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의 핵심적 개혁 과제는 주권 회복과 빈부격차 해소이다
(WWW.SURPRISE.OR.KR / 정호일 / 2026-07-13)
국내외 정세가 격동하는 상황에서 이재명 정권은 등장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시대 흐름에 맞게 한국 사회의 제반 문제를 해결해 가야 했으나 이재명 정권은 그 길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이를 올바르게 풀어가기 위해서는 개혁의 핵심적 과제가 무엇이며, 또 어떤 입장에 서서 풀어가야 하는지를 명확히 할 필요성이 있다고 할 것입니다.
한국 사회의 핵심적 개혁 과제가 무엇인지를 살펴보려면 시대적 흐름부터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게 자유를 누리고 살아야 한다는 것은 형식적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자유와 평등을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사회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의 객관적 조건의 차이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빈부격차가 확대 심화된 결과로 자유와 평등을 실질적으로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빈부격차가 얼마나 확대 심화되었는지는 계급 간, 지역 간, 도시와 농촌 간의 차이는 물론, 세대 간의 차이마저 격화되고 있는 데에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농촌은 사람이 없어 붕괴되어 가고 있고, 20~30대 청년들은 미래에 대한 어떤 희망을 보지 못하고 자포 세대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빈부격차의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인데, 어떻게 해야 이 문제를 풀 수 있을까요? 그것은 객관적 조건의 차이를 극복할 근거를 제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어떤 논의를 하더라도 결국은 객관적 조건에 대해 민이 주인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객관적 조건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없게 되면 그 차이를 그대로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기에 빈부격차를 극복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서 객관적 조건에 대해 주인의 권리를 인정해야만 실질적으로 자유와 평등을 누리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객관적 조건에 대해 주인의 권리를 인정해야 그 차이를 극복할 수 있고, 그래야 빈부격차를 해소함으로써 자유와 평등이 형식적으로만 인정되어 실질적으로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객관적 조건에 대해 주인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 있을까요? 객관적 조건의 차이를 낳게 하는 물질적 재부는 어느 누가 창출하였든 간에 그것은 결국 사회적 재부로 되기 때문입니다. 사회적 재부라는 것은 사회적으로 창출된 재부라는 뜻입니다. 그 때문에 나라의 주인인 민이 주인의 권리를 행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 추진은 획일적인 방식이 아니라 서로의 이해관계가 일치된 핵심적 문제부터 풀어가는 방식으로 전개하면서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계속 그 수준을 높여가야 할 것입니다.
하여튼 주인의 권리를 행사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만 빈부격차가 해소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입장은 기존의 사회 질서 방식과는 질적으로 구분됩니다. 그 때문에 기존 질서의 연장선상에서 접근하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기존의 방식은 객관적 조건의 차이를 인정할 수밖에 없도록 폭력과 강압, 채찍을 주로 사용하였습니다. 노예로 만들거나 신분적 차별을 가하는 것, 자본주의 사회에서 배고플 자유를 허용하는 게 바로 그것입니다. 여기서 명백히 해야 할 점은 배고플 자유는 자유가 아니라 채찍일 뿐이라는 사실입니다. 사람은 먹고살아야 하는데 배고플 자유, 즉 굶어 죽을 자유를 주는 것이 무슨 자유란 말입니까? 그 때문에 주인의 권리를 행사하는 차원으로 나아가자면 폭력과 채찍이 아니라 민이 자발적으로 사회의 주인으로서 책임과 역할을 다하도록 하는 방식을 적용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한국 사회에서 청년들이 직장에 취직해서 평생을 일해도 부모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자기 힘으로 번듯한 아파트 하나 제대로 장만하지 못하는 현실을 그대로 인정하는 게 맞느냐는 것입니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독립할 나이가 되었을 때 자기 집을 마련하고 살 수 있도록 하는 게 당연한 사회적 권리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한 개인이 전혀 노력하지 않는다면 몰라도 기본적으로 사회에 취업해서 노동하고 있다면 누구나 당연히 주거를 마련해 살아갈 수 있도록 국가적 차원에서 책임지고 해결하려는 방향이 맞을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사회적 재부에 대해 민이 주인의 권리를 행사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본질적인 문제는 전혀 언급하거나 건드리지 않고 부차적인 문제인 보유세니 뭐니 하면서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면 거기서 정말로 빈부격차의 해소책이 나올 수 있겠습니까? 어차피 그런 입장은 단지 부유한 집에서 사는 사람에게 돈을 더 부담하라는 것일 뿐 본질적으로는 빈부격차의 차이를 인정하는 입장에 근거해 있는데 말입니다. 그러니 그와 같은 부동산 정책들은 집 없는 사람에 대한 실질적인 대책이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빈부격차의 차이를 해소하자면 사회적 재부에 대해 주인의 권리를 행사해야 한다는 본질적 입장에서 사회 전반에 대해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껏 한국 사회의 개혁이 실패했던 것처럼, 이재명 정권 또한 그 과정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회적으로 창출된 물질 문화적 재부에 대해 주인의 권리를 행사해야 한다는 본질적인 입장에서 전개하지 못했던 것이 한국의 사회 개혁이 실패했던 이유의 하나라고 한다면, 또 하나는 주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한 데 있습니다.
한국 내부에서 민이 사회적 재부에 대해 주인의 권리를 행사하는 방식으로 전반적 사회 개혁을 이룩하자면 한국이 자신의 독자적인 정책을 추진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주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면 자기 나라의 독자적인 정책을 추진할 수 없기에 개혁이 실패할 것은 당연하기도 하겠지만, 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가는 국가 간에 불평등한 억압과 수탈이 이뤄지게 되면 그게 도화선이 되어 한국 내부에까지 거대한 먹이사슬의 연계 고리가 형성되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외세와 매국노가 이익 보는 형태로 국내 정책 또한 실시될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단적으로 한국 사회의 실질적인 개혁은 사회적 재부에 대해 민이 주인의 권리를 행사하는 방식으로 되어야 하는데, 미국과의 불평등한 관계의 수탈 체계가 성립되면 바로 그때로부터 외세와 매국노의 이익이 인정되는 방식으로 사회 체제가 강제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조건에서는 사회 개혁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외세와 매국노의 이해와 요구가 관철되는 방식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미국과 불평등한 관계가 형성된 속에서 한국의 경제 정책이 추진되어 온 과정을 살펴보면 명확히 확인됩니다. 맨 처음 미국의 원조와 차관 형태의 경제가 이뤄지다가 급기야 수출 지향주의 정책이 추진되었고, 마침내 세계화 정책이 추진된 결과 한국 경제가 크게 성장하였습니다. 하지만 나타난 결과는 식민성과 매국성, 빈부격차의 확대 심화였습니다.
그런데 이재명 정권은 미국으로부터 한국의 주권을 확고히 찾으려고 하지는 않고 미국과의 동맹관계에 기초하겠다고 하면서 한국의 국익과는 배치되는 진영 논리에 깊숙이 빠져들고 있으며, 그런 연장선상에서 미국의 요구에 굴복해 돈만 많이 벌면 한국 경제의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정책을 펴나가고 있습니다. 돈을 많이 벌면 낙수효과로 인해 사회 자체가 이익을 본다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앞에서 말했듯이 미국과 불평등한 관계가 형성된 조건에서 추진되었을 때 주권 회복의 길이 열리지도 못했을 뿐만이 아니라, 한국의 경제 또한 외세 의존성과 기형성, 빈부격차의 문제만 확대시켰을 뿐입니다. 이처럼 이재명 정부는 격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시대의 흐름에 맞게 개혁의 핵심 과제인 빈부격차 해소와 주권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한참 잘못된 길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재명 정부만 바라보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이제 민이 직접 나서서 시대 흐름에 맞게 개혁의 핵심 과제인 빈부격차 해소와 주권 문제를 확고히 해결하는 길로 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사회적 재부에 대해 민이 주인의 권리를 행사해야 한다는 질적 내용을 명확히 견지하는 방향에서 국내외 정책을 연계시켜 펴 나가야 하고, 그리하자면 어떤 경우에도 주권만큼은 양보하지 않고 확고히 회복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길은 사회·역사의 주체이자 나라의 주인인 민을 중심에 놓고 사고하는 애민·애국의 기치가 될 수밖에 없고, 그 때문에 민은 이제부터 자기 스스로 애민·애국의 연대·연합체를 건설하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확고히 내딛고 걸어가야 합니다.
2026. 7. 13.
우리겨레연구소(준) 소장 정호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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