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인물전 26 ‘제갈각’> 유시민, 지나친 총명함은 자신을 망친다. 그러나……
1. 총명과 현명사이
229년, 손권이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아들 손등을 황태자로 삼고, 제갈근의 맏아들 제갈각(諸葛恪)으로 태자를 보필하게 했다. 제갈각은 총명하고 말을 잘하기로 유명했다. 제갈각이 여섯 살이었을 때, 아버지를 따라 손권이 베푸는 연회에 참석했다. 제갈근의 얼굴은 나귀처럼 길었는데 이를 본 손권은 장난기가 발동했다. 내시를 시켜 나귀 한 마리를 끌고 오라 했다.
“하하, 나귀 얼굴에 ‘제갈자유(諸葛子瑜)’라고 써라.”
‘자유’는 제갈근의 자(字)다. 다들 낄낄대며 웃기 시작했다. 가만히 앉아 있던 제갈각이 벌떡 일어나 분필을 잡고 ‘제갈자유’ 뒤에 ‘의 나귀’라고 썼다. ‘제갈자유의 나귀’가 되...었다. 손권은 제갈각의 재치를 크게 칭찬한 후에 나귀를 상으로 주었다.
또 어느 날 손권은 관료들을 불러 모아 연회를 베풀었다. 손권은 제갈각을 시켜 사람들에게 술잔을 돌리게 했다. 제갈각은 술을 따라 나이 많은 문관 장소에게 잔을 주었다. 장소는 사양했다.
“이건 노인을 보살피는 예절이 아니라네.”
손권이 살며시 웃으며 말했다.
“네가 장소한테 그 술을 억지로 마시게 할 수 있겠느냐?”
제갈각이 말했다.
“옛날 강태공은 연세가 구십이 넘었지만 벼슬을 하면서 늙었다는 말씀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적과 싸울 때에는 선생을 대접하여 뒤에 계시도록 하고, 술을 마실 때는 선생을 대접하여 먼저 드립니다. 이것이 노인을 보살피는 예절이 아닐는지요.”
할 말이 없어진 장소는 말없이 술을 마셨다.
세월이 흘러 252년, 손권이 죽고 손양이 어린 나이에 황제가 되었다. 손권은 제갈각에게 뒷일을 부탁했다. 이 때 위나라의 정권 실세였던 사마사는 이 기회를 틈타 오나라를 공격하기로 결정했다. 병력 십만을 거느리고 국경지대에 도착했다. 사마사는 우선 호준이라는 장수에게 1만 군사를 주어 동흥성을 치게 했다. 이 싸움에서 호준은 크게 패하고 후퇴했다. 이 소식을 들은 사마사는 공격을 중지하고 회군했다.
제갈각은 이 승세를 타고 위나라를 공격했다. 촉나라에 사신을 보내서 함께 위나라를 치자고 한 뒤에, 스스로 이십만 대군을 거느리고 북으로 진군했다. 행군을 하는데 갑자기 길에 안개가 피어올라 앞 뒤 분간을 할 수가 없다. 장연이라는 사람이 말했다.
“이런 독기가 오르는 것을 보니 전쟁에 질 조짐입니다. 회군하시는 게 나을 듯합니다.”
제갈각은 버럭 소리 질렀다.
“네가 감히 불리한 말을 해서 나의 군심을 어지럽히는구나. 여봐라. 저놈의 목을 베어라!”
제갈각은 주변의 만류로 장연을 죽이지는 않았지만, 그의 벼슬을 빼앗고 서민으로 강등시켜 버렸다.
제갈각 군은 신성(新城)을 공격했다. 사마사는 신성에 사람을 보내 성을 굳게 지키라고 한 다음 세 명의 장수에게 명령을 내려 제갈각의 군대를 공격하게 했다. 제갈각은 석 달을 공격했지만, 신성을 함락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화가 난 제갈각은 전군에 열심히 싸우지 않는 자는 목을 베겠다고 명령을 내렸다. 거의 성이 함락될 무렵 위나라 진영에서 꾀를 냈다. 말 잘하는 사람 한명이 제갈각을 찾아갔다.
“위나라 법에 ‘성이 포위를 당했을 때 백 일 내에 구원병이 오지 않았을 경우, 항복을 하더라도 가족을 연좌제에 묶지 않는다’고 되어 있습니다. 장군께서 신성을 포위하신 지 이미 구십 여일이 되었으니 얼마간 공격하지 않고 참아주신다면 우리 성주가 항복을 한다고 합니다.”
그러고는 위나라 법률 책을 내밀었다. 제갈각은 이 말에 속아 넘어갔다. 위나라 군대는 며칠 을 쉬면서 성을 완전히 수리해버렸다.
“하하, 우리 성 안에는 아직 반 년 동안 먹을 양식이 있다. 너희들 오나라 개놈들한테 항복하지 않는다. 다시 싸우자.”
제갈각은 화가 나서 다시 공격을 했다. 직접 나서서 싸움을 지휘하다가 이마에 화살을 맞았다. 설상가상 군대의 사기가 떨어졌고, 날씨가 더워서 병이 돌았다.
“병에 걸린 군사들이 많습니다. 어떻게 싸우시려고 그러십니까.”
“다시 그런 말을 하는 놈이 있으면 목을 베어 버리겠다.”
이 말을 들은 군사들은 더욱 풀이 죽었다. 도망치는 군사들이 많았고, 장수 하나도 위나라로 투항해버렸다. 제갈각은 그제야 군사들을 살피니 군사들 얼굴에 병색이 완연했다. 어쩔 수 없이 회군 명령을 내렸다. 위나라 군대는 후퇴하는 제갈각의 군대를 공격했다.
오나라에 돌아온 제갈각은 패배한 사실이 부끄러웠다. 병이 낫다는 핑계를 대고 조정에 나가지 않았다. 한편으로 사람들이 자신에게 책임을 물을까봐 걱정했다. 장수들의 죄를 따져서 죄가 가벼운 사람은 변방으로 귀양 보내고, 무거운 사람은 목을 베어 버렸다. 이처럼 제갈각의 위세는 하늘을 찔렀다.
자연스레 제갈각을 원망하는 사람이 생겼다. 종친 중에 손준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제갈각에게 병권을 몰수당한 뒤로 언젠가 제갈각을 죽이리라 맘먹고 있었다. 이런 생각은 황제인 손양도 마찬가지였다. 황제는 잔치 자리에 제갈각을 유인했다. 이 자리에서 손준은 제갈각의 목을 베어 버렸다. 그리고 군사를 보내 제갈각의 가족을 모두 죽여 버렸다.
오나라 병권을 전담했던 것을 보면 그의 기량이 녹록치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제갈각은 결정적인 순간에 판단 실수를 했는데, 이것은 이 사람이 똑똑했기 때문에 자신의 머리를 지나치게 믿었기 때문이다. 주위 사람들이 이 점을 우려해서 그에게 신중할 것을 요구했지만, 그 때마다 콧방귀를 뀌고 자신의 능력을 믿었다. 오나라의 대장 육손은 그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그대를 보니 기세는 윗사람을 능가하고, 아랫사람을 무시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 같습니다.”
총명했으나 성질이 급하고, 사람을 덕으로 대하지 못했던 제갈각은 이렇게 죽었다. 그의 아버지 제갈근이 살아 있을 때, 아들의 총명이 너무 밖으로 드러나자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이 아이가 집안을 망치고 말 것이다.”
총명한 것이 능사는 아니다. 사람은 현명해야 한다. 주변인의 말을 귀담아 들으며, 덕으로 사람을 대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제갈각은 현명하지 못했다. 제갈각은 지나치게 총명해서 죽었다. 남이 죽인 게 아니라 스스로 죽음을 택한 것과 마찬가지라는 말이다.
2. 스스로를 가두지 말았으면
“……법정이 신성한 것은 그것이 법정이기 때문이 결코 아니며, 그곳에서만은 허위의 아름다운 가면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때로는 추악해 보일지라도 진실의 참모습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지금에 와서 긴급조치가 정의로운 법이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그리고 그때 투옥되신 분들이 ‘반사회적 불순분자’ 또는 ‘이적행위자’였다고 말하는 이도 거의 없지만, 그분들을 ‘죄수’로 만든 법정은 지금도 여전히 ‘신성하다’고 하며 그분들을 기소하고 그분들에게 유죄를 선고한 검찰과 법관들 역시 ‘정의구현’을 위해 일하고 있다고 합니다. 누군가가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사법부가 정의를 외면해 왔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법정이 민주주의의 처형장으로 사용되어 왔다’는 뜻일 것입니다. 누군가가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사법부가 정의를 세워왔다”고 말한다면, 그리고 그가 진정 진지한 인간이라면, 그는 틀림없이 ‘정의란 독재자의 의지이다’고 굳게 믿는 인간일 것입니다 …….”<1985년 5월 27일, 유시민이 직접 작성한 항소이유서 일부, 위키백과 인용>
1984년, 서울대 총대의원회의장이었던 유시민을 비롯한 서울대 학생 몇 명이 당시 은신처 주변을 지나가던 학생과 민간인 4명을 프락치로 의심하여 체포하고 감금ㆍ폭행한 사건이 있었다. 이른바 ‘서울대 프락치 사건’이다. 그에게는 고문 혐의가 있었다. 유시민은 이 사건에 연루되어 징역 1년을 선고 받았다. 그는 이에 반발하여 자필로 장문의 ‘항소이유서’를 작성했다. 스물여덟 살 청년이 올라오는 감정을 억누르면서 ‘법과 정의’를 설득력 있게 써 놓았다. 유시민의 항소이유서는 당시는 물론이고 현재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준다. 글쓰기를 하는 사람들에게도 명문장으로 평가 받는다. 유시민은 이른바 ‘운동권’출신이지만, 저렇게 글을 잘 쓰는 작가로서의 면모가 더욱 돋보이는 사람이다.
유시민이 대중적으로 폭넓은 사랑을 받게 된 계기는 아마 ‘거꾸로 읽는 세계사’때문이 아닌가 한다. 이 외에도 많은 저서가 있지만, 작가 유시민의 이름은 이 책으로 인해 널리 알려졌다. 그럼 이런 책이 하루아침에 나왔는가? 그렇지 않다. 유시민은 MBC 월화 미니시리즈 8부작 ‘그것은 우리도 모른다’의 각본을 썼고, MBC 베스트셀러극장의 단막극 ‘신용비어천가’ 의 각본도 썼으며, 신문에 칼럼을 기고하기도 하는 등 평소에 끊임없이 글쓰기와 함께 했기 때문에 좋은 책을 내 놓을 수 있었던 것이다.
유시민은 언변도 뛰어나다. 그의 재치 있으면서도 논리적인 말을 들어보자.
“(전여옥이 자신의 복장을 문제 삼자) 옷은 제가 가난해서 그런 것이지만, 전여옥 위원님은 부유하실 텐데 입을 가리는 옷은 없습니까?”<2005년, MBC 백분토론 중에서>
“일베는 그냥 쓰레기더미다. 일베는 약자를 헐뜯고 비방하고 비웃고 조롱하는 담론으로 꽉 차 있다. ……모든 갈등구조에서 강한 자를 옹호하는 담론이 모여 있는 곳이 일베다. 문제는 글의 내용인데 그런 글을 쓰는 사람의 인격도 쓰레기라고 본다. …… 그런 쓰레기들의 표현의 자유를 확보해 줘야 한다. 쓰레기에게도 권리가 보장되고 자유가 보장돼야 선량한 보통 시민들에게도 자유가 보장될 수 있다. …… 원래 표현의 자유라는 건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옳다고 생각하는 견해를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다. 터무니없다고 생각하는 견해까지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을 때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것이다.” <2013년 6월 13일 한국일보 기사 중>
“1인당 국민소득이 2만4000달러인 나라에서 평균 근속이 19년인 가장이 받은 연봉 6300만원이 귀족이면 나머지 국민은 천민입니까?” <2014년 1월 10일 한국경제 기사 중>
작가이자 언론인이었던 유시민은 2003년 4월 개혁국민정당소속으로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해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정치인생을 시작했다. 열린우리당 창당에 기여했고, 2006년에는 참여정부의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냈다. 이후 대통합민주신당, 국민참여당, 통합진보당을 거쳐 진보정의당으로 자리를 옮겼고, 2013년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유시민은 약 10년 간 정치인으로서의 삶을 살았다.
대중들은 작가로서의 유시민에 대해서는 대체로 호감을 표하는 편이지만, 정치인 유시민에 대해서는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호불호가 극명하게 나뉜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합하지 않을까 한다. 겉으로 드러난 유시민의 행적을 보면 민주진보진영 내에서 이동을 한 것이기는 하지만, 당적을 자주 바꿨음을 알 수 있다. 당적을 옮기는 것은 현재의 당이 자신에게 맞지 않기 때문이니 떠나면서 이전에 몸담았던 당을 비판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처지에선 바른 소리를 한 것이겠지만, 이를 판단하는 것은 대중들의 몫일 것이다.
“지금 대통합민주신당에는 좋은 정당을 만들겠다는 꿈을 펼칠 공간도 남아있지 않으며, 제가 꿈꾸었던 진보적 가치가 숨 쉴 공간이 너무나 좁아 보인다. …… 통합신당은 노선경쟁을 할 수 있는 정상적 의사결정구조가 존재하지 않는다. 전당대회 열어 노선경쟁 하려면 당이 파열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아무리 노선경쟁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환경이다. …… 이것이 교정될 수 있느냐? 시스템 새로 짤 수 있느냐? 물어보신다면 불가능하다고 본다.”<2008년 1월 16일 오마이뉴스 기사 중>
이렇게 외치고 나와서 유시민은 대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이후 그는 국민참여당에 가담했다.
“이 정당엔 약간의 설렘이 있다. …… 정당에는 꿈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민주당에서는 그런 꿈을 가진 조직 정당이 풍길 수밖에 없는 ‘이상의 향기’가 안 느껴진다. ……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에 대해서) 국민을 위한 정치보다는 자기 자신의 신념을 위한 정치를 한다는 느낌이 강하다. …… 이 정당을 하면 실패할 위험도 높지만, 새로운 시도엔 실패의 위험이 따르는 거니까 한번 해볼만 하다고 생각한다.”<2009년 11월 9일 오마이뉴스 기사 중>
유시민은 2010년 6월 2일, 지방선거에서 야권단일화에 성공하고 경기도지사에 출마했지만, 한나라당의 김문수에게 져서 낙선했다. 이후 유시민은 국민참여당 대표가 되었다. 2011년 4월 12일 김해(을) 지역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이봉수를 내세웠다. 유시민은 야권 단일화 과정에서 민주당에게 ‘100% 여론조사’방식으로 최종 후보를 가리자고 제안했다. 민주당에서는 반발했지만, 곡절 끝에 민주당이 이를 받아들여서 결국 이봉수가 야권단일 후보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유시민의 고집이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 지역은 노무현 대통령의 고향이었기에 전국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이 중요한 선거에서 이봉수는 패배했다. 이 패배는 유시민을 비롯한 국민참여당 전체의 패배라고 할 만큼 충격이 컸다.
“이 당은 국민들에게 해로운 당이 됐다. 이 당에 계속 머물러 있는 것은 누구에게도 좋은 일이 아니라는 판단을 가지고 있다. …… 강기갑 대표의 혁신재창당에 대한 소위 구당권파라고 일컬어지는 분들의 지금까지의 반응을 보면 받아들일 생각이 전혀 없는 것 같다는 판단이 든다. …… 지금 민주노총의 지지철회로 인해서 통합진보당이 노동기반위에 선 대중적 진보정당으로 가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판명됐다. …… 노동 기반 위에 선 대중적 진보정당을 만든다고 할 때, 중심세력은 역사적, 사회적, 정치적인 면에서 이를 대변할 수 있는 분들이 나서야 한다. 저희가 힘을 보태는 입장에 서 있다.” <2012년 8월 16일 경향신문 기사 중>
유시민은 ‘노무현 대통령이 살아계셨으면 통합진보당으로 오셨을 것’이라고 했다. 이런 당임에도 그는 다시 탈당했다. 정치인 유시민의 꿈은 ‘노동 기반 위에 선 대중적 진보정당’의 건설이다. 그의 꿈과 꿈을 이루기 위해 좌충우돌한 그의 행적에 대해 시비를 가리거나 포폄을 가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몇 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이 있다. 정치는 특정 정치인의 소신을 ‘실험’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불가피한 상황에서 실험을 하게 되더라도 신중한 자세를 지녀야 한다. 정치는 국민들의 현실적인 삶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당적을 옮기면서 하는 그의 말을 살펴보면, 자신의 소신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다소 빨리 판단하고 움직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자신의 생각이 모두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갈등상황에 대처하는 방식이 지나치게 극단적이다. 처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갈등을 해결하지 못한다고 해서 조직을 뛰쳐나가는 모습을 보여서는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없다. 유시민이 적극적으로 진행했던 일이 실패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은가 한다. 총명한 사람은 꾸준하기 어렵고, 자기 생각에 갇히는 경우가 많다. 제갈각이 실패한 모습과 매우 흡사하다.
“직업 정치에서 패배를 인정하고 나온 거다. 그런 부분에 대한 비난은 기꺼이 감수하겠고 짊어져야 할 몫이다. 하지만 이제는 정치인 유시민이 아니라 지식소매상 유시민으로 봐주시면 좋겠다. 나는 그렇게 바뀔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하는데 사람들은 아직 어색한가보더라. 3년 뒤에 상황 바뀌면 다시 기어 나올 거라는 둥 온갖 이야기를 다 들었다. 이제껏 내게 관심 없었던 언론들까지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지만 다 거절했다. 종편이든 공중파든 일반 언론사든 인터뷰를 할라치면 안철수의 노원(병) 출마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는 둥 정치적인 질문이 먼저 나온다. 이젠 정치인이 아닌데 계속 그런 인터뷰를 할 수 없지 않나.”<2013년 4월 5일 씨네21 기사 중>
유시민은 ‘다음 생에서나 정치를 할 것’이라고 하면서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진심으로 유시민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정말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정치평론가나 작가가 어울리는 사람이지 정치를 할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제갈각은 자신의 그릇에 맞지 않는 감투를 썼다가 비명에 죽었다. 유시민은 다행히 목숨은 살아 있지만, 정치인으로서는 비명에 죽은 거나 마찬가지 신세가 됐다. 그의 총명함은 문학의 세계에서는 빛을 발할 거라 믿는다.
혹시 이번 생에 다시 정치를 하려고 하는 마음이 있다면 전면에 나서기보다는 참모 역할을 하는 것이 나아 보인다. 만약 복귀를 하게 되면 말과 행동 모두 한 박자씩 느리게 해야 할 것이다. 10년이라는 시간이 짧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정계은퇴 선언을 다소 급하게 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의 움직임을 보고 판단해 본 것이다. 10년의 값진 경험이 있기 때문에 정계에 복귀를 하게 되면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할 사람이다. 정계은퇴를 선언했지만, 세상일은 알 수가 없으므로 스스로를 가두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유시민은 글을 잘 쓴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작가 유시민을 존경한다. 이 사람이 예전에 글쓰기 강의를 하는 영상을 몇 번 반복해 보면서 그대로 따라 하기도 했다. 좋은 작가로, 평론가로 세상에 많은 기여를 해 주리라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