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가 어렵다는 것은 더 이상 논쟁거리는 아닌 듯싶다. 한국은행은 2016년 한국경제 성장률을 2.8%로 보고 있고,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마저 조만간 성장률을 2%대(기존 3%성장 전망)로 하향조정할 것으로 보인다.

근 몇 년간 2%대 저성장이 이어지는 모양새다. 1990년대 평균 7% 성장세를 보였고, IMF위기를 겪은 후인 2000년대에도 평균 4.4% 성장률을 기록했던 한국경제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면 한국경제가 확연히 저성장 기조로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그동안 한국경제를 떠받쳐 왔던 수출마저 심각하다. 4월 수출액은 1년 전과 비교해 11.2%나 감소했다. 수출액은 2015년 1월부터 계속 감소하며 통계 집계 이후 최장기간인 16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 중이다. 

비단 한국만이 문제가 아니다. 그동안 고도성장으로 세계경제 성장을 견인해 왔던 중국도 이젠 이전과 같은 성장세를 보이긴 힘든 상황이다. 현재진행형인 2008년 발생한 미국발 경제위기는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그에 따라 세계경제는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2015년 세계 상품 무역액은 달러화 기준 13.8% 줄어들기까지 했다.

이곳저곳에서 아우성이 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우리 국민들에게는 뼈아픈 단어일 수밖에 없는 ‘구조조정’, ‘정리해고’ 등의 말들도 본격적으로 나오고 있다.

박근혜 정권과 재벌들에겐 ‘절박한’ 구조조정

문제는 경제가 단순히 어렵다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이 국면을 돌파해 나가는가이다.

재벌대기업과 그들의 이익을 옹호하는 정치세력들 입장에서 보면 이 국면을 노동자에게 고통을 전가시켜 벗어나고 싶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국민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을 확대하는 노동개악을 밀어붙이고, 재벌기업들이 구조조정에 본격적으로 나서는 것은 지금 상황에서 그들의 생존전략으로 볼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재벌들의 이익을 옹호하는 박근혜 정권 입장에서는 지금이 절박한 상황이라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다. 원래 보수정권과 재벌대기업은 의례적으로 반노동자적 정책을 쓰는 세력들이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 그들은 현재 절박하다. 앞으로 닥쳐올 큰 경제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그 충격이 자신들에게 미치는 것을 최소화하려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할 것이다. 그래서 위기에 대응하는, 노동자들에게 고통을 전가하려는 보수정권과 재벌대기업의 움직임은 강력한 형태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올해 초 경제단체들이 주도한 ‘노동개혁법’, ‘경제활성화법’ 등의 입법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에 직접 동참한 바 있다. 박 대통령은 “얼마나 답답하면 서명운동까지 벌이겠느냐”며 당시 기업인들을 독려했다. 전 국민이 거리 곳곳에서 세월호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수백만의 서명을 받을 때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던 대통령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면 너무나 정치적인 의도가 뻔히 보이는 행보였지만, 그만큼 그들의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지금의 위기는 단순히 중소기업 몇몇의 위기가 아니다. 기업 경영성과 평가사이트 <CEO스코어>의 조사에 따르면 국내 유수의 재벌그룹 계열사들을 포함한 500대 기업 10곳 중 1곳은 벌어들인 이익으로 이자도 갚지 못할 정도라고 한다.

2014년 기준 GS그룹의 이자보상배율(=영업이익/이자비용 : 이 수치가 1이하면 기업이 벌어들인 돈으로 원금은커녕 이자도 감당하지 못한다는 뜻)은 -0.45를 기록했다. 현대중공업 -11.32, 한진그룹 0.71, 한화그룹 0.41, KT -1.16, 대림그룹 -0.43, 동부그룹 -0.96, 현대그룹 -0.13 등 이름만 들으면 모두 아는 굴지의 대기업이라고 하는 곳들이 이자보상배율이 1도 되지 못한다. 두산그룹은 1.43을 기록했다. 

최근 구조조정의 1순위로 지목되어 있는 조선, 해운업의 상황도 심각하다. 국내 조선업계는 1분기까지 수주가 9척에 그친 데 이어, 4월에 한 척의 선박도 수주하지 못했다고 한다. 1~4월 전세계 선박 발주량은 389만CGT(114척)로 1년전 같은 기간 1047만CGT(473척)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했다. 글로벌 해운조사기관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2009년 금융위기 이후 평균 6%대를 기록하던 세계 컨테이너 물동량 증가율은 2015년 2.4% 증가하는데 그쳤다.

재벌들 입장에서 당장 특별한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후에도 계속 반도체, 휴대폰,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만으로 먹고살기는 어렵다. 자본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산업과 시장이 필요하지만 뚜렷한 방향이 보이지 않는다. 전기차 시장이 당장 이윤을 가져다줄까? 사물인터넷 시장이 이윤을 가져다줄까? 미래의 일을 단정할 순 없지만(물론 전망이 상당히 불안정하다) 이것들이 당장 기존 사업을 대체하며 재벌들에게 이윤을 가져다주기는 어렵다.

이런 측면에서 박근혜 정권이 추진하는 의료 민영화 등이 의심되는 서비스산업의 ‘선진화’ 방안도 놓여있다. 단순히 보수정권은 ‘민영화’를 좋아하는 문제가 아니라 재벌들에게 새로운 수익처를 챙겨주기 위한 절박한 몸부림인 것이다. 물론 재벌들이 병원사업을 한다고 당장의 위기에서 벗어나긴 힘들어 보인다. 게다가 의료 민영화 등은 국민들의 삶의 질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 뻔해 국민들의 반발도 클 수밖에 없다.

민생중심, 통일경제가 답

세계경제의 현황을 봤을 때 한국경제의 상황이 쉽사리 좋아질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렇다고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추진되는 정리해고는 답이 될 수 없다. 특히 지금과 같이 세계경제가 장기 저성장의 늪에 빠져있는 상황에서 수출이 쉽게 회복되기 어렵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당장의 경기침체를 막기 위해서는 외부에 눈을 돌릴 것이 아니라 국내소비여력을 늘이는 것이 필요한데, 정리해고는 실직자를 늘려 국내소비여력을 더 악화시킬 것이다.

우선 재벌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경제위기는 노동자들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니다. 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을 견디며 묵묵히 일한 죄밖에 없다. 각종 투기로 세계경제 시스템을 마비시킨 것은 자본이며, 한국 재벌들은 골목상권 까지 장악하려 들며 오히려 국내경제에 악영향을 끼쳐왔다. 자본가들은 미래 상황이 불투명한 상황에서도 과도하게 빚을 끌어들여 부실한 경영을 해왔다. 따라서 정리해고부터 생각할 것이 아니라 법인세를 인상하고(적어도 원상복구하고) 재벌의 사내유보금을 활용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이번을 기회로 한국경제의 근본적인 체질개선을 이뤄내야 한다. 기업이 잘 되면 자연히 국민들도 잘 된다는 헛된 망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기업이 중심이 아니라 민생이 중심이 되는 경제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최저임금을 인상해 서민들의 소비여력을 높이고, 기업들에게 시장을 만들어 주는 의미에서의 내수확대가 아닌 민생중심의 내수확대 정책이 필요하다.

남북간 경제협력을 강화하고 ‘통일경제’를 만들어 나가는 작업도 필요하다. 개성공단은 계획대로였다면 800만평의 공단에 2000여개의 기업이 매년 500억달러 이상을 생산하는 대규모 산업단지 되어있었을 것이다. 중소기업들의 숨통을 틔워줄 수 있는 것에 더해 대기업까지도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또한 남북경협과 통일경제는 천문학적인 국방비를 줄이고 복지확대의 발판이 될 수 있으며 더 나아가서는 지금과 같은 외부충격에 좀 더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경제구조를 형성할 수 있게 해준다. 재벌들의 곳간에 쌓여있는 돈들이 쓸모 있는 곳에 흘러들어갈 수 있는 길도 열린다. 

박근혜 정권과 재벌대기업 입장에서는 현재 긴박한 위기상황이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당연하게도 이 위기를 노동자들에게 고통을 강요하며 넘어가려 할 것이다. 박근혜 정권과 재벌대기업이 절박한 만큼 노동자들에 대한 공세는 거셀 것이다. 국민들은 이에 맞서 저항해야 하며 민생경제, 통일경제의 길로 나아갈 것을 요구해야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