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으로서의 조선 국적 제2회-세 명의 진달래 잔당
정인(하)

나카무라 이루손中村一成
1969년생. 저널리스트. 전 마이니치신문사 기자. 최근 저서로는 『르포 교토조선학교 습격 사건 - 증오 범죄에 맞서서』

1954년 봄, 정인은 『진달래』 6호 합평회에 나갔다. 지금이라도 막 쓰러질 듯한 연립주택 2층, 계단을 외발로 뛰어올라 온 정 씨를, 김시종은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조국애와 민족, 주체성 같은 말이 난무하는 가운데, 모더니즘 시에 친숙했던 정 군의 발언은 신선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정 씨가 처음에 느꼈던 것은 위화감이었다.
“모두 정치적으로 진지했어. 나도 정치적인 감각, 달리 말하자면 약자에 대한 감수성은 있었는데. 그래도 과도한 정의감이 넘쳐흐르는 분위기는 좋아하지 않았어. ‘놀이’가 없었어(하하).”
그런데도 끌렸던 것은, 민족학교 시절과 비슷한 안도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신과 같은 인간이 모여 있다는 감각인 거지. 일본 학교에서는 계속 긴장감이 있게 마련이야. 일본인에게 지고 싶지 않다고나 할까, 그런 것이 없는 공간이었지. 동포란 좋다.”

‘정치적’인 것은 당연했다. 한국 전쟁을 배경으로, 일본 공산당 민족대책부는, DPRK의 정당성을 발신하는 자이니치 문화인의 획득, 육성을 방침으로 내걸었다. 그 지시를 받은 김시종은, 50개나 되는 문화 서클을 설립했고, 그 가운데 하나가 시인 집단 ‘진달래’였다.

제1호(1953년 2월)의 편집 후기에서 김시종은 다음과 같이 썼다.
“진정한 의미에서 이 시집만큼 신참들의 참여는 드물 것이다.”
설립에 참가한 7명 가운데, 시작詩作 경력이 있었던 사람은 겨우 두 명, 김시종은, 원고지 사용 방법에서부터 비유, 수사를 가르쳤고, 완성된 시의 퇴고推敲까지 떠맡는 ‘선생 역할’을 수행했다. 당시 『조선평론』(1951년 창간) 등에 시를 발표하고 있었던 김시종은, 당초 진달래를 “작품 발표의 장이라고는 인식하지 있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근저에는 “창작이 조직 운동이 되는 것에 대한 석연치 않은 마음이 있었다”고 한다.

지면도 정치적이었다. 향기로운 정경 묘사로 일상을 아로새기는 생활시詩도 있었지만, 주는 투쟁시詩, 슬로건을 내건 시였다. ‘조국’ ‘인민군 병사’ ‘애국’ ‘만세!’ 같은 문자가 반복되었고, 삼반三反 투쟁(반미, 반요시다 시게루吉田茂, 반재군비)의 이데올로기가 스며 있었다. 동인同人은 창간 10개월 후에는 40명을 넘어섰다. 한편, 한국 전쟁은 이미 휴전 상태여서, 강경한 주장은 ‘근거’를 잃어버리고 있었다. 시작詩作 그 자체는 정체기에 빠져 있었다.

정 씨가 참여했던 것은 바야흐로 이런 시기였다. 목재상에서 일하던 시절에 만났던, 더부살이하는 소년을 묘사한 ‘어느 수습점원 벗에게’를 7호에 발표했고, ‘파친코 가게’를 기고했던 8호에서는, 정 씨의 집이 발행소가 되었고, 10호(1954년 12월)에서는 편집장으로 취임했다. 그 무렵에는 합평회 장소가 정 씨의 집으로 바뀌었다.

진달래가 단순한 문화 서클은 아니라는 것은, 얼마 안 되어 눈치를 챘다고 한다.  

“시를 쓰지도 않으면서, 매번 오는 사람이 있었던 거지. 합평회 전에는 말이야, 시종이가 옆방에서 누군가와 소곤거리며 이야기했어. ‘어휴, 지시가 내려온 거야’라고. 너무나 기분이 상했지. 다른 곳에서 했다면 좋았을 텐데, 그것도 내 집에서 한 거야(하하).”

“끄나풀은 몇이나 배치되어 있었을까?”
“(좌담에서의) 발언자에게 (사전) 지도는?”…. 이런 ‘지도’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지도를 하는 쪽이었던 김시종은 말한다.
“정치 집회가 아니기 때문에 그럴 필요는 없었어. 내 자신이 진절머리가 났어.”

편집장 정 씨의 진면목은 ‘좌담’에서 드러났다.
“상대의 의견을 존중하면서도 자신의 의견은 분명히 말했고. 게다가 강요하는 듯한 태도가 전혀 없었어. 한쪽 다리로 살아가는 고통을 품고 살아왔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와 말을 하면 마음이 편해지는 경우가 있었어(김시종).”
그것은 지면의 활성화로 나타나고 있었다. 생활시詩는 초기부터 주축의 하나였지만, 여성의 투고가 늘어났다.  ‘아버지의 파쇼’라고 제목을 붙이고, 자이니치 사회의 남존여비를 세련되고 재미있게 지탄하는 수필도 있었다. 일상생활의 경험에서 나오는 언어는, 정치주의의 공소함을 폭로했다. ‘자이니치’라고 한데 묶여도, 그 속성과 입장은 각양각색이었다. 여러 겹의 질곡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속내를 토로할 수 있는 장이도 했던 것이다. 15호(1956년 5월)부터는 고등학생이었던 양석일이 참가했고, 진달래는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일본어로 시를 쓴다는 것

모임이 있으면 삼사십 명의 젊은이가 정 씨의 집을 드나들었다.
“사람이 너무 많이 와서, 계단의 층계참이 빠진 일도 있어”라며 정 씨는 추억했다. 왜 시가 이렇게 사람을 끌어당겼을까. 당시 많은 자이니치는 ‘하루하루의 끼니’에도 급급해 하고 있었다. 1955년의 생활보호 수급 비율은 실로 21.4%였다. 직업이 없기 때문에 경제 활동(막걸리 밀조 같은)에 대한 단속이 격화되는 한편, 사회 보장에서는 배제되었다. 일본에 거주하는 전망을 짓부수고, ‘일본을 떠나는 것’을 촉진하는 ‘추방 정책’이었다. 냉정하게 보면 시를 읊조리고 있을 형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젊은이들은 모였던 것이다.
“굶주림에 지쳤지만, ‘최후의 밥’”(창간사)이 시였다.

동시 진행으로, 정 씨는 자신의 스타일을 갈고 닦아서, 확립시켜 간다. 대표작 「거리」(18호 게재)의 한 구절이다.

시간을 상실한
일요일.
숙달된 유창한 방식으로
미지의
찻집으로
잠입한다.
숲은 저물어 가는 저녁 햇빛에 물들고
습지대는 태고의 정적 그대로.
나는 전혀 생각지도 못하게
기억의 음색을
들었다.
낯선 작은 새 한 마리.
나를
주시하고 있다. 

비정치적인 시는, 처음부터 이채를 발하고 있었다.
“나도 또한 모두와 같은 시를 쓰고 싶었지만, 쓰지 않았어. 자신에게 거짓말은 하지 않았어. 관심 없는 것은 쓸 수 없었어.”
철저하게 자신의 실감에 얽매이게 되는 지향성은, 명제가 커지면 더욱 선명해진다. 그것은 ‘아다치足立 시인 집단’에서 진달래로 보내온 ‘시의 존재 방식’에 대한 정 씨의 지면 응답(13호)에도 명시되어 있다. 시는 ‘대중을 설득하는 중요한 무기’로서, 시인은 개인의 입장만이 아니라, 조직자, 활동가의 입장에서 이론을 강화하고, 시를 창조해야 한다고 하는 아다치 시인 집단의 편지에, 정 씨는 이렇게 반론한다.
“시가 혁명 이론이 아니라 예술인 한, 작자인 개인을 빼놓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대상을 묘사하는 경우, 그것을 자기 자신의 문제로 실감하고, 그것과 대결하고, 그리고 그 대상을 감성의 가장 깊은 곳에서 파악한 결과가 아니라면 진정한 시는 태어나지 않습니다.”
“이것은 사회 과학적인 사고와는 다른 시가 독자적으로 갖는 사고라고 생각합니다. 감성을 간과한 마르크스주의는, 막판에 몰린 곤란한 때에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게 되겠지요.”
“노동자, 농민 등을 씩씩하게 묘사해 그 미래에 광명을 주는 것도 중요한 일이기는 하지만, 현재 일본의 사회적 조건에서 우리의 현실을 에워싼 바의 모순과 속임수를 철저하게 폭로하고, 그것을 시로 표현하는 쪽이 보다 강조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요.”

진달래는 시 서클에서 수준 높은 동인지로 변모를 시작하고 있었다. 그것은 ‘노선 전환’과 동시에 진행되었다.
“정치적으로 커다란 변동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별로 관계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어.”
그러나 민족대책부의 방침으로 생겨난 문화 서클이 잇달아 사라져 가는 한편에서, 시 잡지로서의 역할을 충실하게 해 가는 진달래는 ‘눈에 띄는’ 존재가 되고 있었다.

조직의 개입은, 조선총련 발족(1955년 5월 25일) 이후, 더욱 강해졌다고 한다. 큰 방침은 ‘조선인은 조선어로 조국을 찬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영향이었을까, 12, 13호는 ‘국어 작품’난이 개설되어, 그때까지 드물었던 조선어 시가 각 호에 다섯 편씩 게재되었다. 조선인이 조선어로 표현을 한다. 그 자체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진달래의 주요한 필자는 식민지 시기에 유소년 시절을 보낸 2세들이었다. 달리 말하자면 ‘민족 문화를 상실한’(정 씨) 세대인 것이다. 문학, 특히 시 수준을 고려하면, 자이니치의 실존을 무시한 비약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정 씨는 조직의 요청을 거부한다.
“‘그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라고 해 주었던 것이지. 조선어로 쓰고자 하면 발상 그 자체가 조선어가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해. 언어에는 역사가 있는 거야. 단숨에 배웠다고 해도 쓸 수 있는 것이 아니야. 언어에는 생활의 때, 역사의 때가 달라붙어 있어. 기호에는 없는 뭔가가 있기 때문에 쓸 수 없어. ‘강제해서 어떻게 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것은 누군가 쓸 수 있는 사람에게 말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라고. 시는 언어의 의미만은 아니기 때문에….”

식민지화로 내몰렸던 지배의 도구가 일본어이다. 일본적 정서를 이식했을 뿐만 아니라, 거기에는 그들을(자이니치) 깎아내리는 어휘가 얼마쯤 있다. 한편 그것은 그들을(자이니치) 인간이게 하는 ‘모국어’이기도 했다.
“일본어밖에 할 수 없어. 조국도 나에게는 관념이야. 민족도 또한 부모를 통해서고. 내 자신의 감성을 통하지 않은 것을 쓰는 일은 불가능해. 쓴다고 해도 그것은, 적어도 시가 아니야.”
그 일그러짐에 대치하기 위해서 바로, 정 씨는 문학, 시를 희구했던 것이리라. 

▲사진출처: 경인일보 일러스트/박성현기자

자이니치 지향과 본국 지향의 알력은 내부에서도 첨예화한다. 김시종 특집이 꾸며졌던 15호에서, 김 씨의 시집 『지평선』을 둘러싼 “‘유민流民의 기억’ 논쟁”이 일어났다. 본국 지향의 어느 동인은, 이미 ‘조국’이 탄생한 지금, ‘유민 의식’은 ‘자기 내부 투쟁’으로 극복되어야 하는 데, 김시종의 시는 유민적인 서정을 품은 채로이고, ‘자기 변혁의 프로세스’가 없다고 비판했다. 지금 있는 지점이 지평선이 아니라, 조선 반도의 휴전선 이북에 지평선이 있다는 인식이 근저에 있었다.

정 씨는 한 달 후, 다른 시 잡지에 보낸 ‘조선인이 일본어로 시를 쓴다는 것에 대해서 ­ 진달래 창작상의 문제’로 논의에 개입했다.
“이념의 입장에서는 조국을 가지고 있는 데도 불구하고, 생리적인 실태로서는 감지할 수 없는 정신 상황(문자 그대로 유민적인 것)의 근원을 탐색하고, 그것을 극복해 가는 과정을 빼고서 우리의 창작은 있을 수 없다.”
“그 정신적 근원은, 일본에 살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마음에 깃들어 있는 바의 일본인적 정서이며, 자본주의적인 감성이다. 우리의 유소년 시절은 조선인인 부모의 영향하에서 성장했다. 그러나 우리의 정신 형성에 가장 중요했던 시기, 학생 생활을 통해, 그 후의 사회생활 속에서, 일본인의 심리를 체득하게 해 왔다. 오히려 생활의 필요에서 체득해 온 것일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완전히 민족 문화의 전통을 상실했던 것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우리는 조선인이다. 완전한 조선 민족의 일원이라면 좋겠다고 소원하고 있다.”-----

“일본 문학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어떠한 주체적 변혁을 이룰 수 있을까?”라고 묻는 이 논고는, 그 막바지에, 조선어에 대한 희구와의 사이에서 동요한다. 문장에 일관하여 흐르는 요소는 ‘찢기는’ 아픔이다.

진달래 논쟁

조직의 정치주의와의 알력은 격화되어 갔다. 노선 전환의 정당성을 과시하기 위해, 김시종과 진달래는 ‘사상적 악의 본보기가 된’(김시종) 측면이 있었다. 세계주의자, 주체성 상실…. 비판에 대한 분노는, 18호에서 터져 나왔다. “세 사람만 모이면 조선총련 비판이 튀어나왔다”고 썼던 ‘일 년의 집약’에서 정 씨는 선언한다.
“우리는 자이니치라는 상황 속에서 인간의 일그러짐을 무시할 수 없어서, 결과적으로 지금까지 우리가 써 왔던 시를 재검토할 필요에 내몰렸다. 프로파간다의 시가 가져 온 상식적인 설치법이나 이미지의 상식성에는, 이제 따를 수 없다는 것이다.”
“연쇄 반응을 몇 줄의 문자로 바꿔 베껴서, 거기에 시라는 명칭을 부여하는 것에는, 이미 우리는, 시가 갖는 고유의 세계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 호에서 김시종은, 조선총련의 관료주의, 정치주의를 야유한 시 ‘오사카총련’과, 조직이 요청하는 조국 칭찬, 지도자 찬미의 시는, ‘의식의 정형화’에 불과하다고 비판한 논고를 발표한다. 말하자면 대결 선언이었다. 

‘주체성 상실’ ‘민족 허무주의’ 김시종에 대한 규탄은, 진달래도 사정거리에 두고 있었다. 조선총련의 기관지에도 비판이 반복되었고, 물이 빠지듯이 동인들은 떠나갔다. 19호부터 20호 간행까지에는 실로 일 년이라는 시간을 필요로 했다. 작품이 모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DPRK가 움직였다. 정 씨가 편집 후기에서 ‘조국으로부터의 비판’을 언급한 20호(1958년 10월)를 마지막으로, 진달래는 무너졌다.

‘진달래 논쟁’은 김시종의 격렬한 조직 비판으로 이야기되는 경우가 많다. 분명히 그것이 되돌아올 수 없는 지점으로 진달래를 끌고 간 것은 틀림없을 것이다. 그러나 ‘혼의 기사’(스탈린)를 거부하는 자들의 광채는, 시지詩誌(진달래) 여기저기에 아로새겨져 있다.

“현실과 연소할 수 없는 관념만으로는 시를 쓸 수 없다.”
“망명 의식에서 오는 노스탤지어의 변형에 지나지 않는 과도한 신비화가, 대상의 리얼리티를 상실시킨다.”
“조선을 주제로 삼으면 작품의 질이 떨어진다.”
“정형화된 의식은 정신 질서의 어떤 면을 좀먹고, 게다가 병소病巢를 형성하고 있다.”----.
그들은 “자유로워지려고 하는 자유”(다케나카 로竹中労)(주1)의 발로發露 ‘시’와 만나고 말았던 것이다. 바로 이 열정이, 조직 활동가였던 김시종의 한계를 벗겨 낸 것 같다.

 글을 발표할 장을 잃어버린 사람 가운데 많은 사람은 문학을 단념하고, 뿔뿔이 흩어졌다. 나중에 순환선에 뛰어든 사람과 소식불통이 된 사람. 조직에 김시종을 비판하는 글을 제출하고 조선어로 시작詩作을 하다, 나중에 DPRK로 ‘귀국’한 사람도 있었다. 그만큼 DPRK와 조선총련은 커다란 존재였다.
“정말로 인간에게 살아가는 연고는 중요한 거야. 절대적 존재로부터 단절되는 것은 그만큼 중요한 일이지. 일종의 속박일 것이라고 생각해. 그것과 역시 인간관계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것도 있지 않을까.”

무모한 싸움

김시종, 정인, 양석일 세 명만이 남았다. 항상 함께였다. 가끔 도쿄로 가서, 일본 현대 시인들과 교류했다. 양석일은 말한다.
“구로다 기오黑田喜夫. 시인, 1926~1984년.라든가 세키네 히로시關根弘. 시인, 1920~1994년.라든가 ‘열도列島’파 사람들이었어요. 당으로부터의 방침에 반발하는 그들의 실정에는, 우리를 투영할 수 있었어요.”

대략 일 년 후, 세 사람으로 후속 잡지 「카리용」(전설상의 천마)를 간행했다. 정 씨는 말한다.
“진달래로 끝난 것은 억울했어. ‘어째서 문학을 그만두지 않으면 안 되는 데, 비판을 받더라도 하면 좋다, 뭐든 관계없어!’라고 하는 뭔가가 있었기 때문이지.” 그런 패기는, ‘창간에 즈음하여’에 드러나고 있다.
“문학 창조라는 과제를 통해 정신 형성의 도상途上에 있는 새로운 발언 등을 ‘주체성 상실’이라는 한 마디로, 마치 그것이 반조국적 언동이라도 되는 듯한 명분으로 잘라버리고 아랑곳하지 않는 정치주의자들에게, 우리는 끝까지 대립한다.”
조직에서도 DPRK에서도 비판을 받고, 그래도 여전히 (문학에) 머무를 근거를 찾는 사무치는 절실함이 지면에 스며 있다.

완전히 빈손으로 존재감이 없는 한 사람.
치욕투성이가 되어 실종에 걸맞은 자리 
환상의 항구를 선택한 것은 먼 옛날
어머니 배 속에서 항구를 잃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략)
사랑과 증오
비밀스러운 우정이 넘치는 가운데
비닐봉지 속의 유아의 몸은
무방비이다.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매고
쾌활한 미소로 무장할 때
할아버지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젊고 강인한
조선인이 태어난다.
허나 비닐봉지 속은 아무도 알 수 없고
생기 없는 바다는 
정처 없이 흔들리고 있을 뿐이다.  (‘그림자의 무대’)

카리용은 3호(1963년 2월)로 중단되었다. 애당초 무모한 싸움이었다.

한편, 뜻밖의 일로 카리용 시절, 정 씨는 조선상공회의 정규직으로 일했다.
“정치 조직의 강제력은 밑에까지 관철되지 않았어. 게다가 좀 유연한 곳도 있었던 거지.”
내부에 있으면서 할 말은 한다. 정 씨 특유의 유연함이다. 당시를 기억하는 인물로부터는, 사무 능력이 뛰어난 정 씨를 조직이 내버려두지 않았다고 들었다. 본인에게 확인하자, 쓴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그것은 잘 모르겠고. 조직에는 말이지, 일을 저지르는 사람은 많이 있지만, 수습하는 사람이 없는 거지(하하). 나는 수습하는 것이 전문이었고. 그래서 편리하게 여겼던 건지도 모르지.”

결혼을 계기로 정규직을 그만두고, 찻집의 주임으로 일했다. 세 명의 아들은 모두 조선학교에 다니게 했다. 조선어를 할 수 있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본래는 내가 말도 할 수 있고, 아이들에게 가르쳐야만 하는 것이지만, 먹고 살기 바빴고 말이야. 아내는 일본인이기 때문에 가정 내 교육은 어려웠어. 조선인인데 조선어를 할 수 없는 것은 지금도 콤플렉스야.”

아들들이 학교에 다녔던 때는 196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반에 걸친 시기이다. 현재와는 달리, 귀국을 전제로 한 정치 교육이 중시되고 있었다.
“우리 큰애가 처음, 우리학교에서 돌아왔는데 말이야, 느닷없이 말하는 거야. ‘아버지보다 훌륭한 사람이 있어!’라고(하하). 깜짝 놀랐지만 불안하지는 않았어. 나는 생각하는 거야. 어떤 교육을 받아도 그 사람의 자질이 있는 거다. 예를 들면 황민화皇民化 교육을 아무리 받아도, 거기에서 비어져 나오는 인간은 나오는 거다. 나도 또한 제법 성적이 좋았었지만, 수신修身만은 허사였어(하하). 대개 학교라는 제도는 여당 권력에 편리한 국민을 양성하는 것이 기본이거든. 일본의 교육도 역시 자민당에 투표하는 인간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하고 있는 거지. 조선학교와 북조선의 일을 새삼스럽게 말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해.”

정 씨는 ‘공정’이라는 말을 자주 쓴다. 이중의 마이너리티성性을 가지고, 불공정에 계속 노출되어 온 그에게, 몇 안 되는 기댈 곳 가운데 하나가 ‘공정’이었을 것이리라.

동요하고 변하는 고향

어느 나라의 여권도 갖지 않고, ‘무국적’의 삶을 살아온 정 씨지만, 1980년대 이후, 재입국 허가증을 손에 들고, 조선반도에 있는 두 개의 주권 국가를 모두 다섯 차례, 방문했다.

1970년대에 귀국한 동생을 DPRK로 찾아간 것은 1984년의 일이다. 김시종을 비판하고, 귀국한 전 동인同人도 만났다. 머물고 있던 호텔에서 그와 재회하고, 호텔의 안뜰을 걸으면서 ‘그 후’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일본을 떠나기 직전, 니가타新潟에서 김시종에게 “생활에 대한 걱정 없이 창작에 매진하고 싶다”고 편지를 쓰고 귀국했던 그는, 문학을 포기하고 있었다.

한국은 혁신 정권 시대에 두 번 갔었다. 처음은 부모의 고향, 제주도를 방문했다.
“김대중이 되었단 말이지, 나만 가지 않았기 때문에 시종이와 몇몇이 ‘함께 가자’고 불러 주었지. 백문이 불여일견이었어. 무엇보다 음식이 맞았어. 좋았지. 두 번째는 제주도에서 서울로 갔지. 그런데 공항에서 내가 가장 시간이 걸렸는데 말이야. 몇 번이나 여행증명서를 ‘보자’고 하는 거야, (북조선으로 환승하기 위해) 중국에 가면 재입국허가증을 가리키며 ‘이건 여권이 아니다’라는 식으로 말했거든. 역시였어, 결국 여행이야, 여행….”(역자 보충 : 귀국이나 귀향이 아닌 여행이었다는 자조 섞인 말)

정 씨에게 고향이란.
“이카이노라고 해야겠지. 거기서 나고 자랐으니. 그런데 미묘하다고 해야 하나, 부모의 고향이기도 하고, 호적은 제주도에 있기 때문에 말이야. 두 번밖에 가지 않았고, 지금은 조선 국적은 입국을 불허하지만….”
지금도 고향은 동요하고 변한다.

그럼 조국이란.
“일단은 통일된 조국으로 하고 싶은데. 솔직하게 말하면, 북조선의 현 정권에도, 박근혜 정권에도 나는, 귀속감이 없다는 거야. 그런데 출신은 조선인이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사랑은 있어. 이것은 틀림없어. 굳이 말한다면 자기 자신에 귀속해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겠지. 그것도 조선 국적을 유지하는 이유일까.”

카리용 후, 시작詩作은 마음먹은 것처럼 되지 않았지만, 1981년 12월, 첫 시집 『감상주파感傷周波』를 세상에 내놓았다. 짓밟혔던 진달래가, 19년 가까운 세월을 지나서 꽃을 피웠던 것이다. 그 바로 전해에는 역시 문학에서 떠나 있던 양석일이 시집 『악몽의 저쪽으로夢魔の彼方へ』를 간행했다. 사실은 카리용 3호에는 세 사람의 시집이 근간 예정이라고 고지되었지만, 조직과의 알력으로 단념했던 것이다. 김시종이 후기를 보냈다.
“이제야 겨우 ‘진달래 잔당’이라고 불리는 최후의 세 사람이 모두 시집을 냈다. 과장이 아니라, 용케 살아남은 20여 년이었다.”
만남에서 진달래 논쟁까지를 돌아보며, 김시종은 정 씨를 이렇게 평했다.
“알면서 지는 쪽에 붙는 사나이”라고.

자택의 거실, 정 씨에게, 가지고 있던 시집을 보여주자, 잠시 들여다본 후, 말했다.
“‘지는 쪽에 붙는다’기보다, 소수자야말로 옳다는 확신이 내게는 있어. 굳이 말하자면, 문학이라 해도 일류는 거북하고, 이류가 좋은 거지. 왜 좋으냐고 말하면, 지배적이지 않다는 거야. 그래, 조선 국적을 유지하는 것도 그런 점이 있다고 생각해.”

거실에는 아들 부부와 손자들의 사진이 나란히 놓여 있다. 아들들은 모두, 한국 국적으로 바꿨다.
“아버지가 반대하실 거라고 생각해 주었으면 싶었지만, 어른의 판단으로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은 아니잖아. 내 자신은 한국, 북한, 일본 세 나라의 국적이 탐나지만 말이야. 국적은 일본이 아닌 소속하는 나라의 국적법이잖아. 북도 남도 자이니치는 자국민이라고 하기 때문에, 나도 잠재적인 이중 국적 아니겠어? 뭐 일본은 어쨌든 북조선과 국교 정상화를 해서, 왕래를 자유롭게 하고 싶은 거지. 식민지로 지배했던 나라에서 수립된 나라와 국교가 없는 것은 일본 정도겠지? 국교를 수립하고 나서 의견을 밝혀야겠지, 라고 생각하지만.”

앞으로, DPRK와 국교가 정상화되면, 조선 국적은 실재하는 나라의 국적이 될지도 모른다. 그 때는 어떻게 되는 걸까? 정 씨는 내 눈을 직시하며 말했다.
“따로 무국적이 되는 것은 상관없지만, 한사코 어느 쪽인가라고 묻는다면 아마도 틀림없이 한국 국적일 거야. 부모의 고향이지, 호적은 제주도에 있어. 어느 쪽인가를 강요당했을 때, 소극적인 선택으로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해. 나는 그런데 굳이 무국적을 주장하는 이론적 근거는 없어. 그다지 강하지 않아. 형편에 따라 되는대로 될 거야.”   

주1) 
본명은 쓰토무つとむ. 1930~ 1991년. 르포라이터, 아나키스트, 평론가. 예능계와 정계에 깊이 파고들어 다수의 문제작을 세상에 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