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오, 수구 언론의 행태를 답습하지 않았는가? - [진보당 사태 1년 특별기획-④] 이른바 ‘진보언론’의 허위, 왜곡 보도
(민중의소리 / 김대규 서울디지털대 법학과 교수 / 2013-05-02)
1. 사실인지 아닌지를 파악하기도 전에 한발 빠른 ‘특종'에 대한 유혹은 지대하다. 언론인으로 자부와 기자들의 평상심을 잃게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한명숙 전 총리를 둘러싼 뇌물수수 의혹이 그랬고, 곽노현 교육감에 대한 보도가 그랬다. 확인되지 않은 수많은 피의사실이 검찰과 경찰의 발표라는 이름으로 독자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됐다.
적어도 ‘정론직필’을 지향하는 언론으로 자부한다면, 검찰과 경찰이 발표하는 수많은 피의사실 가운데 적어도 기초사실에 대해서는 확인을 해 보는 것이 마땅할 터이다. 그러나 단지 ‘매체’라는 말에 걸맞게 전해 받은 그대로 쏟아낼 뿐이었다. 그 결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서거했고, 한명숙 총리와 곽노현 교육감의 인격은 짓밟혔다.
이러한 만행은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수구 언론뿐만 아니라 ‘한경오’로 대표되는 이른바 진보언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검찰에 의해 이른바 대표적인 ‘진보 명망가’에 대한 피의사실이 발표되자 곧바로 그들의 도덕성을 질타하고, 부도덕한 풍문에 대한 윤리적 책임을 묻거나, 교육감의 사퇴를 종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뒤늦게 피의 사실이 아무런 근거가 없거나 검찰의 일방적 추측에 가깝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른바 진보 언론은 논조의 수위를 조절하거나 정부와 검찰을 맹비난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사태는 이미 어그러진 뒤였다.
2. 약 1년 전, 충격적으로 신문의 1면을 달구었던 ‘통합진보당 사태’에 대해서 이른바 ‘언론’은 어떤 모습을 보였을까? 조준호 진상조사위원장이 제기한 수많은 경선부정의혹을 거르지 않고 외려 ‘여론재판’을 유도하지는 않았을까? 통합진보당에 대해 적대적인 수구 언론은 예외로 하더라도 이른바 ‘진보 언론’은 이러한 여론 재판에서 자유로울까?
“오늘자 한겨레 석진환 기사 유감; 총선 바로 전 합당했던 계파 연합이라는 현실을 무시하고, 투표권 자격을 3개월 이상 당비 납부에서, 1개월로 낮춘 것도, 오직 경선용 당원동원으로 보도. 그럼 합당으로 (당원이 된 지) 한 달 밖에 안 된 참여계, 진보신당계 당원 어떻게 투표?”
「노자 읽은 아줌마@ net4040」 라는 트위터리안이 작년 6월 26일에 쓴 글이다. 필자도 같은 기사를 읽으면서 ‘노자 읽은 아줌마’ 이상의 불편한 느낌을 가졌다. 석진환 기자를 비롯하여 『한겨레』의 진보당 관련 기사는 과장과 비약의 정도가 심했다. 숫제 ‘구 당권파’를 지구에서 축출하려고 작정을 했나 싶었다.
2012년 5월 3일자 경향신문 보도ⓒ경향 PDF 지면
작년 8월 국회 정론관에서 열렸던 <매카시즘과 한국 언론의 현실과 과제>라는 토론회에 신상철 서프라이즈 대표는 이른바 ‘노뼈’라고 자부하는 자신이 왜 통합진보당 보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였는지 이유를 밝혔다.
“통합진보당 사태가 불거진 이후 계속 제 머리 속을 맴돌았던 생각 중의 하나는 ‘이건 아닌데’ 라는 의문이었다. 어느 집단이나 개인에 대한 호불호나 편견을 배제하고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아야 한다며 객관적 시각을 유지하려 애를 썼지만 통합진보당 사태는 천안함 사건이 그러했듯이 또 하나의 불편한 진실로 다가왔다.”
작년 5월 10일 조준호 1차 진상조사위원장이 『오마이뉴스』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동일 IP 중복투표를 조사하는데, 주민번호 뒷자리가 같은 당원을 무더기 발견을 했다면서 (부정이) 명백하다.”고 말했다. 『오마이뉴스』의 ‘주민번호 뒷자리 중복’ 보도는 다른 매체들에 의해 경선부정의 명백한 증거로 성남의 중국집 단체유령당원 소식과 함께 확대·전파되었다.
그러나 신 대표는 대해 자신의 가족의 예를 들면서 주민번호 뒷자리가 같은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는 우리나라 주민번호 시스템의 문제를 지적하는 글을 『서프라이즈』에 지속적으로 게재한 바 있다. 주민번호중복의 문제는 박정희 정권이 이 제도를 도입한 이래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를 단독 보도한 『오마이뉴스』와 여타의 매체들은 이에 대해 정정 또는 반론보도를 싣지 않았다.
3. “기자가 소설을 쓰면 정치 평론가가 각색을 하지. 그럼 독자는 읽고 감동 내지 혹평을 하지. 개연성이 높으면 리얼하고 어느 순간 드라마틱한 요소에서 팩트는 사라져 버린다.”
@social_eng라는 아이디를 가진 트위터리안의 촌평이다. 그의 촌평만큼 통합진보당 사태에 대한 절대 다수의 보도는 마치 불륜과 패륜을 주제로 한 아침드라마와 같았다. 처음부터 드라마 출연진의 선과 악의 역할이 분명했고, 나쁜 ‘년’과 ‘놈’에 대해서는 그들의 주장은 모두 구질구질한 변명에 불과한 것처럼 보였다.
미디어 오늘 백병규 전 편집국장은 <매카시즘과 한국 언론의 현실과 과제>라는 토론회에서 “ 구당권파는 ‘악’, 신 당권파는 ‘선’의 대비가 뚜렷해 ‘사실’ 여부는 중요하지 않은 지지와 배제의 문법이 지배했다”고 평가했다. 진상조사를 통해 드러난 사실관계 확인을 중요하게 다루지 않고 배척과 쏠림, 선과 악의 이분법을 적용했다는 것이다.
또한 백병규 전 국장은 “통합진보당 사태에 대한 여론조사에서 ‘조사 후 책임을 물어야’ 라는 항목에 대한 지지가 높게 나왔다는 2012년 5월 28일 『인터넷 한겨레』의 기사가 삭제된 것을 의미 있게 바라보았다. 진보 언론들이 통합진보당 사태를 보도하면서 일관됐던 ‘전적인 쏠림’과 일종의 ‘강박의식’을 보여 준 대표적인 사례라는 것이다.
4. 통합진보당 사태를 다룬 「진보의 블랙박스를 열다」라는 책이 있다. 제2차 진상조사위원회의 위촉으로 선거프로그램의 IT로그 기록을 분석한 김인성 교수를 비롯하여 다수의 비당원들이 집필에 참여했다. 이 책을 기획·편집한 최진섭 시인은 통합진보당사태 1주년을 맞아서 페이스북에 통증이 여전함을 밝히고 있다.
“작년 5월 통합진보당 사태를 겪으면서 받은 마음의 상처가 1년이 지났는데도 쉽게 치유되지 않는다. 이런 증상을 의학용어로 ‘외상 후 울분 장애’라고 하는 것 같다. 고2 때 헌책방에서 4.19혁명 자료집 사서 읽은 뒤, 대학 시절 광주항쟁 비디오 본 뒤에도 비슷한 증세가 있더니만, 나이가 들어도 마음을 다스리기가 쉽지 않다.”
최 시인은 당원이 아니다. 그러나 4.19와 5.18과 버금가는 울분장애를 겪었다고 고백한다. 의학적으로 이러한 울분장애를 겪는 사람은 대체로 분노를 일으키는 원인을 3개월 이상 계속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나의 페이스북 친구들 중에도 유사한 증상을 호소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어떻게 이렇게 되었을까? 어떻게 하면 이런 장애를 치료할 수 있을까? 상처의 치유는 상처를 준 상대방이 적극적으로 치유에 동참해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울분으로 원한과 복수로 발전할 소지가 높다.
5. 지난 1년 동안, 통합진보당 경선부정의혹에 대하여 조사가 거듭되면서 중요한 의혹이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다. 그 사이 부정경선의혹을 제기하고 상대 계파를 종북주의자로 매도한 자들은 새롭게 당권을 거머쥐었으면서도 탈당했거나 스스로를 제명했다. 조준호 진상조사위원회의 주요 위원들이 구속되었다. 유시민계와 조준호계의 비례후보들이 검찰에 의해 구속·기소되었다.
이쯤 되면 ‘한경오’(한겨레, 경향신문, 오마이뉴스)도 한마디 ‘유감’을 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지금껏 ‘한경오’ 중에 관련 기사는 인터넷 경향신문의 ‘뉴스플러스’ 라는 꼭지가 유일한 듯하다. 이 기사 말미에서 원희복 선임기자는 물어뜯기에 바빠서 진실을 보지 못했다며 죄송하다고 말하였다. 그의 말에 가슴을 쓸어내린다. 위로가 크다.
통합진보당 사태에 대한 언론의 보도 행태를 조명하기 위해 지난해 8월 개최된 '매카시즘과 한국언론-현실과 과제' 입법토론회ⓒ양지웅 기자
“진실이 가려진다고 해도 진보 세력은 회복하기 어려운 타격을 입었습니다. 진보세력의 대통합은커녕 증오만 키웠기 때문입니다. 사태를 이렇게 만든 사람은 한국진보운동사에서 매우 엄중한 책임을 져야 하겠지요. 무엇보다 사태가 여기까지 이른데 우리 언론의 책임이 큽니다. 분위기에 매몰돼 하이에나처럼 물어뜯기 바빴지 진실을 보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사과드립니다.”
사진작가 이시우는 『비무장지대에서의 사색』 에서 “진보란 주인으로서의 성장이며 보수란 관성으로서의 정체”라고 고백하였다. 과거의 행태를 이유로 인식과 판단의 정체를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 관성이다. 그리고 이러한 관성을 내면화하는 것이 보수다. 관성에 기대는 인식의 정체는 ‘보수’의 다른 말이다.
언론이 ‘진보당’에 대하여 실증적으로 객관화하여 비판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기자가 자기 경험이나 인식의 테두리에서 특정한 정치 세력을 개념화하거나 일반화하여 비아냥거리는 것은 옳지 않다. 어쩌면 그것은 옳고 그름을 떠나 게으른 것일지 모른다. 통합진보당 사태를 보도한 이른바 진보언론이라고 불리는 ‘한경오’는 어떠했나? 스스로 수구 언론의 행태를 답습하지 않았는가? 과연 인식과 판단의 주인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었는지 답해 주기 바란다.
