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어밖에 할 수 없어. 조국도 나에게는 관념이야. 민족도 또한 부모를 통해서고. 내 자신의 감성을 통하지 않은 것을 쓰는 일은 불가능해. 쓴다고 해도 그것은, 적어도 시가 아니야.” “그 정신적 근원은, 일본에 살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마음에 깃들어 있는 바의 일본인적 정서이며, 자본주의적인 감성이다. 우리의 유소년 시절은 조선인인 부모의 영향하에서 성장했다. 그러나 우리의 정신 형성에 가장 중요했던 시기, 학생 생활을 통해, 그 후의 사회생활 속에서, 일본인의 심리를 체득하게 해 왔다. 오히려 생활의 필요에서 체득해 온 것일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완전히 민족 문화의 전통을 상실했던 것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우리는 조선인이다. 완전한 조선 민족의 일원이라면 좋겠다고 소원하고 있다.” 이른바, 재일 조선인, 그러니까 ‘자이니치’의 절규이다.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 국적(식민지 시절 모든 조선인의 국적은 일본이었다)으로 살다가, 해방 후 ‘조선 국적’으로 살아가야 하는 ‘자이니치’. 분단된 두 개의 조국, 남과 북은 ‘조선 국적’인 ‘자이니치’를 모두 자신의 국민이라고 하면서, 한쪽에서는 ‘조선 국적’을 가진 ‘자이니치’의 입국을 거부하고 있다. 분단된 조국에 따라 ‘자이니치’들은 ‘조선 국적’을, 어떤 사람들은 대한민국의 국적으로, 또 어떤 사람들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적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그냥 ‘조선 국적’인 채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조국이란? “일단은 통일된 조국으로 하고 싶은데. 솔직하게 말하면, 북조선의 현 정권에도, 박근혜 정권에도 나는, 귀속감이 없다는 거야. 그런데 출신은 조선인이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사랑은 있어. 이것은 틀림없어. 굳이 말한다면 자기 자신에 귀속해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겠지. 그것도 조선 국적을 유지하는 이유일까.” 이 글은 그들의 이야기이다. “‘지는 쪽에 붙는다’기보다, 소수자야말로 옳다는 확신이 내게는 있어. 굳이 말하자면, 문학이라 해도 일류는 거북하고, 이류가 좋은 거지. 왜 좋으냐고 말하면, 지배적이지 않다는 거야. 그래, 조선 국적을 유지하는 것도 그런 점이 있다고 생각해.” ‘지배적이지 않다’는 이 통절한 말, 소수자로 살아가는 자의 이 ‘쓰라린 깨달음’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세카이 7월호와 8월호에 각각 제1회, 제2회로 연재된 글입니다.-역자 주

사상으로서의 조선 국적 제1회 -『진달래』와의 만남
정인鄭仁(상)

나카무라 이루손中村一成
1969년생. 저널리스트. 전 마이니치신문사 기자. 최근 저서로는 『르포 교토조선학교 습격 사건 - 증오 범죄에 맞서서』

조선 국적(원문은 ‘朝鮮籍’). 1947년 5월 2일, 천황 최후의 칙령 「외국인등록령」으로 조선인 관리가 시작되었을 때, 국적란에 기재된 지역 명칭, 그 자체는 사실상의 무국적이어서 난민과 다름없었다. 한일 국교 수립 등을 겪고 나서 많은 사람이 한국으로 국적을 바꾸었지만, 아직도 ‘양보할 수 없는 하나의 선(=사상)’의 입장에서 ‘조선적’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사람도 적지 않다. 올해는 해방/패전으로부터 70년이 되는 해이다. 남북 분단과 한국 전쟁, (일본) 국내에서 차별 체제의 확립, (조선) 민족 단체 내에서의 알력 등, 자이니치在日를 둘러싼 상황이 유난히 가열되었던 1940년대부터 1960년대를 질주해 온 사람들의 개인사를 펼쳐서 읽고, ‘조선 국적’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그들 각자의 사상에 다가가고 싶다. 그들의 인생 역정은 국가란 무엇인가, 고향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불러일으킨다. 그것은 자이니치 입장에서 본 ‘전후 70년사’이기도 하다.    

자택 거실에서, 앉은뱅이책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얼굴을 들자마자, 마치 기습을 당하듯이 질문을 받았다.
“그런데 제목을 뭐로 할 거야?”
“「사상으로서의 조선 국적」입니다.”
“그래, 확실히 조총련의 활동가도 아닌 데 조선 국적 보유자는, 요즘 드물겠지. 하하!”  
책상을 응시하던 시선이 나에게로 향했다.
“그런데 나는 사상은 아니야. 요는 바꿀 이유를 느끼지 않을 뿐인 것이지. 일본에서 태어나서 자랐고, 일본 말밖에 못하고. 일본은 싫기도 하지만, 좋기도 해. 여기까지만 말하면 세계적으로 보아도 살고 있는 나라, 일본의 국적을 가지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다른 것이지. 식민지 지배가 있었으니까. 전쟁 중에 조선인은 일본인이 됐던 거야. 그것이 1952년에 외국인이 되었고. 그런 상태에서 내 쪽에서 일본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심리적으로 저항이 있는 거지. 게다가 자이니치 국적란의 근본은 외국인 등록 때의 ‘조선 국적’이야. ‘한국’은 1950년대부터고. 법적으로는 1965년의 국교를 수립하고 나서지. 분단된 한쪽인 한국 국적으로 바꿀 필요도 느끼지 않는 것이고. 지금 나는 조선 국적이기 때문에 한국에는 못 들어가게 하는 것 같은 데, (한국은) ‘자이니치는 우리나라 국민’이라고 하는 데도, 참 이상하지. 사실은 일본과 조선과 한국, 세 개의 국적을 갖고 싶지만. 자유롭고 싶어.”

생활의 장에서 자아낸 사상은 유연해서 꺾이지 않는다.
정인鄭仁. 시인 김시종金時鐘(주1)과의 만남을 계기로, ‘자이니치 문학의 원점’ 가운데 하나인 전설적 시 잡지 『진달래』에 참가한다. 편집장을 지냈다. 조직과의 알력으로 1958년에 『진달래』가 어쩔 수 없이 폐간된 뒤에는, 김시종, 양석일梁石日과 더불어 세 사람이, 후속 잡지 『카리용Carillon』을 창간했다. 

▲사진출처: 경인일보 일러스트/박성현기자

1950년대는, 자이니치에게 곤란한 시대였다. 1952년의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 발효와 동시에, 재일 조선인의 일본 국적은 상실을 당하게 되었고, 외국인 등록과 출입국 관리라는 두 개의 법에 의한 관리, 감시, 추방 대상이 되었다. 그 후, 잇달아 성립된 전후 보상, 사회보장법 등 거의 모든 것에서는 외국 국적을 ‘이유’로 배제되었고, 헌법에 강조된 기본적 인권 적용 대상 밖의 존재가 되었다. 식민지 시기부터 지속된 인종 차별 정책이, ‘국적’을 축으로 재편되었던 것이다.

당시 좌파 계열 재일 조선인은, 일본 공산당의 지도하에 활동하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패전 후의 공산당 재건을 짊어졌던 한쪽이 조선인이었다. 하지만 조선인을 ‘소수 민족’으로 규정하는 민대파民對派(공산당 민족대책부 계열)에 맞서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하, DPRK)의 ‘해외 공민公民’을 주장하는 민족파의 불만이 여러 차례 분출, 대립이 첨예화되었다. 이 주도권 다툼은, DPRK 직결을 내건 민족파가 민대파를 능가했다. 1955년, 종래의 노선을 부정하는 형태로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가 결성되었고, 민족파가 조직을 완전히 장악해 간다. 

모진 선택을 강요받았던 정치의 계절을 문화 운동의 장에서 살았던 한 사람이 정인 씨이다. 그리고 그는 또한, 현재까지 어떤 나라의 여권도 갖지 않고, 조선 국적을 유지해 온 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 삶의 내력이 배어 있는 장소로 안내해 주었다.

이카이노猪飼野(오사카 시의 지명)의 골목

택시로 간 곳은, 전국 최대 자이니치 집단 거주 지역, 옛 이카이노의 한쪽이었다. 공습을 면한 허름한 가옥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거리이다.

“아이고, 어렸을 때는 더 넓은 길이 아니었을까 했거든, 그런데 좁기만 하네.”
이 말을 반복하면서 걸었다. 내려온 셔터에 먼지가 쌓인 찻집을 가리키며, 정 씨가 말했다.

“여기는 늘 외상이었지, 일만 엔 정도. 지금으로 치면 10만 엔 정도될 거야(하하). 내가 지불할 수 없다는 거 알고 있었어. 그래서 경영자가 ‘어린이 가정교사를 해서 갚아주면 돼’라고 말했지. 지금은 없어졌지만 이 부근의 서도 교실에 가서 글씨를 쓰기도 했어…”

무질서하게 뻗은 길은 임시응변적인 거리의 형성 과정을 드러낸다. 모퉁이를 몇 번 돌자, 시야가 확 트였다. 오른쪽에는 정 씨의 모교 「히가시모모다니東桃谷초등학교」가 펼쳐졌다. 왼쪽에는 예전에 정 씨가 다녔던 조선학교가 있었다. 100미터 정도 앞에는 이쿠노生野 경찰서가 우뚝 솟아 있다. 정 씨가 내뱉듯이 말했다.
“어머니 신병을 인수하러 몇 번인가 왔었지.”

전후의 혼란기, 허기에 주린 7명의 아이를 먹이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했던 어머니. 때로 그것이 ‘위법’이 되어, 경찰에 체포되었다.
“아버지도 지금의 오사카역 건물 부근에서 자리를 펴기도 했지. 두 사람 모두 필사적으로 일했어. 특히 어머니는 생활력이 강했지, 그것이 없었다면 살아갈 수 없었을 거야. 밥도 먹을 수 없었을 걸. 일본 사회는 그다지 소수자에게 푸근하지 않았어.”

어머니를 인수하러 가면 경관에게 욕을 먹었다.
“너무나 나쁜 말이어서…”, 말이 막혀서 그랬을까, 분노가 치솟아서 그랬을까, 얼굴이 벌겋게 되어 중얼거렸다. “…‘뭐하러 왔어! 조선 돼지!’라고”. 제정신을 잃고 경관에게 마구 고함을 질러 댔다. 살의마저 품었지만 죽일 수도 없었다. 분노에 휩싸여 위스키를 들이킬 수밖에 없었다. 권력, 특히 경찰 권력에 대한 생리적 반발을 ‘길렀던’ 곳이 바로 이 장소였다.

경찰서와 대로를 끼고 서로 마주 보는 건물은 이쿠노구區 구청이다.
“최초로 외국인등록증명서를 건네받은 곳이 저기야. 나는, 일본인으로 태어났는데 말이야, 어느 사이엔가 ‘너는 조선인이다’하는 거야, 납득이 안 갔어. 정확히 1947년의 일이야. 어떻게 된 일이지 하는 데, 이미 얄팍한 종이 한 장인 거야. 그것으로 항상 소지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기 때문에, 이쿠노에서는 경찰이 걸핏하면 불심검문을 하고, ‘외국인등록증 좀 보자!’라고 해. 이 녀석이 어떻게 내가 조선인이라고 알고 있는 거야?(하하). 한 번은 ‘나는 일본인이다! 없어!’라고 우겨댔지만, 소지품을 꺼냈을 때 외국인등록증이 팔랑거리며 떨어진 거지.”

이카이노의 골목을 걸었다. 유소년 시절에 앓았던 관절염으로, 정 씨의 오른쪽 다리는 무릎 부위가 불편하다. 양쪽 겨드랑이에 낀 목발을 아스팔트에 찔러 세우고, 왼발로 지면을 차서 원심력에 몸을 맡긴다. 때로 반사하는 노면이, 거품을 토해 내는 시커먼 운하로 보이기도 한다. 일정 리듬으로 나가는 정 씨는, 두 개의 노를 저어 앞으로 나가는 조그마한 배 같았다.

삼거리 한쪽에 서 있는 민가 앞에 멈췄다. 이 80㎡가 채 안 되는 집에서, 정 씨는 유소년 시절부터 20대 중반까지 살았다. 『진달래』의 거점도 되었던 장소이기도 하다.
“노선 전환 시기였지. 고생스러웠지만, 역시 『진달래』가 내 일생을 결정했지. 그렇지 않으면 시 같은 건 쓰지 않았을 거야. 인간관계도 일의 경우에도 거기에서 확장된 것이지. 『진달래』는, 공과 죄가 많아(하하).”
마지막 한 마디에 ‘비꼬는 말투’를 보태는 것도 정 씨 색다른 취향이다.

원류源流로서의 빈곤과 차별

정 씨는 1931년, 현재의 오사카시市 이쿠노구區에서 태어났다. 양친은 조선의 제주도 태생이다. 동향의 커뮤니티를 믿고, 오사카와 제주도를 연결했던 직행인 「기미가요마루君が代丸」 편으로 일본에 왔다. 정 씨는 7형제의 장남이었다.
철이 들었을 때의 기억은 빈곤이다.

“여기저기 전전했어. 그것도 ‘내 집’이 아니라 셋방을. 집 한 채에 세 가구 정도가 사는 거지, 이불 한 장에 세 명이 발을 들이밀고 잔다든가.”
장애로 일 년 늦게 입학한 초등학교에서는, 왕따의 표적이었다. 민족 차별보다는 장애 때문이었다. 동급생에게만 왕따를 당한 것이 아니었다. 교사들의 불공정, 불공평한 학급 운영은, 정 씨로부터 ‘전망’을 빼앗아 갔다.

“학급 성적은 좋은 편인 데, 급장이라든가 위원이 될 수 없었어요. 분명히 나보다 성적이 나쁜 급우가 위원이 되는 식이지. 어린 마음에 ‘왜’라든가 ‘이상하지 않은가’라든가 말이야.” 점차 학교에 가는 일이 뜸해졌다. 서글픈 저항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정도까지는 ‘등교 거부’였어. 총 100일, 한 학기 정도. 운 좋게 졸업했다고 생각하기도 해.”

다시 등교하기 시작했던 때는 4학년이 되어서이다. 이미 전쟁 말기, 잇달아 소개疏開되어 가는 동급생에게서, 전황 악화를 감지했다.
“하급생은 집단 소개, 상급생은 연고 소개였어. 학교에 남은 학생들은 여유가 없는 가난한 부모를 둔 아이들뿐이었고. 초등학교도 빈 교실투성이로 한 학급으로 통합했어, 나를 포함해서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만 남았기 때문에, 멀리 있는 화장실에 가는 것이 귀찮아서 비어 있는 교실에서 ‘쏴’하고 내갈기고는 했어(하하). 그래서 공동 책임을 지게 되고. 내 경우는 다리가 불편했기 때문에 변명의 여지도 없이 복도로 불려 나가서, 팔 굽혀 펴기를 하고 죽도竹刀로 세게 맞았어.”

학교 교육의 본질은 ‘건전한 국민 육성’이다. 더욱이나 전시 상황이었다. 인권과 장애 배려와는 정반대인 ‘초등학교’는, 정 씨의 마음에 ‘장애자’가 어떤 의미를 가진 존재인지를 각인시켰다.“다리가 불편했기 때문에 운동회에도 참가한 적이 없어. 운동장이 좁기 때문에 학부형들이랑 2층에서 운동회를 구경했어. 거기에 섞여서 동급생들이 달리기를 하거나 하는 것을 꼼짝 않고 보고 있었던 것이, 왠지 유난히 선명한 영상으로 남아 있어. 내 부모? 쉴 새 없이 일을 해서 올 수 없었어. 게다가 소풍에도 간 적이 없어. 결국 집단에서 뭔가를 했던 경험이 없는 거지. 언제나 방관자였지. 그것이 습성이 되어 있는 것 같고, 조직, 집단에 대한 어떤 종류의 공포가 있어.”   

본인은 겸손해 하지만, 주요한 5개 과목을 포함한 성적은 좋았던 것 같다. 가장 자신만만한 과목은 습자였다. 학교의 일층 현관이나 근처의 전신주에는, 정 씨의 글씨가 내걸렸다.
“‘공격해 없애버리자’라든가 ‘마귀와 짐승인 영국과 미국’ 따위의 전쟁 표어였어. 황국 소년은 아니었지만 꼼짝없이 해야만 했어.”
전쟁 말기가 됨에 따라, 학교에서 군사 훈련도 했다. 운동회나 소풍에서는 예외자가 되었던 정 씨도, 이론에 여지없이 내몰렸다.
“운동장에 열을 지어 세웠어. 포복 전진에는 참가했고. 애당초 뭐를 위한 훈련인지도 몰랐어. 도망을 위한 훈련이었을까…”   

1945년에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전쟁 말기로 졸업 시험은 없었다. 학교의 추천장이 있으면 오사카 부府 안의 중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지만, 교사가 추천장을 쓰지 않았다. 아버지가 애를 써서, 교사는 마지못해 실업학교에 추천장을 썼지만, 거기에서도 정 씨는, 이유도 통보받지 못하고, 문전축객을 당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란히 걷는 아버지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 나왔던 일을 기억하고 있다. 어쩔 수 없이 고등소학교高等小學校(주2)에 입학하고, 곧바로 어머니의 친척을 믿고 미에현三重県으로 소개疏開를 갔다. 일본의 패전, 조선의 해방은 거기에서 맞았다. 오사카로 돌아왔지만, 학교는 결석하는 경향이었다. 변함없이 장애로 놀림을 당하는 적도 많았다. 외발로 덤벼들고, 드잡이하는 큰 싸움을 한 적도 있다.

한편 해방 후 조선인들은 일본 각지에서 자주학교를 잇달아 개설하고 있었다.
“집에서 빈둥거리던 무렵, 근처에 우리중등학원이 생겼던 거야.”
어머니의 권유로 들러 보았더니, 100명 이상의 학생이 있었다. 한국 병합부터 치더라도 식민지 지배는 36년에 이른다. 빼앗겼던 민족성을 회복하자고 하는 절실한 심사는 폭넓은 층이 가지고 있었다. 자연히 학생들의 연령은 제각각이고, 학력 차이는 뚜렷했다. ‘마음’만으로는 운영이 안 되었다. 1학기를 마친 단계에서 1년차 학습을 수료하고, 선발로 상급 학년 진급조를 결정해, 다음의 1학기․2학기로 2년차 학습을 마치고, 3년차만 1년간 수업을 받았다. 정 씨는 총 2년으로 중학교를 졸업한 셈이다.

졸업으로 민족 단체나 운동과 직접적 관계는 없어졌지만, ‘그 2년’의 의미는 어마어마하게 컸다.
“민족 교육을 받지 않았더라면 ‘귀화’했을지도 모르지. 동족의 친화력은 달랐어. 역시 집단의 기억이라는 게 있는 거야. 일본 학교에서는 서로 집을 오가는 친구는 한 명밖에 없었어. (학교라는) 같은 공간에서도, 말하기 어려운, 뭔가 막 같은 것이 있는 거지.”

졸업 후에는 오사카 공립 다카쓰高津고등학교에 진학했고, 공립학교간의 학생 교류로 시미즈다니清水谷고등학교로 학교를 옮기고, 축구부와 문예부에 참여했다.
“축구는 매니저였어. 응원 대장과 예산 획득. 문예부에서는 제법 폼을 잡았고(하하).”
처음 시를 지었던 것이 그 무렵이었다.
“소설을 조금 읽었을 뿐”이라고 겸손을 떨었지만, 니시와키 쥰자부로西脇順三郎(주3)나 가타조노 가쓰에北園克衛(주4) 등 모더니즘 시인의 작품에 매료되었다.
“의미는 알 수 없었지만, (시적) 언어와 언어의 관계성이 매우 세련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심사숙고한 언어를,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배열로 서로 부딪치게 해서, 사고 이전의 이미지를 번뜩이게 하는 시인, 바로 정 씨의 원류이다.

냉전과 자이니치

이미 냉전 구조는 첨예화되었고, 조선은 동아시아의 최전선이었다. 1948년 4월 3일에는, 미군 주도의 남한 단독 선거에 반대하는 제주도 주민들이 구식 총과 낫, 창 같은 것을 무기로 삼아 무장 봉기를 일으켰다. ‘제주도 4․3사건’이다. 본토에서 투입된 우익과 경찰이 주민을 살육했고, 약 28만 명의 섬 주민 가운데, 적어도 25천 명에서 3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살해되는 참극이 펼쳐졌다. 한국은, 자국민을 학살한 피로 ‘반공 국가’의 역사를 쓰기 시작하고 있었다.

어렸던 정 씨는, 얕고 흐릿한 목소리로 사건을 기억한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큰소리로 서로 이야기하든가 하지 않았어. 동향의 어른들이 길에서 마주치면, 뭔가 소곤소곤 속삭이고 있었어.”
8월, 남측에는 대한민국이 건국된다. 많은 조선 인민이 간절히 소망했던 ‘조국 실현’에 대한 생각은 여지없이 짓밟혔다. 그리고 9월에는 DPRK가 수립되고, 자이니치의 압도적 다수는 북측을 지지했다. 애초 식민지 시대, 자이니치의 사회 운동을 떠맡았던 사람들은 모두 코뮤니스트였다. 남측에서는 친미 반공의 이승만이 독재 기반을 굳히고, 친일파가 복권되어 갔다. 한편, 북측에서는 토지 개혁과 친일파의 일소가 시도되었다. 과잉 탄압의 측면도 있었지만, ‘민심’에 부응하는 태도를 갖춘 쪽은 분명히 북이었다. 타국에서 사는 자들이 어느 쪽을 지지했던가는 자명했을 것이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정 씨도 DPRK에 박수를 보냈던 한 사람이었다.

냉전의 긴장은 일본에서도 임계에 달했다. GHQ에게 재일 조선인은, 점령 정책의 저해 요소였고, 일본 정부에게는 자신의 ‘역사적 책임’과 함께 추방시키고 싶은 존재였었다. 4․3사건과 거의 같은 시기, 일본에서는 GHQ와 정부가 조선인학교 강제 폐쇄에 착수했다. 조선인의 저항도 엄청났었다. 효고현에서는, 격렬한 항의에 지사가 폐쇄령을 일단, 철회했다. 위기감을 품은 GHQ는 점령하의 유일한 비상사태 선언을 선포하고, 진압에 나섰다. 그 이틀 후, 오사카 부청府廳 앞을 가득 메웠던 항의 데모 인파 속에 정 씨도 있었다.

그 다음해인 1949년에는 조선인학교를 통괄하고 있던 좌파 단체 「재일조선인연맹」이 단체등규제령(나중의 파괴활동방지법)으로 해산하게 되고, 조선인연맹 간부들은 공직에서 추방되었다. 1950년에는 레드 퍼지가 시작되었고, 도쿠다키 유이치德田球一(주5) 등은 중국으로 도피하고, 파벌 투쟁의 혼란 속에서, 공산당은 무장 투쟁 노선을 내세운다. 그 ‘전위’는 자주 재일 조선인이 떠맡았고, 많은 재일 조선인이 체포되어, 기소자 그리고 당시는 ‘처형’을 의미하는 한국으로의 강제 송환자를 냈다. 그 통한이 앞에서 쓴 1955년의 노선 전환으로 이어졌다.

‘먹고 살기 위한’ 나날

정치 계절의 공기를 마시면서도 당시, 정 씨의 과제는 ‘스스로 먹고 사는 것’이었다. 고등학교는 진학을 위한 학교였지만, 정 씨는 “대학은 처음부터 무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한다. 가난했던 것은 물론, 이미 몇 번이나 학교로부터 거절당한 경험이 미래에 대한 ‘전망’을 빼앗고 있었다. 차별은 차별을 당하는 자 자신에 의해 내면화된다. 유명한 대학을 나와도, 조선인이 상장 1부 기업에 취직하는 일 따위는 있을 수 없었던 시대였다. 지방 공무원이나 변호사도 될 수 없었다. 돈과 시간을 들여도 헛수고라면, 한 발 빨리 일해서 자립하고, 고생한 부모와 형제를 지원하는 편이 좋다. 마이너리티의 현실이다. 이 구조가 교육 기회를 빼앗고, 빈곤과 저학력을 재생산한다. 

그렇지만 결과는 참담한 것이었다. 괘선이 그어진 미농지에 붓으로 쓴 30통 정도의 이력서는 헛수고였을 뿐이었다. 본적란에 ‘제주도’라고 써넣으면 회답조차 없었다. 소개되어 갔던 곳인 ‘미에’라고 쓰면 몇몇 회사에선가 호출이 왔지만, 면접에서는 장애에 관한 질문을 받고, 번번이 떨어졌다.

“역시 ‘장애자’라고 하는 것이 자신의 성격과 감성의 형성에는 중요한 거지. 이데올로기와 달라서 장애는 절대적으로 소수자이고 마이너인거야. 예를 들면 공산주의는 다수로 바뀔 가능성을 가졌지만, 장애는 절대로 다수파로는 안 된다는 거지. 억압받는 마이너인 신세로 온 인간은 말이야, 독특한 감성이 있어. ‘상승 지향志向’에 대한 기피감이라고 할까. 다수인 신세로 온 사람은, 수읽기가 빠르고, 시대의 흐름이 가장 좋은 쪽을 추종한다거나 하지. 하지만 나는 그런 약삭빠른 일은 절대할 수 없어. 좀 더 말하자면 생리적인 혐오감이 있어. ‘하강 감각’ 없는 상승 지향은 안 된다고 생각하는 거지. 지금도 조선 국적으로 지내고 있는 것도 조선 국적을 가진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 오기 때문이고. 원래 전부 조선 국적이야, 그것 밖에 없었어. 내 경우는, 한국적으로 하려고 해도 넣어 주지 않는다고 할 것이기에 그러면 ‘그래’ 가지 않아서 좋은 거지!”

취직 시험은 모두 실패했다. 일본 기업에 대한 취직이 너무나 곤란한 것은 주변의 동포도 마찬가지였지만, 정 씨의 경우,
“그럼 육체노동으로”라는 것은 안 되었다.
몹시 괴로워하는 정 씨에게 어머니는 확실하게 말했다.  
“이제 (취직) 활동을 하지 않아도 돼”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너 하나 정도는 먹여 살릴 수 있어.”
정 씨의 인간에 대한 다정함은 이런 애정으로 형성된 것이리라.

파친코 가게의 바람잡이, 가정교사, 시계 수리…
“임금을 받을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도 일했어.”
꽤 오랫동안 고등학교 시절, 유일한 일본인 친구의 가업인 목재상에 들어가, 경리를 담당했었다.

‘먹고 살기’ 위한 나날 속에서, 동포 친구들과 창설한 것이 독서 서클 ‘수요회’였다.
“고등학교 동급생과 민족학교 동급생으로 오사카 대학에 진학한 친구와 네 명이 만나서, 술을 마시며 ‘와와’하고 있었다. 떠들어대고 있는 것만으로는 타락하고, 그나마 독서회 정도라도 생각했지. 책을 읽은 후에는 산에 가거나 했지. 삽시간에 인원이 늘었어.”

금속 가공이나 고무 공장, 토목 현장에서 일하며, 일이 끝나자마자 달려오는 젊은 동포들. 오락적 요소가 사람들을 모이게 했다고 정 씨는 강조하지만, 생활에 매몰될 것만 같은 매일이었기 때문에, 모두 문학을 갈망했던 것이리라. 이윽고 ‘수요회’는 이카이노 근처의 젊은이가 모이고, 유력 문화 서클이 되어 갔다. 모이는 장소는 정 씨의 집이었다.
“우리 부모님은 내 친구를 참으로 소중히 대해 주셨어. 어쨌든 대환영이었지. 한밤중인 두 시, 세 시도 보통이었지만.”
부모님은, 장애를 가진 정 씨에게는 유대야말로 재산, 장래의 담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중에 저명한 사람이 되는 인물도 몇 명인가 드나들고 있었다. 동물의 형태 모사와, 한 편의 영화를 혼자서 모조리 이야기하는 개그 ‘스크린 없는 영화관’ 등으로 유명한 자이니치 2세 연예인, 마루세 다로(주6)도 그 가운데 한 명이다.
“당시는 아직 형태 모사는 하지 않았다고 생각되지만, 이야기가 어쨌든 능수능란했지. 누이들은 ‘김뽀(마루세의 민족 이름은 김균홍金均洚) 씨’ ‘김포 오빠 재미있어!’라고. 아마, 누이들을 웃게 만든 건 처음이었을 거야.” 

그 후, 소식은 없었지만 수 년 후 어느 날, 누이가 놀란 모양으로 전화를 했다.
“큰오빠(정 씨)! 김뽀 오빠가 텔레비전에서 원숭이 흉내를 내고 있어!”

‘수요회’에 드나들고 있던 친구로 조직 활동가가 있었다.
“진달래라는 시인의 모임이 있어. 너도 가입해.”

1953년 12월이었다. 진달래의 설립자로, 이미 시인으로 경력을 쌓고 있던 김시종을 찾아갔다. 민족학교 폐교령으로 폐교되어 있던 나카가와中川 조선초등학교 철거지. 당시는, 재일조선인연맹의 후계 조직, 재일조선통일민주전선(민전民戰)의 임시 사무소였다.

정 씨는 회고한다.
“학교 교실에 쇠로 된 양동이가 놓여 있어서, 거기에 땔나무를 지펴 불을 피워서 몸을 녹였지. 청년들이 주위를 에워싸고 있었어. 시종이(시종 씨)가 쓱 하고 와서 양손으로 꽉 잡고 악수를 했지. ‘잘 와 주었네! 합평회에도 와야 해!’라고. 멋있었어. 마르고, 사냥 모자를 쓰고, 삼나무 잎 모양의 줄무늬 외투를 입었지. 그 외투는 여성에게 인기가 있었던 같네요. 그는 말이야, 우선 달변이었을 거야. 글을 잘 썼을 거야. 그리고 나서 알았지만.”
정 씨는 단단한 오른쪽 주먹을 앞으로 쑥 내밀고, 웃었다.     
“솜씨도 뛰어났어.”

본토에서 온 김에게 조선을 ‘체감’한 것일까. 이후 정 씨는 김과 우의를 돈독히 해 갔다. 정 씨에게 이 만남은, 일본어를 모국어로 쓰며, ‘조선’은 관념에 불과한 자신이, 차별 속에서, 그래도 재일 조선인으로 글을 쓰고, 살아갈 전망을 마련하는 계기를 잉태하고 있었다. 그 작업을 분담했던 장이 『진달래』이다. 그래서 ‘재일 문학의 원점’의 하나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주체성’을 둘러싼 조직과의 충돌로 이어진다.
“생애, 잊을 수 없는 계절”(정 씨)의 시작이었다.  <계속>

(주1)
1929년생. 재일 조선인 시인, 조선문학자. 조선 원산시 출생. 광주사범학교 졸업. 좌익 사상에 공명하여, 남조선노동당에 입당. 1948년의 제주도 四・三사건에서는 우체국을 습격하는 등 무장봉기에 가담했고, 사건이 진정된 후에는 당국에 의한 체포를 두려워해 잠복했다. 다음해 1949年5月、부모의 주선으로 밀항선을 타고 일본으로 도망했다. 6月5日에 고베 앞바다(수마須磨 부근)에 상륙한 후, 오사카 시 이쿠노구의 코리아타운에 도착했다. 1952年에는 수이타吹田 사건에 참여했다. 체류특별허가를 얻고 재일 조선인의 정치․문화 활동에 참가했다. 김희로 사건에서는 특별 증인으로 출정했다. 효고 현립 미나토가와고등학교 교사가 되어, 일본의 공립학교에서 처음으로 정규 과목으로 조선어를 가르치고, 오사카 문학학교 이사장 등도 역임했다. 1986年『「자이니치」의 틈바구니에서』로 제40회 마이니치출판문화상 수상. 1992年『벌판의 시』로 제25회 오구미 히데오小熊秀雄 상 특별상 수상。2011年『잃어버린 계절』로 제41회 다카미 쥰高見順 상 수상.

(주2)
구제도로, 보통소학교 졸업자에게 그 위의 수준의 높은 초등교육을 실시한 학교. 수업 연한은 처음 4년, 나중 2년. 의무제는 아니다. 고등과.

(주3)
1894～1982. 시인, 영문학자. 니가타新潟 현 출생。게이오대 이재과理財科 졸업. 게이오대 교수. 초현실주의 이론가로 지도적 위치를 차지했고, 현대시의 대표적 시인이다. 시집「Ambarvalia」「제3의 신화」, 평론 「 T․S 엘리엇」 등이 있다.

(주4)
1902～1978. 시인. 미에三重 현 출생。본명은 하시모토 겐키치橋本健吉. 중앙대 졸업. 초현실주의 운동을 추진하고, 언어의 의미성을 배제한 실험적 표현을 시도했다. 시집「하얀 앨범」등

(주5)
 1894～1953년. 정치가. 오키나와 출생. 일본대학 졸업. 고학으로 변호사가 되어 사회운동에 참가했다. 일본 공산당 창립에 참여했다. 三・一五사건으로 검거되어 감옥에서 18년을 보냈다. 전후 당을 재건, 서기장이 되었지만, 맥아더의 지령으로 추방되어, 지하활동에 들어갔고, 베이징에서 객사했다.

(주6)
마르세 다로太郎(1933년 12월~2001년 1월）는, 오사카 출신의 팬터마임 연예인, 배우, 만담가, 극작가이다. 재일 조선인 2세로 오사카 시 이쿠노구 이카이노(현재의 이쿠노구 나카가와中川）태생이다. 본명은 김바라 마사노리金原正周／김균홍金均洚。오사카 부립 다카쓰고등학교 졸업 후, 1954년에 도쿄로 상경했다. 원래 신극 배우 지방이었지만, 배우 양성소의 시험에 낙방했다. 실의로 필로폰 중독 상태에서, 영화 『싸구려 관람석의 사람들』을 보고 마르셀 마르소(프랑스 마임 배우)을 알게 되어, 마르셀 마르소의 무대 연기에 영향을 받았다. 마르셀 마르소의 이름을 딴 예명으로 팬터마임 연예인으로 활동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