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바닥에 티눈이 박혔다. 걸을 때 마다 발바닥이 아프지만 그렇다고 걷지 못할 정도로 심하진 않다. 병원에 갈까. 하지만 일하고 노는데도 부족한 시간 쪼개서 병원에 갈만큼 아픈 티눈은 아니다.

이럴 때 아는 친구 중에 의사라도 하나 있어 나에게 찾아와 티눈을 제거해 주거나, 하다못해 의사가 아니라도 이웃에 티눈 빼주는 ‘야매’라도 한 사람 있으면 좋을 텐데, 아무튼 그렇게 골치 덩어리 티눈을 묵히고 묵히다가 결국 병원에 가게 되었다. 딱 4년 만에 큰 맘 먹고 하루 휴가를 내서.

그런데 병원에 간 티눈 환자는 결국 화가 날대로 난 상태로 병원을 나서게 된다. 환자를 아주 친절하게 맞이한 의사는 자상한 태도로 이거저거 세심하게 물어보고 꼼꼼히 진찰과 검사를 하더니 이렇게 진료를 마무리했기 때문이다.

“ 티눈이군요. 그런데 여기는 내과 병원입니다. 티눈 제거는 외과에 가셔야죠.”

게다가 진료실을 나선 환자를 붙들고 원무과 직원은 진찰비와 검사비를 왕창 청구한다. 그리고 외과 병원이 도대체 어디 있냐는 환자의 질문에 모르겠으니 알아서 찾아보라는 대답을 할 뿐이다. 그렇게 티눈 환자가 티눈 제거를 위해 4년 만에 낸 휴가의 하루는 그냥 지나가 버렸다. 앞으로 또 휴가를 내려면 얼마나 시간이 흘러야 하고, 그때 어디서 외과 병원을 찾아야 하는지, 그리고 그 병원에서는 과연 티눈을 말끔하게 제거해 줄 수 있을지에 대한 그 어떤 기약도 없이 말이다.

현대 의학은 많은 전문 과목들로 세분화 되어있다. 환자의 아픔과 질병을 해결해 주는 직업이 의사이지만 한 명의 의사가 모든 환자의 모든 질병을 해결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전통의학 드라마 ‘허준’과 ‘대장금’은 우리 모두를 열광케 한 슈퍼히어로 의사를 등장시켰지만 21세기에 그런 의사는 존재할 수 없다는 거다.

상심한 티눈 환자는 터덜터덜 집으로 향한다. 나를 열 받게 한 병원 간판을 보니까 ‘여러분의 아픔을 사랑과 정성을 다해 치료해 드립니다.’ 라는 문구가 걸려 있다. 하지만 당해본 환자는 안다. 그거 허위 과장 광고라는 사실을.

우울한 발걸음을 옮기면서 거리의 간판들을 무심히 보는데 확 뜨이는 문구가 갑자기 들어온다. 크고 화려하지 않지만 단아한 글씨로 또박또박 적힌 글귀. ‘티눈 제거 전문. 당일 입원 딩일 퇴원, 국내 최저 수술비 보장.’

그곳이 정말 의사가 티눈을 제거하는 곳인지 ‘야메’가 하는 곳인지 환자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광고 내용이 100% 진실이라면 티눈 환자 입장에서 그보다 더 좋은 곳은 없을 것이다. 의료법의 문제를 떠나 환자의 입장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의사든 아니든 나의 묵힌 병을 콕 찍어 말끔히 해결해 주는 일이다. ‘흑묘백묘론’은 질병과 환자에 대해서도 예외가 아니라는 거다.

우리는 4년마다 한 번씩 국회의원, 지방의회 의원, 자치단체장, 교육감 등을 뽑고, 5년에 한 번씩 대통령을 선출한다. 그러나 우리가 나름의 기대를 담아 주권을 위임 하는 그들이 우리들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리라 믿는 것은 어리석음이다. 요즘 세상에 허준이나 대장금 같은 의사를 기대하면 안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선거철이 되어 그들이 뿌려대는 인쇄물과 방송매체에 출연하여 그들이 떠들어대는 소리를 들어보면 그들이 유권자들에게 주는 뉘앙스는 누구를 막론하고 동일하게 요약 가능하다. ‘여러분의 아픔을 사랑과 정성을 다해 치료해 드립니다.’

문재인 친노 정파가 장악한 야당의 정치적 레토릭은 오로지 새누리 타도를 위한 야권 대동단결에 집중되어 있다. 이 레토릭을 액면 그대로 해석하면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에게서 자신들 정파에게 정권을 쥐어주면 대한민국의 모든 부조리와 모순이 한방에 해결된다는 식이다.

한국 사회의 빈부격차 심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라는 질문에 ‘네, 대단히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새누리 대신 우리 친노 정파를 지지해야 합니다.’라는 대답. 이게 바로 문재인 친노 정파가 야권의 기득권 행세를 하면서 대한민국 국민 앞에 시전했던 정치의 전부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실제 국민에게 와 닿는 콘텐츠 하나도 없이 그저 진영 논리로 지지를 선동하고 세몰이를 하는 정치. 신나게 웃고 떠들며 즐기는, 카타르시스 해소에는 그만인, 하지만 극장 문을 나서면 주인공 이름조차 기억하기 힘든 3류 액션 코미디 영화와 같은 심심풀이 땅콩식 정치. 이른바 친노가 야권의 주류로 등장한 이래 대한민국 야권을 초토화시킨 정치의 실체이다.

나는 천정배의 정치를 ‘티눈 전문 병원’ 같은 개념으로 평가한다. 호남에 대한 뿌리 깊은 지역 차별을 호남인 스스로의 힘으로 극복하자는 정치. 무능과 무책임의 극한을 보여줌에도 오로지 진영논리 하나로 경쟁 없이 손쉽게 당선을 보장 받는 호남의 선거판을 무한 경쟁 체제로 변화시켜 유권자들에게 당당하게 심판을 받아 보자는 정치....... .

안철수류가 읇조리던 ‘새정치’, 문재인류가 조잘거리는 개혁? 민생? 안보? 정치(솔직히 이 무능한 정치인에게는 떠오르는 상징 단어조차 없는 것 같다)와 천정배의 ‘호남 정치 복원’의 차이는 ‘여러분의 아픔을 사랑과 정성을 다해 치료해 드립니다.’ 와 ‘티눈 제거 전문. 당일 입원 딩일 퇴원, 국내 최저 수술비 보장.’ 이라는 병원 홍보 문구의 차이와 똑같다고 이해하면 된다. 호남정치 복원이 지역주의라고? 그럼 영남사람 문재인은 자기 고향 인간들이 새누리의 보살핌 아래 잘 먹고 잘 살기 때문에 예수 정신으로 호남인을 구원코자 ‘호남의 아들’을 참칭하고 다니는 걸까?

새정연은 해체되어야 한다. 이른바 공천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정연의 해체만큼 확실한 방법은 없다. 계파별로 정당 하나씩 만들어 자기들 맘에 맞는 공천권을 마음껏 누리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밀실에서 공천 지분 나누고 모바일 장난질로 단일 야당 공천 받아 땅 짚고 헤엄치기로 금뱃지 따먹던 호시절은 이미 끝났다. 다른 사람도 아닌 야권의 맹주 친노 정파의 수장 문재인의 입으로 야권 내부의 갈등 원인은 공천권이라고 커밍아웃 했기 때문이다.

조경태는 부산에서 내리 3선을 했고. 이정현은 호남에 새누리 깃발을 꽂았다. 천정배는 필마단기 무소속으로 거대여당 새정연을 더블스코어로 이기는 기염을 토했다. 이게 바로 정치인의 능력이다. 문재인의 근본적인 문제는 그가 무능력하다는 데에 있다. 미적분도 풀지 못하는 인간에게 고등학교 수학선생을 맡길 수는 없다. 문재인은 그저 친노 팬덤의 욕구불만 해소용 연예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종자가 의석수 130석의 거대 야당의 수장 놀이를 하는 것 자체가 야권의 블랙코미디라는 거다.

그렇다면 대안이 있는가? 없다. 어차피 없는 대안을 새누리 타령하며 억지로 만들어 봤자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라는 말이다. 탱크 앞세우고 쳐들어오는 기갑부대를 대전차 화기 하나 없는 알보병 부대가 막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럼 지뢰라도 품에 안고 자폭 육탄 공격하라구? 그런 문제라면 쪽발이들 가미가제나 IS, 알카에다에게 물어보길 권한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다. 지금의 새정연은 선거 패배 전문 집단 친노 정파의 정당이다. 그런 무능력한 존재들이 10년 세월 야권의 맹주로 군림했다. 그런 야권에게 "반새누리로 대동단결!!" 주문 외우며 힘을 실어주어 봤자 그건 원숭이에게 F-15K 전투기 조종석에 앉아 대한민국 영공을 지키라는 명령을 내리는 것과 전혀 다를 바 없다. 실력이 없다면 없는 데로 버티며 차근차근 실력을 키워야 하는 게 순리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실력을 키워야 하는가. 천정배처럼 하면 된다. 그가 주장한 호남정치 복원이라는 레토릭이 맘에 들지 않는다면 그와 함께 하지 않아도 된다. 그 대신 정말로 국민이 아파하고 가려워하는 문제에 집중하는 유권자 맞춤 정치로 정당을 만들고 세력을 규합해서 당당하게 유권자의 평가를 받으면 된다.

야권이 분열되면 새누리가 어부지리 덕을 본다는 지긋지긋한 거짓말을 이제 그만하자. 스스로를 수구꼴통이 아닌 진보적 정치인이라 자부하는 인간이라면 최소한의 자존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새누리 미워서 찍는 표’로 실력도 쥐뿔도 없는 주제에 지갑 줍듯 국회의원 배지 달 생각 버리고 정말로 당신을 존경하고 믿고 사랑하여 주권을 위임하는 신성한 표로 국회의원 배지를 달 수 있는 자존심 말이다.

새누리라고 다같은 새누리는 아니다. 조갑제류의 구제불능 수꼴들도 존재하고, 이상돈류의 건전한 보수라 평가받을 수 있는 부류도 존재한다. 이들이 친박, 친이 따위 여러 계파로 갈라져 싸우면서도 당을 깨지 않는 이유가 단지 수구보수의 본능 하나 때문이라고 생각하시는가? 틀렸다. 그들 또한 분열하면 거대 야당에게 각개 격파된다는 공포를 공유하고 있는 점 또한 새누리 강철대오의 무시 못할 동력이 된다는 거다.

야권의 똘똘한 새싹들이 호구 야당 새정연의 막장 드라마 계파 싸움 대신 유권자 지향형 맞춤 정치로 무한 경쟁체제를 선보인다면 과연 새누리는 어부지리로 국회의석을 싹쓸이 할 수 있을까? 새누리 공천장을 손에 쥔 인간들이라면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 거다. 하지만 공천싸움에서 밀려난 새누리 인간은 예전처럼 곱게 찌그러져 다음을 기약하는 순둥이 코스프레를 연출할까? 역시 틀렸다. 일여다야 구도로 여당이 거저먹는데 공천 떨어진 친여권 정치인이 그 선거판을 그저 구경만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한마디로 문재인보다 한참 덜 떨어진 바보가 맞다.

우리는 언제나 변화와 개혁을 이야기해 왔었다. 그리고 기득권의 갑질 횡포에 언제나 분노해 왔었다. 정치룸펜들의 공천장 따먹기 투전판으로 전락한 새정연. 과연 야권의 변화와 개혁을 거부하는 자는 누구인가. 야권에서 손에 쥔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 갑질 횡포로 발버둥치는 자 또한 과연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