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네덜란드 소년은 사회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손으로 저수지에 난 작은 구멍을 막았다. 자신의 희생을 통해 보다 더 큰 나를 지켰다. 지켜야 할 대상이 크고 사사롭지 않다. 저수지가 터지면 마을이 물에 잠긴다. 정의연이라는 저수지에 난 구멍이 있다. 필사적으로 막고 있다. 의로운 소년들이 한 둘이 아니다. 저수지에 난 작은 구멍 같은 건 원래 눈에 잘 안 보이는데 애들이 너도 나도 나선다. 네덜란드의 소년이 지키고자 한 것과 대한민국 소년들이 지키려는 것은 다르다.

외견상 둘 다 저수지에 난 구멍을 막고 있으나, 네덜란드의 소년은 저수지의 바깥(사회)을 지키고자 하고 대한민국 소년들은 저수지의 안(오물과 쓰레기)을 지키고자 한다는 점에서 매우 다르다. 둑이 무너지면 네덜란드의 저수지에선 물이 쏟아져 나올 뿐이지만, 대한민국의 저수지에선 그동안 개 돼지들이 철썩같이 믿고 있었던 맑은 물이 아니라 똥물이 쏟아져 나온다. 그 똥물을 막고자 여기 저기서 소년들이 팔을 걷어 부치고 있다. 정의연이라는 구멍이 터지면 나머지도 다 무너지게 되어 있다.

정의연이 무너지면 집권세력의 기반이 무너진다. 집권세력의 기반이 무너진다는 것은 하느님이 진짜 있는 줄 알았는데 어느 날 목사님과 신부님이 “성도 여러분, 하느님 없어요. 그동안 사기쳤어요. 앞으로 교회와 성당에 나오지 마세요.”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럼 어찌되까? 점잖게 까만 가죽 씌운 책 한 권 끼고 정장차림에 일요일마다 교회다 성당이다 나가서 사람 살 냄새도 맡고 건강하게 살고 있다는 핑계라도 찾아야 하는 개 돼지들에겐 청천벽력이 아닌가. 그래서 술집도 있고, 점집도 있고, 무당집도 있고, 철학관도 있고, 교회도 있다. 이거 다 없애버리면 철부지들은 어쩌란 말인가. 이것은 영혼의 갈등을 최소화하고 서로 먹고 살자고 나름의 질서를 뿌리내린 엄연한 시장의 영역이다. 두렵고 허약한 영혼을 가진 자들을 일일이 쫓아 다니며 가르쳐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들에겐 하느님이든 뭐든 있는 게 없는 것 보단 낫다.

정의연의 문제는 단지 정의연의 문제가 될 수 없다. 정의연은 대한민국에 산재한 많은 여성단체 그리고 시민단체들과 작동방식을 공유하고 있다. 그래서 <니가 알아서 해라.>가 될 수 없다. <우리가 알아서 해야 할 일>이 된 것이다. 정의연의 본질을 드러내거나 정의연 소동이 대한민국 시민단체와 여성단체들의 본질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확대되는 것은 <피해야 할 일> 또는 <건드리지 말아야 할 일>이다.

미통당이라는 이상한 애들도 경상도 애들한테 “이렇게 말해주면 너희들이 좋아하겠지?”라고 몇 마디 던질 뿐, 본질을 드러내는 것을 원치 않는다. 정의연이 그렇다는 것을 아는 것은 대한민국에서 믿을 데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개돼지들이 그것을 안다는 것은 비로소 눈을 뜬다는 것이다. 개돼지들이란 사실 저마다 <아무도 내 예리한 눈을 속일 수 없다>고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정말 번쩍 눈을 떠서는 안 되는 그런 존재들이다. 그래서 <개나 도나>, <고등어나 등푸른 생선이나>가 그들에겐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다. 그들에겐 고등어와 등푸른 생선은 엄연히 다르다. 이 틀이 무너지면 더 이상 사기가 통하지 않는다. 곳곳에서 비명이 터져나올 것이다. 정의연이 이뻐서가 아니라 판때기 전체가 위태로운 것이다.

시민단체와 여성단체가 있다. 설립목적이 있는 비영리 법인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시민단체와 여성단체들은 그들의 설립목적을 추구한다는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외부 활동이라는 것을 한다. 그것을 기반으로 시민들, 지자체, 정부기관, 해외기관들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그러면 그들의 눈은 다른 곳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잘 만들고 키우면 철밥통이 보장된다. 왜 딴 곳을 보고 있을까? 눈이 가는 곳은 마음이 가는 곳이다. 거기에 욕망이 있다. 시민단체와 여성단체들의 행동과 욕망은 점점 정반대로 변해갈 것이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가? 처음부터 그런 곳도 있으나 대체로 시간이 흐르면서 성격이 변해간다. 모든 징검다리엔 역작용이 있다.

개울을 건너고 싶다. 강을 건너고 싶다. 그러나 옷을 적시고 싶지는 않다. 또는 물에 휩쓸려 떠내려가고 싶지는 않다. 거기서 문제가 시작된다. 시냇물과 강을 건너는 행위는 반드시 우리에게 어떤 대가를 요구한다. 그 대가라는 게 도대체 무엇인가? 강을 건너는 자는 신발을 벗어 어깨에 둘러매든 바지를 벗어 허리에 감든, 무엇을 하든지 간에, 반드시 발을 물에 담궈야 한다. 강을 건너는 모든 존재는 강이라는 존재를 그렇게 의식해야만 한다. 인간과 강의 만남, 이게 강을 건너는 행위가 인간에게 요구하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 놓은 모든 다리는 자연의 관점에서 볼 때 일종의 사기 행위에 해당한다. 강을 건너는 자는 반드시 강의 존재를 의식하게 된다. 그러나 다리를 건너게 되면 다리는 도로의 연장물에 불과할 뿐, 강의 존재와 우리를 분리시켜버린다.

종군위안부 할머니들이 있다. 이분들은 강이다. 우리는 옷과 신발에 물을 적시고 싶어하지 않는 불편한 강을 건너야 그분들을 만날 수 있다. 정의연은 다리다. 우리가 이분들을 직접 만나 도와주지 않고 정의연이라는 다리를 건너는 것은 이분들의 아픔을 위탁하는 것이다. 다리 걷어 올리고, 돌부리에 발가락이 뒤틀리고, 어쩌다 넘어져 강물에 옷을 적시는 불편을 누군가가 마다하면 어디선가 하나 둘 다리가 들어서고,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은 하나 둘씩 다리 밑에 가려져 있으나 흘러가는 강의 존재를 잊어버리게 된다. 우리의 의식속엔 결국 다리만이 남게 된다. 이것이 모든 다리가 인간에게 미치는 부작용이다. 강을 건너면서 물에 발을 담그지 않겠다는 생각, 그 무례한 생각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정의연 소동으로 인해 개돼지들의 의지처인 친북, 반미, 반일, 여성운동까지 이 남반도가 구질구질하게 달고 다니는 허깨비같은 진보적인 척하는 가치 전부가 위기에 처할 수 있는 문제로 인식되고 있기에 너나 할 것 없이 달려들어 급한 불을 끄고 있다. 다 태워야 하는데 다 태워 없애야 하는데 곧 불은 꺼질 것이다.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시민단체라는 것은 도둑들이 정관을 작성하고 강도전문 법인설립을 위해 공증을 받고 등기국에 등기한 다음 강도 사업자 등록을 낼 수는 없어서 이름을 좋게 둘러댄 단체 정도다. 대한민국엔 끝없는 의심과 의심 사이에 존재하는 한 올의 생각을 제외하고 누군가가 믿을 수 있는 단체라는 것은 없다. 오래전에 썼어야 할 것을 이제야 쓴다. 홍콩, 대만, 남중국해, 리비아, 아메리카에 이르기까지 훈훈한 바람이 불어오건만 이 땅엔 한숨 소리만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