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은 좌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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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대 대선은 합법으로 위장한 부정선거였다. 김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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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7년, 의문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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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쁜소식☎검
  번호 58839  글쓴이 만세~~~~  조회 689  누리 45 (45,0, 0:9:0)  등록일 2017-12-26 04:40 대문 0

heom
친일파목사들 악랄함을 만천하에 폭로한 분


송상석 목사(1897-1978)는 1930년대 주초문제에 대한 절제운동가로서 통합측의 출옥성도측 예배당 탈취 소송에 항거하여 1950년대초부터 1965년 대법원 최종판결에 이르기까지 10여년간 필사적인 항거를 한 분이다. 이 송상석 목사의 주요 공헌은 다음과 같다.
 
1. 술 담배 절제운동가로서의 공헌
2. 해방후 밀선을 띄워 만주의 봉천신학원에 있던 한국제일의 신학교수였던 평신교수 박형룡박사(고신교장, 총신교장)를 모셔온 일이다.  이후 박박사는 자유주의인 기장측 즉 김재준파와 대립각을 세우고 한국 보수신학은 살아나게 되었다.
3. 고신의 행정목사로서 고신환원시 고신교단의 주축인 경남노회를 거의 다 환원에 이끈 공로이다.
4. 교회건물은 교단 것이 아니라 교인의 총유(2/3)라는 소신을 대법원 판결를 받아낸 것이다. 이후 예배당 쟁탈전 소송에 선례가 되었다.
5.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큰 공로는 친일 악질목사들이 얼마나 악랄한 인간들인지를 10여년에 걸친 투쟁으로 만천하에 드러나게 한 일이다.

 
신사참배에 반대운동을 했던 출옥성도들을 총회에서 축출한 통합측 목사들은 기장측 교회에는 명도소송을 안하고 출옥성도들의 예배당 명도소송을 벌였다.
한상동 목사
출옥성도 한상동 목사(1901-1976)는 두말없이 90% 이상의 교인들을 달래서 나와 비가 오는 가운데 맨땅 위에서 예배를 드렸다. 이에 통합측은 기고만장했으나 영도교회는 틈이 없어 통합측이 탈취에 실패했고.
마산문창교회는 송상석 목사 지지측이 압도적이었으나 통합측이 예배를 방해하는등 치열한 공작탓에 교인들이  따로 교회들을 만들어 나가고 타교단으로 가는 등 하여 고전을 하다 1965년에 빼앗긴 바 되었다.

이때 경남노회유지재단이사장은 반민특위에 체포되기까지 한 천하의 악질 친일파 목사인 김길창(1892-1977)이었다. 이 김길창의 예배당 탈취를 통합측은 총회적으로 밀어준 것이다. 김길창은 일제 때인 1938년 장로교총회시 신사참배 가결후 목사들을 이끌고 신사참배를 한자로 신사참배를 거부하는 성도들을 밀고하고 죽도록 고문 당하게 만든자이다. 해방후 적산을 불법으로 불하 받아 학원재벌이 된후 훈장까지 받고 죽었다. 이런 정신나간 목사가 해방후 부산신학교도 설립하였다.(아래 사진이 김길창이다) 

김길창은 일제 때 우상숭배를 금지한 성경을 "구약은 유대인의 역사에 불과하므로 없애 버리자"고 한 자가 나중에 자서전을 "말씀따라 한평생"이라 하였다. 김길창은 3·1 운동에 참가한 민족대표 33인에 대해 교회를 사리사욕에 이용하다가 실패한 것이라고 평가하며 비하하기도 했다. 1960년대 초엔 나이 70이 넘어 며느리보다도 나이 어린 자신의 교회 여전도사와 결혼하여 세간의 화제가 되었다.

통합측의 주요교회로는 영락교회, 새문안교회, 연동교회, 명성교회, 소망교회, 온누리교회 등이 있다.
쉽게 말하여 송상석 목사가 악역을 맡아 큰 일을 한 것이다.
http://cwon.kr/bbs/board.php?bo_table=  여기 교회 소송문제연구소라는 게 있네요. 클릭해서 맨위에 다시 클릭. 그리고 송상석 목사는 나중에 교회와 소송에 관한 저서를 내기도 했습니다.
 
http://paikist.net/1-boardfix/b01-voice_sermon-work/imsi-b01-voice_sermon/read.cgi?board=jeongi_out&y_number=61
(송상석-기차 안에서)기차를 타고 오는 길에 송상석목사님이 탄 것을 보며 찻간에서 혼자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분과는 고신 안에서 신앙노선 때문에 행위적으로 대적이 되었습니다. 꾸벅꾸벅 졸고 있는 그의 흰 머리를 보며 그 머리가 백발이 되도록 진리운동에 바친 반평생을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백발을 보며 '아, 저분이 그래도 잘 살든지 못 살든지 이 진리 운동을 위해서 반평생을 바쳐 저렇게 머리가 백발이 되어 있는데...'
마음에 어떻게 감사하고 귀하게 보이고 존귀하게 보이고 또 아름다운지... 한참 혼자 묵상으로 그가 주와 복음을 위해서 수고한 것을 생각하며 얼마동안 눈물을 흘리며 기도를 했습니다. 지금은 돈이 많지만 그때는 돈이 없을 때여서 사과 하나 사먹기가 어려울 때인데 좋은 사과를 사서 대접을 했습니다. 그분이 반갑게 받아서 칼로 깎아 드시는 모습을 봤습니다. 주를 위해 백발 된 것이 어떻게 귀한지, 주를 위해 일하다 피곤하니까 졸고 있는 것이 얼마나 귀하게 보였던지! 그때 눈물을 흘려 본 적이 있었습니다.

(송상석-이력)
해방 전 송상석은 경찰서장이었습니다. 한국 사람으로 교장도 더러 있고 도지사도 있을 수 있지만 경찰서장은 거의 없었습니다. 해방 후 회개를 하고 참으로 예수님을 바로 믿으려고 죽도록 노력했고 고려신학교 세울 때 경제 부담 등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박형룡목사님이 만주에 있을 때 38선 공산주의 지역을 통과하여 생명을 내놓고 아무도 갈수 없는 곳에서 모시고 왔습니다. 고려파 계통 운동을 위해서 생명을 몇 번이나 내놓은 사람입니다.
 
http://www.cschurch.org/pastor/pastor1.php?boardid=board_pastor1&mode=view&no=108&start=40&search_str=&val=&cate=
⑫ 1927년 황주에서 주일학교 세계대회가 모이다. 여기에서 주마정벌 총사령부가   조직되다.(酒魔征伐總司令部) 사령관:송상석, 총참모장:홍성창   <표어> 1.조선의 구원은 금주에 있다.           2.술(酒)은 악마의 흉기이다.           3.교육과 산업과 경제는 금주운동으로 구조한다.            4.조선교회는 금주의 성지이다. * 이 표어대로 실천하기 위하여 주마돌격대를 결성하다.(돌격대장:송상석)⑬ 1932년 조선 기독교 절제운동 승인함(1932년 총회록 51항, 초대회장:조만식,    총무:송상석)
 
통합측이 저래놓고도 "예수믿으라!"고 전도 했다니 정말 강심장들입니다.
 아~  주여!!



'박 윤선과 한 상동' - 남 영환/전 고신총회장
1. 사단의 시험
...... 1951년 5월 24일 부산 중앙교회당(당시 노진현 목사 시무)에서 속회된 36회 총회에서 고려신학교를 정죄하고 고신측 경남노회를 총회 밖으로 추방하였는데 죄목은 ‘메-첸파이고 독선주의다’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그런 일과 동시에 조선신학교 계통이 먼저 탈퇴하였음에도 그들에게는 예배당 명도 문제를 거론하지 않으면서 김길창 일파의 경남노회를 통하여 고신 계통에는 예배당을 명도하라고 하였다. 같은 해 9월 8일(주일) 10시 40분에 예배당 접수위원 노진현, 이수필, 강주선 목사와 우덕준, 양성봉 장로 등 9명이 초량교회 강단을 점거하여 예배당을 소위 접수하려고 왔다. 

 조용히 돌아가라고 해서 돌아가니 남은 사람은 20명 전후이었다. 이 광경을 지켜 본 접수위원들도 아연실색하고 당화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 광경을 본 강주선 목사가 남긴 말은 “목사가 무슨 할 일이 없어서...” 하고 통회 기도를 드릴 정도였다. 한 상동 목사는 이 사람들을 보고 “예배당은 조용히 비워 줄 테니 교인들을 자극시키지 말라”하니 이 제의를 받아들여 그들은 다시 오지 않았다.
한 상동 목사의 마음에는 예배당을 가지고 싸우지 말자는 생각이 들어 비워 줄 것을 굳게 결심하였으나 실행에 옮기려 하니 제직들을 비롯하여 많은 교인들의 예배당에 대한 애착심을 돌려놓기가 쉽지 않았다. 한 상동 목사와 교인들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내 스스로도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으며 집회를 마칠 때에는 예배당을 내어 주고 빈손으로 나갈 것을 굳게 결의하는 환희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초량교회를 접수한 통합 측은 기고만장하였다. 접수하려는 대상 중에는 중심 되는 다섯 곳을 최우선으로 목표하였는데, 이 교회들은 초량교회, 영도교회(현 영도제일교회), 마산문창교회, 진주교회, 그리고 거창교회였다. 초량교회를 접수한 그들은 두 번째로 착수한 곳이 영도교회였는데 영도교회는 청년들의 거센 반발로 한번은 예배당을 점거하였으나 두 번째부터는 그들의 동조가 한 사람도 없어 다시는 예배당 경내에도 들어가지 못했다. 세 번째로 진주교회를 목표하였으나 그곳도 쉽지 않았다. 거창교회는 양성봉 장로의 계약으로 이한수 목사(함경북도 법원 서기를 지낸 적 있음)를 파송하고 지검장으로 교회에 다니는 김천수 검사를 파송하여 놓고 문창교회까지 함께 처음부터 법원에 예배당 명도 소송을 내놓고 시작하였다. 뒷날에 이한수 목사, 김천수 검사 등은 부민교회에 출석한다고 내게 말하면서 두 사람 모두 예배당 쟁탈전에 말려들었다가 패가망신하였다고 고백하였다.2. 문창교회, 송삭석과 박 윤선그런데 백이언 목사는 각서까지 썼음에도 불구하고 부임과 동시에 출옥성도를 공격하고 매도하니 문창교회는 주기철 목사와 한 상동 목사가 시무하였던 곳이라 백목사가 견디지 못하고 얼마를 못 가서 물러났으나 6·25때 피난 온 사람들이 백이언 목사를 따라 온 교인들이 상당히 있었다. 그리고 예배당 명도 문제가 있어서 가술교회에 있던 송상석 목사가 부임하였으니 여기서부터 고신 운동의 파란은 시작된다. 
 거기에 백이언 목사가 심어 놓은 일파를 위해 통합 측은 김석찬(金錫燦) 목사를 파송했으니 김석찬 목사는.... 이렇게 하여 문창교회 내에서 두 파의 싸움은 치열하였다. 그래도 처음에는 송목사 편이 훨씬 많았다.

얼마 후에 장경제 목사는 소송에 관심 없는 교인들과 함께 제2문창교회를 개척하여 나오니 고신 측은 쇠약하여지고 통합 측은 그런 대로 부흥하였다. 또 얼마 후에 동광교회까지 갈려 나오니 동광교회 문제는 총회까지 올라오게 되었다.  한 상동 목사의 말을 들어보면 박형룡 박사를 모시러 만주에까지 갔다 온 사람을 어찌 그렇게 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예배당을 조용히 내어 준 한 상동 목사도 양면으로 공격 대상이 되었다.통합 측은 고신을 압박하며, 한 상동 목사는 예배당을 내어 놓았는데 다른 사람은 왜 내어놓지 않느냐면서 공격을 하니송상석 목사와 예배당을 안 내놓겠다는 교단 내부에서 한 상동 목사를 좋게 말하지 않는 편이었다. 송상석 목사가 한 상동 목사를 더욱 괴롭힌 것은 공석상에서 소송 문제만 나오면 노골적으로 “당신은 성자이고, 나는 싸움꾼으로 안팎으로 몰리니 이것은 한 상동 목사 너 때문이 아니냐”고 공격 했던 것이다. 예배당을 못 내어 주겠다는 측도 송목사를 존경한다기보다는 매우 동정적이었다. 이런 와중에 박 윤선 목사가 신학교나 교회에서 설교 부탁을 받으면 설교를 통해 소송 문제를 들고 공격을 하니 모양이 좋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본인도 원하여 신학교에서는 1953년 화란으로 유학을 떠나도록 하였다. 

 당분간 소송 문제는 소강상태를 보이는 듯하여 잠잠 하였으나, 민사소송이란 기한이 정해지지 않았고 더구나 종교인간의 싸움이니 하자세월이었다. 총회가 돈을 내어 소송을 진행하는데 반해 고신 측은 돈은 고사하고 소송 자체를 정죄하고문창교회 교인들도 장로들 일부를 제외하고는 소송에는 무관심하였다. 드디어 이 문제가 총회에 상정되었다. 오랜 논란 끝에 총회는 ‘덕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개 교회의 형편에 따라 처리함이 옳다’라고 결의하여 행정상으로는 일단락된 것으로 되었다.

이후 통합 측은 적극적으로 김석찬 목사를 밀었고
, 반면 한 상동 목사는 교회를 내 주는 것을 신앙으로 인식하는 터이라 불만스러우나 승복하기로 하였으나 박 윤선 목사는 더욱 화가 난 모양을 과격한 수단을 동원하여 싸움은 과열하여진다. 그래서 우선 급한 대로 물리적인 행동은 피해야 하였기에 법정 판결에 기대를 걸었다. 박 윤선 목사를 중심으로 이인재 목사, 이학인 목사, 백 영희 전도사 등 경기노회 상당수와 한 상동 목사를 비롯하여 고신 총회를 타협주의로 이끈다는 부산노회 일부가 가세하여 경기노회는 끝내 총회에 대하여 소송 문제를 포기할 때까지 행정을 보류한다는 극약 처방을 내리게 되었다.
3. 주일 성수 문제
4. 잃어버린 기회
http://surprise.or.kr/board/view.php?table=surprise_13&uid=58839




IP : 172.56.32.x
[1/2]    IP 172.56.32.x    작성일 2017년12월26일 04시42분      

이명박, ‘나도 춤추고’; 이명박 쥐바기, 쥐들 체면은 어떡하라구 망신 시키고 다니냐? 너 때문에 얼굴 못들고 다녀!! 빡!
[2/2]   
 
IP 172.56.32.x    작성일 2017년12월26일 04시44분      
길잃은 목자들


빈민특위에 체포된 악질 목사를 경남노회장으로 선출.
일제때 신사참배 거부하는 성도들을 일경에 밀고하여 죽도록 고문 당하게 만든 천하의 악질 목사.

광복 71주년 기념. 수라장!! 방청객들 모두 퇴장!!!!

아직도 회개치 않은 기감과 통합교단. 기장 합동등은 반세기가 지난후 형식적이나마 회개선언은 했습니다. 실컷 분탕질은 해먹은 뒤라 효과도 없는 것이었지만.

해방후 예수교장로회의 경남노회가 열렸습니다. 이때 극악무도한 악질 친일파로 이름 높은 김길창(1892-1977)을 정신나간 목사놈들이 경남노회장으로 선출하였습니다. 그러자 신사참배 반대운동을 하다가 고문을 당하고 평양감옥에서 추위와 기아를 견뎌내고 해방후 출옥한 옥중성도 한상동목사(1901-1976)가 일어났습니다. "회장! 신사참배가 죄입니까? 아닙니까?" 라고 외쳤습니다. 수라장이된 노회.

한상동목사님(1901-1976)

김길창목사(1892-1977, 반민특위에 체포됨)

이러한 썩은 노회에서 탈퇴한 것을 선언한후 노회장소에서 퇴장하였습니다. 그러자 방청객들은 모두 출옥성도 한상동 목사를 따라 퇴장하였습니다. 이후 진리투쟁의 역사가 계속되는데... 위 김길창은 적산을 불법불하 받아 학원재벌이 되어 훈장까지 받고 죽었습니다. 신학교 설립은 물론 교회연합회장도 하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악질 양아치 색끼는 일제말 성경구약은 유대인의 역사에 불과하므로 성경에서 통째로 삭제하자고 한 넘입니다. 구약에서 신사참배를 반대하므로 찔려서 그런 거지요. 그런데 자서전의 제목이 "말씀따라 한평생"입니다. 정신나간 등신도들이 뭘 알아야지!

나이 70이 넘어 며느리보다 어린 30초반의 자신의 교회 여전도사를... 세간의 화제가 된바 있습니다.

한편 한상동, 주기철, 손양원 목사(사랑의 원자탄) 등 대부분의 출옥성도는 경남출신인데 이들을 비롯한 출옥성도들은 교회사에서 대부분 삭제된 상태로 일반 등신도들은 물론 나이든 목사들조차 알지도 못하게 된 것입니다.

다만 주기철 목사는 옥중에서 순교해 버렸기 때문에 친일파 목사들이 면피용으로 거리낌 없이 이용해먹기도 하여 마치 신사참배에 항거한 유일한 목사같이 되어버렸습니다. 진보계열에서 아마도 가장 유명한 이영희 교수조차도 그렇게 알고 한탄하는 글을 쓰셨더군요. 사실은 주기철 목사는 혼자서 반대했지 조직적 반대운동을 한분은 한상동 목사이고 중심인물입니다.

위 김길창이 중심이 된 장로교총회측(통합+합동)은 출옥성도측의 예배당까지 소송을 걸어 통합측이 1965년까지 탈취해 버렸습니다. 출옥성도를 지지하는 교인이 압도적이었으나 지지측이 교회를 여럿 만들어 나가고 이북에서 내려온 교인등 알박기로 탈취당하게 된 것입니다. 재판 자체는 출옥성도측의 행정목사 송상석 목사의 소신대로 예배당은 교인의 총유가 법원에 의해 받아들여졌었습니다. 한상동 목사는 처음부터 자신을 따르는 대부분의 성도들 400여명과 나와 비오는 가운데 맨땅위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탈취측에 남은 교인은 불과 19명.

◀첨언◀
이젠 적어도 "정치토론 사이트에 왜 교회문제를 올리느냐?" "교회사이트에 올려라!" 하는 따위의 소리가 더 이상 올라오지 않는다는 것은 대단한 인식의 발전입니다.

이제야 비로소 네티즌들이 오늘날 썩은 정치판과 악질친일파목사들과 그 똘마니들의 행각은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된 거죠! 이렇게 되기까지 정말, 정말, 정말 힘들었습니다.

악질 친일파목사들과 그 후예들이 역대독재정권의 하수인 노릇을 한겁니다. 지금도 그러고요.

아래 중대자료 2개를 찾아내 발표합니다. 잊혀진 자료들이죠. 온라인으로 검색해 찾아냈습죠! 교회사가들도 모릅니다.

■치마를 벗고 정조를 스스로 내주는■★←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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