대 국학연구원 편, 서구문화의 수용과 근대개혁, 2004, p.189; 신연재, ｢구한말의 사회진화론 수용과 그 영향｣, 사회과학논집, 6-2, 1996, p.142.
한국 사회에 사회진화론은 미국, 일본 유학생과 선교사로부터, 그리고 량 치챠오의 飮冰室文集을 통해 전래, 수용되었다. 량 치챠오의 저술은 1900년대 한국에서 ‘지식인의 필독서’로 꼽힐 정도로 널리 번역 소개되어 읽혔다(이만열, ｢개화기 언론과 중국｣, 한국근대언론의 재조명, 민음사, 1996, 참조).
당시 한국 지식인들은 사회진화론을 통해 약육강식의 경쟁원리가 지배하는 세계질서를 이해할 수 있었다. 나아가 ‘경쟁’과 ‘우승열패’의 법칙에 따라 제국주의의 침략을 받고 식민지의 처지에 이른 것을 어쩔 수 없는 일로 받아들이는 경향도 나왔다. 사회진화론에서 기인하는 패배주의적 인식에 대해서는, 제국주의 침략을 받는 원인을 내부의 미개로 돌리는 인식에 대한 지적(김도형, ｢한말 계몽운동의 정치론｣, 한국사연구54, 1986)이나 실력양성론과 준비론이 그것을 반영한다는 지적(주진오, ｢독립협회 사회사상과 사회진화론｣, 1988) 등 참조.
물론 사회진화론이 미친 긍정적 영향도 있으며, 예컨대 한국에서 정치의식의 앙양, 新民 사상의 주창, 민족사관의 정립, 신교육론과 실업진흥론의 전개, 민족정신의 고취 등을 지적할 수 있다. 사회진화론에 대한 긍정적 견해에 대해서는, 이광린, ｢구한말 진화론의 수용과 영향｣, 한국개화사상연구, 일조각, 1980 참조. 또한 부정적 측면과 긍정적인 측면의 균형을 취하려는 입장에 대해서는 이송희, ｢한말 사회진화론의 수용과 전개｣, 부산사학22, 1992; 이승환, ｢한국 및 동양에서 ‘사회진화론’ 수용과 기능｣, 중국철학 9, 2002; 김석근(2004) 등 참조.
그러나 한국에서 사회진화론의 우승열패라는 논리에 패배주의적으로 지배되면서 서양 제국주의뿐만 아니라 일본을 침략국이라기보다는 ‘문명’ 선진국으로, ‘후진’ 한국이 ‘문명화’를 달성하기 위한 모델이자 동맹국으로 인식하는 데서 좀처럼 벗어나기 힘들었던 것이다. 정용화, ｢한국인의 근대적 자아 형성과 오리엔탈리즘｣, 정치사상연구, 제10집 1호, 2004.
이후 한국에서는 일본 제국주의가 세운 근대적 교육기관에서 일본을 통해 수입된 ‘서구적’ 따라서 ‘근대적’ 학문으로서 등장한 ‘동양사’가 가르쳐지면서, 서양학문의 과학성이라는 미명을 빌려 한국의 토착적인 중국이해의 후진성과 무용성을 강조하였다. 따라서 자기의 주체적 인식이 아직 완전하지 않은 식민지 지배 하에서, 자기의 주체성 인식을 위한 학문적 작업의 하나로 동아시아의 역사 연구가 진행되기는 대단히 어렵게 되었다. 백영서, ｢한국에서의 중국현대사연구의 의미-동아시아적 시각의 모색을 위한 성찰｣, 동아시아의 귀환, p.134.
일본형 오리엔탈리즘은 한편으로 ‘문명-야만’이라는 이항 대립적 서구 오리엔탈리즘을 계승하여 동양을 타자화하였을 뿐만 아니라, 다른 한편 ‘탈아’와 ‘흥아’라는 이중적 태도를 보이면서 때로는 아시아 연대를 내걸었다는 데 그 특이함이 있다. 그러면 일본형 오리엔탈리즘의 한 형태인 아시아연대의 논리와 그 한계는 무엇인가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Ⅲ. 동아시아의 연대와 저항의 논리
1. 동아시아 연대론
20세기에 들어 서양 제국주의에 대항하기 위한 연대의 대상으로 아시아 지역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등장하였다. 유럽의 팽창에 따른 아시아의 ‘타자화’는 유럽의 정체성을 형성시켰던 반면에 아시아인 스스로의 정체성을 각성시키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여기서 ‘아시아’라는 개념은 非서양이라는 구분과 더불어, 피침략 아시아 국가들의 공통의 역사 경험과 연대의식의 매개체로 등장하였다. 중국에서 Asia의 음역인 亞細亞는 아편전쟁 이후 지리적인 의미로만 사용되다가 20세기 초에 들어서 정치적인 의미로 해석되기 시작하였다. 신해혁명 시기의 근대 지식인들은 아주(亞洲) 동방(東方) 등으로 표현된 아시아를 황인종의 포괄적 인종구성체로 이해함으로써 유럽 및 서구로부터의 독자성을 인식했다. 이는 한편으로 백인 지배에 대한 포괄적 저항 지역체로 인식하는 동시에 중국을 피압박 아시아인과의 동문․동족(同文同族)에 위치시킨 것이다(조성환․김용직, ｢문명과 연대로서의 동아시아｣, 대한정치학회보9권2호, 2002).
즉 대외적 위기의식의 소산으로 그리고 문화적 인종적 지정학적 유사성 특히 ‘황인종’으로서의 자의식을 기반으로 한 동아시아3국의 연대론이 부상한 것이다.
일본에서 아시아 연대론은 서로 다른 논리인 탈아론과 같은 시기에 등장하였다. 그 이유는 일본의 아시아론 역시 궁극적으로 아시아 자체라기보다는 오히려 근대 서구와의 관계 설정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김경일․강창일, ｢동아시아에서 아시아주의: 1870~1945년의 일본을 중심으로｣, 역사연구, 8집, 2000. p.273.
연대론을 주장한 일본의 다루이 도키치(樽井藤吉)는 대동합방론(1885)에서 백인종 서구 열강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하여 황인종인 아시아 제민족이 단결해야 하며, 쇠퇴하는 동양의 기운을 만회하는 흥아(興亞)의 대업을 양성하기 위해, 대동아연맹(大東亞聯盟)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다케우치 요시미(서광덕 백지운 옮김), 일본과 아시아, 소명출판, 2004, p.267.
또한 1880년 3월 출범한 흥아회(興亞會)가 동양 삼국이 동심동력하여 서양으로부터 굴욕을 막자고 한 취지도 비슷한 입장이었다. 일본에서 흥아회가 출범하자 주일 청국공사 하여장(何如章)도 그 설립 취지에 찬동하였으며, 중국에서도 청말 외교를 주관하던 李鴻章의 정책은 일본을 이용한 이이제이 정책으로, 일본과 연합하여 동방진영을 형성함으로써 서양국가와 교섭하는 힘을 증강시키자는 것이었다(中日修好條規, 1871).
김옥균의 삼화주의(三和主義)나 독립협회의 한일제휴론도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일본 망명 중 새로운 사상에 접하게 된 량 치챠오는 ｢일본글을 배우는 것의 이익을 논함｣이라는 글에서 양국이 훗날 합방하여 “황색인종의 독립을 지키고, 유럽세력이 동방에 뻗치는 것을 끊어버리자”는 희망을 나타낸 바 있다. 량 치챠오는 일본에 망명중이던 1899년 ‘지나와 일본은 언젠가 合邦될 것이므로 서로 말을 통해 둘 필요가 있다“면서 두 나라의 志士들이 서로의 말을 배워 둘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이때쯤부터 일본식 이름을 갖게 되었으며, 그의 일본 이름 吉田晋은 일본 막부말기 지사(志士) 吉田松蔭에서 딴 것이었다(박성래, ｢중국에서의 진화론-梁啓超의 경우를 중심으로｣, p.143).
량 치챠오가 일본의 興亞論이나 아시아주의에 기대를 걸게 된 것 량 치챠오가 일본의 興亞論이나 아시아주의에 기대를 걸고 있었던 점에 대해서는, 최원식 백영서 편, 동아시아인의 ‘동양’ 인식 문학과 지성사, 1997, 참조.
은 그가 일본에 온 뒤인 1898년 11월에 발족한 동아동문회(東亞同文會)의 반황화론(反黃禍論), 동인종동맹론(同人種同盟論)을 배경으로 한다. 오카쿠라 텐신(岡倉天心)이 동양의 이상(1903)에서 “아시아는 하나”라고 외친 것 역시 “서양의 광영이 아시아의 굴욕”이 되는 현상을 변혁하는 것이 급선무라 여겼기 때문이다. 오카쿠라 덴신, ｢東洋の覺醒｣, 다케우치 요시미, 일본과 아시아, p.277.
1905년 러일전쟁 승리 이후 일본에서 아시아 연대론이 더욱 부상하였다. 청일전쟁이 조선의 독립을 가져왔다면, 러일전쟁은 아시아 제민족에게 민족적 자각을 불러일으켰다는 논리였다. 특히 아관파천 이후 러시아의 침략 행동을 ‘백인종의 동양침략’으로 인식하고 이에 대한 ‘황인종’인 한중일 3국의 제휴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문화적 제휴론’과는 달리 일본이 맹주가 되어 황인종이 결합하여 백인종의 침략에 대응해야 한다는 ‘인종적 제휴론’이었다. 즉 ‘문명과 야만의 전쟁’이라는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에서는 이른바 ‘약자 연합으로서의 아시아주의’는 쇠퇴하고, 일본을 맹주로 하여 중국과 일본이 동맹을 맺어, 아시아에서 서구와 패권을 겨루는 것으로 중점이 이동해갔다.
러일전쟁에서 백인종에 대한 황인종 일본의 승리에 감격한 대다수 한국인들 역시 일본이 내건 ‘동양평화’에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일본과 조선에서 아시아 연대론은 점차 국제정치 관념과 국가(국민) 의식의 차이에 따라 양상이 달라졌다. 일본의 아시아 연대론은 황인종이라는 인종적 이익(안보)를 빌미로 일본의 민족적 이익(안보)을 추구하려는 현실주의적 국제정치 논리였다면, 조선의 동양 연대론은 근대적 국가(국민) 관념이 취약했기 때문에, 도의적 국제정치 관념의 산물인 경우가 많았다. 장인성, ｢‘인종’과 ‘민족’ 사이: 동아시아 연대론의 지역적 정체성과 ’인종‘｣, 국제정치논총, 제40집 4호, 2000, p.131.
예컨대 장지연(張志淵)이 ｢시일야방성대곡｣을 발표하여 보호조약의 부당성을 폭로한 까닭은 동양 삼국의 황인종이 서양 백인종과의 경쟁에 공동으로 대처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을사조약을 강제로 체결함으로써 ‘동양삼국의 안녕’이 깨지고 분열되었다는 것이었다. 즉 논의의 초점은 이토 히로부미의 배신행위에 대한 비판이었던 것으로 그 이면에는 ‘동양 3국의 제휴론’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고 쓴 ｢동양평화론｣도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최원식 백영서 편, 동아시아인의 ‘동양’ 인식: 19-20세기, 문학과 지성사, 1997.
따라서 러일전쟁 이후 한일합방에 이르는 상황변화에 따라 제휴론은 갈림길에 서게 되었다. 일본의 의도대로 보호국화를 인정할 것인가, 보호국화는 인정하지 않지만 제휴론적 인식을 새로이 모색할 것인가, 국가의 독립과 자주회복을 위해 일본에 대한 정면 도전을 선택할 것인가 등의 갈림길이었다. 제휴론을 전면 비판한 신채호는 일본과의 연대를 주장하는 동양주의자에게, ‘국가는 주인이고 동양주의는 손님인데, 동양주의 제창자들에게 동양이 주인이 되고 국가가 손님이 되어, 동양을 지키려 한다’면서 ‘한국인이 동양주의를 이용하여 국가를 구하는 자는 없고 외국인이 동양주의를 이용하여 國魂을 찬탈하는 자가 있으니 경계하며 삼갈 것’을 주장하였다. 신채호, ｢동양주의에 대한 비평｣(1909), 동아시아인의 ‘동양’ 인식: 19-20세기, pp.219-220.
그러나 당시에는 일본의 보호국화를 긍정하거나, 그에 대해 비판하면서도 여전히 일본과의 제휴와 동맹을 통해 ‘동양’의 평화를 모색하고자 하는 발상과 논의가 우세하였다. 결국 민족적 정체성을 주장한 민족주의자들의 주장은 문명화 의지에 압도되었고, 1910년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화하자 문명 개화론자들은 대다수 이를 불가피한 현실로 받아들였다. 1919년 식민지 조선에서 최대의 저항운동이었던 3.1운동이 일어난 이후 일본은 ‘식민지’라는 말조차 교묘히 회피하였고 아시아주의가 대신하였다. 특히 1929년 拓務省이 설치되었기 때문에 형식적으로 식민지라는 말이 기피되고 식민지 조선은 ‘外地’가 되었다(姜尙中, ｢過ぎ去らない｢アジア｣の心象地理を超えて-日本の朝鮮觀を中心に｣, アジアの新世紀１, 岩波書店, 2002, p.96).
한편 일본의 동아시아 침략은 서양의 오리엔탈리즘에 대항해 싸우는 아시아주의를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이 1905년 러시아 군대를 격파한 것은 역설적으로 중국의 쑨원(孫文), 베트남의 호치민과 같은 독립운동 지도자들에게는 반제국주의의 한 모델이 되기도 하였다. 쑨원의 초기 대아시아주의는 유럽의 백인종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한 황인종들의 단결을 주장하면서 피부색을 기준으로 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역시 일본의 대아시아주의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것이다. 쑨원은 1924년 일본 고베(神戶)를 방문하여 행한 ‘대아시아주의’ 강연에서, 일본정부와 국민을 구분 짓고 영미 등 열강의 침략에 공동으로 대응하기 위하여 일본국민들의 지지를 호소하였는데, 여기에서 그의 일본에 대한 의존적인 태도가 잘 드러난다. 배경한, ｢孫文의 ‘대아시아주의’와 韓國｣, 부산사학, 30집, 1996, p.15.
이에 대해 당시 조선의 언론은 대체로 쑨원이 주장한 황색인종 단결, 중일친선론은 ‘식민지 지배 하에 처한 조선 문제와 모순’되는 ‘경솔’하고 ‘졸렬’한 것으로 비판하였다. 閔斗基, ｢1920年代の韓國人の孫文觀｣, 孫文とアジア, pp.139-140.
중국에서도 중국혁명동맹회 기관지 民報는 중일양국의 국민적 연합은 지지하지만, 연합양국의 대등한 관계가 아닌 일본의 대아시아주의는 흡수주의라고 비난하였다. 또한 중화민국의 부흥을 관건으로 하는 대아시아주의에 기대를 걸었던 사회주의 이론가 리다차오(李大釗)도 1919년 ｢대아시아주의와 신아시아주의｣라는 논문에서 일본의 ‘대아시아주의’는 이미 대일본주의의 다른 이름에 불과하다고 비판하였다. 楊念群, ｢‘동아시아’란 무엇인가? - 근대 이후 한중일 ‘아시아’ 想像의 차이와 그 결과｣, 대동문화연구, 50집, 2005, p.95.
이 시기에 제국주의 일본을 제외하고 아시아의 사회혁명을 의도하는 한국과 중국의 급진주의자들 사이에 반제와 반일을 위한 아시아 연대의식이 형성되기도 하였으나, 일본의 지속적인 대아시아 침략과 팽창으로 인해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황동연, ｢20세기 초 동아시아 급진주의와 ‘아시아’ 개념｣, 대동문화연구, 50집, 2005, p.156.
19세기말 20세기 초에 걸쳐 모색된 아시아 연대론은 결국 공허한 논리로 변질되었다. 그 근본적인 이유로써 주목해야 할 것은 지식인의 ‘동서 이분법적 사고’이다. 즉 동아시아 내부의 차이를 무시하고 지역적이든 문화적이든 또는 인종적이든 ‘하나의 동양’으로 동아시아 3국을 바라본 당시 지식인의 연대 의식의 저변에는 동과 서를 이분법적으로 구분짓는, 전형적인 오리엔탈리즘적 사고가 깔려있었다. 정문상, ｢19세기말~20세기 초 ‘개화지식인’의 동아시아 지역 연대론｣, 아시아문화연구 제8집, 2004, p.57.
즉 ‘아시아’는 서구의 눈에는 하나의 집합체로 보이지만, 아시아지역 국가들은 서로 역사 문화적으로 적지 않은 차이를 안고 있으며 결코 동일한 것이 아니었다. ‘아시아는 하나다’라는 명제는 오카쿠라 덴신이나 쑨원의 발상에서 나타나듯이, 하나의 관념으로서는 성립할 수 있지만 역사적 개념으로서는 성립하지 못하였다. 장인성, ｢自己로서의 아시아, 他者로서의 아시아｣, p.12.
인종적 정체성을 통해 지역적 정체성을 확보하려는 연대의 발상은 결국 일본의 팽창에 따라 동아시아 내부의 오리엔탈리즘적 왜곡으로 귀결되었다.
근대 일본의 동양에 대한 태도는 한편으로 ‘과거’의 역사 문화적 동양은 무시·왜곡하지만, 다른 한편 제국주의적 팽창의 장(공간)으로서의 아시아 대륙이라는 ‘현재’의 지정학적 동양은 중시하는 이중적인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그 과정에서 ‘東洋’, ‘東亞’, ‘대동아’ 등 문화적 지정학적으로 서로 다른 내용을 지닌 다양한 담론이 등장하였으며, 일본이 제외된 타자 부정적인 ‘東洋’에서 일본이 포함된 정치적 연합 개념인 ‘東亞’로 변하였다. 유럽에 대한 대항적 언설로서 성립된 ‘동아’라는 개념은 1930년대 제국 일본이 유럽적 세계질서의 재편성을 요구하면서 대두된 제국주의적 정치적 언설상의 ‘동아’와 호응한다. 정치적인 지역개념인 ‘동아’나 ‘대동아’는 1937년 중일전쟁의 개시 및 태평양전쟁으로의 확전과 더불어 ‘동아신질서’의 이념으로 또 ‘동아협동체’와 ‘대동아공영권’의 구상으로 전개되었다(子安宣邦, アジア’はどう語られてきたか-近代日本のオリエンタリズム, 藤原書房, 2003 참조).
즉 1930년대 일본에서는 제국주의가 팽창, 서구와 대립하면서 또 다른 아시아 연대론인 “동아연맹론”이나 “동아협동체론”이 부상하였다. 이는 일본이 신질서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중일전쟁의 진행과정에서 생겨난 역사적 산물이었다. 그런데 중일전쟁 발발 이후 1938년 고노에 후미마로(近衛文麿) 일본 수상의 東亞新秩序 성명은 ‘쟝제스(蔣介石)의 국민정부를 상대하지 않겠다’는 중국에 대한 타자부정의 논리를 기반으로 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왕징웨이(汪精衛)는 쑨원의 大亞洲主義를 내걸고 일본의 동아신질서를 받아들였다. 왕징웨이와 그 추종자들은 일본의 동아신질서를 수용하면서 ‘일본과 중국을 영도세력으로 하는 아시아 민족들의 대연합’이라는 쑨원의 대아시아주의를 계승했다는 주장을 통하여 자신들의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려 노력한 것이다(배경한, ｢중일전쟁 시기 중국에서의 동아연맹운동과 왕정위정권｣, 중국현대사연구, 2004, p.109).
왕징웨이가 손문의 ‘대아시아주의’를 ‘동아신질서’와 등치시킨 것은 일본의 ‘동아신질서론’과 ‘대동아공영권’ 사상을 보강하는데 유용하였다. 왕징웨이 정권은 영미의 제국주의에 대한 반발과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환상을 갖고 침략세력으로부터 東亞를 해방하여 동아신질서 건설의 공동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협력하고 필요한 조치를 강구한다고 협정을 맺었다. 왕정권은 일본측의 ‘동아신질서론’과 중국측의 ‘대아시아주의’의 합치를 대의명분으로 하여 성립한 것으로, 대동아신질서, 대동아공영권의 사상적 계보를 검토하는데 중요하다(利谷信義, ｢‘東亞新秩序’と‘大アジア主義’の交錯-汪政權の成立とその思想的背景｣, 日本法とアジア, 勁草書房, 1970, p.107).
결국 왕징웨이 정권은 대동아공영권 하에서 일본에 의해 서구 제국과의 인종전쟁을 강요받고 미국과 영국에 선전포고까지 하였다. 汪政權의 참전 즉 미국과 영국에 대한 선전포고에 대해서는, 1942년 7월 周佛海 행정원부원장 겸 재정부장이 일본을 방문하였을 때, 東條 수상및 松岡 외상과 어느정도 논의가 이루어졌다(｢國民政府ノ參戰問題ニ付テ(1942.11.1), 外交史料館파일, 支那事變關係一件, 제33권).
그러나 당시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받고 있던 조선에서는 동아연맹론의 거론 자체가 금기시되어 있었던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대아시아주의나 동아연맹론이 동아시아의 평화적 협력을 목표로 일정한 성과를 낼 것으로 기대하기란 처음부터 불가능하였다. 배경한, 윗글, p.117.
이 시기 일본의 ‘확장된 내셔널리즘’으로서의 아시아주의가 ‘동양’ 내지 ‘동아’라는 개념으로 전쟁이나 식민지 지배를 얼마나 정당화해 왔는가에 놀라워해야 한다는 야마무로 신이치, 山實信一, ｢일본의 아시아주의와 아시아 學知｣, 대동문화연구제50집, 2005. p.62.
그리고 대아시아주의에 기초한 아시아 제민족의 해방이라는 문제를 일본 파시즘 이데올로기의 한 특질이라고 본 마루야마 마사오 마루야마 마사오(김석근 옮김), 현대정치의 사상과 행동, 한길사, 1997, p.95.
의 지적은 일본의 아시아주의의 이중성 그리고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기 아시아 연대론의 본질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본질에도 불구하고, 전후 아시아의 상호공존과 연대를 형성하는 데에 일본의 주도에 의한 대동아 공영권의 경험이 지속적인 영향을 미친 것 일본을 지도자로 하는 대동아공영권의 위계구조는 종전 이후 세계적 차원에서 조성된 냉전체제 아래에서 정치적 독립의 과제가 경제적 자립의 목표에 의해 대치된 채로 미국․일본을 정점에 둔 수직적인 위계체계로 재현되었다(김경일, ｢대동아공영권의 ‘이념’과 아시아의 정체성｣, 동아시아의 지역질서-제국을 넘어 공동체로, 창비, 2005, p.246).
이 사실이며, 이러한 점은 탈냉전 이후 논의되는 새로운 주체적 동아시아 담론의 형성을 위해 극복되어야 할 과제이다.
2. 오리엔탈리즘 극복을 위한 저항의 논리
동아시아에서 제국주의적 침략=서양화가 진전되면서 그에 대항하기 위한 주체적 주장과 행동이 다양하게 등장하였다. 전통 정신의 재확립 등 구체제를 유지하면서 위기를 극복하자는 보수적 주장, 분노나 두려움, 불만이나 치욕감에 기초한 배외주의, 19세기 후반 중국의 경우 서양에 대한 다양한 배외주의의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첫째, 모든 계층의 중국인들이 모두 경험한 ‘분노에 근거한 배외주의’, 둘째, 무지한 계층에서 보이는 ‘두려움에 기초한 배외주의’인 ‘외국인혐오증’, 세째, 중국문화의 우월성에 대한 신념에 근거한 교양있는 계층에서 보이는 ‘불만에 기초한 배외주의’. 넷째, ‘치욕감에 기초한 배외주의’ 등이다. 치욕감에 기초한 배외주의는 내셔널리즘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감정으로, 그런 감정을 품고 있는 중국인들은 애초에는 적었지만 점차 늘어나게 되었다. 그들은 서양의 문화적 영향보다도 정치적 침투에 반대했으며, 서양문화의 전면적 거부보다도 서양을 모방한 개혁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다(폴 코헨, 학문의 제국주의, p.124).
봉건적이고 전근대적인 사회적 폐해를 일소하는데 동의하지만 무조건 서양화에도 반대 예컨대 외국 것이라면 쓸데없는 것으로 가까이 하지 않는 수구당을 ‘개화의 원수’라고 비판한 근대 개화주의자 유길준도 “개화하는 일이란 타인의 장기를 취하는 것뿐 아니라 자기 자신의 훌륭하고 아름다운 것을 보전하는 데에도 있다”고 하면서 외국 것만을 칭찬하고 자기 나라 것을 업신여기는 개화당은 기실은 ‘개화의 죄인’이며, 지나치게 외국제(담배 시계 등)를 추구하며 서양풍습을 이야기하는 이들은 ‘개화의 병신’이라고 비판하였다(유길준, 서유견문, 명문당, 2003, pp.356-357).
하는 합리적 온건 등이 다양하게 전개되었다. 합리적이라 할 수 있는 조선의 동도서기론이나 중국의 중체서용론, 일본의 화혼양재론 등도 당시로선 주류가 될 수 없었다(장현근, ｢서구의 충격과 근대 중국의 정치사상｣, 인문사회과학연구(용인대) 3, 1999).
이러한 서구의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저항은 점차 동아시아에서 자국만이 서양화에 성공하였다고 자부하면서 중국과 조선을 타자화하는 일본형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저항이라는 중층적 구조를 띠게 되었다.
중국과 한국에서는 점차 일본이 주도하는 동양 연대론과 서구 중심주의적 문명관의 신화가 깨어지고 자기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하게 되었다. 신채호는 문화 상대주의의 입장에서, 문명개화파가 서양문화의 우월성을 전제로 중국과 조선의 전통문화를 비하시키는 것을 비판하고 저항의 근거를 확보하고자 하였다. 당시 국내에서도 단군기원력, ‘삼천리’라는 지리적 공동체, 한글이라는 언어 공동체, 민족의 정신(國粹) 등을 강조하는 한민족의 고유성과 주체성이 주장되었다. 정용화, 윗글, p.50.
또한 문명개화에서 일본의 우월성을 인정하지만 한국인들이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고 여기는, 현실권력의 열등성을 역사 문화적 우월성과 도덕성으로 보전하려는 경향이 나타났다. 중국에서도 옛 문화가 근대의 변혁에 대한 장애물로 작용하기는커녕 오히려 거꾸로 변혁을 추진시키고 변혁의 방향을 정하는데 일조하는 측면이 있었다. 예컨대, 청일전쟁 패배 후 문명과 야만의 시대논리가 풍미하게 된 중국에서 ‘전족 야만설’이 등장하였지만, 이에 대해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것을 야만이라고 부르는 것이 문명적 태도인가, 전통 말살이야말로 야만 그 자체가 아닌가”라는 저항 논리가 대립하였다 嚴安生, 윗책, p.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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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문명과의 대결과정에서 중국인의 정체성이 지니는 의미가 더욱 첨예해지게 되었고, 자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심리가 강고했다는 점이야말로 서양문명의 영향을 극복하고 저항할 수 있게 하였다. 폴 코헨, 학문의 제국주의, p.258.
량 치챠오는 제1차 세계대전으로 피폐해진 유럽을 돌아본 후, 서구 문명에서의 진보는 반드시 善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라고 여기게 되었다. 사회진화론자였던 그는 ‘서구’를 이상적 가치가 아닌 물질문명이라는 ‘보통개념’으로 다시 파악하였으며, 사회진화론은 다윈의 ‘생물학 이론’을 잘못 사용한 것이라면서 ‘적자생존’에 대한 인식도 부정적으로 바뀌었다. James Reeve Pusey, China and Charles Darwin, Harvard University Press, 1983. p.440.
또한 현재 서구인에게 문화면에서 자기혐오와 함께 중국문화에 대한 선망이 생겨나고 있으며 미래문화는 동서문화 조화의 산물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등 동양 문화에 대한 자신감을 표현하였다. 이러한 내용을 담은 량 치챠오의 구유심영록(歐游心影錄)은 특히 제1차 세계대전의 영향으로 서양문명을 비관적으로 보던 서구 지식인들(대표적 사례인 스펭글러(O.Spengler)의 서구의 몰락)의 동향도 작용하면서, 세계적으로 동방문화구세론이 등장한 것을 배경으로 한다(천성림, ｢서구적 근대의 부정과 독자적 근대의 추구｣, 중국근대 사상세계의 한 흐름, 신서원, 2002, pp.243-244).
중국에서는 1910년대와 20년대 두 차례의 ‘동서문화 논쟁’과 30년대 중국본위문화(中國本位文化)와 전반서화(全般西化)의 논쟁이 진행되면서, 서구자본주의 문화와 중국문화의 보편성과 특수성, 중국이 나아가야 할 길은 서구화인가 아니면 제3의 길인가 등을 둘러싸고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이 논쟁은 1920년 량 치챠오의 구유심영록과 양수명의 동서문화 및 그 철학의 출판 이후 최고조에 달했다가 1927년부터 논쟁의 초점이 중국사회 성질문제로 옮겨지면서 일단락되었다. 이후 1935년 ‘중국본위적문화건설선언’의 등장이후 본위문화파와 서화파의 논쟁이 전개되었다(천성림, ｢1930년대 중국의 동서문화론｣, 윗책, pp.104-105).
특히 본위문화파에게 당시 만연하는 崇洋풍조(서구식 가치관과 가족관 등)로 인해 흔들리는 문화의 위기는 민족의 위기였고, 곧바로 민족의 소멸로 등치되었다. 따라서 제국주의의 문화침략에 맞서 시급히 민족문화를 재건하고 부활시켜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이들에 의해 선택된 문화민족주의는 1930년대 국제정세 및 일본의 중국침략과 맞물려 더욱 힘을 발휘하였다. 이병인, ｢中國 中心의 普遍性, 西歐 中心의 特殊性-1930년대의 문화논쟁을 중심으로｣, 중국현대사연구 제9집, 2000, p.56.
한편 이 시기에 동아시아에서 근대 서양사상은 그것이 서구에서 담당했던 역사적 역할과 달리, 동아시아 정치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지식인의 ‘救國’의 논리로 수용되기도 하였다. 신연재, ｢동아시아 3국의 근대사상 형성과 서양문명의 수용-그 상이성 분석을 중심으로｣, 울산대학교 사회과학 논집, 12권 1호, 2002, p.136.
예컨대 근대 중국에서 '우승열패‘의 사회진화론은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는 이론적 기반이 되어주었다. 즉 사회진화론은 약자의 입장에 처한 중국에서 강자의 권리를 대변하는 이론이 아니라 약자가 강자가 되기 위한 이론이 되었다. 사회진화론은 약하고 무능한 국가인 중국의 지식인들에게 왜 그들이 외국과의 생존경쟁에서 약자가 되었는지, 어떻게 강자가 될 수 있는지, 그리고 왜 개혁과 혁명이 필요한지를 설명하는 이론적 기초가 되어주었다(전복희, 사회진화론과 국가사상: 구한말을 중심으로, 한울 아카데미, 1996. pp.95-96).
오랜 서구 경험을 가진 쑨원의 경우 역시 그의 삼민주의나 혁명조직 이론은 그의 미국과 영국 등 유럽 경험에서 완성되어 구국의 논리로 수용된 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쑨원이 삼민주의 등 자신의 혁명이론을 만들어 낸 데는 서구 체험이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그의 민족, 민권, 민생이라는 삼민주의 이론의 기반이 된 것으로는, 망명 시절 런던에 체제하면서 공부한 맑시즘 등 사회주의 이론 그리고 미국 링컨 대통령의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의 논리와 우드로우 윌슨 미국 대통령의 ｢민족자결｣ 및 존 로크의 천부인권설 등을 들 수 있다(張玉法, ｢孫中山の歐美經驗の中國革命にたいする影響｣, 孫文硏究會編, 孫文とアジア, 汲古書店, 1993, pp.227-229).
또한 중국의 호적(胡適)은 중국이 救國을 위해 문화건설의 재료를 근대 서양에서 구해야 한다는 전반서화론(全般西化論)을 주장한 바 있다. 전반서화론은 비록 본위문화파와 대립되었지만 그러한 논전은 사상의 혼란이라기 보다는 서양문화의 수용에 대한 중국인의 대응을 찾는 노력으로 높게 평가할 수 있다. 신승하, ｢전통사상과 서구사상의 충돌 - 서구사상의 전래에 따른 논전을 중심으로｣, 20세기의 중국, 서울대학교출판부, 1998. pp.247-252.
그런데 당시 서구와 일본의 오리엔탈리스트들은 서구문화에 대한 동아시아의 저항을 무지의 소치로 보고 무시하고자 하였다. 예컨대 1905년 민영환의 자결을 보는 당시 영국인의 시각은 국제정치를 이해하지 못하는 무지의 소산으로 여겼다. 박지향, 『일그러진 근대 - 100년전 영국이 평가한 한국과 일본의 근대성』, 푸른역사, 2003. 참조.
특히 쑨원의 경우 서구세력이 그의 혁명사상을 지지하지 않았기 때문에 쑨원의 서구 경험(기독교, 민주주의 등)은 중국혁명 과정에서 점차 의미가 사라지게 되고 사회주의 혁명이론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서구 세력은 마오쩌뚱(毛澤東) 시대에 들어 더욱더 중국에서 밀려나게 된 것이다. 張玉法, 윗글, p.243.
일본 역시 1차 세계대전 이후 중국의 항일 민족주의와 반제국주의적 저항을 일본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국제정치에 대한 무지의 소산으로 보았다. 그러나 중국의 민족운동에 대한 일본의 몰이해와 오만이야말로 오히려 중국의 민족주의를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1915년 일본의 중국에 대한 21개조 요구를 비판하는 중국인의 격렬한 저항이 등장한 이래 5.4시기와 일본의 만주 침략 및 중일전쟁 시기에 일본상품 불매운동 등 항일운동이 전국적으로 전개되었다.
중국에서 1919년 5.4운동 이래 확산된 민족주의 운동이 1949년 혁명으로 귀결된 데는 특히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이 큰 동력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데올로기로서의 민족주의는 사회주의 중국에서도 방기된 적은 한번도 없었으며, 중국 사회주의는 항일민족전쟁의 승리자라는 기반 위에서 민족주의를 그 최종적 정당화의 근거로 하고 있다(村田雄二郞, ｢中華ナショナリズムの現在｣, 世界, 1993.11. pp.127-128).
이 시기 주권회복을 위한 중국의 저항담론이었던 ‘國恥’라는 표현은 당시의 역사와 국어 교과서 및 대중매체에 자주 쓰였고, 失地회복을 위한 國恥圖의 제작도 이루어졌으며, 黃東蘭, ｢淸末民國期地理敎科書の空間表象-領土,疆域,國恥-｣, 中國硏究月報 2005.3., p.29.
이러한 저항의 기억은 청말에서 중화민국, 중화인민공화국으로 이어지면서 대중교육을 통해 계승되어 왔다.
마오쩌뚱이 즐겨 사용한 표현을 따르면, 중국은 19세기와 20세기에 들어 자신의 위대한 역사와 국제 흐름에 대항해왔다. 혁명가가 되기 이전에 마오쩌뚱은 중국의 무능력과 비참한 후진성을 통탄하였지만, 혁명가의 길을 가게 되면서 중국의 후진성을 혁명에 유리한 조건으로 전환시킨 그는 1930년에 “혁명은 분명 서구보다 중국에서 더 빨리 고조될 것” 모택동, ｢한점의 불꽃도 들판을 태울 수 있다｣(김승일 옮김, 모택동선집1, 범우사, 2001, p.135).
이라고 예언하게 되었다. ‘후진성의 이점’ ‘후진성의 이점’이란 요즈음에 알려진 ‘근대세계에서 경제후진국은 선진공업국의 기술을 빌려옴으로써 발전 속도를 가속화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는 주장과는 다르다. 이는 후진성 자체에 내재하는 도덕적 사회적 미덕과 혁명적 정치적 이점에 대한 보편적이고 광범위한 신념이다(모리스 마이스너/김수영 옮김, 마오의 중국과 그 이후, 이산, 2004, pp.281-282).
이라고 불리는 이러한 인식은 反도시(서양)주의와 더불어 마오쩌뚱 사상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그는 중국이 가난하고 낙후하다는 사실은 나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난하면 혁명하기 쉽고, 경제 후진국은 혁명적 잠재력을 더 많이 갖고 있다고 하였다. 혁명에서 후진성의 유리한 점을 칭송하는 경향은 1958년 대약진 운동을 시작할 때 마오 쩌뚱이 주장한 중국인민의 혁명적 미덕인 ‘빈곤과 백지(一窮二白論)’개념으로 정식화되었다(紅旗, 1958년 6월 1일자, pp.3-4; 모리스 마이스너, 윗책, p.282).
이처럼 중국이 ‘서구’에 비해 혁명적 우월성을 주장할 수 있는 논리와 그로부터 실현된 중국혁명의 성공은 동아시아에서 오리엔탈리즘을 비판하고 극복하는 주체화가 이루어졌음을 의미한다.
중국혁명을 유럽문명에 대한 도전으로 본 일본의 중국 연구자 다케우치 요시미(竹內好)는 ‘일본의 근대사가 저항없는 脫아시아라고 한다면 중국의 근대화는 저항에 의한 아시아화’라고 정의하였다. 다케우치 요시미, ｢근대란 무엇인가-중국의 근대와 일본의 근대｣, 일본과 아시아, 소명출판, 2004.
즉 중국 혁명은 서구식 문명이 역사를 지배해 온 흐름에 대한 ‘중국의 저항’ 또는 ‘아시아적 혁명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오리엔탈리즘식의 문명-야만이나, 근대화론식 근대-전통론을 적용한 논리로는 해석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중국 혁명의 성공은 ‘중국 내부에서의 자기 혁신의 시도는 반드시 헛수고로 끝나리라 예측하였고, 중국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바깥으로부터의 처방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왔던’ 오리엔탈리즘적 해석 오리엔탈리즘적 해석이란, 19세기 이후 헤겔 등 서양인들이 일관되게 중국을 ‘지속하는 帝國’의 상을 만들어서, 그 정체성을 강조한 것이며(子安宣邦, ｢近代知と中國認識-支那學の成立をめぐつて｣,脫西歐の思想, 岩波書店, 1994, p.66), 같은 맥락에서 낙후된 경제 상태에서는 사회주의가 불가능하다고 한 마르크스의 주장도 마오 쩌뚱과 같은 아시아의 혁명가들에게는 마찬가지로 극복의 대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인 것이었다. 이렇게 반(反)서양 주체화로서의 오리엔탈리즘의 극복에 성공한 중국의 사회주의 혁명은 나아가 그 해방적 역할과 마오 쩌뚱식의 ‘경제적, 국제적 자립’이라는 점이 긍정적으로 평가되어 왔다. 중국의 국가사회주의는 소련이나 동유럽과 달리 농민과 농촌의 발전, 농촌의 공업화, 마오 쩌뚱 시기의 마지막까지 지방의 ‘경제적인 자립’과 ‘국제적인 자립’을 강조하는 마크 블레처는 나아가 중국의 대약진이나 문화대혁명이 집단적으로 정신분열을 일으킨 행위가 아니라 진지하고 이성적이며 관련 지도자들과 인민들이 특수한 상황에서 그들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시도한 결과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Marc Blecher, China Against the Tides: Restructuring Through Revolution, Radicalism and Reform, Cassell, 1997/전병곤, 정환우 공역, 반조류의 중국: 현대중국 그 저항과 모색의 역사, 돌베개, 2001. p.23).
그러나 마오주의의 ‘후진성의 이점’에는 역사를 결정짓는 것으로써의 ‘주관적 요소’인 도덕적 가치나 의식, 그리고 행동이 지나치게 강조되는 측면이 있다. 예컨대 ‘후진성의 이점’에 대한 믿음은 중국이 자본주의 체제의 사회적 고통을 거치지 않고 근대과학과 공업의 과실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과도 연결될 수 있다는 점이 지적된다. 모리스 마이스너, 마오의 중국과 그 이후, p.286, p.781.
또한 중국에서 ‘주체성 이론’을 설파해 온 리저허우(李澤厚)는 마오쩌둥의 두 가지 중요한 사유의 오류로써 ‘이데올로기의 맹신’과 ‘전쟁 경험의 맹신’을 지적하였다. 李澤厚․劉再復 (김태성 옮김), 고별혁명, 북로드, 2003, p.23.
리저허우가 신중국 성립 이후 중국사회주의 속에 숨어있는 봉건적 특질을 분석했듯이, 중국에서 자기 파괴적인 문화대혁명이 끝나자 당중앙은 문화대혁명의 정치적 소용돌이를 ‘계속혁명’이라는 ‘좌파적 오류’의 결과로 규정하면서도 봉건적 잔재를 철저하게 청산하지 못한 결과로 보았다. “수세기에 걸친 봉건전제의 정치적, 사상적 악영향을 절멸시킨다는 것은 결코 손쉬운 일은 아니었다. 여타 여러 가지 역사적인 요인으로 당내에서의 혹은 국가의 정치 사회생활에서의 민주주의를 제도화시키거나 입법화하지 못하였다.”(｢건국 이래 우리 당의 약간의 역사문제에 관한 결의｣, 홍석표, 현대중국, 단절과 연속, 선학사, 2005, pp.95-96).
중국 혁명과 그 이후 과정에서 봉건적 잔재가 청산되지 못한 상황은, ‘민주의 문제’와도 연관되는 중국내부에서의 개인적 주체화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최근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새로운 저항의 논리로 “옥시덴탈리즘”이 등장하였다. 중국에서 옥시덴탈리즘은 억압의 담론인 동시에 해방의 담론으로 작용하는 측면이 있다. 샤오메이 천/ 정진배 김정아 옮김, 옥시덴탈리즘, 강, 2001, p.13.
한편으로 옥시덴탈리즘은 ‘동양에 의해 날조된 서양’으로 여겨진다. 그 대표적인 예는 항상 서양을 공산주의 중국을 식민지화하고 전복하려는 위험한 타자로 간주해온 중국의 관변 옥시덴탈리즘이 지니는 서양에 대한 편견들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서양 이미지는 중국 지식인들에 의해 지배 이데올로기에 저항하는 강력한 무기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자유와 민주로 대표되는 서구적 가치들이 동양적 전제에 대한 해방의 기제로 작동된 측면도 부인할 수 없다. 이러한 경향은 1919년 5.4 신문화운동에서 1989 천안문 학생시위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반전통주의적 엘리트 담론에서 흔히 발견된다. 자유의 여신상이 민주주의의 여신상으로 둔갑했던 1989년 천안문 학생시위가 덩샤오핑 정권의 탄압을 받게 된 것은, 서양의 이미지가 덩샤오핑에 저항하는 정치적 함의로 작용하였기 때문이다. 이는 ‘서양’이 어떻게 중국의 관변 ‘타자’에 저항하는 문화 이데올로기적 메시지로 사용되는 허구화된 가치체계의 기표가 되어왔는가 하는 전형적인 실례이다(샤오메이 천, 윗책, pp.18-19, p.96).
중국에서 내적 억압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 ‘날조된 서양’으로서의 옥시덴탈리즘은 오리엔탈리즘을 극복하는 올바른 대안이 될 수 없다. 오리엔탈리즘의 ‘타자화’를 극복하는 진정한 의미의 주체화는 단지 수동적인 저항만으로는 불충분하며, 불평등한 관계가 아닌 존재의 대등한 관계를 만들고 이를 위한 ‘공동의 마당’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리엔탈리즘에 의해 왜곡된 동아시아의 주체성은 회복되어야 하지만, 옥시덴탈리즘의 예에서 보듯이 그것이 서양적 가치 중에서 선진적이거나 긍정적인 것, 예컨대 전근대적 전제에 저항하고 민주주의를 진척시키는 것까지 부정해서는 안 될 것이다.
Ⅳ. 맺음말
동아시아에서 오리엔탈리즘의 진정한 극복은 아직 미완의 과정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유럽의 근대를 중시하고 동아시아적 관점은 결여된 역사의식 예컨대 일본은 과거 중국이나 한국과 깊은 관계를 갖고 영향을 받았다고 해도, 그러한 과거는 현재적인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는 이해에 기반한 역사상을 갖고 있다(미야지마 히로시, ｢근대를 다시본다-동아시아의 관점에서｣, 창작과 비평, 2003 여름, p.271).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과 중국에서도 아시아라고 하는 틀이 거의 없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李成市와 宮嶋博史, ｢조선에서의 아시아인식의 부재｣, 石井米雄 編, アジアのアイデンデイデイー, 山川出版社, 2000, p.125; 이야나가 노부미, ｢비오리엔탈리즘적인 동아시아연구는 가능한가｣, 동아시아 문화와 사상 9, 열화당, 2002, p.159. 등 참조.
뿐만 아니라 동양 내부의 패권문제 아시아담론은 서구중심주의와 관련된 문제였을 뿐만 아니라 동양내부의 패권문제이기도 했다. 孫歌/류준필외 옮김, 아시아라는 사유공간, 창비, 2003. p.59.
와도 관련된다. 현재 동아시아 담론에는 일본의 ‘오리엔탈리즘적 심상지리(心象地理)’가 여전히 질곡으로 작용 姜尙中, ｢過ぎ去らない｢アジア｣の心象地理を超えて-日本の朝鮮觀を中心に｣ アジアの新世紀１, 岩波書店, 2002.
하거나, 중국의 패권적 중화주의가 부상되는 문제가 있다. 또한 일본의 오리엔탈리즘적 아시아 정책이 야기한 역사인식의 분열이 ‘동아시아 내분의 모순’으로 존재한다. 이러한 ‘동아시아 내부의 모순’을 대면하고 그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일본에서 ｢탈아론｣이래 부정되고 은폐되어 온 오리엔탈리즘의 동양인식이 해체되어야 한다.
일본형 오리엔탈리즘에는 유럽중심적 문명관에 따른 동양의 ‘타자화’뿐만 아니라 사회진화론적 세계관에 의한 ‘힘’의 숭배라 할 수 있는 ‘국가’ ‘강권’ ‘양육강식’ 같은 폭력적 논리가 횡행한다. 오리엔탈리즘의 내면화 과정에서 전개된 불평등과 지배 복속관계의 정당화, 자발적인 복종을 유도하는 지배 이데올로기의 유산 등 동아시아에 오리엔탈리즘이 남긴 잔재와 폐해는 전후에도 계승되고 있다. 박노자는 1945년이후 남겨진 일제시대의 ‘처세방법’ 역시 식민지 시대의 왜곡된 ‘전통’이자 청산되어야 할 대상으로 지적한다. 인생을 ‘생존경쟁’으로 개념화하는 오늘날의 한국인은 식민지에서 벗어났어도 거시적 의미의 ‘식민성’을 벗어버리지 못하였다는 것이다(박노자, 우승열패의 신화-사회진화론과 한국민족주의 담론의 역사, 한겨레신문사, 2005, p.24).
따라서 동아시아에서 학문의 주체화는, 오리엔탈리즘에 의해 왜곡되고 억압된 ‘공식역사’를 수정하는 일종의 ‘대항역사’의 성격을 띠고 전개되어야 한다.
그러나 오리엔탈리즘의 극복과 학문의 주체화를 위한 논리가 또다시 동양과 서양의 이항대립의 구분이거나, 동아시아의 후진성을 변호해서는 안 될 것이다. 유럽 중심적 세계에서 성취한 자산과 가능성을 활용하지 않고는, 유럽중심주의의 진정한 극복이 불가능하다는 역설적인 현실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유재건, ｢세계사 다시 읽기와 유럽중심주의｣, 창작과 비평, 2003 겨울호, p.336.
그런데 지금까지 식민통치에 대한 연구가 친일 아니면 항일이라는 양극단의 형태로 분석되어 온 것은 문제이다. 예컨대 일제 강점기에 대한 역사 서술은 주로 억압과 회유, 수탈과 통제, 그리고 그에 따른 고통과 희생을 밝히는데 초점을 맞추어 왔다. 그러나 그것이 지나칠 경우 일제 시대 한국인을 우리 역사의 주역이 아니라 식민 통치의 대상이라는 수동적인 존재로 만드는 역설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또한 운동사를 제외하면, 일제시대사 서술에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무단정치, 문화정치, 전시 총동원 체제 등 통치기구와 제도 및 식민정책에 대한 분석이 대부분이다. 반면 일제가 시행한 정책과 제도가 한국인의 일상의 삶에 미친 영향이나, 한국인의 반응과 대응 방식은 공백으로 남아있다(안병직, 세계의 과거청산, 푸른역사, 2005, pp.406-407).
때로는 불분명하고 모순과 이중성을 내포하더라도 다양한 형태의 저항과 주체화의 양상들을 제대로 평가하는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
사실 동아시아에 내면화된 오리엔탈리즘의 정도만큼이나, 그 극복의 노력 즉 주체화 경험과 기억도 각인되어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이점에서 주체화는 오리엔탈리즘에 의해 억압된 기억의 회복이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이런 의미에서 주체화는 새로운 ‘기억 만들기’ 라고도 할 수 있다. 이미 어느 정도 진행되어 온 오리엔탈리즘 극복과 주체화의 사례들은 본문에서 언급한 다양한 형태의 저항들, 즉 보수주의와 배외주의에서 합리적 온건주의, 자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민족주의, 우승열패의 사회진화론에 대한 극복, 급진적 사회주의 혁명이론 등등 여러 군데에서 발견할 수 있다.
나아가 오리엔탈리즘과 동아시아의 소외 극복은 타자화에서 주체화로의 길임과 동시에, 자기 속의 타자(동아시아)와 타자 속의 자기를 돌아보는 ‘성찰적 주체화’ 백영서, ｢20세기형 동아시아문명과 국민국가를 넘어서｣, 동아시아의 귀환, p.35.
로 나아가는 길이어야 한다. 아시아를 ‘야만’으로 규정하고 자국의 문명을 강제로 이식한 서양과 달리, 식민화의 시련을 겪었지만 자신의 문화를 밑바닥에서부터 다시 검토하고, 그 위에 자발적인 연대와 저항의 힘을 생산해온 동아시아의 역사적 경험으로부터, 우리는 ‘타자’를 왜곡하지 않는 주체화의 추동력을 찾아내어 발전시켜야 한다. 이로부터 제국주의적 오리엔탈리즘으로 왜곡된 ‘동양’ ‘동아’와 결별하고, 새로운 ‘동아시아’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中文摘要)
东方主义(Orientalism)和东亚
- 近代东亚的“他者化”"和抵抗的观点 -
金 正 賢
19世纪后半期，东方主义(Orientalism)的文明与野蛮的观点只不过在现代近代化论中转变为近代和传统的观点而以，西欧的东亚研究者还是一直把这个观点坚持到现在。关于这个，E.Said对东方主义(Orienta -lism)的"脫"殖民主义的战略，以及其他很多学者都试图为打破西欧这种主导的世界观而努力过。尤其是1990年代，随着脫冷戰这一国际政治形势的变化及东亚的经济成长，在东亚，东亚论跳出了对西欧中心主义的批判这一狭隘的圈子，做为一种变革理论和文明的方案登上历史舞台。
但是，为树立主體的观点而诞生的东亚论，当然有着积极的一面，同时也存在着不能简单下结论的一些问题。原因在于有关东亚历史的实际和概念的一些观点都处于分裂的状态。在本文中，首先调查了在东方主义体系化过程中，西欧东方主义以及由日本再生产的东方主义虚构而成的"东洋"，以及在东亚留下的内在的历史痕迹等问题。随着西欧文明的支配力的不断发展，渐渐在东亚构成一种学问权力，在‘他者'东洋内也自然而然形成了再生产东方主义的内在性。日本型东方主义一方面继承了"文明／野蛮"这一对立的西欧东方主义，把东洋"他者化"，另一方面又展示了 "脫亞"和 "興亞"这两重态度，并且有时还提到亚洲连带。这些是它的特别之处。
进入20世纪为了对抗西洋帝国主义，对亚洲地区的新理解作为连带的对象登上历史舞台。三国连带论作为对外危机意识的产物，但是，在日本和朝鲜，东亚连带论随着国际政治概念和国家意识的不同，它的表现形式也不一样。经过19世纪末20世纪初，摸索的亚洲连带论最终转变为一种空虚的理论。值得瞩目的重要原因在于知识人的"东西两分法的思考"。即在东亚三国的连带意识的底边存在着东西两分法和典型的东方主义思考。
在中国和韩国，渐渐打破了日本主导的东洋连带论和以西欧为中心的文明观的神话，形成了强调自己文化的民族主体意识。这个时期在东亚，近代西洋思想适应知识人的这一要求，也转变为一种"救国"的论点。另外，日本对中国民族运动的不理解和傲慢反而成了扩大中国民族主义的契机。在中国，1919年五四运动以来，成长起来的民族运动最终发展为1949年的革命，在这其中对日本帝国主义的抵抗是一个很大的动力。与西欧相比，中国毛泽东理论主张革命的优越性并取得了中国革命的成功，意味着在东亚形成了批判克服东方主义的主体化。
但是，在毛泽东"落后性的优点"中，过分地强调道德价值或行动等主观要素对历史的决定作用。例如，中国没有经历资本主义体制的悲痛就获得近代科学的硕果等一些过于自信的观点，以及"意识形态的盲目推崇"和"战争经验的盲目推崇"被指责为毛泽东思维上的错误。最终，这导致了中国革命及其以后清算封建残留中的不彻底性，并且在与"民主制度"紧密相连的中国国内也没能形成真正的主体性。到现在为止，在东亚还不存在一种克服东方主义的模范方式，对东方主义的克服还处于未完的状态。克服东方主义形成主体化这些论点不能成为东亚落后的辩护人。 欧洲中心主义的克服实际上体现了在欧洲社会中不能活用已经获取的资产这一现实，这就说明了这一任务的艰巨性。
주제어: 오리엔탈리즘, 타자화, 탈아론, 아시아연대론, 사회진화론, 옥시덴탈리즘, 주체화
關鍵詞: 东方主义, 他者化, 脫亞論, 東亚连带論, 社會進化論, 西方主義, 主體化
Key Word : Orientalism, Othering, Asian Solidarity, the theory of social evolution, Occidentalism, Subjectification
(원고접수: 2005년 10월 29일, 심사완료: 2005년 12월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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