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을 준비하면서 접하는 것과 그냥 평소 감각적으로 느꼈던 농촌 현실은 엄청난 간극을 보였다. 최근 풍년에 쌀 생산량이 늘고 소비가 줄면서 가격 폭락은 상상을 초월한다. 예비 귀농인으로서 꿈꾸었던 상황과 점차 현실문제에 접근하면서 스멀스멀 압박해 오는 부담감이 상당하다. 아직 돈이 필요한 자녀들, 그리고 매달 일정금액의 자금이 필요한 병든 어머님이 계시기에 아니면 말고식의 마음 편한 실험식 귀농은 꿈도 못 꾸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일단은 마음을 비우기로 했다. 하는데까지 부딪혀보자는 다짐과 소비를 최소화하는 생활을 미리부터 계획하고 실천하는 걸로 방향을 잡았다. 최근 절대농지 해제 문제가 불거진다. 물려받은 농지가 대부분 절대농지라 눈길은 간다. 아마도 깡촌이 아니고 대도시 주변이라 벌써부터 땅값이 들썩인다. 떴다방 부동산업자들이 먼저 활개를 친다. 땅을 만들기 위해 몇 년째 묵혀 둔 농지들에 대해 벌써 팔지 않겠느냐는 전화들이 간헐적으로 온다.
얼마 안되는 지주 입장에서 땅값 상승이 기대되지만 귀농 입장에서 임대토지도 계획하는 입장에서 이로 인하여 민심이 흉흉해지고 안정적 장기 임대도 불가능하게 되는 등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할까 봐 심히 걱정은 된다. 경기침체 상황을 쌀 생상량 증가를 핑계로 부동산 거품을 만들려 하는 이 미친 정부의 정책을 생각하면 울화가 도진다. 가장 쉬운 남북긴장 해결책 중 하나인 인도적차원의 쌀소비책인 대북지원을 아무런 조건없이 수행하면 장기적 식량난 대비책과 통일 후 식량주권문제도 동시에 해결된다. 북핵과 관련하여 무조건적인 압박보다 무슨 도움이라도 주고나야 비로소 부탁이던 협조하던, 강압이던 간에 뭐라도 조금 먹히는게 인지상정 아닌가.
각설하고..
귀농 후 어떻게 농사짓냐를 결정하기 위해 2년전부터 시험적 농사를 짓고 있다. 현업과 연계하여 일시 파종, 일시 수확, 그리고 그 과정들이 조금 단순한 작물을 선택하여 공부 겸 농사를 짓는다. 대표적 작물이 밭작물로 공부하고 있는 무경운, 무투입, 자연 순화농법을 완전하진 않지만 부분별로 나눠 시험하고 있다.
먼저 올 봄 6월 중순 200여접의 마늘을 수확했던 밭에 연작시 오는 상태, 작년에 무농약은 지켰고, 아직 완전히 배제하지 못한 화학비료를 지키기 위해 약 4개월동안 방치하여 풀을 키웠다. 그동안 관행농법으로 망가졌던 토양을 자연상태로 복원하는 과정이다.
<아마도 땀을 두어말 흘렸을 것이다. 잡초를 베고 지난해부터 만들어 논 톱밥과 쌀겨(미강)에 토착미생을 뿌려 발효시켜 논 것과 농협에서 공급받은 동물성 퇴비를 뿌린 후 관리기로 헐겁게 대충 뒤엎은 다음 비닐멀칭 생략하고 조금 시간이 걸리지만 두둑을 나눠 씨마늘을 꽂은 다음, 베논 논 풀과 주변 산에서 긁어 온 낙엽으로 멀칭하여 잡초발생을 억제하려 계획했다. 현재는 가을이라 여름처럼 무성하게 풀이 올라오지 않는다. 내년 봄 새풀이 올라 오기전 왕겨와 낙엽으로 다시 멀칭을 해 주면 그 사이 마늘이 주변풀과 경쟁에서 어느정도 우위에 서면 그 다음 풀문제는 그리 어렵지 않다는 걸 작년 실험에 통해 자신감을 얻은 바 있다.
그런데 아뿔사 풀베기를 마치고 베어 논 풀이 마르기를 기다리는 사이 전화벨이 울린다, 촌놈은 고향으로 귀농 예정임으로, 그 마을은 씨족촌이다. 사람들과는 남이 아닌 거의 집안네라는 얘기다. 촌수가 높아 조카나 손주뻘 되면서도 생물학적 나이는 아버지뻘되는 분들이 몇 분 농사짓는 마을이다.
촌놈의 주업은 요식업이라 동네분들 잉여 농작물은 전량 소비해주고 일부는 주문 생산하던 터라 친하게 지낸 편이다. "아재, 맨날 바쁘게 살면서 고생하는 걸 못 봐, 내가 트랙터로 밭을 깨끗하게 정리 해 놨구먼요. 이제 풀 좀 그만 키우시오, 풀을 그렇게 키우면 씨앗이 떨어져 감당 못 한당게, 그래서 말끔하게 풀들을 트랙터로 밭두렁 쪽으로 밀어 버리고 제초제도 왕창 뿌려 놨응게 풀은 안날 것이요, 다음 오믄 일당허고 농약값 톡톡하게 줘야제.. 로타리 값은 그냥 서비스요,, 대신 고추 좀 팔아줘잉?"
이거 정말 황당했다. 완전하게 뒤통수 맞았다. 초짜가 아는 척한다는 소리 듣기 싫어 작년 농사지으며 훈수하시는 걸 모두 바쁘다는 핑계, 그리고 먹으려고 하는 농사라 대충 농사짓고 남은 것만 거둬 들이겠다고 말해버린 게 실수라면 실수다.
어쩌랴. 마음아프지만 고맙다고 할 수 밖에, 다음부턴 상의 좀 하시라 정중히 말씀드리고 1년 준비 도루아미타불 된 시점, 누구한테 하소연도 못 했다. 또 시간을 내서 내려가 보니 멀칭하려던 잡풀들은 모두 흙과 범벅이 되어 밭가로 밀쳐졌다.. 사진으로 못 남겼으나 무농약은 포기하고 계획대로 퇴비와 발효 두엄을 뿌리고 가볍게 로타리치고 검정비닐 멀칭을 했다. 심기전 약15일전 쯤 일이다.
주말부터 3일 예정하고 씨마늘을 차에 싣고 마늘심으러 고향밭으로 향했다. 동이 트면서부터 혼자 마늘을 심기 시작했다. 그런데 동네 질부나 손주며느리급 할머니들 5분이 호미와 깔개를 들고 밭으로들 오시는 게 아닌가. "아재 남자 혼자 먼 일을 한다고, 우리가 도와 줄겅게 가서 만나거나 사오소."
93세인 장동댁은 마늘 심는데 베테랑이시다. 나보다 1.5배 정도 빠른 진척을 보이신다. 계획했던 농사는 망쳤지만 훈훈한 인정만큼은 더할 나위없이 소중하게 다가 온다. 물론 일당도 만족할 만큼 손에 쥐어 줬다. 그 분들 돈 나올 때가 없는 분들이시다. 능력만 되면 하나라도 그분들의 소중한 소출들을 팔아주려는 마음은 항상 갖고 고향 마을을 다녔었다. 일 끝내고 일당을 줄 때 한바탕 소란이 일지만, 억지로 주머니에 찔러 준 돈을 결국은 소중하게 챙겨 넣는다.
귀농은 농법보다 더불어 살아가야 할 주변인들과의 관계 설정 여부에서 판가름 나리라 생각 된다. 먼저 내 것을 지키는 것보다 양보하고 배려하며 그들을 존중하는 마음 가짐이 절대적인 성공여부라는 걸 느끼는 순간이다. 그들 덕에 올해 마늘 심기 작업은 반나절만에 끝을 맺었다. 심고나서 비료와 잡풀이 올라 올 것을 대비하여 농약치라는 권고를 설득시키느라 애를 먹었다. 그 중 로타리쳤던 조카분 왈 " 돌아가신 대부 닮았는 지 그 놈의 고집은, 하긴 작년에 나보당 훨 마늘 농사 잘 지은 결과 때문에 더 강요 할 수는 없고, 올해 나보다 더 농사 잘 지으믄 아재가 내 농사선상 하시오," 그걸로 합의를 봤다. 또 내가 가고 나면 농약 칠까봐 신신 당부했다. 그래도 얼마나 든든한 지원군들인가. 밭에 조금이라도 이상이 생기면 내 밭처럼 매일 감시하다 전화로 알려주곤 하던 분들이다. 또 비어 있는 집도 거의 매일 둘러 봐 주신다.
다들 수도작(벼농사)이 주라 다들 정부수매량에 걱정들을 늘어 놓는다. 그런 농심을 깔아 뭉개는 박근혜정부의 근시안적 정책들에 대해 분노가 치솟는다. 누가 뭐래도 미래의 해법은 소작농 부활에 가능성이 있다. 이웃 일본은 출혈을 통해서라도 무상으로 엄청난 경비를 쏟아 부으며 아프리카로 쌀을 무상공급한다. 그러지 못할 망정 북한의 동포들이 수해를 당했는데 그 지원마저 끊고 무조건 쌀수확을 줄이려는 목적으로 경작지를 훼손하는 정책, 절대농지를 해제하면 주택용지나 공장부지가 될 것이다. 공장 세울 능력도 없으면서 땅을 가지고 장난치는 작태는 미래를 깔아 뭉개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제발 정책다운 정책으로 세상을 다 품을 농심들을 흔들지 말기 바랄 뿐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인정을 통한 수해지원을 적극 주장한다.
서프는 아닥하고 이 글 대문에 걸어야 함.
문빠 앵벌이들 대문용 인문학 글 1000편 보다
이 글 하나의 값어치가 만빵이라 사료됨.
촌놈사랑처럼 생활에서 사람 내음과 더불어 실천하는 진정한 진보야 말로
대한민국 명랑사회 건설의 초석을 다지는 길이라 격하게 주장하는 바임.
우리 큰형님이 시골에서 도정공장 일 하시는디..
북으로 보내는 쌀 도정할 때는 정말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가던 공장이
요즘은 완전 적막강산이라는.....
영화 '부산행'처럼 좀비 세상이 오거나 진도 6.0 이상의 지진이 오면
한순간에 쑥대밭이 될 거이 분명한 나와바리에서 벗어날 수 없이 살아가야 하는 나로서는
촌놈사랑님이 무지무지 부러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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