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철...바다, 병원, 노무현 그리고 천안함 (민중의소리 / 이정무 기자 / 2011-01-24)
1. 바다와 배
해양대를 나와 배를 탔다. 해군 수송선을 타고 서해5도를 다녔고, 84년부터는 커다란 화물선의 3등 항해사가 되어서 태평양을 건너다녔다. 그의 꿈은 멋진 크루즈의 선장이 되는 것이었는데, 바다에서 스쳐 지나던 일본 화물선의 3등 항해사 친구를 ‘무선 통신망’으로 사귀는 바람에 갑자기 컴퓨터라는 세계로 접어들게 되었다.
“항해사 일이라는 게 지루하거든요. 대양에서는 며칠이 가도 마주 오는 배 한 척 만나지 못할 때도 있어요. 그러면 보통 마작을 하거나 카드게임을 하는 데, 그게 싫어서 선배들 근무시간까지 다 모아서 일을 했어요. 그래도 심심한데, 그러다보니 몇 번 마주친 일본 배의 3등 항해사랑 무선망으로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 친구에게 ‘뭐 하면서 시간을 보내냐’고 물으니 컴퓨터를 한다고 해요. 나도 베이식(BASIC-프로그래밍 언어의 일종)만 되는 작은 워크스테이션을 장만했지요.”
베이식을 독학으로 배워서 프로그램에 눈을 떴다. 처음 해 본 프로젝트(?)는 항구에서 짐을 싣고 내리고 나서 배의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계산을 하는 것이었다. 그 때만 해도 1등 항해사가 하루 꼬박 계산을 해야 하는 일이었는데, 그가 만든 프로그램으로는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선배 항해사들의 사랑을 받은 것은 물론이었겠지만, 본사에서도 관심을 보였다. 바다가 좋아서 배를 타던 청년은 갑자기 서울의 전산실로 발령을 받았다.
전산실 근무는 길지 않았다. 컴퓨터를 전공한 동료들은 그에게 항해 실무를 배운 후 얼마안가 그가 만든 프로그램보다 훨씬 나은 프로그램들을 쏟아냈다. 전산업무에 흥미를 잃은 그를 회사는 신조선 감독으로 보냈다. 신조선 감독이란 글자 그대로 새로운 배를 만드는 과정을 감독하는 업무다. 해운회사는 조선소에 배를 주문한다. 이를 감독할 현장 소장쯤 되는 셈이다.
거제 삼성조선, 옥포 대우조선, 울산 현대조선. 현대정공을 돌면서 그는 2만3천톤급 컨테이너선 10척과 13만톤급 벌크캐리어 3척이 만들어지는 걸 감독했다. 그의 말대로 배가 어떻게 생겼고 어떤 문제가 있을 수 있는지를 ‘빠삭하게’ 배웠다. 신조선 감독은 그의 바다 인생의 마지막이 되었는데 그가 다니던 해운회사가 그가 파견 나가서 감독업무를 하던 조선공사를 인수한 것이다. 갑자기 그는 ‘갑’에서 ‘후배’가 되었다. 감독이 제대로 되기 힘들었다. 그는 미련 없이 사표를 던지고 병원으로 갔다.
1982년에 해군 소위로 서해에 발을 딛었고 사표를 던진 게 1991년이니 꼬박 10년을 바다와 배에서 보낸 것이다.
2. 병원 전산
그가 찾아간 곳은 부산의 K의료원 전산실이었다. 3달을 누구보다 빨리 출근해 전산실을 청소해 주면서 일을 배웠다. 신조선 감독을 하면서도 전산 관련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제대로 배우기만 한다면 금방 적응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예상은 그리 빗나가지 않았다. 이제 시작되기 시작했던 병원 전산에서 그는 실무 중심의 시스템을 개발하고, 전산실장 보험과장 심사과장 기획실장 등을 지냈다. 이 기간은 의료보험과 의료 수가 정책, 의약분업 등의 문제에서 그가 전문가를 뺨치는 지식을 갖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병원 전산실에서 쌓은 실력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그의 ‘호구지책’이 된다. 잘 만든 시스템은 약간의 유지보수만으로도 상당히 긴 생명력을 보여주는 데 그가 만든 병원전산시스템이 그랬다. 의료보험을 비롯한 병원에서 돌아가는 ‘돈’에 대해서 그의 시스템은 실용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그가 인생의 ‘돈 안되는’ 세 번째 페이지를 시작했을 때도 얼마간은 그를 지탱해 주었으니 말이다.
3. 인터넷 - 노무현, 그리고 천안함
ⓒ민중의소리 김철수 기자
신상철 서프라이즈 대표
이 쯤에서는 그의 이름을 알려주어야 한다. 그의 이름은 ‘독고탁’이다. 조인스닷컴의 토론방을 이용해 본 사람이라면 ‘가우리’도 기억할 수 있다. 지금은 천안함 사태에 한 가운데서 ‘악명’을 날린 신상철 서프라이즈 대표로 알고 있는 사람도 많을 것이지만, 2009년까지만 해도 그는 본명보다 훨씬 더 유명한 필명을 가진 사람이었다.
‘독고탁’은 2004년 서울로 올라왔다. 부산에서 개인 사업을 하고 있던 그는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을 보고 자신의 차에 이것저것 - 그 중에는 아이가 먹던 과자 남은 것도 있었다 - 마구잡이로 때려넣고 서울로 향했다. 국회 앞에서 탄핵 반대 촛불을 든 그는 군중이 흩어져 집으로 돌아갈 때 서프라이즈 사무실에 들렸다.
당시 서프라이즈 대표를 맡고 있었던 서영석 대표는 그를 반겼고 결국 그를 서프라이즈 ‘영업이사’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한다. ‘독고탁’이 영업이사가 된 것은 약간은 우연이었다. 서프라이즈의 유명 필진이자 애독자였던 그는 막상 서프라이즈 사무실이 초라한 것에 놀랐고, 돈을 버는 데 별 재간이 없는 것에 놀랐다. 그래서 선물 차원에서 ‘서프라이즈가 먹고 살 수 있는 방법 30가지’를 메모해서 남겼는데, 이걸 본 서 대표가 그를 붙잡은 것이다.
달은 차면 기울기 마련이다. 서프라이즈는 2005년 이후로는, 최소한 재정적으로는 줄곧 하향세를 걸었다.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이 국정 감사를 통해 서프라이즈에 광고를 주는 기업들을 ‘조진’게 신호탄이었다. 그리고 정권이 바뀌고 나서 신상철 대표를 비롯한 서프라이즈 관계자들은 때아닌 계좌추적을 당하기도 했다. 뭔가 구린데가 있을 것이라는 다분히 ‘이명박 정권스러운’ 추측 때문이었다.
요즘 서프라이즈는 그야말로 ‘긴축형’으로 운영된다. 그러나 한 번 기운 달은 또 차오른다는 게 자연의 섭리다. 그의 머릿속엔 다시 달을 차오르게 할 크고 작은 기획이 여러 편 들어있다.
물론 지금 그는 천안함에서 명예를 훼손당했다고 우기는 국방부와, 국방부의 주장에 늘 그렇듯이 무조건 힘을 실어주는 검찰에 의해 재판에 회부되어 있다. 그가 원하기도 했던 이 재판이 단순히 언론 자유를 확인하는 선에서 끝나지 않고, 천안함의 진실에 다가가는 수단이 되기를 그는 희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