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도 포격 사태 - 합리적으로 풀어야 한다
- [기고] UN상임이사국 공동조사로 해법을 찾는 것도 방법

(민중의소리 / 신상철 / 2010-12-10)

서해접경구역에서 상호 포격전 발생 이후 일견 안정을 찾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얼어붙은 긴장상태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쌍방간에 자체사격훈련을 통한 무언의 시위전과 함께 건드리면 쏟아붓겠다는 식의 비방전을 주고받는 양상입니다.

오만이 무모함을 부르고 무리한 도전으로 이어진다면 그 결과는 공멸 밖에 없다는 것을 모를 리 없는 처지들이고 보면 어느 쪽이든 속내엔 말 못 할 고민거리들이 가득 했었을 터입니다. 울고 싶은데 누군가 뺨을 갈겨주길 바라고 있었던 심정들이라고나 할까요.

시계바늘을 한 순간에 20년 전의 모습으로 되돌려 놓았으니 참으로 한심한 노릇입니다. 그 와중에 고통받는 것은 민초들 뿐이며 한반도에서의 높아진 갈등은 결국 한반도에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생존에 대한 위협만을 고조시키고 있을 뿐입니다.

연평도 포격 사태 이후 몇 가지 생각해 보아야 할 점을 짚어 보고자 합니다.


연평도 주민에 대한 구호(救護)에 국가의 존재는 없다

삶의 터전을 뒤로하고 뭍으로 피난 아닌 피난을 떠나야 했던 연평도 주민들은 현재 인천의 한 찜질방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습니다. 국가의 재난으로 발생한 피해에 대한 구호의무를 국가가 아닌 민간사업자가 대신해주고 있는 참으로 부끄러운 현실을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그 속에 국가의 존재는 없어 보입니다.

그 비용을 국가나 지자체가 담당하고 있다거나 필요한 물자를 제공하고 있다는 등의 말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것은 당연한 일일 뿐이지 지금의 상황에 대한 변명 조차 되지 못합니다. 사람이 생활한다는 것이 그저 ‘밥 먹여주고 잠 재워주면 해결된다’고 보는 영혼없는 공무원들의 단세포적인 변명거리에 불과한 얘기입니다.

외부로 부터의 공격에 국민을 보호해야 하는 의무감 못지않게 피해를 입은 국민에 대한 구호의무 역시 국가의 주요한 책무입니다. 그것이 ‘보호자로서의 국가’가 해야 할 역할이고 지켜주어야 할 품격입니다. 제대로 보호하지도 못하면서 공격해오면 물리치겠다고 큰 소리 칠 것이 아니라 소박한 구호업무라도 제대로 하라 나무라고 싶습니다.

국가 전체가 전란에 빠져 피난민이 지천으로 발생하는 상황도 아니고, 숫적으로 그렇게 많은 분들도 아닙니다. 일시적으로 삶의 터전을 떠나올 수밖에 없는 분들에 대한 기초적인 처우문제입니다. 국가는 가장 우선적으로 그분들이 편히 머물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고 제공했어야 합니다. 무슨 수를 쓰든 그리 했어야 합니다.

불가항력적인 상황에 의해 주민들이 삶의 터전을 떠나야 하는 것이 ‘비상상황’이듯이, 국가가 그러한 시설물을 확보하고 제공하는 것 역시 ‘비상상황’에 준하는 급박함과 무게감으로 조치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일차적으로는 인천시장, 그리고 행자부장관, 최종적으로는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직무유기를 한 것이며 그에 대해 가혹한 비판을 받아 마땅합니다.

현재의 상황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 바로 ‘대통령이 찜질방으로 방문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목도리 주기 좋아하는 대통령이 연평도 주민을 만나기 싫어서 안 가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이 찜질방에 들어가는 상황이 문제이겠지요. 그것이 바로 찜질방 해법이 잘못되었다는 것과 대통령이 국민께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다는 것의 반증입니다.


국제형사재판소(ICC) 예비심리 착수 문제

국제형사재판소(ICC, International Criminal Court)의 검찰부에서 ‘연평도 포격 사건’과 ‘천안함 사건’을 예비조사대상으로 적시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ICC는 한국의 시민과 학생들로부터 탄원을 받아 착수했다고 하며 이에 대해 우리 외교통상부는 “ICC의 예비심리 착수를 환영하며 필요한 자료제공등 협조를 하겠다”고 합니다.

국제형사재판소(ICC)는 유엔총회의 요청으로 대량학살과 전쟁범죄 등 반인도적 범죄처벌을 위해 2002년 7월 설립된 기구로 한국을 포함 114개국이 ICC당사국입니다. 국제사법재판소(ICJ, International Court of Justice)와의 차이는 ICJ가 ‘국가’간 분쟁을 다루는 반면 ICC는 반인도 범죄를 저지른 ‘개인’을 처벌한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연평도 포격 사건을 ‘국가간의 문제’로 볼 것인지 아니면 ‘개인의 문제’로 볼 것인지 여부인데, 한국의 학생과 시민의 탄원으로 착수하였다고는 하지만 국제형사재판소에서 예비심리에 착수한 자체가 연평도 문제를‘어느 특정 개인의 범죄’쪽으로 가닥을 잡았다는 뜻인데 어떤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일까요.

이것은 한반도가 안고 있는 고질적 문제를 의도적으로 회피하기 위함이라는 지적으로부터 절대 자유로울 수 없으며 그 실효성 측면에서도 회의적인 것으로 보입니다.

첫째, 연평도 포격 사건은 쥐죽은 듯이 고요하고 평화로운 가운데 선전포고하듯 발생하였다기 보다는 상호 예리하게 각을 세운 상태에서 접경지역에서의 대규모 사격훈련이라는 공통관심사를 놓고 상호 신랄한 비판과 함께 공문을 주고 받는 가운데 발생한 사건이라는 점입니다. 따라서 그 속에는 국가간의 갈등이 존재하는 것이 엄연한 사실입니다.

둘째, 연평도 포격 사태 이전에 발생하였던 두 차례의 연평해전과 대청해전에 이르기까지 서해 해상에서 ‘과거와 현재’ 뿐만아니라 ‘미래에도 여전히 상존할 수밖에 없는 남북간의 고질적인 갈등문제’라는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이 옳으며, 이번 사태를 별개의 개인적 사안으로 몰아간다하여 그것이 남북간의 고질적 갈등구조를 해소하는 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셋째, 국제형사재판소(ICC)에서 사건을 처리하는 절차는 예심(예비심리)을 실시한 후 전심재판부의 허가를 얻어 수사에 착수하고 체포영장이 발부돼 신병을 확보하면 재판에 들어가는 것인데, 연평도 포격 사건과 관련하여 ‘체포영장 발부’나‘신병확보’등의 절차를 과연 실효성 있게 집행할 수 있다고 본다는 것인지 의아한 생각입니다.

넷째, ICC에서 다룬 사건으로는 과거 콩고의 반군지도자를 비롯 수단, 우간다, 케냐등 아프리카 내전 국가들을 대상으로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실체적 조사와 진실 규명’이라는 측면 보다는 ‘국제사회에서의 정치적 이미지에 타격을 주기 위한 의도’와 ‘일방적으로 제공된 자료에 대한 합법성 부여’라는 지적을 받을 여지가 있다는 점입니다.

다섯째, 국제형사재판소(ICC)의 경우 미국, 중국, 인도, 파키스탄, 인도네시아, 터키가 조약에 서명하지 않고 있으며 러시아, 이란, 이집트, 이스라엘 등이 비준을 하지 않고 있는 등 상당한 주요 국가들이 참여하지 않고 있는 상태가 보여 주듯이 아직까지 국제적사법기관으로서의 공신력과 형평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지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입니다.

특히 미국은 해외주둔 미군이 정치적 동기로 기소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서명 및 비준을 미루고 있으며 ICC로부터 면책특권을 주지 않으면 보스니아 주둔 미군을 철수시키겠다고 협박하여 유엔안보리가 12개월 단위로 미군 기소면제특권을 갱신해 주기로 결의한 바 있어 국제사법기관의 권위와 형평성의 문제점을 스스로 드러낸 바 있습니다.

따라서 ‘연평도 포격 사태’나 ‘천안함 문제’는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아닌 국제사법재판소(ICJ)에서 공정한 절차에 따라 조사 및 심리를 하는 것이 합리적 해법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1945년 설립된 이후 수많은 국가간 분쟁과 갈등문제를 심리하고 해법을 제시하였던 권위와 위상에 대한 국제적 신뢰가 바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 발 더 나아간다면 국제사법기관이 아닌, UN총회의 의결을 거쳐 UN상임이사국에서 공동으로 조사를 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는 것 또한 객관성과 공정성 그리고 투명성을 담보한다는 측면에서 대단히 바람직한 해법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중요한 것은 한반도에서의 평화문제와 갈등해소를 위한 해법을 찾자는 목적인만큼, 그와 관련될 수 있는 어떠한 조사나 심리를 행함에 있어 공정성, 투명성, 객관성 그리고 과학적 검증이 보장되어야 하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절차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가장 원초적인 조건을 말하는 것입니다.


NLL 문제 - “ 선 긋기 시작하면 싸우게 된다 ”

국내외를 통틀어 한반도 정전협정 체제의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이문항 전 유엔군 사령관 특별고문이 2007년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입니다.

그는 1966년부터 1994년까지 군사정전위원회 현장을 지켜보았던 ‘판문점의 산 증인’으로 북방한계선(NLL)에 대해 “NLL은 정전협정 상에 어떠한 근거도 없는 선”이라며 “70년대 말까지 한·미연합사 작전참모는 물론 사령관도 NLL의 성격을 몰랐다”고 증언합니다.

그는 “‘북방한계선’이라는 용어자체가 ‘남에서 그 선 이북으로 가지 말라는 것’이었지 ‘북쪽에서 그 선 밑으로 내려오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었다”며 정전협정시 남과 북이 합의하지 못하여 해상분계선을 만들지 못한 것이 이후 끊임없는 갈등과 충돌을 야기하였다고 지적합니다.

이러한 갈등의 근원을 해소하기 위한 가장 실질적인 노력이 참여정부에서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던 ‘공동어로구역 설정 논의’였습니다. 서해 5도 영해와 북한 영해가 겹치는 수역에는 중간선을 긋되 중간의 공해는 봉쇄할 것이 아니라 공동어로구역을 만들어 함께 사용하는 바다로 만드는 실질적인 해법이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사실상 서해해상에서의 충돌을 막고 오랜 세월 갈등을 유발시키며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켜왔던 고질적인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유일한 대안이었음은 물론입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쌍방간 논의가 지난 대선 이틀 전인 2007년 12월 17일 남북고위장성급 회담이후 더 이상 지속되지 못하게 된 것은 참으로 가슴아픈 일입니다.

어차피 이 정권 하에서 그러한 논의가 재개되는 것을 꿈꾸는 것은 기대난망한 일이고, 차제에 국제사법기관을 통해 ‘연평도 포격 사건’과 ‘천안함 사건’에 대한 조사까지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공정성과 투명성이 보장된다는 전제하에 그것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것도 좋은 해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국제사법기관의 중재하에 남과 북이 한 자리 앉아 고질적인 경계선 문제와 함께 공동사용구역설정에 대하여 합의를 도출해 낼 수 있다면 그나마 이 시점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한 가장 중요한 해법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하는 것이지요.

한반도의 긴장이 갈수록 고조되는 모습을 보는 가운데 ‘6.15공동선언’과 ‘10.4정상선언’이 더없이 소중한 의미로 다가오는 요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